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이병기> 파랑새 / 박연폭포 / 처 / 아차산 / 농촌화첩 / 낙화

이름없는풀뿌리 2024. 2. 2. 07:12
파랑새 - 이병기 / <가람시조집>(1936) - - 파랑새 날아오면 그이도 온다더니 파랑새 날아가도 그이는 아니 온다 오늘도 아니 오시니 내일이나 올는가 기다려지는 마음 하루가 백년 같다 새로 이가 나고 흰 머리 다시 검어라 그이가 오신 뒤에야 나는 죽어 가리라 1750년경 겸재 정선作 박연폭포(개인소장) 박연폭포 - 이병기 / <가람시조집>(1936) - 이제 산에 드니 산에 정이 드는구나 오르고 내리는 길 괴로움을 다 모르고 저절로 산인이 되어 비도 맞아 가노라 이 골 저 골 물을 건너고 또 건너니 발 밑에 우는 폭포 백이요 천이러니 박연을 이르고 보니 하나밖에 없어라 봉머리 이는 구름 바람에 다 날리고 바위에 새긴 글발 매이고 이지러지고 다만 그 흐르는 물이 긋지 아니하도다 - 이병기 / <가람시조집>(1936) - 귀히 자란 몸에 정주도 모르다가 이 집 들어오며 물 긷고 방아 찧고 잔 시늉 안한 일 없이 가는 뼈도 굵었다 맑은 나의 살림 다만 믿는 그의 한 몸 몹시 섬약하고 병도 또한 잦건마는 그래도 성한 양으로 참고 그저 바꿔라 나이 더하더라도 마음이야 다르던가 백년 동안이 만나던 그날 같고 마주 푼 귀영머리는 나보다도 검어라 이미 맺은 인연 그대로 잇고 이어 다시 태어나되 서로 바꾸어되어 이 생의 못다한 정을 저 생에서 받으리 아차산 - 이병기 / <가람시조집>(1936) -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섶 바위 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쪽이 발 끝에 부딪히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고 벌건 메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농촌화첩1 - 이병기 / <가람시조집>(1936) - 웅덩마다 물 괴이고 밤에는 개구리소리 둥산에 숲이 짙어 낮이면 꾀꼬리소리 그 바쁜 마을 집들은 더욱 적적하여라 앞뒤 넓은 들이 어느덧 검어졌다 모기와 벼룩 거머리 뜯기다가 겉절인 글무 김치에 보리밥이 살지운다 일심은 오려논에 기심이 길어있다 헌 삿갓 베 잠방이 호미 메고 삽 들고 내 일은 내가 서둘러 새벽부터 나간다 올마다 호박넌출 그 밑에 가지 고추 비는 오려하는 무더운 저녁날에 똥오줌 걸찍한 냄새 온 마을을 적신다 몇만년 걸고 걸은 기름진 메와 들을 갈고 고르고 심고 거두고 하여 일찍이 우리 조상도 이 흙에서 살았다 낙화 - 이병기 / <가람시조집>(1936) -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이병기(李秉岐), 1891~1968) 1891(고종 28)-1968. 국문학자. 시조시인. 호 : 가람(嘉藍) 성격 : 학자, 시조시인 출신지 : 전라북도 익산 본관 : 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저서(작품) : 시조란 무엇인가, 시조는 혁신하자, 가람시조집, 국문학개론 대표관직(경력) : 서울대학교 교수 해방 이후 『국문학개론』, 『국문학전사』, 『가람문선』 등을 저술한 학자. 시조시인.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가람(嘉藍). 전라북도 익산 출신. 변호사 이채(李俫)의 큰아들이다. 1898년부터 고향의 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당대 중국의 사상가 량치챠오[梁啓超]의 『음빙실문 집(飮氷室文集)』을 읽고 신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1910년 전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13년 관 립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재학중인 1912년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周時經)으로부터 조선어문 법을 배웠다. 1913년부터 남양(南陽)·전주제2·여산(礪山) 등의 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때부터 국어국문학 및 국사에 관한 문헌을 수집하는 한편, 시조를 중심으로 시가문학을 연구, 창작 하였다. 당시 수집한 서책은 뒷날 방대한 장서를 이루었는데, 말년에 서울대학교에 기증하여 중앙도 서관에 ‘가람문고’가 설치되었다. 1921년 권덕규(權悳奎)·임경재(任暻宰) 등과 함께 조선어문연구 회를 발기, 조직하여 간사의 일을 보았다. 1922년부터 동광고등보통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 을 잡으면서 시조에 뜻을 두고, 1926년 ‘시조회(時調會)’를 발기하였다. 