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죽부(墨竹賦)
도홍(陶泓)ㆍ관성자(管城子)1)가 / 陶泓管城子
어느 날 무하씨(無何氏)2)의 집을 찾아가니 / 一日過於無何氏之宅
주인은 신을 거꾸로 신고 나와 / 主人倒屣而出
궤석에 맞아들이고서 / 迎之几席
마주앉아 고금을 상론하며 / 相與商確古今
품물을 평가하는데 / 評題品物
기염을 토하니 구름 연기보다 자욱하고 / 吐氣霏乎雲煙
말소리는 우렁차서 금석보다 쟁쟁하네 / 發言鏗乎金石
이에 관성자는 도홍에게 읍하고 일어서 / 於是管城子揖陶泓而作
옷을 벗고 갓도 벗고 / 裸身免冠
머리를 들어 먹물에 적시어 / 以首濡墨
바퀴를 도는 양 뜀을 뛰는 양 / 蹁躚跳躍
고당의 벽에 뿌려대는데 / 灑于高堂之壁
굽어보고 쳐다보며 / 乍俯乍仰
갔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여 / 或徃或復
변태가 갖가지로 나타나 / 變態百出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네 / 駭人之目
좌상의 객은 모두 돌아보며 / 坐客皆顧瞻
놀라느라 겨를이 없는데 / 錯愕之不暇
어찌 그 만에 하나라도 흉내낼 수 있겠는가 / 尙安得髣髴其萬一也哉
살펴보니 그는 마치 풍마가 내달리어 / 觀其如風馬奔逸
땅을 건너뛰고 공중을 솟으며 / 地拏空
번갯불이 반짝이듯 토끼가 그물을 벗어나듯3) / 電逝兎脫
어느새 사라져 흔적조차 없는 것 같다 / 滅沒無蹤
큰 배가 파도를 타고 / 如巨艦駕浪
튼튼한 돛을 높이 벌려 / 健席高張
백 리가 눈 깜작할 사이라는 듯 / 瞬息百里
멀고도 아득하니 / 超忽渺茫
어찌 그리 기이한가 / 何其異哉
그 진상을 알 길 없네 / 莫知其狀也
심지어는 급하고 재빨라서 / 至若揮攉舊迅
벼락이 미처 귀를 못 가리게 하는 것 같아 / 如疾雷之不及掩總
저 영땅 사람이 코끝에 묻은 백토 가루를 깎자고4) / 非郢人斲鼻端之泥
큰 자귀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 運斤而生風者歟
창을 서로 겨누어 / 如矛戟相向
그 서슬이 번쩍이는 듯하니 / 森然其鋒
적진에 뛰어드는 군사가 빨리 닫고 / 非赴敵之兵
급히 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 鞠走而急攻者歟
그렇지 않다면 꿈틀꿈틀 용과 뱀이 서린 것 같으니 / 不然蜿蜿如龍蛇屈伸
그 옛날 초성(草聖)5)의 삼매가 / 其草聖之三昧
칼춤의 신을 얻은 게 아닌가 / 得於劒舞之有神者歟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 言未訖
구름 연기 어둑어둑 / 雲煙冥迷
바람 서리 으시으시 / 風霜浙瀝
곧은 줄기 잠을 뽑고 / 直榦抽簪
역한 뿌리 옥을 묻고 / 逆根埋玉
벗는 꺼풀 길쭉길쭉 / 解籜披披
떨리는 잎 바슬바슬 / 戰葉摵摵
의연히 달 아래 모습이요 / 猗然月下之姿
창창한 연기 속의 빛이로세 / 蒼然烟中之色
아 희한하다 / 嗚呼嘻噫
이야말로 이른바 묵군(墨君)6)이 아니겠는가 / 玆非所謂墨君者歟
온 만좌한 귀빈들이 / 佳賓滿座
돌아보며 허허 웃으니 / 相顧大噱
종전의 의심이 / 向者之疑
얼음 녹듯 환히 풀렸네 / 渙然氷釋
[주1]도홍(陶泓)ㆍ관성자(管城子) : 도홍은 벼루를 가리키며, 관성자는 붓의 대명사. 한유(韓愈)가 붓ㆍ먹을 의인화(擬人化)해서 쓴 모영전(毛穎傳)에 보인다.
[주2]무하씨(無何氏) : 가공의 인물을 말한다. 오유 선생(烏有先生)과 같은 뜻.
[주3]토끼가 그물을 벗어나듯 : 빨리 달아나는 것을 형용한 말임. 《손자(孫子)》 구지(九地)에 “처음에는 처녀같이 순하여 적이 문을 열어 주게 하고, 후에는 토끼처럼 빠져나와 적이 미처 대항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주4]영땅 …… 깎자고 : 영(郢) 땅 사람이 백토(白土) 가루를 자기 코끝에 바르되 매미날개처럼 엷게 하고 장석(匠石)으로 하여금 깎아내게 하니, 장석은 큰 자귀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켜 깎아내리어 백토가 다 벗겨지고 코는 상하지 않았다 한다. 《壯子 徐無鬼》
[주5]초성(草聖) : 당(唐)나라 사람 장욱(張旭)이 초서(草書)를 잘 써서 초성의 칭호를 얻었는데, 기실은 공손 대랑(公孫大娘)의 칼춤 추는 것을 보고서 예술이 일취월장되었다 한다.
[주6]묵군(墨君) : 묵죽(墨竹)을 일컬은 말. 대를 차군(此君)이라 이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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