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알프스의 유래
일본알프스는 일본 혼슈 중부지방에 있는 3000m급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북/남/중앙 알프스의 종칭으로, 북알프스 일대를 조사한 적이 있는 영국인 광산기사 '윌리엄 고란드'가 'Handbook for Japan'(1881년 발행)에서 유럽의 알프스를 본떠 '일본알프스'라고 소개한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
일반적으로 '일본근대등산역사의 아버지'라 불리우며 자신이 직접 등반을 하기도 했고 유럽에 일본알프스를 적극적으로 알린 것은 영국인 선교사 '월터 웨스턴'(1861~1940).
사실 일본알프스 지역의 고봉은 옛부터 주로 신앙의 목적으로 제한적인 범위내에 오르는 것이 보통이었고, 스포츠와 레저로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 것은 채100년이 되지않는다.
일본알프스의 항공사진 (Wikipedia Japan에서 발췌한 공개사진)
바로 앞이 남알프스, 뒤로 중앙알프스와 멀리 북알프스의 연봉이 보인다.
일본에도 우리나라의 백두대간 종주와 같은 국토 분수령 종주 개념이 있다.
동해안(소위 말하는 일본해)측에 있는 니가타(新潟)현의 오야시라즈(親不知)라는 이름의 절벽에서 시작되는 루트는, 혼슈 중부지방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혼슈의 분수령 남북알프스와 야쯔가다케(八ヶ岳)를 지나 태평양 연안의 시즈오카(靜岡)현 오마에자키(御前崎)에서 끝을 맺는 루트이다.
3000m의 능선을 통과해야한다는 특성상 종주가능한 것은 년중 서너달에 불과하기 때문에 완주하는데 몇년씩 걸리는 것이 보통이며 연속종주일 경우에는 대략 한달정도가 소요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백두대간 종주처럼 대중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최근의 일이지만), 정말 일부 소수 매니아들에 한해서 행하여지고 있다. (이 종주를 따로 지칭하는 명칭은 아직 없다)
일본알프스 종주를 하다보면 간혹 이 분수령 종주를 하는 일본인들(대체로 단독종주)을 만나게 되는데 필자가 종주중 만난 어떤 아저씨는 완주까지 10년을 내다보고면서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PS:사람들로부터 왜 후지산은 올라가보지 않았냐고 혹은 계획은 없냐는 질문을 종종 듣게되는데, 필자는 올라간 적도 없고 계획도 없음을 밝혀둔다. 단지 화산에는 별 관심이 없다라는 이유 하나에서 이다.
일본 북알프스 등정기(empas 돌단풍 http://blog.empas.com/nam8848/10376130)
오늘은 아침 식사를 하고 도야마(富山) 시내로 들어가 장비 점에 잠시 들린 뒤 북알프스 등산 기점인 가미고지(上高地)까지 차로 이동, 다시 요꼬(橫尾)산장까지 평지 길을 걸어가는 일정이다.
가미고지(上高池)는 해발 1,523m의 지역이다. 일본 북알프스의 관문이며 우리나라 설악산의 설악동에 비유할 수가 있다.
짐을 맞긴 뒤에 요꼬산장를 향해서 출발, 심심치 않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11km, 3시간 거리를 걸어가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요꼬산장을 가려면 아스가와 강 우측 길로 가지만 우리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강 좌측에 있는 산책로로 가기로 했다. 역시 낭만적인 길이라는 말에 모두들 마음이 약해진다.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고 습지대위에 나무로 만들어 놓은 산책로를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은 낭만적이라기보다는 군대의 행군 모습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아마도 태풍 속에 3천 미터의 고산 등반을 해야 하는 중압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탓 때문이 아닐는지?
원래 우리는 이곳 明神館에 묵을 예정이었는데 방이 텅텅 비어 있는데도 한국 사람의 숙박을 거절 하는 바람에 결국 요꼬산장에 우리의 숙소를 정했다는 박한성 촌장의 설명을 듣고는 은근히 화도 났지만 한편 창피한 생각도 든다.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하는 시간, 어느새 가미고지를 출발한지 2시간이 반이 지났다.
