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1. 서언
2. 그 출전과 기원
3. 홍익인간을 잉태한 배달국은 어떠한 나라인가?
4. 그 사상의 참뜻
5. 위대한 사상의 탄생과 계승 발전
(가) 탄생 배경
(나) 세계인이 감탄하는 훈민정음
(다) 훈민정음은 과연 세종대왕의 창작품일까?
(라) 그 비밀의 열쇠
(마) 그리하여 민족의 정신이 계승되다.
(바) 영원하여라! 훈민정음! 그리고 홍익인간!
6. 결언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1)- 라강하 -
[들어가기 전에]
먼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명제(命題)를 던져주신 삼목림선생님께 감사드린다. 평소에 홍익인간에 대하여 많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정리하지 못하던 차에 이번 기회에 내가 생각하는 짧은 생각을 정리해 보게 되었다. 본인은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저 “내가 누구이고 나의 조상(祖上)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을까?”하는 궁금증에 역사(歷史)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러다 보니 철학(哲學)과 종교(宗敎)와 우주(宇宙)와 고고학(考古學)의 영역(領域)에까지도 자연스레 접근하게 됐다. 물론 스스로 이런 유(類)의 글을 자신있게 쓸 정도로 탐구해보지는 못했지만 실증적(實證的)으로 접근하는 현재의 역사학이 민족의 상고사(上古史)들을 너무 도외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궁금한 사항들이 많고 공부하고 있는 과정에 있지만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알리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토론함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편향된 사고방식, 골수국수주의자의 궤변(詭辯)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언로(言路)가 일백퍼센트 햇볕 아래 드러나는 길이 아니듯 승리자의 전유물인 역사기록물이 전적(全的)으로 진실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사는 다양한 의견이 있고 그러한 주변 이야기에 더욱 더 진실이 내재(內在)되어 있을 수가 있으므로 다시 한번 숙고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곰팡내 나는 고서적을 뒤적거림이 별도의 직업이 있는 필자의 삶에 경제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 때문에 아내에게서 핀잔을 듣기 일쑤이지만 이러한 분야를 탐구하다보면 가끔 짜릿한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추측하건대 고고학자가 유물을 찾아서 오지(奧地)를 헤매고, 문학가(文學家)가 밤을 세워 저작 활동을 하고, 건축가(建築家)가 훌륭한 집을 짓기 위해 세계를 섭렵함도 불국사 석가탑(釋迦塔)을 조영(造營)한 백제의 장인(匠人)인 아사달을 구태여 거론 할 것도 없이 그와 같은 심정이리라고 생각한다. 이에 단지 순수한 재야(在野)의 입장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숙고(熟考)해 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1. 서 언(序 言)
우리 나라는 다종교(多宗敎) 국가이다. 지금 이 두 동강난 조그마한 반도 국가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탄생한 수많은 종교들이 저마다의 믿음을 가지고 인간을 구제하고자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도 소싯적에 여러 종교들을 기웃거려 보았다. 현재는 무종교자이다. 하지만 항상 종교적인 삶을 지향(指向)하고 있다. 많은 종교가 난립하는 가운데 심히 우려되는 현상중의 하나는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우상(偶像)이라고 타부시하는 독선적(獨善的)인 사상을 가지는 종교들이 일부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종교인의 기본예절은 남을 존중하는 신실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믿는 바이다. 그러하지 아니하는 종교집단은 광신도(狂信徒)라고 보면 틀림없다고 단언(斷言)하고 싶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배달겨레들 중에는 기독(基督)을 믿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도 따지고 보면 예외 없이 배달의 뿌리에서 뻗어 나왔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진실로 기독(基督)을 섬긴다면 자신의 조상들이 믿음을 가졌던 선도(仙道)와 불교(佛敎)와 유교(儒敎)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관심을 가질뿐더러 깊이 연구하여야 한다고 믿는 바이다. 어떤 기독인은 불교 이야기를 하면 진저리를 치면서도, 그들이 쓰는 말씀들을 가만히 들어 보면 불교 용어(찰나, 피안, 화두, 인연, 인과, 업보, 아수라장, 야단법석 등등)를 자연스레 구사하고 있음을 본다. 이 무슨 모순인가?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기독사상을 갖는 것은 좋다. 그러나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이 땅의 토양과 풍속(風俗)은 거부하지 말자.
