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295)정도전 삼봉집 제4권 /명(銘) /죽창명(竹窓銘) 서문까지 아울러 씀. 이하 두편은 금남잡제(錦南雜題)임.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4. 07:56

죽창명(竹窓銘) 서문까지 아울러 씀. 이하 두편은 금남잡제(錦南雜題)임.

 

삼봉(三峯)은자(隱者)가 이 선생 언창(李先生彦暢)을 보고 말하기를, ‘선생이 아호를 죽창(竹窓)이라고 한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대개 대[竹]는 그 속이 비고 그 마디가 곧으며, 그 빛이 차가운 겨울을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군자들이 그를 숭상하여 자기의 지조를 가다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경(詩經)》에서도 군자의 본질이 아름다운 것이나, 학문이 스스로 닦여짐을 대에다가 비흥(比興)하였으니 그 의탁한 바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옛 사람이 대에서 취한 것이 하나가 아닌데 선생이 택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하니 선생은 말하기를, ‘아닙니다. 그러한 고상한 지론은 없습니다. 다만 대가 봄에는 새들에게 알맞아 그 울음소리가 드높고, 여름에는 바람 부는 데 알맞아 그 기운이 맑고 상쾌하며, 가을이나 겨울에는 눈과 달에 알맞으며 그 모양이 쇄락합니다. 그리하여 아침 이슬, 저녁 연기, 낮 그림자, 밤 소리에 이르기까지 무릇 이목에 접하는 것치고는 한 점도 진속(塵俗)의 누(累)가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는, 죽창에 앉아 탁자를 정돈하고 향을 피운 다음 글을 읽기도 하며 거문고를 타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온갖 생각을 떨쳐 버리고 묵묵히 꿇어앉아서 죽창에 자신이 기대고 있는 것조차 잊기도 합니다.’ 하였다.

아! 선생의 즐거움은 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에 얻은 것을 대에다가 의탁했을 뿐이다. 청하여 이것으로 명(銘)을 한다.

 

활짝 열린 그 창에 / 有闢其窓

무성한 것 대일세 / 有鬱者竹

군자의 사시는 곳 / 君子攸宇

그 정조 옥과 같네 / 其貞如玉

좌우에 책 놓고 / 左圖右書

아침저녁 펼쳐 보니 / 閱此朝夕

물에 쏠려서가 아니라 / 不物於物

그 즐거움 즐기네 / 維樂其樂

 

竹窓銘 幷序○以下二首錦南雜題

 

三峯隱者見彥暢父李先生問曰。子號竹窓。然乎。夫竹。其心虛其節直。其色經歲寒而不改。是以君子尙之。以勵其操。至於詩以興君子生質之美。學問自修之進。則其所托者深矣。古人之取於竹非一。敢問所安。先生曰未也。無甚高論。且竹。春宜鳥。其聲高亮。夏宜風。其氣淸爽。秋冬宜雪月。其容灑落。至於朝露夕煙。晝影夜響。凡所以接乎耳目者。無一點塵俗之累。予於是早起盥瀹。坐竹窓淨几焚香。或讀書或彈琴。有時撥置萬慮。默然危坐。不如吾身之寄於竹窓也。噫。先生之樂不在竹。但得之心而寓之於竹耳。請以是銘之。

有闢其窓。有鬱者竹。君子攸宇。其貞如玉。左圖右書。閱此朝夕。不物於物。維樂其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