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망 좋은 가을 덕유종주를 이루다.(2)
(4) 서봉(1492m)-남덕유산(1507.4m)
[16:00-16:50, +50분=310분, +1.2km=8.0km]
철계 근처에도 온갖 야생화가 絶頂이다. 특히 빠알간 열매가 닥지닥지 붙은 괴불나무 군락이 누가 정성껏 가꾼 과수원처럼 도열해있다. 20분정도를 걸으니 갈림길을 지난다. 좌측은 월성재로 가는 지름길이고 우측은 남덕육산을 밟는 길이다. 완벽한 종주를 위해서는 당연히 남덕유산 정상을 밟아야 하지만 얼마 전 종주하신 이혜연씨의 산행기를 보니 남덕유 정상이 공사 때문에 흉측하다고 하셨고, 고단한 다릿님이 월성재로 直行하자고 유혹한다.
정사장님은 발이 빠르기에 남덕유를 가기로 하고, 혼자서 더덜겅길인 남덕유 우회길을 가자니 심심하다. 그래도 이 길이 바로 백두대간 종주길이란다. 나는 당연히 백두대간 길이라면 산 정상으로 연결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10여분 후 다시 공터 갈림길을 만난다. 좌측이 월성재로 가는 능선길이고 우측이 남덕유 정상인데 여기 안내판에도 분명히 남덕유 우회길이 백두대간길이라고 명시되어있다.
정사장님!
남덕유 정상을 혼자서 밟으셨다고 좋아하지 마쇼.
나는 백두대간 길을 편안히 탔소이다. 하! 하!
그런데 30대 초반의 젊은이 하나가 남덕유에서 홀홀단신 내려온다. 그 나이에 혼자서 이러한 산행을 감행함을 보니 나의 젊은 시절과 비교된다. 그만한 나이에 난 엄두도 못 내었다. 그러기에 그가 대단해보였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하다보니 그도 삿갓재대피소에서 1박 예정이란다. 잠시 후 대피소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아직 남덕유에서 내려오지 않는 발 빠른 정사장을 조금 기다리다 그의 빠른 발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먼저 월성재로 향하였다.
(5) 남덕유산(1507.4m)-월성재(1240m)
[16:50-17:30, +40분=350분, +1.4km=9.4km]
월성재로 가는 길은 그저 평탄하기만한 완만한 길이다. 역시 야생화가 만발해 있고 단풍이 시작되고 있다. 서봉 쪽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정사장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 발 빠른 그도 지쳤나? 그런 생각을 하며 걸으니 곧 월성재에 도착한다. 월성재는 이원복 상무가 작년 종주 때 남덕유를 포기하고 하산한 지점이기도하다. 황점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월성재는 온통 쓰레기 투성이이다. 지정된 쓰레기 투기장이라지만 쓰레기 자루에 들어가지 못한 무분별한 쓰레기가 바람에 여기저기 날려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눈살이 찌푸려진다. 일본에 가 보니 등산객이 자신의 쓰레기는 한 톨도 남김없이 가져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登路 주변에 단 한 톨의 쓰레기도 보지 못했다. 우리와 너무 대조적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쉬고 있는데 멀리서 정사장님이 나타난다. 그리고 연이어 대간꾼도 나타난다. 그러자 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정사장이 제발 같이 가잔다. 서봉까지는 정사장님도 훌쩍 앞서 가고선 그런 말을 함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지만, 발 빠른 그를 생각하면 조금 앞서 전진해야지만 삿갓재까지 걸음을 맞추리라. 더구나 서봉 쪽에서부터 산그리매가 무섭게 덮쳐오고 있었다.
(6) 월성재(1240m)-삿갓재대피소(1280m)
(17:30-19:20, +110분=460분, +2.9km=12.3km]
여기서부터는 평탄한 길은 자취를 감추고 오름이 시작되며 전망이 좋은 바위지대가 나타났는데 登路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나무계단의 등로를 오르니 조그만 정상인데 봉우리라 하긴 좀 그렇긴 하지만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남덕유 방향 전망이 좋았다. 또한 북측 무룡산 쪽을 바라보니 거기도 지난 장마에 훼손된 곳을 보수중인듯 허옇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 곳을 넘어서자 삿갓형의 봉우리가 나타나 그곳이 삿갓봉인 줄 알았는데 올라보니 작년에 보았던 표지석도 없고 너무 협소하다. 아무래도 삿갓재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바위 능선은 칼날이어서 산 아래에서 세차게 불어오는 찬바람에 몸이 휘청거릴듯하여 고실고실하다. 그런데 진행할수록 능선을 벗어나 좌측 사면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월성재에서 대피소까지가 2.9km라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그만큼 지쳐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끈기 있게 전진하니 삿갓봉 안내표지가 나타난다. 여기서 삿갓봉(1418.6m)이야 지척이지만 올라봐야 깜깜한 어둠 속에 전망도 없을 테니, 또한 발 빠른 정사장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역시 정사장만 오르기로 한다. 우회길을 돌아가는 도중 하도 어두워서 준비해 온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前進하니 살 것 같다. 랜턴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절감하다.
