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정도전 三峯集

463)정도전 삼봉집 제14권 조선경국전 하(朝鮮經國典 下) /정전(政典) /교습(敎習)

이름없는풀뿌리 2018. 1. 28. 05:19

교습(敎習)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술을 가르치지 않은 백성을 이용하여 전쟁을 하는 것은 곧 백성을 버리는 것이다.”

《주례》에서는 대사마(大司馬)가, 봄 사냥ㆍ여름 사냥ㆍ가을 사냥ㆍ겨울 사냥으로 무사를 강습하여 때를 거르는 일이 없었고, 징과 북 그리고 깃발을 사용하는 절차를 밝히고, 전진과 후퇴, 그리고 격자(擊刺)하는 방법을 익혔으며, 병사(兵士)는 장수의 뜻을 알고 장수는 병사의 정을 알아서, 전진해야 할 때에는 장수와 병사가 함께 전진하고, 후퇴해야 할 때에는 장수와 병사가 함께 후퇴하였다. 그리하여 방어에는 견고하고 싸움에는 이겼으니, 이것은 평소에 교습을 시켜 왔기 때문이었다.

주나라 이후로는 진문공(晉文公)이 피려(被盧)에서 사냥을 한 것과 제민왕(齊愍王)의 기격(技擊 격검(擊劍))과 위혜왕(魏惠王)의 무용이 뛰어난 군사와 진 소양왕(秦昭襄王)의 정예한 군사들이 비록 사력(詐力)을 숭상하기는 하였으나 그 용병술에 있어서는 후세에서 미칠 바가 아니었다.

전국시대의 사마양저(司馬穰苴 본성은 전(田), 사마는 대사마(大司馬)를 가리킴)와 당나라의 이정(李靖 태종 때 병법에 뛰어났고 돌궐(突厥)을 격파하는 무공을 세움)에게는 모두 병법이 있었지만, 오직 제갈무후(諸葛武侯 무후는 제갈량(諸葛亮)의 시호)의 용병(用兵)만이 인의(仁義)를 중심으로 하고 절제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주문공(朱文公 주희(朱熹))은 그를 가리켜 용병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신은 제갈무후의 용병술을 조술하여 《오행진(五行陣)》과 《출기도(出奇圖)》를 지었고, 또 사마양저의 병법을 가감하여 《강무도(講武圖)》를 지어서 바쳤더니, 전하는 이것을 보고 좋다고 칭찬하고 군사에게 명하여 익히게 하였다.

신이, 주나라 사마의 사냥법과 진(晉)ㆍ위(魏)ㆍ제(齊)ㆍ진(秦)ㆍ사마양저ㆍ이정 등의 병법을 취하여 앞에다 적은 것은 옛날 것에서 법을 취하자는 것이고, 신이 지어 바친 《출기도》와 《강무도》를 뒤에다 적은 것은 그것을 지금에 익히자는 것이다. 고금의 제도가 갖추어지고 교습의 법이 밝혀지면 병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교습편(敎習篇)을 짓는다.

 

敎習

孔子曰。不敎民戰。是謂棄之。周禮春蒐夏苗秋獮冬狩。以講武事。無闕於時。明金鼓旗麾之節。習進退擊刺之宜。兵識將意。將識士情。可以進則與之偕進。可以退則與之偕退。守則固。戰則勝。此敎之有素也。自是以來。晉文之蒐于被廬。齊愍之技擊。魏惠之武卒。秦昭之銳士。雖有詐力之尙。而其用兵之術。非後世所能及也。戰國之司馬穰苴。唐之李靖。皆有兵法。惟諸葛武侯之用兵也。蓋於仁義之中。而有節制之意焉。故朱文公以爲善用兵也。臣祖其意。作五行陣,出奇圖。又增損司馬法。作講武圖以獻。殿下稱之曰善。命軍士肄之。臣取司馬蒐狩之法。晉,魏,齊,秦,穰苴,李靖等兵法。書之於先。欲其取法乎古也。以臣所獻出奇講武圖書之於後。欲其熟之於今也。古今之制備。而敎習之法明。則兵可用也。作敎習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