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큰제비고깔꽃6(22/08/07, Only Our Rivers Runs Free / James Last)

이름없는풀뿌리 2024. 9. 15. 05:40
요즈음 – 큰제비고깔꽃6 – 언덕에 올라서면 발아래 펼쳐지던 쏴아 쏴 바람 불며 흰 포말 일렁이는 바다의 한가운데를 떠다니던 바위섬 배달9219/개천5920/단기4355/서기2022/08/07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성밖길35(큰제비고깔꽃6) (1) 새벽 행궁에 도착하자마자 쏟아지는 장대비! 근처 민가의 처마 밑에서 잠시 비를 긋다가 이슬비 맞으며 오른 동장대! 雲霧에 視界 제로. 자주조희꽃은 雨中에도 滿開. 4암문 근처에도 큰제비고깔. 꽃이 피어야만 볼 수 있다는 近視眼. 경관조명공사로 파헤쳐진 병아리풀 군락지 훼손에도 손바닥만큼 남아있는 터전에 몇 포기 발견. 연주봉암문 근처의 큰제비고깔은 일찍 꽃이 피어서인지 벌써 씨방을 맺었다. (2) 큰제비고깔꽃을 바라보면 幼年의 아련한 풍경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가는 오솔길의 언덕을 넘어서면 발아래 펼쳐지던 서해바다. 거기 서면 海風이 쏴아쏴 불어오며 흰 포말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버티던 아목섬! 그리고 개야도, 연도. 파란 꽃받침은 바다요, 그 꽃받침 속 제비같은 까만 꽃잎은 영락없는 그 바위섬이다. 배달9219/개천5920/단기4355/서기2022/08/07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남한산성의 큰제비고깔꽃을 보며... 聽松 김송배 추천 0 조회 36 19.08.22 08:58 큰제비고깔 (미나리아재비과) Delphinium maackianum Regel 한여름의 절정은 7월 말에서부터 8월 초, 이때가 되면 우리 주변에 다투어 피어나던 봄꽃은 사라지고 열매가 성숙하여 가는 시기입니다.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에 올라가야만 곱고 귀한 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큰제비고깔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식물도감의 설명에 따르면 큰제비고깔은 우리나라에서는 경기 이북의 높은 산과 만주, 우수리강, 헤이룽강에 분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꽃이 남한산성의 북쪽 성벽 밑에 자라며 한여름에 꽃을 피웁니다. 남한산성의 해발고도는 500m를 넘지 않습니다. 이 꽃이 언제부터 이곳에 자라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제가 만난 지도 10년이 되어 갑니다. 올해도 8월 초 한더위에 남한산성의 그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예년과 다름없이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큰제비고깔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에 낙엽이 깊게 쌓여 부식질이 풍부한 습윤지(濕潤地)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사람이 다니는 산길 옆이나 약간의 공간이 터진 산기슭에 자랍니다. 그런데 예년과 달리 남한산성 그곳의 환경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대대적인 성벽 보수공사로 큰제비고깔이 있는 등산로의 통행을 막은 탓에 칡 등 덩굴식물과 주변 나뭇가지가 무성하여 자생지가 숲에 묻혀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니는 등산로라서 터진 공간에 훤칠한 멋진 모습이 드러났는데 올해는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줄기와 잎 등 전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없을 정도로 풀숲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도 벌, 나비 등 수분 매개체를 유인하기 위해 꽃대를 높이 올리느라 기를 쓰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 보였습니다. 환경 변화에 따른 생존의 몸부림을 보는 듯했습니다. 존자강(存者强)을 일러주는 듯한 남한산성 큰제비고깔 큰제비고깔은 대표적인 고산성 식물로서 여름철의 고온에 매우 취약해 직사광선을 피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에서만 자라는 까다로운 식물입니다. 옮겨 심는 것도, 재배도 매우 힘든 식물이라 합니다. 이 꽃이 서울 도심이나 다름없는 남한산성에 자라고 있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 장소의 특수성일까? 아니면 그곳에 자라고 있는 큰제비고깔의 특별함일까? 식물 세계의 신비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비고깔은 꽃 모양도 매우 특이합니다. 고깔처럼 보이는 다섯 개의 보랏빛 조각은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잎입니다. 꽃잎은 고깔 모양의 꽃받침잎 안에 꽃술처럼 생긴 시커먼 부분입니다. 마치 날개를 펴고 있는 박쥐 또는 두 발로 서 있는 새 모양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북부지방에 자생하며 러시아, 몽골, 중국 등지에 분포합니다. 