자신의 할머니들이 정한수를 떠 놓고 삼신할미에게 빌고, 성주신께 빌고, 조왕신께 빌고, 부처님께 빌어서 이 땅이 유지되어 왔음이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부한다고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공부하고 계승 발전시킬 때 신실한 기독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불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천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가끔 우리는 우매한 특정종교의 광신도들이 단군 상을 훼손하고 때로는 그 정도를 넘어서서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교정에 서 있는 동상의 목을 자르는 소행을 간간히 듣기도 하지만 그래도 참으로 안심(安心)되는 것은 아직 교육의 기본(基本)을 잊지 않고 있다는 고무적인 사실 하나가 있다.
1949년 12월 31일 법률 제 86조로 제정 공포된 교육법 제1조에는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이념을 아래와 같이 천명하고 있는데 이제껏 그 이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즉,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당당히 배달국이념인 홍익인간.재세이화사상을 명시하고 있음은 홍익인간의 위대한 사상의 참뜻을 인지(認知)하고 못하고의 차원을 떠나서 작금의 식민역사관으로 쓰인 역사교육 환경 하에서 그 숭고한 이념이 수많은 법개정에도 불구하고 용하게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여야하는 현실이 애닮기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민족의 지상과제인 분단의 통합과 더불어 슬기로운 백의민족(白衣民族)은 반드시 이 지상의 지고불변(至高不變)한 사상을 저마다의 가슴속에 새겨 널리널리 알리고 다물(多勿, 되물림)하리라고 본다.
2. 그 출전(出典)과 기원(起源)
세계의 여러 나라에는 창세(創世)에 관한 신화와 기원에 관한 설화들이 있다. 그런데 그 신화(神話)와 설화(說話)들은 실증적인 사료만 맹신하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에게는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는 자료로 팽개쳐지기 일쑤이다. 과연 그럴까? 실증적인 사료로 간주되는 유물유적은 지구의 지각운동과 천재지변, 전쟁등으로 사라지게 마련이고 기록적인 측면에서 보면 일반적으로 논(論)하는 역사시대라야 문자의 기원과 더불어 생각하면 고작 5,000년을 넘을 수 없다. 본격적인 역사의 기록은 2,000년이라고 보아야한다. 우리는 역사의 기록 이전의 세계는 흔히 유인원 집단생활처럼 아주 미개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구석기, 신석기라 일컫는 선사(先史)시대에도 현재 시스템 이상의 사회와 문화의 체계가 갖추어져 있었슴을 알아야한다.
오늘날 물질문명은 어느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암흑(暗黑)으로 가려진 수백만 겹의 베일에는 역사 이전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엄청난 족적(足跡)이 숨어서 신화와 설화로 구전되다가 다만 추상형(抽象型)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그러한 추상형의 메시지를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구체적인 사실을 추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觀点)을 가지고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기원을 살펴보기로 한다. 홍익인간과 재세이화를 알려면 단지 그 이념만이 아니고 그 출전(出典)과 기원(起源), 그리고 그에 관련된 왜곡된 우리의 역사, 신화에 대한 고찰(考察)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홍익인간이나 재세이화를 단군(檀君)의 건국이념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상고사(上古史)에 대한 인식결여와 무관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단군 시대에 그 이념을 계승 발전 시킨 것은 사실이나 삼국유사에서조차 단군 이전에 기원했슴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일단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출전으로 알고 있는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나(중국)의 위서(魏書)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었다. 그는 아사달(阿斯達; 經에는 無葉山이라 하고 또는 白岳이라고도 하는데 白州에 있었다. 혹은 또 開城 동쪽에 있다고도 한다. 이는 바로 지금의 白岳宮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이라고 불렀으니 이것은 고(高)와 같은 시기였다. 옛적 우리나라 기록인 고기(古記)에 의하면 桓國의 庶子 桓雄이 늘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의 일을 貪求하였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굽어 살펴 세 가지가 바른 太白山 주변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을 알고는, 天符印 3개를 주고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한웅이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턱 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그곳을 神市라 하였으니, 그가 이른바 桓雄天王이었다. 風伯, 雨師, 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人命, 질병, 형벌, 선악 등을 맡아 보살피되, 무릇 인간의 3백 6십여 가지의 일을 두루 맡아 세상을 순리로써 조화롭게 다스렸다. 이때 한 곰과 한 범이 한 동굴 속에서 함께 살면서 항상 神人 한웅에게 빌어 사람으로 탈바꿈하기를 원하였다. 신인은 곧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人形을 얻게 되리라」고 일러 주었다. 곰과 범이 이것을 얻어먹고 忌한 지 三七日만에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했으나 범은 잘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熊女는 더불어 혼인할 사람이 없으므로 매양 신단수 밑에서 잉태할 수 있게 하여 줄 것을 빌었다. 한웅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뒤 혼인하여 아들을 낳아 檀君王儉이라 불렀다.