1928년 이를 ‘가요연구회 (歌謠硏究會)’로 개칭하여 조직을 확장하면서 시조 혁신을 제창하는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1930년 조선어철자법 제정위원이 되었고, 연희전문학교·보성전문학교의 강사를 겸하면서 조선문학을 강의하 다가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한때 귀향하였다가 광복이 되자 상경하여 군정청 편수관을 지냈다. 1946년부터 서울대학교 교수 및 각 대학 강사로 동분서주하였다. 6·25를 만나 1951년부터 전라북도 전시연합대학 교수, 전북대학교 문리대학장을 지내다 1956년 정년퇴임하였 다. 1957년 학술원 추천회원을 거쳐 1960년 학술원 임명회원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 제자복·화초복·술복이 있는 ‘삼복지인(三福之人)’이라고 자처할 만큼 술과 시와 제 자를 사랑한 훈훈한 인간미의 소유자였다. 그가 처음으로 문학작품을 활자화한 것은 1920년 9월 『공 제(共濟)』 1호에 발표한 「수레 뒤에서」이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산문시와 같은 것이었다. 그가 시 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시조부흥론이 일기 시작한 1924년 무렵부터였다. 이 시기의 그의 시 조는 다분히 옛 것을 본받고 있었다. 그가 시조 혁신에 자각을 가지게 된 것은 1926년 무렵이었다. 「시조란 무엇인가」(동아일보, 1926.11.24.∼12.13.)·「율격(律格)과 시조」(동아일보, 1928.11.28.∼12.1.)·「시조원류론(時調源流論)」(新生, 1929.1.∼5.)·「시조는 창(唱)이냐 작(作) 이냐」(新民, 1930.1.)·「시조는 혁신하자」(동아일보, 1932.1.23.∼2.4.)·「시조의 발생과 가곡과 의 구분」(진단학보, 1934.11.) 등 20여 편의 시조론을 잇따라 발표하였다. 그 중에서 시조 혁신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기념비적 논문은 「시조는 혁신하자」였다. 이 무렵 『동아일보』의 시조 모집 ‘고선(考選)’을 통하여 신인지도에 힘썼고, 1939년부터는 『문장(文章)』에 조남령(曺南嶺)· 오신혜(吳信惠)·김상옥(金相沃)·장응두(張應斗)·이호우(李鎬雨) 등 우수한 신인들을 추천하여 시 조 중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는 시조와 현대시를 동질로 보고 시조창(時調唱)으로부터의 분리, 시어의 조탁과 관념의 형상화, 연작(連作) 등을 주장하여 시조 혁신을 선도하면서 그 이론을 실천하여 1939년 『가람시조집(嘉藍時 調集)』(문장사)을 출간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그의 전기 시조들은 「난초」로 대표되는 자연 관조와 「젖」에 나타난 인정물 등 순수서정 일변도였다. 그 뒤 옥중작인 「홍원저조(洪原低調)」 등에서 사 회성이 다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의 후기 작품은 6·25의 격동을 겪으면서 시작되어 사회적 관심 이 더욱 뚜렷해졌다. 「탱자울」 등에서 보는 것과 같은 비리의 고발, 권력의 횡포에 대한 저항이 후 기의 특징으로 꼽히는데, 이것은 현대시조의 새로운 일면을 개척한 것이었다. 그의 주된 공적은 시조 에서 이루어졌지만 서지학(書誌學)과 국문학 분야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묻혀 있던 고전작 품들, 「한중록」·「인현왕후전」·「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춘향가」를 비롯한 신재효 (申在孝)의 ‘극가(劇歌)’ 즉 판소리 등을 발굴, 소개한 공로는 크다. 그는 이 밖에 많은 수필을 썼 고, 특히 평생 동안 극명하게 쓴 일기는 놀랄 만하다. 주요 저서로는 『가람시조집』을 비롯하여 『국문학개론』·『국문학전사』·『가람문선』 등이 있다. 전라북도 예총장(藝總葬)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1960년 학술원 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1962년 문화 포장을 받았다.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전라북도 전주시 다가공원에 시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근대시조집의 양상』(임선묵, 단국대학교출판부, 1983) 『증보개정시조시학서설』(임선묵, 단국대학교출판부, 1981) 「이병기」(장순하, 『주간조선』, 1983.2.27.) 파랑새(이병기) / 노래(테너 윤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