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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개 행성에 지하 바다 가능성…그곳엔 ‘외계 문어’ 헤엄칠까

이름없는풀뿌리 2023. 12. 24. 12:01

17개 행성에 지하 바다 가능성…그곳엔 ‘외계 문어’ 헤엄칠까

경향신문 이정호 기자입력 2023. 12. 24. 08:00
 
NASA 연구진, 원거리 외계행성 분석 발표
‘얼음 천체’이지만 내부에서 열 자체 발생
동위원소 붕괴·조석력이 ‘자연 난로’ 역할
외계 생명체 탐색용 망원경 개발 때 고려돼야
지구에서 4.2광년 떨어진 외계행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 b’ 표면 상상도. 최근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진은 프록시마 센타우리 b 등 17개 행성에 지하 바다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유럽남방천문대(ESO) 제공

#가까운 미래, 인류는 목성 위성 ‘유로파’를 향해 우주비행사 6명으로 구성된 탐사대를 파견한다. 지구를 떠난 직후부터 우주선 안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지구 밖 천체에서 처음으로 생명체를 발견할지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우주비행사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유로파 표면은 영하 170도의 추위가 지배하는 얼음 세계이다. 하지만 지하는 다르다. 액체 상태의 물이 일렁이는 바다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바다는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진화시키는 공간이다. 이미 지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실제로 우주비행사들은 유로파에서 지구 밖 최초의 생물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 위대한 발견을 한 이들은 지구로 돌아오지 못한다. 우주선이 무언가에 의해 공격받았기 때문이다. 우주선 내부 카메라에 녹화된 마지막 장면은 다리를 휘저으며 우주선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거대 문어였다.

2013년 개봉한 미국 공상과학(SF) 영화 <유로파 리포트>의 줄거리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우주선에 사람을 태워 유로파까지 보낸다는 설정은 현 과학기술 수준에서는 무리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설정 전부가 상상은 아니다. 우선 유로파 표면 아래에는 지하 바다가 진짜 있을 것으로 과학계는 본다. 예상되는 수량은 지구 바다의 2배나 된다.

유로파에 바다가 있다면 생물도 있을 공산이 크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30년대 유로파 지하 바다에 무인 잠수정을 투입할 예정이다. 우주과학계는 이때 지하 바다에서 생명 징후가 탐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최근 우주과학계는 유로파 같은 천체가 태양계 밖에 17개나 더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어쩌면 우주 곳곳에는 문어나 물고기를 닮은 외계 생명체가 살지 모른다는 뜻이다.

지구에서 40광년 떨어진 외계행성 ‘트라피스트-1h’ 상상도. 미국 항공우죽국(NASA) 연구진이 지하 바다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행성으로 꼽았다. NASA 제공
영하 100도 혹한에도 ‘지하 바다’

NASA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애스트로 피지컬 저널’을 통해 표면 얼음층 아래에 지하 바다가 존재할 가능성이 큰 태양계 밖 외계행성 17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현재까지 인류가 발견한 외계행성은 약 5000개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지하 바다를 품고 있을 만한 행성을 선별한 것이다.

연구진이 골라낸 외계행성들을 보면 크기는 대개 지구와 비슷하거나 2배 안팎이다. 다만 온도는 지구보다 낮다.

17개 행성 가운데 지구에서 4.2광년 떨어진 ‘프록시마 센타우리 b’는 영하 39도다. 지구에서 40광년 떨어진 외계행성인 ‘트라피스트-1h’는 영하 101도에 이른다.

태양계만 해도 태양과 거리가 꽤 떨어진 목성과 토성부터는 평균 온도가 영하 100도 아래로 내려간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아예 영하 200도 아래까지 곤두박질친다. 혹한은 외계행성에서도 상당히 흔한 일이다.

연구진은 이런 추운 외계행성들을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분석한 것이다. 외계행성들의 질량과 밀도, 크기는 물론 중심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공전하는지까지 종합적으로 따졌다.

동위원소·조석력이 ‘난로’ 역할

연구진 확인 결과, 어떤 외계행성들에는 지하 바다를 만들 만한 자체적인 열 발생원이 존재할 것으로 분석됐다. 그 숫자를 추렸더니 총 17개였던 것이다.

17개 행성들 가운데에는 중심별에서 빛과 열을 꽤 많이 받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와 별도로 ‘난로’를 각자 품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난로, 즉 자체 열 발생원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외계행성 땅속에 함유된 방사성 동위원소였다. 물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방사성 동위원소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원소로 바뀌는 ‘붕괴’를 겪으며 열을 뿜는다. 이 열이 특정 외계행성의 얼음을 녹여 지하 바다를 형성한 것이다.

지구 내부에서도 방사성 동위원소인 우라늄238 등이 붕괴하면서 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지구 중심부 온도는 수천 도에 이른다.

지하 바다를 만든 또 다른 열원은 조석력이었다. 조석력이란 큰 천체가 작은 천체 주변에 접근하면서 강력한 중력으로 잡아당기거나 짓누르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작은 천체에서는 마찰열이 발생한다. 마찰열은 얼음을 물로 바꾼다. 유로파의 지하 바다가 바로 조석력 때문에 형성됐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표면이 차갑지만 지하에 바다를 가졌을 가능성이 있는 외계행성은 우주생물학적으로 중요하다”며 “향후 생명체 서식이 가능한 천체를 찾기 위한 우주망원경을 개발할 때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