魏書云.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國(國[정덕본], 因[복사본]), 謂帝釋也)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今妙香山) 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 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仮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高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 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一然, 三國遺事, 卷一 紀異篇, 古朝鮮)
일연이 소개한 단군설화를 요약하여 해석하면,
1) 지나(중국)의 위서란 역사책의 기록을 보면
2) BC2,333년(與高同時)에 단군왕검이 아사달을 수도로 조선을 건국했다고 했다.
3) 그런데 우리 옛 기록인 고기(古記)란 책을 보니
4) 옛날에 한국(桓國)이란 나라에 서자(庶子) 한웅이란 왕자가 있었는데
5) 그는 세상일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단다.
6) 그 아버지가 보건데 태백산 근처가 홍익인간하기에 알맞은 장소이어서
7) 무리 3,000을 주어 신시를 수도로 독립 국가를 열도록 하였다.
8) 세상사 360가지 일을 재세이화로써 다스렸는데 사람들은 한웅천왕이라고 받들었다.
9) 그곳의 토착 부족들 중에는 문화적으로 조금 뒤떨어진 곰족과 범족이 있었고,
10) 신문화를 갖고 들어온 이주민인 한웅족과 화합하기를 다투었는데
11) 범족은 동화되지 못하고 곰족만이 개혁에 성공하여 한웅족에 동화되었다.
12) 곰족의 공주와 한웅족의 왕자가 혼인하여 단군왕검이란 아들을 낳았다.
우리는 홍익인간하면 단군으로 알고 있었는데 삼국유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홍익인간이 단군이 아닌 한웅천왕시대의 국가이념이었다는 단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홍익인간이 왜 단군의 이념으로 이해되었을까? 이는 식민사관으로 교육을 받은 어느 누구도 단군 이전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식민사관으로 이해한다면 절대 곰족과 호랑이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곰과 호랑이의 전설로만 고집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곰의 자손이 되어야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식민사관으로 보자면 나이토우 코우지로(內藤虎次郞)교수와 이마니시 류(今西龍)조교가 공모하여 〈삼국유사 정덕본〉을 극비리에 사개(詐改) 영인(影印) 배포한 「昔有桓因(석유한인)」을 절대 「昔有桓國(석유한국)」으로 이해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불교사관으로 점철된 일연의 삼국유사 하나만 잘 살피더라도 단군 이전의 한국및 한웅시대를 발견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물론 서자(庶子)란 말도 "곁부인에게서 난 아들"이 아닌 "뭇 아들 가운데 선택된 아들"이란 의미로 식민사관에 세뇌된 이들에겐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단고기란 책이 나타남으로 인해서 삼국유사와 관련된 홍익인간, 한국, 서자 한웅, 단군, 곰과 호랑이 설화등이 아주 명쾌히 설명되어지는 것이다. 필자는 일찍이 <<왜 배달/개천/단기/서기인가?>>에서 한단고기(桓檀古記)와 부도지(符都誌)에 나온 배달민족의 역년(歷年)을 정리하여 본 적이 있다.
1) 마고할미의 마고성(麻姑城)에서 시작된 朕世시대(BC63,182 ~ BC7,197)로 4대의 왕조가 54,000년간 다스렸다 한다.
