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松의 푸른 솔향기 가득한 희리산
(1) 산행계획
설 전날(07/2/17) 고향으로 가기에 앞서
山行을 해 볼 요량으로 등산 준비를 해 온 터였다.
희리산(希夷山)은 해발 329m의 낮은 산이지만
읍내로 중학을 다니던 시절, 그 그늘을 지나며 바라보기만 하여야 했다.
그 어미소 같이 눈만 껌벅거리면서 아무런 근심없이 누워있는
우뚝 솟은 그를 그리워만 했지 오를 생각조차 못했었다.
하지만 해마다 명절 때마다 귀향하면서
바라보는 어머니의 가슴 같은 희리산에
안겨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다.
그런데 최근 충남 서천군에서
해송 자연휴양림으로 개발(1998년)하여
숲에 통나무집을 갖추고, 중턱에 林道를 개설하여 휴양지로써 단장했다니
더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2) 휴양관-희리산정상[14:20-15:10, 50분, 1.7km]
휴양림 初入부터 해송이 휘늘어져 있다.
陸松과 海松은 확연히 다르다.
해송은 소나무 껍질이 흑색이고 두터우며
솔잎에 있어서는 홍송보다 진녹색을 띄우고 있다.
또한 樹型이 곧아 해송을 밑에서 올려다보면 전나무로 착각할 정도이다.
혹 리키다송을 연상할 수 있는데
외래종인 리키다송과는 물론 확연히 구분된다.
수령 50년 이상의 해송은 흑색의 껍질이 점점 엷어져 가는데
희리산 휴양림의 해송은 수령 30년 이하의 젊은 소나무들이다.
통나무집이 산재한 사이로 난 登路에 오르자마자
해송 특유의 향긋한 내음이 물씬 풍겨온다.
완만한 등로를 10여분 오르니 전망바위가 나왔는데
멀리 서해바다며 산 아래 남측으로 도만리와 산천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전망바위를 지나 “성터”라 표시된 이정목을 지나니
소봉인데 내리막으로 치닫다가 다시 오름을 견디니
前衛峯으로 짐작되는 봉우리가 한 뼘 위에 있었다.
그 봉우리를 키 큰 해송들이 점령하고 있다.
등로에서 그 봉우리에 들렸다가 다시 내려와
부드러운 육산인 마루금을 사뿐사뿐 밟으며 가니
지석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그러한 오솔길은 해송의 그늘이 부드럽게 덮고 있어
저절로 흥얼거림이 흘러나오게 하는데
약간의 오름을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견디니
갑자기 視野가 확 트여지며 공들여 쌓은 돌탑이 반겨준다.
이정목을 보니 상봉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겠다.
여기서 상봉까지는 키 작은 수목들이 자리 잡아 조망이 좋다.
오른쪽으로는 드넓은 흥림 저수지를 가로질러
장항선 복복선 공사 현장이 하얀 띠로 水面을 양분하고
그 너머로 인근에서 제일 높은 천방산(千房山, 324m)이 드넓은 어깨를 펴고 있다.
왼쪽으로는 오늘 돌아가야 할 능선이 말발굽 형으로 휘어져 있는데
능선 너머로는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의 햇볕에
드넓은 서해바다가 은박의 비늘을 파득거리고 있다.
지금은 헬기장으로 조성된 펑퍼짐한 희리산 정상에
예전에 미군 고사포 부대가 주둔했다는데
지금 그러한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산에서 땔감을 구하던 시절엔 민둥산에 불과했건만
밀림처럼 우거진 숲의 중심에 짙푸른 해송이 자리하고 있어
소나무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요즘 더욱 자랑스럽기만 하다.
(2) 희리산정상-북봉[15:10-15:35, +25=75분, +1.8=3.5km]
그런 생각을 하며 정상을 내려오니
다시 부드러운 오솔길이 계속된다.
약간의 오름을 10여분 밟으니 後衛峯이라 짐작되는 소봉이었는데(15:20)
여기서 妻家가 있는 만덕리와 문곡리 방향을 바라보는 전망이 壓卷이었다.
다시 내림이 계속되다 안부에 다다르니
휴양관2.1km, 희리산정상1.7km, 절터0.4km란 이정목이 반겨준다.
여기서 절터란 문수사를 말하고
희리산의 문수산을 볼 수 있는 北峯이 100여m에 있다고 생각하니
문수봉과 관련한 說話들이 생각난다.
