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정호승> 파도타기 / 그리운부석사 / 풍경달다

이름없는풀뿌리 2023. 12. 6. 04:23
파도타기 - 정호승 / <슬픔이 기쁨에게> , 1979 - 눈 내리는 겨울밤이 깊어갈수록 눈 맞으며 파도 위를 걸어서 간다. 쓰러질수록 파도에 몸을 던지며 가라앉을수록 눈사람으로 솟아오르며 이 세상을 위하여 울고 있던 사람들이 또 이 세상 어디론가 끌려가는 겨울밤에 굳어 버린 파도에 길을 내며 간다. 먼 산길 짚신 가듯 바다에 누워 넘쳐 버릴 파도에 푸성귀로 누워 서러울수록 봄눈을 기다리며 간다. 다정큼나무 숲 사이로 보이던 바다 밖으로 지난 가을 산국화도 몸을 던지고 칼을 들어 파도를 자를 자 저물었나니 단 한 번 인간에 다다르기 위해 살아갈수록 눈 내리는 파도를 탄다. 괴로울수록 홀로 넘칠 파도를 탄다. 어머니 손톱 같은 봄눈 오는 바다 위로 솟구쳤다 사라지는 우리들의 발 사라졌다 솟구치는 우리들의 생(生) 그리운 부석사 - 정호승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창비, 1999년 -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게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마지(摩旨)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풍경 달다 - 정호승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창비, 1998년 -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더 한장] 운주사 와불(臥佛)은 언제쯤 일어날까 '운주사 석불석탑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 신청 <조선일보> 김영근 기자 입력 2024.07.11. 07:01 운주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불상중 하나인 와불은 산기슭에 누워있는 불상으로 길이만 12m에 이른 다.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개벽한다는 전설이 있다. ./2024.7.4. 김영근 기자 전남 화순군이 오는 10월 국가유산청에 ‘운주사 석불석탑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으 로 신청할 계획이다. 화순군 도암면에 위치한 운주사(雲珠寺)는 일명 ‘천불천탑’으로 불리며, 다양한 석탑과 성불상이 밀집한 독특한 사찰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이 사찰에는 9층 석탑(보물 제796 호),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와불 등 총 108기의 석불과 21기의 석탑 이 있다. 특히 운주사의 대표적인 불상인 와불(와형석조여래불)은 길이 12m의 누운 형태의 불상으로, 그 규모와 독특함이 방문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또한, 거대한 북두칠성 모양을 한 ‘철성석’은 국내 유일의 별자리 거석이다. 운주사는 그 문화적, 종교적 보존 가치를 높이 평가 받고 있으며, 이를 인정받고자 지난달 화순군청 에서 한국, 일본, 태국, 파키스탄 등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참여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학술 대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학문적 토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화순군은 2025년 상반 기에 유네스코에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정식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운주사의 독특한 문 화유산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보존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원형다층석탑(보물 제 798호), 석조불감 (보물 제797호), 칠층석탑. /2024.7.4. 김영근 기자 '석불군 가'. 운주사 입구 9층석탑의 동쪽에 있다. 수직 단애면에 대좌를 마련하고 그 위에 불상을 모셨다./2024.7.4. 김영근 기자 '석불군 바' 서쪽 산기슭에 있는 와불로 가는 길 중간 암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2024.7.4. 김영근 기자 * 정호승(鄭浩承, 1950~ )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 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 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등이, 시선집으로 『내 가 사랑하는 사람』, 『흔들리지 않는 갈대』, 『수선화에게』 등이, 동시집 『참새』, 영한시집 『부치지 않은 편지』,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 『연인』, 『울지 말고 꽃을 보라』, 『모닥불』, 『기차 이야기』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소년부처』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상화시 인상, 공초문학상, 김우종문학상, 하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언제나 부드러운 언어의 무늬와 심미적 인 상상력 속에서 생성되고 펼쳐지는 그의 언어는 슬픔을 노래할 때도 탁하거나 컬컬하지 않다. 오히 려 체온으로 그 슬픔을 감싸 안는다. 오랜 시간동안 바래지 않은 온기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그의 따스한 언어에는 사랑, 외로 움, 그리움, 슬픔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 언뜻 감상적인 대중 시집과 차별성이 없어 보이지만, 정호 승 시인은 ‘슬픔’을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으로 승인하고, 그 운명을 ‘사랑’으로 위안하고 견 디며 그 안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는 시편 속에서 자신만의 색을 구축하였다. ‘슬픔’ 속에서 ‘희망’의 원리를 일구려던 시인의 시학이 마침내 다다른 ‘희생을 통한 사랑의 완성’은, 윤리적인 완성으로서의 ‘사랑’의 시학이다. 이 속에서 꺼지지 않는 ‘순연한 아름다움’이 있는 한 그의 언 어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풍경 달다(정호승) / 노래(안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