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역사의 뒤안길

계영배란 술잔을 아시나요?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31. 14:00

 

계영배(戒盈杯)란 술잔을 아시나요? -나강하-

(1)
최인호作 상도(商道)중에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족함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계영배는 술잔의 7부까지만 채워야지 그 이상을 부으면 이미 부은 술마저도 사라져 없어져 버린다는 신비로운 그릇이다. 계영배(경계할戒, 찰盈, 잔杯)의 한자성어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술이 일정한 한도에 차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 즉,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한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사랑도 그릇의 7부까지만 채우고 그 이상은 절제하거나 양보하는 삶의 태도, 바로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는지도 모른다. 계영배를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면 이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넘치면 곧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는 교훈이다. 이는 곧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다 가는 모든 것을 잃고 만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2)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든 병역의 의무가 있고 신체상의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軍 생활을 하게 된다. 필자도 제3땅굴이 발견되던 무렵 전방 공병부대에서 軍 생활을 하였다. 군단 대기병에서 처음 자대(自隊, 근무하여야 할 예하 부대)에 배속되던 날, 자대가 GOP 안에서 활동 중이어서 까까머리의 이등병은 자유로를 거쳐 목판이 덜커덩거리는 자유의 다리를 건너 GOP로 들어갔다. 대남 방송이 왱왱 울려 퍼지는 도라산 아래에서 주야로 전술도로공사, 벙커공사에 투입되었는데 신병(新兵)인 나에게는 그것은 생경한 체험이엇다. 그런데 얼마전 신문을 보니 바로 거기에 남북철도가 지나는 도라산역이 세워지는 모양이다. 격세지감이 일어온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후방의 자대에 돌아와 전투공병훈련을 하고, 다시 춘삼월에 전방으로 투입되고 후방으로 나와 훈련을 하고 하는 군생활이 반복되었다. 힘든 게 군 생활이라지만 거기에도 낭만이 있고 진한 전우애가 있다. 그러기에 삼년여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에는 팔도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나이들이 모이다보니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는데 철조망 너머 소주와 안주를 사다 동료들과 이사종 창고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술을 마시다 선임하사에 들킨 일, 그리하여 하룻밤 내내 완전군장에 운동장을 뺑뺑이 돌던 일, 겨울 분탄(粉炭) 난로에 끓인 라면을 소대원들과 맛있게 먹던 일, GOP작업 중 휴식시간에 잡은 송사리를 끓여 먹던 맛, 변심한 애인의 배반에 자살한 이름 모를 병사 이야기, 그리고, 그리고... 그러다 제대 6개월 여를 남기고 고참이라 시간이 좀 남아돌게 되었는데 그 때 손에 넣은 게 "노자도덕경"이었다. 보초를 서면서, 휴식시간에, 저녁에 모포 속에서 남몰래 그 일 절씩 의미를 새겨가면서 외웠다. 제대 무렵에는 81장을 전부 외울 수 있었다. 그 때의 경험으로 단언하건데 한문은 외워 소리내어 읊어야지만 참맛을 느껴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시도 마찬가지이리라. 노자도덕경을 외우는 순간만큼은 모든 시름이 잊혀졌다. 군 생활 중 정신이상으로 죽은 불쌍한 여동생도 잊을 수 있었다. 지금도 저녁 취침 무렵 "노자 도덕경"을 마음 속으로 외우면 전방의 군 생활하던 산야가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바로 그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중 제9장을 보면 "계영배"와 아주 유사한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이미 가지고 있는데 또 채우는 것은 그만 두느니만 못하고
이미 두드려 벼린 쇠붙이를 더 예리하게 만들면 오래 보전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재물이 집안에 가득 넘쳐나면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부귀하면 교만하여 질 것인데 그러면 화를 부를 것이다.
공을 이루고 나면 이룬 자가 물러나야 함은 하늘의 법칙이다.

지이영지 불여기사 (持而盈之 不如其已)
취이예지 불가장보 (취(鍛)而銳之 不可長保)
금옥만당 막지능수 (金玉滿堂 莫之能守)
부귀이교 자유기구 (富貴而驕 自遺其咎)
공수신퇴 천지도 (功遂身退 天之道)