휴양림 북서쪽 문수봉 아래에
네 장사가 놀던 자리인 四人臺가 있는데
사인대 아래 140m 지점에는 가파른 절벽이 있고
장사들이 절벽에서 턱걸이를 했다하여 턱걸이장이라도 불린다.
또한 문수봉 아래에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에
빈대가 하도 많아 절을 헐었다는 문수사 절터가 현재도 있다.
문수봉 남쪽으로 500여m 내려오면서
戰士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능선이 형성되어 있고
동남쪽 500m 전방에는 말이 똥을 싼 것 같은 말똥바위의 형태가 있다.
특히 문수봉 밑으로
네 장사가 거처하던 큰 산봉우리 4개가 있고,
그 밑으로는 졸병들이 거처하던 작은바위 100여개가 있어
졸병바위라고 부르는 등 바위의 생김새가
여러 가지 형태의 모양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상 서천군청 문화관광과 참조 편집)
(3) 북봉-휴양관 갈림길[15:35-16:00, +25=100분, +0.4=3.9km]
그러한 설화들을 생각하며 북봉에서
남쪽을 조망하니 정말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4개가 도열해있고
전사들이 말을 달렸음직한 능선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그 너머로 서해바다가 한층 은빛 비늘을 반짝이고 있다.
작은 봉우리들을 흥겹게 넘어오니
등산객들의 등산화에 봉분이 반쯤 날아간
무명 묘지가 안쓰럽게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무명 묘지에 目禮를 하고 내려오니
희리산정상2.2km, 휴양관1.5km란 이정목 너머로
삿갓 같은 봉우리가 보여
여기서 휴양관으로 원점 회귀하려던 당초 계획을 바꾸어
그 삿갓봉으로 가 보기로 한다.
(4) 휴양관 갈림길-휴양관 주차장[16:00-16:40, +405=140분, +2.5=6.4km]
정작 아름답게 보였던 삿갓봉으로 오르는 길은
막상 도달하여 보니 너무도 완만하여 평지 같다.
대신 설화에서 “졸병바위”라고 말했던 바위들이 散在해 있는데
검은 바위들에는
흰줄이 정교하게 박혀있어 신기했다.
그렇게 15분 만에 삿갓봉에 올랐다.
정상부를 지나니 一瀉千里로 내리막인데
남측 능선에 어린 해송들이 密集되어 있어
다람쥐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이다.
반대편에는 그러한 해송을 솎아내기를 한 듯
군데군데 해송을 베어 바닥에 깔아 놓았다.
애기 해송 군락을 빠져 나오니
산자락을 완전히 내려온 듯 평지인데
거기에는 수령 50년 이상의
건강한 해송 군락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해송 군락의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흡사 민주지산에서 보았던 낙엽송 숲에 들어선 것 같다.
그 건강한 해송 숲을 내려와
휴양림 관리소로 들어가는 길 옆 저수지 길을 따라가니
옥빛 저수지에서 놀던 오리와 원앙이 들이 깜작 놀라
힘찬 날갯짓으로 비상하는 모습을 보며
설날이라는 명절과 힘찬 내일을 그리며
고향 산천의 부드러운 정기를 받고 돌아 올 수 있었다.
배달9204/개천5905/단기4340/서기2007/2/17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 희리산 자연 휴양림 입구
2. 자연 휴양림내의 통나무집과 산행 들머리
3. 10여 분만에 다다른 전망바위에서
4. 오름길
5. 살짝 드러낸 상봉 6. 서해, 저수지, 산천리 벌판 7. 해송 숲 사이로 난 오솔길과 물오른 진달래
8. 정상 근처의 이정목과 돌탑 9. 정상에서 본 내포 들녘의 동산들 10. 희리산 정상의 모습 11. 정상에서 본 서측 가야할 능선(뒤쪽 능선이 문수산 / 그 뒤로 서해) 12. 정상 아래 흥림 저수지(가운데 장항선 복복선 공사 / 그 뒤로 천방산) 13. 후위봉에서 본 만덕리 방향 14. 후위봉을 내려와 안부에서 15. 북봉에서 본 지나온 길(왼편부터 후위봉/정상/전위봉) 16. 상기정굴 저수지(예전에 장항읍 식수원) 17. 지나온 희리산과 중턱의 임도 18. 지난 겨울을 견딘 명감나무 열매 19. 솔가지 사이로 남측 삿갓형의 봉우리가 유혹 20. 등산객에 의해 뭉개진 묘지(이래서야?) 21. 희리산의 바위들 22. 안부의 이정목(여기서 하산하지 않고 삿갓봉으로) 23. 건너편 지나온 능선과 휴양림 입구의 저수지 24. 빽빽한 해송 군락과 솎아내고 있는 모습 25. 비탈을 내려오는 날머리의 건강한 해송숲 26. 그 건강한 모습 - 너무 기분 좋음 27. 휴양림 입구의 저수지 28. 어미소 같이 누워있는 희리산 원경 | | | 풀뿌리 | | 희리산 자연휴양림
1998년 개장한 해송천연림으로 구역면적 143만㎡이며 1일 최대 수용인원은 약 1,000명인 희리산 자연휴양림에 가면 처음 맞는 곳이 저수지이다.