우리가 산으로 올라갈수록 밑에 까지 내려왔던 구름이 이상하게도 같이 산으로 올라간다. 날씨가 좋아지는 증거라고 하며 모두들 밝은 얼굴이 되는데 비는 와도 부디 바람만 안 불었으면 좋겠다.
경사가 급한 돌길을 걷다보니 높아지는 고도와 더불어 회원들은 점점 힘들어 한다.
가라사와 산장 전망대에서 보이는 주위 경관은 구름에 가려 산 윗부분이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잔설이 남은 설계의 모습과 우리를 압도하는 거대한 계곡의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비도 피할 겸, 잠시 들려 휴식을 취하면서 너무 젖은 옷은 갈아 입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손님은 없고 조용한데 우리가 들어가니 여주인이 반갑게 맞아준다.
요꼬산장을 향하여 가는 길에 우리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사진과 함께 하는 일본 북알프스 여행
일본 북알프스는 우리나라 산악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최상의 등산코스이다.
낯선 곳이라서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목이 칼칼하다. 여름이어서 반팔 티셔츠만 입고 잤는데 자는 도중 서늘해서 금세 신호가 오는 모양이다. 잠을 깬 후 시계를 보고 아직 이르다 싶어 조금 더 누워 있으려니 새소리가 들린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것이 휴대전화 모닝콜인가 본데 누군가 굉장히 참을성이 많다고 궁시렁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산장 싱크대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우리 일행들이 있는 방으로 가서 열심히 주무시고 계시는데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다. 다들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산행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 상쾌한 공기가 피부에 닿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오늘 일정을 살펴보며 준비운동 삼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데 여전히 들리는 새소리. 휴대전화 모닝콜이 아니고 진짜 새소리임을 참 늦게도 알았다. 이름도 모르는 새에게 아침 인사를 해 주어 고맙다고 마음으로 전하고 슬슬 짐을 챙겼다.
산장에서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받아 배낭에 넣고는 오전 8시 10분 출발. 아침부터 줄을 서서 올라가는 일본 사람들의 행렬을 보며 이 사람들도 우리 나라 사람들처럼 등산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자기 머리 위로 올라가는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잘도 걷는다.
작은 다리 하나를 지나고 나자 산길이 시작되는데 평탄한 길이 오솔길 같다. 올라가는 사람은 왼쪽, 내려오는 사람은 오른쪽이라고, 길이 좁아지면 한 줄로 서서 가는 것이 좋겠다고 가이드 우차장이 말한다. 남의 나라에 오면 꼭 신경이 써지는 것은 우리가 민간 사절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싶은 점이다.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 나라 망신을 시킬 수 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아침에 하산하는 내려오는 사람도 제법 많다. 산장에서 자거나 야영을 하고 오는 사람들이리라. 일본 사람들이 다른 사람 배려하고 인사성 밝다는 것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정말 쉴 틈 없이 '곤니치와.'를 듣는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마주 보고 웃으며 나도 '곤니치와.'를 하며 본의 아니게 인사 잘하는 사람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30분 정도 가자 왼쪽으로 묘우신( 明神 )봉이 늠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길가에 서서 연신 감탄을 하며 카메라를 눌러댄다. 한국에 가서 보면 사실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사진이 많은텐데...
길 옆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스기'(삼나무)와 '히노끼'( 편백 )가 쭉쭉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둘 다 생장이 빠른 것이 특징인데 삼나무는 잎 끝이 뾰족하고 편백은 조금 무디다고 한다. 기소의 편백 숲에서 森林浴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가슴 깊이 이 공기를 들이마시려 심호흡을 해 본다. 피톤치드와 테르펜 성분이 내 피부와 심장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고 튼튼하게 해 주려나?
