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역사의 뒤안길

만리장성에 얽힌 이야기

이름없는풀뿌리 2015. 7. 31. 15:21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진시황은 이미 있었던 성을 증축하고 개축한 것입니다. 기원전 3세기 이전부터 17세기까지 무려 이천 년이 넘도록 쌓아서 지금의 모습을 갖춘 만리장성은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 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이 죽으면 그 자리에서 묻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에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고, 죽은 사람의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당현히 만리장성에 얽힌 설화나 전설도 많은 데 그 중에 몇 가지를 살펴봅시다.

 

 

1.맹강녀(孟姜女)의 통곡

 

진시황이 통지하던 시절에 맹(孟)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맹은 호리병박 씨를 마당에 뿌렸는데, 그 씨가 무럭무럭 잘 자라서 이웃집 강(姜)의 마당까지 뻗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없던 맹과 강은 호리병박을 잘 길렀고, 그 것은 곧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박을 가르고 보니 그 안에 여자 아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크게 기뻐한 두 사람은 아이의 이름을 맹강녀라 짓고 정성껏 길렀습니다.

 

맹강녀는 아름답고 총명한 여인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만리장성 부역을 피해 맹의 집 앞마당으로 들어온 범기량(范杞梁)을 만났고, 둘은 곧 사랑에 빠져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 사흘 만에 범기량은 부역에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끌려 간 후 맹강녀는 매일같이 울었습니다. 결국에는 남편을 찾자 떠나기로 결심하여 몇 개의 산을 넘고 강을 건넌 끝에 마침내 남편이 부역을 하고 있던 산해관(山海關) 근처에 다다랐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이 부역을 하다 지쳐 죽어 만리장성 속에 묻혔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너무 원통한 맹강녀는 몇 날 며칠을 통곡하고 울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천둥 같은 소리가 나면서 400킬로미터에 달하는 만리장성이 무너져 내리고 수많은 백골들이 나타났습니다.

 

장성을 시찰하러 나왔던 진시황은 이 소식을 듣고 진노하였습니다. 그래서 맹강녀를 죽이기로 마음먹었지만, 그녀를 본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첫눈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진시황은 맹강녀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녀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이에 맹강녀는 남편의 시신을 찾아 줄 것과 남편을 위해 국장을 치러 줄 것, 그리고 그 국장에 진시황이 검은 옷을 입고 참석할 것의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진시황은 이 조건을 모두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진시황이 드디어 맹강녀를 궁전으로 데려가려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길 옆의 바다로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현재 중국 하북성(河北省) 산해관 동쪽 7 km 지점에 맹강녀의 묘가 있고 그 옆에는 원망 가득한 눈초리로 멀리 만리장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동상이 서있습니다.

 

 

2. 제비 울음소리

 

옛날 만리장성 서쪽 끝 가욕관(嘉慾關)의 유원문(柔遠門) 안에 제비 한 쌍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제비들은 먹을 것을 찾으러 둥지를 떠났습니다. 밤이 되자 먼저 돌아온 아내 제비가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남편 제비가 유원문에 다다랐을 때 문이 이미 닫혀 있어서 둥지로  돌아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남편 제비는 슬피 울면서 있는 힘껏 몸을 만리장성에 부딪혔고, 그러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죽은 것을 알게 된 아내 제비는 지저귀며 울었습니다. 울다 울다 지친 아내 제비도 끝내 목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육신은 죽었을지언정 혼은 만리장성 근처에 남아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기이하게도 벽에 돌을 던지면 제비의 울음소리가 들리게 되었고, 당시 중국 사람들은 이를 상서로운 징조로 여겼습니다. 그런 까닭에 장군들이 전쟁에 나갈 때면 언제나 부인들은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빌며 만리장성 벽에 돌을 던졌습니다. 후에 이 풍습은 장군과 병사들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가족 모두를 데리고 와 벽에 돌을 던지며 무사 귀환을 비는 것으로까지 발전하였습니다.

 

 

3.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우리 속담에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짧은 만남에도 깊은 사랑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말인데, 이 속담에 나오게 된 배경 설화를 보면 본래의 뜻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 갓 혼례를 치른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때도 역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대역사를 벌이던 때여서 남편이 그만 결혼 사흘 만에 만리장성을 쌓는 부역에 징집되고 맙니다. 한 번 부역장에 들어가면 공사가 끝나기 전에는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부부는 꼼짝 없이 생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보내고 외롭게 살고 있던 여인의 집에 어느 날 나그네가 나타나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여인은 나그네에게 저녁밥을 대접하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미모에 반한 나그네는 여인을 유혹하여 하룻밤을 같이 지내자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남편이 갈아 입을 옷 한 벌과 자신의 편지를 남편에게 전달해 주고 그 증표로 남편이 쓴 글을 받아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흔쾌히 승낙한 나그네는 여인과 하룻밤을 보냅니다.

 

다음날 아침 나그네는 여인의 남편을 찾아 부역장으로 떠났습니다. 부역장에 도착한 나그네는 감독관을 찾아 면회를 신청하였습니다. 감독관이 여인의 남편이 옷을 갈아 입을 동안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하자 나그네는 여인의 남편 대신 자기가 공사장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여인의 남편이 보따리를 풀자 거기에는 이렇게 적힌 쪽지가 있었습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당신을 부역장에서 빼내기 위해 이 옷을 전한 남자에게 하룻밤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를 허물로 삼지 않는다면 옷을 갈아입는 즉시 부역장에서 빠져 나와 집으로 오시고, 허물을 탓하려거든 부역장 안으로 도로 들어가십시오.' 사랑하는 아내와 같이 있고 싶은 여인의 남편은 옷을 갈아입자마나 아내에게로 달려갔고 여인의 남편을 대신해 들어간 나그네는 평생을 그 곳에 갇혀 지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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