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여행과산행길

눈 내린 불암산(07/12/09)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15. 14:49

 

 

 

 

눈 내린 불암산

 

 

(1)

07/12/9(일)

아내와 [불암산-수락산]을

貪해보려 10:00출발

너무 늦어 수락산까지

가기엔 무리라 생각했지만

불암산에 올라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다.

 

(2)

상계역 하차

상계5동 불암산 도시공원 들머리에 들어서니

11:30인데 벌써 하산하는 이들이

간혹 눈에 띄다.

아무래도 덕능고개 너머 수락산까지 가기엔 무리일 것 같다.

 

(3)

오름은 생각보다 완만,

그러나 정상이 보이는 8부 능선에 다다르자

험한 암능이 안이하게 생각한

우리들을 꾸짖기라도 하듯

하얀 눈 덮힌 미끄러운 사면 속의

흰 이빨을 드러내며 음험하게 웃는다.

그래! 625 때

사관학교 학생들이 여기로 숨어

항전했다는 산이라니

해발고도는 얕지만 예사롭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9부 능선에서 바라보는

불암의 넓이가 만만치 않은 것은 당연할 터.

 

(4)

석장산과 상봉(507m) 사이의

안부에 다다르니

상봉에서 내려오는 이, 오르려는 이로 정체.

석장봉의 암봉에 올라

바라보는 불암 정상이며

거기서 동측으로 내리꽂힌

우람한 직벽의 능선이며

우리가 지나온 들머리와 그 아래 펼쳐진

마들평야를 가득 채운 아파트,

그리고 그 너머 아스라한 [사패-도봉-북한]능선이

마치 꿈결 속의 샹그릴라 같기만하다.

 

(5)

여기서 북측을 조망하니

수려한 수락산(638m)이 멀지 않고

다리 또한 피곤하지 아니하여

어서오라고 유혹하는 듯한데

시간은 어느덧 14:00시를 훌쩍 넘고 있다.

 

(6)

아내의 요구로

새봄에 다시 오기로 하며

북사면에 녹지않은 눈길을 내려와

당고개역에 도달하여 귀가.

 

 

배달9204/개천5905/단기4340/서기2007/12/9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1. 불암산 정상[석장산-불암산]

 

 

 

 

 

2. 암사면 

 

 

 

3. 불암 정상

 

 

4. 수락산

 

 

5. 하산길에 본 치마바위 

 

이름없는풀뿌리 백 년 전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서울의 빼어난 풍광에 매료되곤 했다. 궁궐을 품고 있는 북악, 인왕, 목멱, 낙산 등 여러 산의 굴곡이 우선 아름다웠다. 이 모두를 멀리서 감싸고 도는 북한산·도봉산, 남쪽의 관악산·청계산, 동북쪽의 수락산·불암산도 그러했다. 이들 산에서 흘러드는 물을 넉넉히 담아내는 푸른 한강과 깨끗한 백사장은 한 폭의 산수화였다. 반면 광화문 앞과 종가 등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서울 거리는 좁고도 불결했다. 어쩌다 선교사들이 자전거를 탈 때면, 가끔은 울퉁불퉁한 길에 미끄러져 시궁창으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그래도 서울의 주변은 파란 눈을 한 서양인들의 넋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조선왕조 500년 도읍지였던 서울. 멀리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자웅을 겨루던 중심지였고, 한성 백제의 수도라 했다. 그러나 이곳 서울 사람들이 5000년 역사 속에서도 가장 참혹한 경험을 한 것은 삼국의 항쟁 때도, 청일전쟁·러일전쟁 당시도, 세계 제2차 대전 당시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7000만 동족을 현재도 볼모로 잡고 있는 6·25전쟁 때였다. 누가, 왜 전쟁을 일으켰는가. 때로 ‘북침설’도 등장했으니, 대한민국은 그 정도로 자유를 만끽하는 나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진실은 하나다. 과거를 인정할 때 통일은 앞당겨질 것이다. 전국 현충시설의 주인공들은 말없이 오늘을 지켜보는 것 같다.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에 ‘육사생도 6·25참전 기념비’가 있다. 요지는 이러하다.  2007/12/11 17:45:32  
이름없는풀뿌리 ‘1950년 6월 25일 미명, 북괴공산군이 불법 남침하자 수학 중이던 육사생도 1기(현 육사 10기) 312명과 2기 330명은 육사 교장의 지휘 아래 6월 26일 여명에 이곳으로 출전했다. 급히 방어진지를 구축, 공산군 제 3사단의 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펼쳤다. 그러나 포병의 지원 없이 소총만으로 싸우던 이들은 이곳에서 100여 명이 전사했다.’ 포천에서 백병전까지 치르고 철수를 명받은 일부 사관생도들은 후퇴하던 9사단 장병들과 합류하여 태릉 주변 산악지대를 근거지로 유격대를 조직하였다. ‘호랑이 부대’, 즉 불암산 유격대가 그것이다. 이들은 가파른 수락산과 불암산을 넘나들며 북한군을 상대로 전투를 했다. 불암산에는 그들의 자취가 배인 동굴이 있고, 당시 절의 스님들은 이들을 도왔다. 여기서 활약한 사관생도 중 2기는 대부분 실탄 장전법도 익히기 전에 전투에 투입된 20세 미만의 청소년이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생도에서 전사로 변한 그들은 이후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쫓고 쫓기는 산악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혹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그렇게 되었다. 불암사 입구에는 간단한 안내문이 있지만 현충시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멀쩡한 날 등산하다 한두 시간만 식사를 늦추어도 누구나 허기를 느낀다. 잠시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할 때도 나와 가족을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때 그들은 비바람과 찬 공기, 허기를 어떻게 버텨냈을까? 어쩌다 그 시절에 태어나 꽃다운 청춘을 바친 이들을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감히 ‘역사 심판’이 취미라면, 주말의 답사와 산행은 가까운 곳의 ‘6ㆍ25전쟁 전적지’를 먼저 권하고 싶다. <국가보훈처 선양정책과>  2007/12/11 17:48:24  
이름없는풀뿌리

불암산 [佛岩山]

서울 노원구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別內面)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509.7m이며 필암산(筆岩山)·천보산(天寶山)이라고도 한다. 불암산은 덕릉고개 남쪽에 높이 420 m의 또 하나의 봉우리를 거느린 산으로, 산 자체는 단조로우나 거대한 암벽과 절벽, 울창한 수목이 어울려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한다. 산 남쪽 사면에는 불암산 폭포가 장관을 이룬다. 또한 산에는 신라 지증국사(智證國師)가 세운 불암사와 그 부속 암자인 석천암(石泉庵)이 있고, 조선시대에 무공(無空)이 세운 학도암(鶴到庵) 등도 있다. 그 밖에 산중에는 태릉(泰陵) ·강릉(康陵) 등의 능이 있고, 산정에는 옛 성터와 봉화대 터가 남아 있다. 부근 일대에는 육군사관학교 ·서울여대 ·삼육대학 ·태릉선수촌 등이 있다. 서울 근교의 등산 코스로 개발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2007/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