향상하는 나무들 아래
길 따라가는 나는 길처럼 길어지지 않는다
사방에서 촘촘한 그물 던지는 세월 아래
길 따라가던 나는 더욱 길을 잡는데
향상하는 나무들 아래
음악은 결국 듣는 자의 몫
길은 끝끝내 가는 몸의 것이라고
나는 나를 속여 왔으니
향상하는 나무들 아래
향상하지 않는 검은 뿌리들
웅장한가 아니면 웅성거리는가
보이지 않으면 두렵고
두려우면 또 보이지 않으니
이문재의 < 나무들은 向上한다 > 중에서
오전 8시 45분. 묘우신 연못이라고 쓰인 곳에서 1차 휴식. 가능하면 물통에 물을 채우고 화장실을 다녀오라는 우차장의 당부가 이어진다. 해발 1500m가 넘는 곳에 이렇게 편의시설을 해 놓은 일본인들의 자세가 돋보인다. 도리어 이런 것이 다른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기본적인 정신 교육이 단단히 한 몫을 하겠지만 말이다. 이고문님은 북알프스가 자세히 나와 있는 지도를 하나 구입해 오셔서 열심히 숙지하신다. 나중에 우리에게 깊이있는 강의를 해 주실 모양이다. 기대해도 되겠군.
황소팀이 도착하는 것을 보고 다시 출발했다. 길은 여전히 아주 무난하다. 동네 뒷산 산책을 나온 느낌이 들어서 도리어 긴장이 풀어지지 않을까 하는 杞憂를 한다. 여유가 있으니 길 옆의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보랏빛을 띠고 수줍게 피어 있는 꽃, 노란빛을 자랑하듯 발랄해 보이는 꽃, 우윳빛으로 소담스럽게 피어 있는 꽃, 하얀색으로 정갈해 보이는 꽃... 자연은 어디나 비슷하다. 비록 해발 1500m를 넘기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보이는 꽃들은 우리 나라 山野에서 보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주섬주섬 마음을 챙겨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왼쪽으로 나 있는 계곡은 얼마 전 쏟아진 폭우에 산사태가 나서 엉망이 되어 버렸다. 자연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내 키의 다섯 배쯤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나가 뒹굴고 있는 모습이며 마구 쓸려나가 조금은 황폐해 보이기까지 하는 계곡 바닥이 다시 한번 자연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길은 여전히 편안한 자세로 우리를 이끈다. 조금씩 있는 경사야 그리 심한 것이 아니니 숨을 헐떡이지 않아도 갈만 하고 도리어 고도계를 보면 겨우 10m씩 올라가는 것이 과연 어느 천년에 우리 목적지까지 갈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오늘 일정은 급할 것이 없으니 천천히 가라고, 산장에 일찍 올라가도 할 일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느긋하게 발을 터벅터벅 옮기려 하지만 성질이 급하니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는군.
앞서서 가는 사람은 늘 그 위치를 차지하고 뒤에서 오는 사람은 또 늘 그 자리이다. 각자 왔지만 우리와 한 팀인 사람들 서넛이 늘 앞서서 걷고, 나와 이고문님이 중간쯤 되나, 그리고 이회장님과 나상무님은 사진을 찍으시는지 뒤로 처지셨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산행을 하는 것은 정말 유람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산천경개 구경하며 때로는 콧노래도 부르고, 낯선 사람들 풍습도 눈여겨보고...