2) 한인들이 다스린 한국12연방시대(BC7,197 ~ BC3,898)로 7대의 한인이 3,100년간 다스렸다 한다. 즉 배달 = BC7,197 + AD2003 = 9,200년으로 한인 천제들이 배달민족을 다스린 배달을 역년으로 삼았다.
3) 한웅들이 다스린 배달국(倍達國, 靑邱國)시대(BC3,898 ~ BC2,333)으로 18대의 한웅들이 1565년간 다스렸다 한다. 즉 개천 = BC3,898 + AD2003 = 5,901년으로 배달국의 연호 개천을 역년으로 삼았다.
4) 단군들이 다스린 단군 조선시대(BC2,333 ~ BC238)로 47대의 단군들이 2096년 간 다스렸다 한다. 즉 단기 = BC2,333+AD2003 = 4336년이 단기의 역년(歷年)이다.
삼국유사와 한단고기의 두 기록을 살펴보면 너무나 유사하지 않은가?
다만 일연은 7대의 한인들이 3100년간 다스린
한국12연방을 한국(桓國)이란 한마디로,
또한 18대의 한웅들이 1565년간 다스린
배달국을 서자 한웅이란 한마디로,
또한 47대의 단군들이 2096년간 다스린
단군조선을 단군 왕검이란 한마디로 축약하여 표현함만 다를 뿐이다.
그렇다. 일연은 삼국유사의 저작 자료로써 그 당시 쉽게 구해 볼 수 있었던 고기(古記) 즉, 선가사서(仙家史書)들을 참조했음이 분명하다. 동시대인인 김부식과 일연은 분명히 선가사서들을 보았을 것인데 어찌하여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그러한 역사를 언급조차하지 않고 다만 일연만이 축약하여 표현했을까? 그것은 유가들이 우리나라를 소중화(小中華)로 자처한데서 찾아보아야한다. 즉 변방의 역사는 대중화(大中華)인 지나의 역사를 앞설 수 없다는 김부식의 유교사상과 불교와 민간 토속설화에 중점을 둔 일연의 불교적 사고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집안(옛 통구)이 고구려의 수도였다는 사실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어디에도 없어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로만 알았는데 1875년 발견된 광개토대제비를 통하여 겨우 알게 되었다. 1875년 이전에는 그 어느 누구도 만주에 고구려의 수도가 있었음을 몰랐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서 뿐 아니라 정통성이 있다는 사마천의 사기나 한서지리지에도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극심하였다. 세종 때 간행된 용비어천가에서는 "삼수갑산을 넘어 압록을 건너면 통구라는 찬란한 문화유적이 있는데 이는 금나라의 도읍지였다."라고 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소중화(小中華)의 극치를 보는 느낌이다.
흔히들 한단고기에 나오는 일부 용어(문화, 경제등)의 시대적 불균형을 예로 들어 한단고기가 위서(僞書)라느니 아니라느니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하늘의 메시지라고 알고 있고, 그 자체가 진리라고 믿고있는 성서와 불경조차도 누대(累代)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수 차의 공의회와 결집을 통하여 다듬어 조제한 것일진데 어찌 오랜 기록인 한단고기만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한단고기의 내용이 전적(全的)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연까지 언급한 한국, 한웅 그리고 단군의 역사에 대한 잔영(殘影)들을 깡그리 무시하여야만 할까? 거기 나오는 내용의 기본 골격은 사실로 인정하고 군더더기는 오랜 세월동안 첨삭(添削)되었다고 이해하면 안될까? 그럼 그러한 기록들은 오랜 세월동안 어떻게 전(傳)하여 왔을까? 단지 구전(口傳)으로만 전하다가 한문으로 기록되었을까? 그 어마어마한 내용들은 제법 체계적인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는데, 단지 구전(口傳)으로만 전해오다 일반적인 문자의 시대인 BC2,000년 이후에야 비로소 구성되었다면 이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고찰(考察)은 뒤편으로 미루고 우선 한단고기에서 말하는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주인공 한웅천왕에 대해 알아보자.(한단고기의 原文은 생략하고 그 내용을 현대적 사고 방식으로 재해설하기로 한다.)