이름은 꽃 모양이 제비처럼 날렵하고 고깔을 닮았다고 해서 제비고깔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설을 비롯하여 고깔 속에 제비 새끼들이 웅크리고 있는 데서 유래했다거나 꽃봉오리가 제비를 닮았고, 펼쳐지면 고깔 모양이라서 제비고깔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꽃봉오리가 돌고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리스어로 돌고래를 뜻하는 델핀(delphin)으로부터 학명 델피니움(Delphinium)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큰제비고깔은 제비고깔 속(屬)에서 키가 가장 큰 종(種)입니다. 제비고깔은 키가 60cm 정도이며 꽃받침잎이 진한 남색인데 큰제비고깔은 1m 정도이며 엷은 보랏빛입니다. 국립수목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백두대간 및 임도 주변의 노출된 지역에 열 곳 미만의 자생지가 있으며, 개체 수도 많지 않다.’고 하며 ‘고산성 희귀식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 귀한 식물이 어떻게 해서 남한산성 성벽 아래에 자리 잡아 자라고 있을까? 그 생존의 비밀이 자못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우거진 덤불 속에 묻혀 아등아등 키를 높이 세워 꽃을 피운 모습이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당연한 듯한 이 현상을 보며 많은 것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남한산성의 큰제비고깔은 DNA가 어느 종(種)보다도 환경 변화에 더욱더 잘 적응하는 종인가? 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인가? 그렇다면 사람이 캐어 가거나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남한산성의 큰제비고깔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변함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종일까?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 세계에서는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약육강식이 횡행하는 정글의 법칙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입니다. 남한산성의 큰제비고깔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현실은 강자존(强者存)이 아니라 존자강(存者强)임을 실감합니다. 지질사(地質史)를 훑어보면 동물이건 식물이건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멸종에 이르렀습니다. 매머드나 공룡이 작거나 힘이 없어서 멸종한 것이 아닙니다. 식물도 그러합니다. 석탄 자원이 만들어진 데본기, 석탄기의 인목(鱗木), 봉인목(封印木) 등 식물은 오늘날 석송과 쇠뜨기 같은 양치식물이지만 이들은 키가 십수 m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감소라는 지구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된 고생대 식물입니다. 그런데도 멸종한 고대 동식물과 유사한 계열의 도마뱀이나 속새, 쇠뜨기 등은 현재 존재하고 있습니다. 먹는 양을 줄이거나, 먹이를 바꾸거나, 덩치를 줄이거나 어찌했든 간에 환경변화에 맞게끔 변화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동식물이 살아가는 자연의 세계이건 사람이 살아가는 인간 세계이건 살아남는다는 생존의 법칙은 서로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냉혹한 국제사회 질서와 힘겨루기 세상사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탈리오법칙(lex Talionis)이 논리적이고 정의로우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궁극적 이상(理想)을 좇다가 현실과 이상을 결합한 실질적 해법, 생존이 위협받는다면 만사가 헛된 꿈이 됩니다. 파당적 진영논리와 이념대결이 격렬해지는 것이 현실이라면 상호 간에 실존의 문제가 생깁니다. 큰제비고깔의 이상향(理想鄕)은 한여름에도 서늘한 고산지대의 노출된 산기슭입니다. 하지만 남한산성의 큰제비고깔은 이 여건과는 전혀 동떨어진 낮은 지대의 성벽 아래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현존(現存)해 왔으며 또한 바뀐 환경에 따라 변하고 있습니다. 왜, 무엇을 위해서일까? 이로부터 뭔가를 배울 법도 하건만 큰제비고깔은 말이 없습니다. 한갓 풀떼기의 생태를 보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해결 가능한 현실적인 해법을 찾을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도 그 답이 오락가락하니 답답한 마음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2019. 8. 8 남한산성 큰제비고깔 앞에서) Only Our Rivers Runs Free / James L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