오전 9시 50분 도쿠사와 ( 德澤 ) 산장에 도착했다. 이 산장은 주변이 넓어 야영장이 잘 갖추어져 있다. 빨갛고, 노랗고, 초록색의 텐트들이 풀밭에 펼쳐져 있는 모습은 평화롭다 못해 장난처럼 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나라는 언제부턴가 산에서 하는 야영을 금지했다. 陰酒歌舞를 유난히 좋아하는 국민 정서상 국립공원이 쓰레기장으로 변할 것을 염려한 때문인 것으로 안다. 어젯밤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산장 주변을 둘러볼 때 그렇게 많은 텐트가 있는데도 저녁 8시 반에 쥐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과연 저 텐트 속에 사람들이 들어 있는 것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었다. 그리고 하나도 먹고 마시지 않은 것처럼 어디서도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도 덩달아 조용조용 귓속말을 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런데 쉬면서 사방을 둘러보다 웃통을 벗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꼭 저런 사람이 어디나 있다니까...' 하면서 남자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보니 우리 팀이었다. 어째 이런 일이, 쯧쯧.
남의 나라까지 와서 무단 방뇨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有備無患 차원에서 습관적으로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을 다시 채운 후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내가 가야 할 길 어서 가야지. 우리가 출발한 가미고지( 上高地 )까지 6.4km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우리가 온 거리가 그만큼 된다는 말이렸다.
다음은 요코오( 橫尾 ) 산장에 가서 쉰단다. 날씨는 우리를 도와주는지 긴팔 남방셔츠를 벗고 나서는 그리 더운 줄 모르고 걸을 정도이다. 산에서 해발 100m 올라갈 때마다 섭씨 0.6도씩 기온이 떨어진다던가. 아침에 어떤 옷을 가지고 올라가느냐를 놓고 왈가왈부 했던 일을 떠올리며 웃음을 짓는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 산에 갈 때도 때로는 옷을 어떻게 입어야 실패하지 않을지 고민이 많다. 그런데 남의 나라, 그것도 우리 나라에는 없는 高山을 오르려니 고민이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 게다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기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데 신세를 지기도 어렵고.
오전 10시 55분에 요코오 산장에 도착했다. 슬슬 배가 고프다. 양갱 하나를 먹고 이회장님이 사다 주신 음료수 한 병을 마시며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이고문님 배낭은 전혀 변동이 없이 빵빵하다. 다른 사람 배려해서 챙기신 장비가 반은 되리라. 이왕이면 나보다 무거운 배낭 짐을 덜어 드리자고 고문님 배낭 옆구리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이제 조금 가다 점심을 먹고 2시간 정도 가풀막진 길을 오르면 우리가 쉴 산장이란다. 거리상 반을 훨씬 넘겼으니 마음이 놓인다.
산등성이에 구름이 걸렸다가 넘어가는 것을 보며 배낭을 멨다. 날씨 조짐이 심상치가 않다. 조금만 참아주면 좋으련만 산의 날씨라는 것이 예측할 수가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되겠군. 출발하자마자 몇 방울 비가 듣기 시작한다. 점심 먹을 장소까지 이동해야 비를 피할 데도 없으니 차라리 비가 더 오기 전에 여기서 먹는 것이 낫겠다고 우차장이 길섶으로 안내한다. 나무 등걸이나 바위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니 삼각김밥 3형제가 나란히 들어 있네. 다른 도시락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한국에서 멋어본 삼각김밥 생각을 하며 밥 한 입에 물 한 모금 하며 2개를 꾸역꾸역 먹어 치웠다. 나머지까지 억지로 먹으면 도리어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도로 집어 넣고 비에 대비한 준비를 한다.
체온이 떨어질지도 모르니 긴팔 셔츠를 덧입고, 발목에는 이번에 새로 장만한 반스패츠를 채웠다. 산에 다니다 보면 신발에 물이 들어가는 것이 가장 고역이었다. 스패츠는 꼭 눈이 들어갈 것에만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비 또는 돌 등의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하는, 쓰임새가 다양한 장비라고 하는 걸 배웠다. 머리에도 새로 산 고어텍스 모자를 썼다. 다른 사람들은 고어텍스 자켓과 바지에 우비까지 중무장을 하는데 하늘을 보건대 그리 무자비하게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으니 걸으면서 땀이 나면 비에 젖는 것보다 때로는 못하다는 사실을 감안했다. 나만 준비하면 되나? 귀중품이 있으니 배낭 카바는 기본이지.
