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정인보> 근화사삼첩/매화사삼첩/매화칠장/국화사삼첩/이화사삼첩

이름없는풀뿌리 2024. 2. 7. 08:16
근화사(槿花詞) 삼첩(三疊) - 정인보 / 1927년 作 / 1948 <담원시조집> -- 1 신시(神市)로 내린 우로(雨露) 꽃 점진들 없을쏘냐? 왕검성(王儉城) 첫 봄 빛에 피라시니 무궁화(無窮花)를 지금도 너 곧 대(對)하면 그제런듯 하여라 2 저 메는 높고 높고 저 가람은 예고 예고, 피고 또 피오시니 번으로써 세오리까? 천만년(千萬年) 무궁(無窮)한 빛을 길이 뵐까 하노라. 3 담수욱 유한(幽閑)ㅎ고나, 모여 핀 양 의초롭다. 태평연월(太平烟月)이 둥두렷이 돋아올 제, 옛 향기(香氣) 일시(一時)에 도니 강산 화려(江山華麗)하여라 매화사(梅花詞) 삼첩(三疊) - 정인보 / <담원시조, 을유문화사, 1948> - 1 쇠인 양 억센 등걸 암향부동(暗香浮動) 어인 꽃고 눈바람 분분(紛紛)한데 봄소식을 외오 가져 어즈버 지사고심(志士苦心)을 비겨 볼까 하노라. 2 담담 중(淡淡中) 나는 낮빛 천상선자(天上仙子) 분명(分明)하다 옥난간(玉欄干) 어디메뇨 인간연(人間緣)이 무겁던가 연(緣)조차 의(義) 생기나니 언다 저어 하리오. 3 성긴 듯 정다웁고 고운신 채 단정(端正)할사 천품(天品)이 높은 전차 웃음에도 절조(節操)로다 마지 못 새이는 향내 더욱 그윽 하여라. 매화 칠장(梅花七章) - 정인보 / <담원시조, 을유문화사, 1948> - 1 내어대 안젓는가 여긔아니 타곳인다 불현듯 매화생각 저꽃이야 옛 ‘내’렸다. 방안에 그림자지니 ‘가지’발서 반겨라. 2 눈펄펄 나는새벽 분(盆)소식이 엇더한고 어제껏 겨우희끗 하로밤에 ‘불엇’는가 향기야 ‘어느새’저만 ‘마치’는* 듯 하여라. 3 분흥도 열브실사 그런듯다 도로회다 다섯입 반버러지 속술잠간 보이단말 마초아 달도다오니 어이 ‘잘’가 하노라. 4 압흐로 고흔자태 ‘등’보이라 도라선가 어대는 드문드문 다닥부터 헤 푸기도 ‘맨’우의 외오핀송이 더욱 ‘엄전’하여라. 5 엽헤선 괴괴터니 멀즉어니 알앗소라 잠깨여 두굿찬데 향내 ‘왈딱’ 몃번인고 행여나 마트랴마소 맘업서야 오느니. 6 자겨오 넘는남기 ‘철’ 을 먼저 당긔는다 ‘산고대’** 바로한참 ‘문풍지’야 떨고말고 봄소식 ‘눈’에 들으니 겨울몰라 하노라. 7 바바가 ‘붓’이된날 ‘외오’어이 변치안어 옛향기 가득 ‘품고’ 이산골을 차저‘듣’고 꽃 ‘귀엽’바드러가니 ‘끼’ ‘넘진’들 엇더라. * 냄새가 코로 들어오는 것 ** 눈 오는데 산곡간(山谷間)으로 부터 대풍(大風)이 불어 섞여되는 것 국화사(菊花詞) 삼첩(三疊) - 정인보 / <담원시조, 을유문화사, 1948> - 1 울섶 밑 두어 송이 서릿발에 더 새롭다 인왕산(仁王山) 솟은 수색(秀色) 유정(有情)한 듯 와서 비춰 인간(人間)에 알 이 없음을 한해 무슨 하리오 2 되 친다 안 변(變)하니 도움일네 서리 도로 황금(黃金)을 간 듯한 빛 다사론 때 보올껏까 인사(人事)도 이러할랏다 뜻 있는이 아소서 3 자 넘은 파리한 몸 작다려건 작다하소 된내기 겪고 나니 이 카 아니 높하이까 찬 기운 어리신 얼굴 곱다 감히 하리요. 