희리산휴양림의 저수지는 낚시를 겸한 산림휴양이 가능하며 저수지를 관망하기 좋은 곳에 팔각정을 세워놓아 관광객이 주로 찿는 희리산 자연휴
양림의 인기 코스중 하나이다. 이곳은 산 전체가 해송으로 사계절 내내 푸르름을 간직한 채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숲속의집과 해송림, 저수
지가 빼어난 조화를 이루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희리산 자연휴양림에 들어가면 숲 곳곳에 근사한 통나무집이 여러곳에 지어져 있다. 이 시설
은 다름아닌 방문객이 숙박하며 취사를 겸할 수 있는 시설이다. 희리산휴양림의 숙박시설인 이 "숲 속의 집"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단일수종인 소
나무, 잣나무, 낙엽송, 삼나무, 해송, 층층나무,참나무로 내부를 장식하여 수종별 고유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휴양림 내에 전
시관을 설치하여 휴양림 및 산림욕장 내용, 산림의 공익기능, 미래의 임업, 대전·충남의 야생화등 전시물 전시 및 나라 꽃 무궁화를 품종별 전
시포 조성, 야생화 단지조성, 표고 및 영지버섯 교육장 시설등 각종 볼거리 제공은 물론 해송휴양관은 1실 50명이상 수용시설 완비하여 단체 수
련회도 가능하다. 희리산은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관망되는 천혜의 요지로 정상은 해발 329m인 문수봉이다. 희리산 숲 속에 들
어가면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와 테르핀이라는 방향성 물질이 해송에서 자연 방사되는데 향기 좋은 방향성, 살균성의 성분으로 스트레스를 없
애고 심신을 순화하는 등 여러가지 질병을 예방하기 때문에 인체에 유익한 것이 특징이다. 이 수종의 95%가 해송인 희리산은 가벼운 등산을 하면
서 산림욕을 즐실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07/02/21 21:11:07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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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뿌리 | |
희리산 자연휴양림 산자락 중간쯤, 강돌로 특색있게 만들어 희리산 계곡물을 가두어 놓은 곳이 있다. 이곳은 물놀이장으로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의 휴양객들의 인기를 독차지 한다. 차가와 소스라칠 것 같은 시원한 계곡물에 텀벙 뛰어들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보는이도 시원한 풍경이다.