가볍게 걷기 시작하는데 유난히 돌이 많은 길이 미끄럽다. 거기다 이제부터 경사가 심해지니 긴장이 되는군. 내가 빨리 걸어서 자기도 자꾸 속도가 빨라진다고 우차장은 타박이 심하다. 그 말을 듣고 서서 쉬면서 뒤에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잠깐 고민을 했다. 이제 겉옷은 거의 다 젖다시피 했다. 그냥 이대로 가야 하나, 아니면 남들처럼 지금이라도 비옷을 꺼내 입어야 하나? 이고문님은 오늘 따라 앞서서 잘 걸으신다. 마치 자신을 테스트라도 하는 양.
어느 정도 올랐을까? 멀리 녹아내린 눈이 보이고 계곡에 아직도 두꺼워 보이는 얼음이 한 겹 덮여 있다. 당연히 기온이 내려가 팔에 소름이 돋는다. 비는 그쳤고 햇살이 여우처럼 반짝이는데 빗물을 머금은 나무와 꽃들이 한층 싱그럽다. 수피가 독특한 나무도, 조롱조롱 꽃인지 열매인지를 매달고 있는 식물도 모두 반갑다. 나무 이름은 묻지 말라고 했는데 혹시나 싶어서 수피가 특이한 나무가 무언지 아느냐고 우차장에게 물으니 '저노므시키'란다. 다음에 또 물으면 '간나새끼'라나? '나무 木'자를 일본말로 '기'라고 하니 우스갯소리를 하는 모양인데 처음에는 진짜인 줄 알고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으니...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가면 산장이 보인다고 우차장이 일러 주었다. 이제부터는 눈길이다. 싸늘한 눈바람이 몰려와선 한 차례 내 몸을 훑고 지나간다. 한여름에 피서는 확실히 온 셈이군. 한국은 지금도 30도를 오르내릴텐데... 눈길이다 보니 길도 미끄럽다. 스틱을 꺼내 중심을 잡아가며 올라가다가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조심조심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살살 걷다보니 산장이 코 앞에 보인다.
걸음을 멈추고 보니 앞 위쪽으로는 양쪽에 우뚝한 봉우리가 있고 그 아래는 설사면이 펼쳐져 있는데 여기도 온갖 색상의 텐트가 만발한 꽃이다. 여기까지 저 텐트와 필요한 물건들을 지고 올라오기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래도 대다수가 젊은이들인데 우리와는 즐기는 문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 젊은 사람들은 3D업종이라고 힘든 일을 피해서 직장을 잡기 어렵다는 말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콘도나 펜션 아니면 민박을 정해서 즐기지 이렇게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 면을 보면 아무래도 정신력에 차이가 나지 않을까?
오후 2시 15분 마지막 힘을 모아 가라사와( 학澤 )산장에 도착했다. 해발 2350m란다. 산장 입구에 놓인 의자에 일찍 온 사람들이 모여 주변을 감상하고 있다. 김차장이 와야 방 배정이 가능하니 잠깐 쉬라는 말을 듣고 벤치에 자리를 잡은 후 커피물을 준비해 가져온 비스켓과 커피로 상을 차렸다. 아! 이 분위기와 어울리는 향이라니... 열심히 장비를 챙겨 지고 오신 이고문님 덕에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는 시간이다.
