산길에서
- 이성부 / <우리들의 양식>, 1974 -
이 길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나를 걷게 하는 그이들이
지금 조릿대발 눕히며 소리치는 바람이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 문득 나를 쳐다보는 수줍음으로 와서
내 가슴 벅차게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짐승처럼 그이들 옛 내음이라도 맡고 싶어
나는 자꾸 집을 떠나고
그때마다 서울을 버리는 일에 신명나지 않았더냐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도
힘이 다하여 비칠거리는 발걸음들도
무엇 하나씩 저마다 다져 놓고 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나는 배웠다
그것이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그 부질없음 쌓이고 쌓여져서 마침내 길을 만들고
길 따라 그이들 따라 오르는 일
이리 힘들고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 되는지를 나는 안다.
벼
- 이성부 / <우리들의 양식>, 1974 -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 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
* 이성부(李盛夫, 1942-2012)
1967년 ~ 시학 동인 활동
1959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1966년 작품명 '우리들의 양식' -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들의 양식」이 당선
1969년 현대문학상
1977년 제4회 한국문학작가상
1942년 전남 광주 출생. 광주고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59년 고교 재학시절 『전남일보』 신
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태광』, 『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시인 김현승으로부터 사사(師事)
를 받았다. 1961년 『현대문학』에 「소모의 밤」, 「백주」로, 1962년에는 『동지』에 「열차」,
「이빨로」로 추천 완료하였으며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들의 양식」이 당선되기도
했다. 1967년 김광협‧이탄‧최하림 등과 『시학』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1968년에는 『68문학』, 『창
작과비평』에도 참여하였다. 그의 시는 초기 「목공요셉」, 「서울식 해녀」, 「우리들의 양식」,
「전라도」 등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매우 직선적이고 생경할 정도의 대사회적 메시지의 세계를 펼쳐
보이다가 1970년 「벌판」, 「바다」 이후 자기 인식의 피비린 응시로 자기 고통을 지겠다는 결연한
운명의 세계를 보여준다. 1960년대 대표적 참여시인의 하나로 소박한 언어로 현실인식이 짙은 시를
주로 창작했다. 1969년에 첫 시집 『이성부 시집』을 간행한 이래 『우리들의 양식』(1974), 『백제
행』(1977), 『전야』(1981), 『빈산 뒤에 두고』(1989), 『저 바위도 입을 열어』(1998), 『우리 앞
이 모두 길이다』(1999), 『지리산』(2001),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2005), 『오늘의 양식』
(2006) 등을 간행하였다. 1969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1977년에는 제4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벼(이성부) / 시낭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