(3)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서 하늘에 정성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儀器”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자료에 의하면 “孔子”(BC551-BC479)가 “周”나라 “桓公”(?-BC643. 나라의 군주)의 사당을 찾았던 적이 있는데 생전의 환공께서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서 사용하였던 잔인 “儀器”를 보았다 한다. 이 의기에는 밑에 구멍이 분명히 뚫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물이나 술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를 않지만,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쏟아져 나가게 되어 있었다 한다. 이는 마치 현대의 “탄타로스의 접시”라는 화학 실험기구와 비슷한 원리인 것이었다. 환공은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 하여 “宥坐之器”로 불렸다 한다. 이를 본 받은 孔子도 “宥坐之器”를 곁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었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 한다. 孔子 의 孔子 됨이 바로 이 儀器인 계영배(戒盈杯)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4)
현재 한국에서 계영배를 만든 분으로 전해지는 사람은 무등산의 실학자로 불리는 하백원(1781-1844) 과 우명옥 이다. 하백원은 전남 화순지방에서 태어나 20세까지 학문을 배우고 23세부터 53세까지 30여년간 실학연구에 몸을 바친 과학자, 성리학자, 실학자였다. 그가 만든 대표작은 양수기 역할을 하는 자승차, 계영배, 펌프같이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 시간이 되면 스스로 소리를 내던 자명종, 청기와, 유리, 벽돌 등의 제조 및 대동여지도 보다51년 앞선 동국지도, 세계지도, 천문도 등이 있으나 현재 하백원의 계영배는 전해지는 것은 없는 듯하다. 또한 강원도 홍천지방의 전설에 의하면 우삼돌(우명옥)이라는 도공이 있었는데 사기그릇을 만드는 것을 동경하여 오다 마침내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경기도 광주분원으로 갔다 한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고 익혀 마침내 스승도 이루지 못한 雪白磁器를 만들었다 한다. 그리하여 그가 만든 반상기는 왕실에 진상이 되었고 왕은 雪白磁器의 아름다움에 경탄하여 상금과 치하를 아끼지 않았다 한다. 그 후 명옥의 동료들은 그가 잘되는 것을 질투하여 그를 방탕한 생활을 하게 꾀인다. 방탕한 생활은 계속 이어졌고 얼마가지 않아 그 동안 사기그릇을 만들어 모은 재물을 전부 탕진한다. 그제서야 그 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돌아온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물에 목욕을 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자 그는 스승에게 조그만 한 잔을 보여주며 이 잔을 계영배 라고 하였다. 잔에 술을 가득 부었으나 술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다시 술을 반쯤 붙자 술이 남아 있었다 한다. 스승은 그제서야 무릎을 치며 명옥이 술로 망했으니 술을 조심해서 마시자라는 뜻으로 과하게 마시지 말자라는 교훈이 담긴 것으로 깨달았다 한다. 그 후 술잔은 의주의 임씨라는 사람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조선시대 의주 거상 임상옥(1779-1855)이었다. 임상옥은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돈을 만들었다고 한다. 임상옥이 거상으로서 조선 최고의 큰 재물을 만든 바탕은 계영배의 기운을 끊임없이 느끼고 그 교훈을 되새긴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임상옥이 우연히 계영배를 깨뜨렸는데 이상한 일은 그 잔이 깨어지던 날 우명옥도 세상을 떠났다 한다. 거상 임상옥은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가지고 상도(商道)에 임하였다 한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아야 하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아야 한다.

 

삼척동자 저도 말씀하신 계영배를 만든적이있습니다. 아니 이 글을 보고 제가 만든 잔이 계영배라는 걸 알았습니다. 종이 잔 밑바닥에 이쑤시게로 구멍을 냈습니다. 아주 표나지 않게요. 밤새도록 마셨는데 저만 멀쩡했었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표면장력이라는게 있잖습니까? 정말 잘하면 가능할 듯 한데요? 경종을 울리는 말씀 가슴에 간직하고 갑니다.  2005/09/05 16:31:40  
풀뿌리 방문 감사드립니다. 2005/09/05 18:47:53  
金昌辰 풀뿌리 님, "계영배(戒盈杯)"는 "戒盈杯(계영배)"로 적어야 올바른 표기법입니다. 한글전용은 토박이말 쓸 때나 해다하지 한자말 적을 때는 한자를 앞에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왜냐면 원어가 앞에 오고 독음은 뒤에 와야 이치에 맞기 때문입니다. 2005/09/06 19:13:29  
풀뿌리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5/09/06 21:56:43  
이영혜 아니~ 도사님들의 대화.... 저도 '상도'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올리시느라 수고하셨음에 추천 올립니다!
복습-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아야 하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아야 한다. 
 2005/10/11 16:10:08  
풀뿌리 최인호의 상도는 소설이지만 임상옥은 실존인물이므로 따라서 상도는 역사에 근거한 사실적 소설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5/10/11 17:41:11  
수달 내용이 넘 좋아서 저도 담아 갑니다.. 많은 벗(주당) 들에게 이런게 있노라 할 려구요...감사합니다..^^ 2006/02/03 20:51:01  
풀뿌리 주당들에게 계영배를 알릴 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계영배가 아니라 적당히 채워야하는 계영배라고 알려주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배달9203/개천5904/단기4339/서기2006/2/4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2006/02/04 15:16:09  
김기태 계영배는 현재 전주에 술 박물관에 비치되어 있지만 원리는 사이폰 이론에 부합되는 것으로 이 시절 계영배를 만들면서 원리까지 깨우쳐 숫자로 표기할 능력이 되었다면 우리나라 과학이 많은 발전이 있었을 뗀데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07/09/20 12: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