산장에서는 9시에 소등을 한다, 비누와 치약을 쓸 수 없다는 등의 주의사항을 우차장에게 들었다. 그건 우리 나라도 자연 보호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항이다. 물론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자기가 도로 가지고 내려가야 한다. 작년에 갔던 지리산 산장 구석구석에서 냄새를 풍기던 음식 쓰레기를 떠올리며 구호뿐인 우리 나라의 정책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기에도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있지만 우리 나라만큼 쓰레기가 널려 있는 것은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다. 새삼스레 이들의 준법정신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방 배정을 받았다. 우리는 2층 하나( 花 ) 방이다. 空, 峰, 木 등등 방의 이름을 자연에서 따온 것이 눈에 띈다. 방에 들어서니 두 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 층에 4명이 자면 적당해 보인다. 그런데 일본이 지금 연휴기간이라 사람이 많아 6명을 배정한단다. 하는 수 없지. 하필이면 일본 연휴기간에 온 사람 잘못이랄 밖에.
산장에서 할 일도 없고 좁은 것이 답답해 이고문님과 밖으로 나와 무엇을 할까 하다가 멀리 보이는 산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배낭을 벗어 놓고 나오니 이렇게 날아갈 듯 홀가분한 것을... 가볍게 걸어 눈밭에서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니 룰루랄라 놀러나온 어린애처럼 들떴다.
그러다가 마주 보이는 산장을 향해 갔다. 처음에는 야영객을 위한 곳인가 보다 싶었는데 가 보니 생각보다 더 넓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우리도 '오뎅'과 '정종'을 시켜 자리를 잡았다. 영어가 통하지 않으니 '바디랭귀지'로 의사를 전달해서 국물 한 국자 더 얻은 것에 만족하며 내일 산행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상무님이 오셨다. 대낮에 산장에 누워 있기 심심하셨던게지. 그렇게 모인 것이 혼자 온 김선미씨에 가이드 두 명까지 합해서 6명이 되었다. 우리가 오뎅을 더 시킨다고 하자 가이드가 하는 말
"오뎅은 그렇게 한 요리 전체를 다 가리키는 말이라 얘네들 못 알아들어요."
아하, 그래서 우리가 아까 호기있게 오뎅이라고 주문하자 파는 사람들이 이것 저것 보여주며 어떤 것이냐는 몸짓을 했구나. 또 하나 배웠네. 물론 국물 좀 더 달라고 하자 야멸차게 거절해서 이 나라 사람들의 또다른 면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우리 나라라면 국물은 일단 무한정 더 주고 심지어 떡볶이를 먹어도 오뎅 국물은 덤으로 그냥 퍼주질 않던가. 이래서 우리 나라 사람을 보고 푸근하다고 하겠지. 갑자기 우리 나라의 따뜻한 오뎅 국물 같은 후한 인심이 그립다.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산장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간단히 우리끼리 술 한잔을 했다. 다음날 산행을 위해서 과음은 금물이지. 무슨 미련인지 그쳤던 비가 다시 후둑후둑 한다. 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몸끼리 부딪힌다. 산장은 다 그러려니 싶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난방이 되지 않는데도 인구 밀도가 높아서 그런지 공기도 텁텁하고 후텁지근하다. 밤 9시도 안 되었으니 잠이 올 리 만무이나 그냥 눈을 감고 피로를 푼다. 두런두런 밖에서 들리는 소리와 복도에서 왔다갔다 하는 소리에 잠은 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억지로 잠을 청해 보려 노력하는데 차츰 더워지는군. 어젯밤 생각에 혹시 추울까 싶어 신었던 양말을 벗어 발치에 던지고 바지도 겅충겅충 걷어 반바지를 만든다. 그래도 덥다. 이번에는 반팔 티셔츠를 허리춤에서 빼내어 공기가 통하게 하면 나을까 싶다. 이렇게 온갖 엉뚱한 짓을 하다가 스르륵 잠에 빠진다.
'18[sr]산행,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북알프스 상학봉-묘봉 산행기 - 2006.7.2(일) (0) | 2015.09.14 |
---|---|
충북알프스 구병산 산행기 - 2006.7.29(토)~7.30(일) (0) | 2015.09.14 |
계룡산 주능선과 심우정사 산행기 (0) | 2015.09.14 |
백두산 천지 (0) | 2015.09.14 |
잉카의 황금문화 (0) | 2015.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