이화사삼첩(梨花詞三疊) - 정인보 / <담원시조, 을유문화사, 1948> - 1 이백사(李白沙) 나신 곳에 배꽃도 흰저이고 티 없는 저 얼굴을 뉘 마음에 비겨볼꼬 홍자(紅紫)야 번화(繁華)타마는 `드려'* 무삼 하리오 2 희기야 희다할손 분(粉)야 어찌 맑다릿가 맑고도 고우시니 어름도곤 어떠하뇨 눈(雪)에다 향(香)을 얹으니 달(月) 새울가 하노라 3 비바람 겪고 겪어 눈보라에 진눈깨비 얼면서 지킨마음 맘은 얼지 아녀삥나니 봄 거기 잠겨 있는 줄 그제 누가 알리요 * 드려 : 염(染) ▲ 연세대에 세운 정인보 흉상 출처: 연세대공식블로그 * 정인보(鄭寅普, 1893~1950) 유학자, 사학가. 호는 위당(爲堂) 또는 담원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10년에 중국으로 건너가 동양학을 공부하면서 박은식, 신채호 등과 함께 동제사를 조직하여 독립 운동을 벌였다. 1918년에 고 국에 돌아와 연희 전문 학교, 이화 여자 전문 학교, 중앙 불교 전문 학교에서 국학과 동양학을 가르 치는 한편, 시대 일보와 동아 일보 등에서 논설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8·15 광복 후에 국학 대학장, 초대 감찰 위원장 등을 지내고 6·25 전쟁 때 북한으로 납치되었다. 국문학사, 한문학, 국사학 등에 걸쳐 광범위한 연구를 하였고, 시조와 한시에 능하였다. 저서에 《조선사 연구》 《조선 문학 원류 고》 등이 있다. * 爲堂公(諱;寅普1893-1950)의 簡札등 ▲ 1943년 위당 서간. 위당이 스승인 난곡 이건방 선생의 시를 생각하며 친구에게 보낸 친필 편지 ▲ 작품명 위당 간찰 爲堂 簡札, 鄭寅普 1931 종이 먹 크기 (cm)28.5×34.8 驪州郡 興川面 外絲里 張壽永 座下 京城 渼芹洞 三 鄭寅普 也 長夏熇蒸 邇間 何以消受欹枕憂 諸郎誦書 此爲第一佳趣 頌仰無已 壽春自瀋還否 向見訪失晤 只今以 爲悵 何當鼎坐少攄 想時時乖念 或與壽春談甚適 則益相思也 胤君 欲書疏講質 意 可感 雖駑鈍 無足奉益 亦安敢嘿耶 艸此仰覆 惟以時自愛 閏月 二十一日 鄭寅普 拜謝 여주군 흥천면 외사리 장수영 좌하 경성 미근동 3 정인보 긴 여름 찌는 듯한 더위가 계속되는 요즈음 병석에 누워 어떻게 나날을 보내십니까? 여러 자제들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니 우러러 칭송해마지 않는 바입니다. 수춘壽春은 심양에서 돌아왔습니까? 지난번 저를 찾아 주었는데 만나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습니 다. 언제쯤 세 사람이 함께 모여앉아서 다소간에 회포를 풀 수 있겠습니까? 수시로 생각을 해보아도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수춘과 담소를 나누면 매우 즐거울 것이니 생각할수록 더욱 그리 워집니다. 큰 아드님이 편지를 보이며 배움을 청하니 그 뜻이 참 가상합니다. 비록 노둔해서 가르쳐 줄 것은 없으나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이렇게 써서 답장으로 올립니다. 계절에 맞게 몸 관리를 잘 하 기 바랍니다. 윤달 이십일일 정인보鄭寅普 삼가 올림 정인보 일대기 / 상생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