삿갓봉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기다리니 멀리서 정사장이 불빛을 보았는지 같이 가자며 소리친다. 그가 내려오는 길을 비춰주니 고맙다고 한다. 그제야 그도 배낭에서 랜턴을 꺼낸다. 보니 랜턴을 두 개나 준비 해오셨다. 그런데 왜 이제까지 랜턴을 꺼내지 않았수? 참! 그 녘도 지쳤나보구료. 10여분을 더 내려가니 반듯한 대피소 건물이 있는 삿갓골재에 도착한다. 몸은 이미 축 늘어지고 녹초가 되어버렸다. 예약된 지정번호를 확인하고 취사장으로 내려간다.
(7) 삿갓재대피소(1280m)
[19:20-04:40, 9시간20분 휴식]
거기엔 남덕유 아래에서 보았던 젊은 친구며, 향적봉에서 1박하고 오신 분, 육십령에서 오신 분들로 꽉 들어차 있다. 우리는 배낭에서 가스와 버너, 라면, 쌀, 밑반찬을 꺼내고 취사준비를 한다. 그런데 밥이 잘되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분이 여기는 高地帶여서 물을 平地의 두 배로 부어야하고 뚜껑을 꽉 눌러 놓아야 한다고 일러주신다. 학창시절 배운 것 같다.
설익은 밥과 라면, 김치, 멸치, 고추장으로 요기를 하자니 대간꾼도 취사장에 들어선다. 옆 좌석의 팀에서 풍기는 알콜 냄새가 살살 콧끝을 자극한다. 술 생각이 간절하다. 그런데 以心傳心인가? 덕유산 아래서 만났던 젊은이가 술이 남는다며 참이슬 한 병을 건넨다. 그 술로 지점장과 권커니 잣커니 하자니 이젠 옆 좌석에서 돼지고기 찌개가 배달된다. 참! 산사나이들 인심이 후하다. 다들 오늘의 산행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그렇게 성찬을 하고 대피소로 올라오니 어느덧 62명 수용의 대피소가 꽉 들어차 있었다. 우리는 2층에 배정되었는데 침소 구조가 군대의 내무반을 연상케 한다. 벽에 관물대가 있고 아래 평상에서 누우면 되었다. 관물대에 배낭을 얹어놓고, 속옷을 갈아입고 잠자리에 드니 잠이 살살 몰려온다. 더구나 대피소의 난방이 훌륭하여 노곤한 팔과 다리의 피곤을 삭혀주는 것 같다.
그렇게 곤한 잠을 자는데 12시경 잠에서 깨었다. 너무 후덥지근하고 누군가 큰 소리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었다.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술을 마셔서 그런지 물 생각도 나고 하여 바람막이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까만 밤하늘에 보석을 흩뿌린듯 별이 총총하다. 이런 밤하늘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본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너무나 아름답다.
내친 김에 대피소에서 황점 방향 60m아래에 있는 참샘에 내려가 보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나무계단인데 오금이 팍팍 당겨온다. 참샘에 다다라 물 한바가지 마시니 너무 물맛이 좋다. 두 바가지를 마시고 다시 급경사의 계단길을 오르자니 더 힘이 든다. 내일 산행이 걱정된다.
배달9203/개천5904/단기4339/서기2006/9/16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1. 서봉 아래 괴불나무 군락
2. 서봉의 철계
3. 남덕유 아래에서 본 서봉의 위용
4. 남덕유와 남덕유 아래 갈림길
5. 단풍은 절정으로 치닫고
6. 월성재 가는 길
7. 월성재
8. 지나온 길
9. 가야 할 길(어둑어득해지고...)
10. 삿갓봉은 어둠에 쌓여 있고
11. 마침내 도착한 오늘의 숙소 삿갓재 대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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