여기서 한웅천왕은 일개인의 호칭이 아니라, 현재의 대통령처럼 최고지위자의 호칭이란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한단고기에 의하면 배달국에는 18명의 한웅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이념을 펼치며 단군 왕검이 조선이란 나라를 건국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준 시조 한웅은 누구일까? 그는 신시천왕(神市天王)또는 거발한(居發桓)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이다. 지금부터 일만년 이전에는 사람들이 씨족 단위로 무리를 이루어 먹거리를 찾아 이동생활(移動生活)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 그들의 족장을 한인(桓人)이라 칭하며 따르는 씨족이 있었다. 이 한인씨족은 여러 지역으로 이동생활을 하면서 주로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민족이었는데 생활 패턴이 수렵에서 농업으로 바뀌면서 정주(定住)생활을 하게 되었고, 삼위산(三危山, 지금의 지나 甘肅城 敦惶縣)과 태백산(太白山, 지금의 지나 섬서성, 물론 지금의 태백산이 아님)이 가장 정주(定住)하기에 좋은 장소임을 알게 되었다.
이 두 산 가운데 태백산 근처가 더 좋은 입지(立地)임을 알게 된 한인씨족은 지금부터 9천여 년 전에 태백산 아래 기름진 벌판이 펼쳐진 지나 북부, 만주 지방, 시베리아등 송화강(松花江) 유역에 정착하여 부락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이 지역은 지금은 기후의 변화로 추운 지방이지만 그 당시에는 살기 좋은 온대지방이었다. 이 때부터 한인씨족은 인구가 늘어나 큰 부족을 이루었는데 그때부터 그들의 족장을 한웅(桓雄)으로 고쳐 불렀다. 한웅부족은 태백산에 신단(神檀)을 설치하고 그곳에 신단수(神檀樹)를 심어 종교적 성지(聖地)로 삼고 하늘을 최고신으로 받들면서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였다. 그 후 서기전 3923년에 거발한 한웅이 태어났다. 한단고기에 의하면 거발한 한웅은 어려서부터 영특하더니 부족장인 한웅의 자리에 앉자 종교를 정돈하여 천부인(天符印)을 만들고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등의 관료조직을 정비하여 神을 섬기게 하고 곡물, 명령, 질병, 형벌, 선악 등의 업무를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정신에 따라 처결하니 부족구성원 모두가 태평하였다.
이때부터 한웅부족은 스스로를 조선족(쥬신족)이라 불렀다. 부족내부의 통치 시스템을 정돈한 거발한 한웅은 3,000명으로 조직된 군대를 만들어 주위의 여러 부족을 종교적인 감화와 무력으로 하나하나 복속시켜 부족연맹체를 형성하여 마침내 큰 정치세력을 만들었다. 이때 거발한 한웅에게 복속된 부족 가운데는 곰을 수호신으로 숭배하던 웅족(熊族) 과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숭배하는 호족(虎族)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호족은 새 정치의 틀에 동화되지 못하고 곰족만이 개혁에 성공하여 한웅족의 정치에 공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거발한 한웅은 94년간을 재위(在位)하시고 120년을 살았으며 한웅에 의하여 형성된 부족연맹체는 그 후 거발한(居發桓)한웅으로부터 18대인 거불단(居弗檀)한웅까지 1,565년간 계속되었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것을 배달국(倍達國)이라고도 부른다. 이때는 바로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국가(國家)라는 개념(槪念)이 태동하는 시기였다. 서기전2333년에 거불단 환웅의 아들인 단군왕검이 고조선(古朝鮮)을 건국하니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비로소 국가가 출현하였는바 이러한 기초를 마련한 인물이 바로 거발한 한웅이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이분을 신시천왕(神弗天王), 개천성조(開天聖祖), 한웅천왕(桓雄天王)등으로 부른다. (계속됩니다. blog.chosun.com/kanghan8)
배달9200/개천5901/단기4336/서기2003/9/26(초고)
배달9203/개천5904/단기4339/서기2006/1/10(퇴고)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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