이 물놀이장 주변으로 농구장, 배구장이 설치되 있어 가족단위 또는 각급 학교나 단체에서 방문하여 초·중·고 학생의 자연학습 체험의 교육장소로
손색이 없게 꾸며져 있다. 특히 희리산 계곡은 물이 맑고 청정하여 토속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계곡 여기저기에서 돌을 들춰가며 가제를 잡는 아이들
의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휴양림내에는 취사장, 세면ㆍ샤워장, 급수대 등의 방문객 편의시설과 산림 및 숲의 기능과 혜택을 설명한 숲해설판, 야
생화관찰원, 버섯재배원, 무궁화전시포가 있으며 방문객이 직접 먹거리를 준비하여 취사를 할수 있도록 허용된 구역이 있어 가족휴양지로 최적의 장
소라 할 수 있다. 휴양림 북서쪽에는 네 장사가 놀던 자리인 사인대가 있다. 사인대 밑에 140m의 절벽이 있는데 장사가 턱걸이한 장소가있어 턱걸이
장이라도 불리운다. 문수봉 밑에는 빈대가 하도 많아 절을 헐었다는 문수사 절터가 현재도 있다. 문수봉 남쪽으로 500m 전방에 전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장소가 능선따라 있고 동남쪽500m 전방에 말이 똥을 싼 것같은 말똥바위의 형태가 있다. 특히 문수봉 밑으로 네장사가 거처하던 큰 산봉우리
4개가 있고, 그 밑으로는 졸병들이 거처하던 작은바위 100여개가 있어 졸병바위라고 부르는 등 바위의 생김새가 여러 가지 형태의 모양을 이루고 있
어 희리산에서 문수봉에 이르는 등산로 주변에는 많은 볼거리가있다. 뿐만아니라 휴양림가까이에 있는 서해안 갯벌에서 가족단위의 맛살조개잡이를
체험할 수 있어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가 있고 휴양림에는 임도 4.43㎞와 등산로 5.4㎞가 있어 산책이나 체력을 단련할 수 있다. 2007/02/21 21:11:12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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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뿌리 | | 천방산
서천군 판교면, 문산면, 시초면등 3개면에 걸칠만큼 산자락이 넓고 큰 서천 제일의 산이다. 산이 험하거나 거칠지 않아 보는 이로 하여금 다정함을 느
끼게 하는 천방산은 동서남 방향으로 7개의 봉우리가 둘러쳐져있고 동남북방향이 훤히 트여 시원한 풍광을 자랑하는 영산(靈山)이다. 좌청룡 우백호인
듯 천방산 정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서 있는 봉우리들은 남으로 가면서 5개의 봉우리를 더하며 마치 병풍인 듯 둘러쳐진 모습이 있어 아늑한 감이 있는
천방산은 서북에서 동북방향(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펼쳐진 시원한 풍광이 함께하고 있어 좋은 곳이다. 발치에 잡히는 낮은 산과 그 아래 와 너머로
펼쳐지는 논밭과 아득한 마을의 풍경이 저수지와 함께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정상에 올라 보는이로 하여금 마음마져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천
방산은 산이름과 관련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천방산의 전설은 백제말기 소정방이 백제를 치기 위해 기벌포(현재의 서천군 장항읍)에 진입하면서 시
작되는데 멀쩡했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며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소정방은 풍랑이 자기를 기다렸으나 풍랑은 좀처럼 그칠줄을 몰랐다. 그 때 그들의
앞을 어느 도승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소정방은 너무 답답하던 참이라 그를 붙들고 그곳의 지세를 물어보았다. 2007/02/21 21:14:31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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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뿌리 | |
"도승 이곳은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우리들이 이곳에 오자마자 이렇게 풍랑이 심하오?" 도승은 소정방의 말을 듣고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입을 열
었다. "이곳은 길이 험한 곳이오. 다른 곳에 비할 바가 아니오. 더구나 멀리서 원정군로서는 이곳을 통과하기가 어려우니 이 산에 하룻저녁에 천 칸의
집을 짓고 천일제를 지내어 산신의 보호를 받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개선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소." , "그렇다면 우리 군사가 무사하겠소?" ,
"그렇소이다." 도승의 확답을 듣고 소정방은 군사들을 시켜 단번에 천 칸의 방이 있는 큰집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군사들은 정신없이 소정방의 말에
따라 집을 지었다. 소정방은 그날 저녁으로 제사를 지내고 군대가 무사히 부여에 입성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후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튿
날 날씨가 씻은 듯이 개이고 풍랑도 가라 앉았다. 소정방은 군사를 이끌고 사비성으로 진격하여 백제군을 꺾고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 소정방이 지은
천칸의 집은 절이 되어 천방사라고 하였으며 산 이름도 이 때부터 천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소정방이 남겨 놓은 천방사는 사찰로서 조선시대까지 존속
되어 오다 1664년에 승려들의 반란으로 불타버렸고 천방사(千房寺)는 다시 중건하지 못하게 되었다. 현재는 은적사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을 뿐 대찰의
영화는 간데 없다. 2007/02/21 21:18:43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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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라 | | 반가운 풍경입니다 현재 부모님이 계신 곳 바로 고향이거든요 ~^^* 2007/08/15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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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뿌리 | | 고향분이시군요. 자주 오셔서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배달9204/개천5905/단기4340/서기2007/8/16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배상 2007/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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