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여행 - 8) 또 하나의 비경 황석채 오지봉과 적성대 -
2018/4/26
-> 15:30 천하제일교
-> 15:40 버스 -> 16:05 양가계(케이블) -> 16:30 버스 -> 16:50 도보코스(원숭이)
-> 17:00 버스 -> 17:10 황석채 케이블카 -> 17:20 오지봉 -> 17:40 적성대
-> 17:50 케이블카 -> 18:00금편계곡(원숭이) -> 18:20버스
-> 19:00 석식(삼겹살) -> 20:00 숙소(WULINGYUAN, 무릉원빈관, 귀빈루)
8_1) 양가계(楊家界)에서
천생교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순환버스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는 도중
늘어선 상점가를 지나는데 군밤 장수들이 집요하게 쫓아온다.
작은 키, 까마잡잡한 아주머니들이다.
용모를 보건데 토가족 시골 아낙들 같은데 걸음을 걸을 때마다
5천원에 2봉지가, 3봉지, 4봉지, 5봉지로 계속 늘어난다.
마음씨 고운 아내는 뿌리치지 못하고 사서 일행에게 나눠준다.
언뜻 보니 대나무 가마가 있다.
가마꾼들은 졸고 있는데 타고가는 사람은 목격하지 못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장가계 유람하려는 효자들에게 안성맞춤일 듯.
하지만 가마 타는 비용은 꽤 비싸다는 귀띔. (5-10만원, 흥정 필요.)
양가계에는 양가장 장군 산채 등이 있다는데
일정상 가 보지 못하고 케이블카에서 경치만 내려다 봄.
(원래 천자산 탐방대신 양가계로 변경한 건데 아쉬움)
오룡채(乌龙寨), 천파부(天波府), 일보등천(一步登天)등은 어디 있는지
설명도 없고, 저 아래 어디 쯤이겠거니 상상을 해 본다.
그러고보니 케이블카 아래 산정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그렇게 원숭이 떼가 걷는 사람들을 따라 다니며
호시탐탐 가방을 노리는 끝없이 이어진 계단의 내림길을
도보로 20여분 내려와 황석채로 향하는 순환버스에 오름.
8-2) 황석채(黄石寨)의 비경(오지봉, 적성대)
부상황석채(不上黃石寨)
왕도장가계(枉到張家界)
“황석채에 오르지 않으면 장가계에 왔다고 말하지 말라”라고 할 정도로
원가계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황석채 오르는 케이블카 옆으로
휙휙 대나무 스치듯 지나는 수많은 봉우리들을 보니
장량의 스승 황석도인이 수직의 기암, 기봉들 사이로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날아다니는 것 같다.
- 황석공(黃石公)과 안중근의 조금 유관한 사연 -
20대에 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32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안중근 의사의
“孤莫孤於自恃”
(외로움은 스스로를 믿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란 묵서(墨書)를 여순감옥에서 일본인 간수에게 써 주었기 때문이다.
케이블에서 내려 편백나무가 도열한 내림길을 따라가니
다섯 손가락을 닮았다는 오지봉인데
내 눈엔 여섯 손가락으로 보여 “육손이봉”으로 개명하여 본다.
하늘이 가까워 별을 딸 수 있는 곳이라는
적성대에 오르니 원가계 미혼대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진정 적성대의 아름다움을 보려면 밤에 와 봐야 할텐데
낮에 보아도 천하절경이다.
이런 절경을 두고 시 한수 읊지 않을 수 있으랴!
봉봉 죽죽(峯峯 竹竹)
운운 편편(雲雲 片片)
심심 유유(心心 流流)
산, 물, 돌, 구름, 숲, 동물의 여섯 가지가 기이하다는
육기각(六奇閣)에 오르면 둘러보는 사방의 경치가 좋다하여
찾아보려 했으나 시간이 늦어서 폐관했는지 문이 잠겨 있다.
편백 숲의 야생화를 보며 다시 케이블카로 하산.(18:00)
8_3) 금편계(金鞭溪)
사실 원가계, 삭계구까지 길게 이어지는
7.5km의 금편계가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오늘 새벽부터의 장거리 일정으로 일행도 피곤, 가이드도 피곤
금편계의 초입에서만 원숭이들과 놀다가,
경치를 보며 휴식을 취하다가, 사진놀이 하다가
버스를 타고 무릉원구 식당으로 이동(삼겹살 정식).
8_4) 제2일 마감
침대에 누워서 하루를 생각해 본다.
04시 30기상하여 07시 숙소 출발
20시 숙소에 돌아와 22시 잠들기까지 버스, 엘리베이터,
모노레일, 케이블카를 3번이나 번갈아 오르내리면서
십리화랑, 백룡엘베, 미혼대, 천생교, 양가계, 황석채,
오지봉, 적성대, 금편계까지의 여정과 경치가 주마등이다.
그래도 내일(4/27)의 남북정상 뉴스가 궁금하여
TV를 켜니 “韓朝逢會”란 자막이 온통 “朝韓逢會”로 바뀌어 뜬다.
그래서 지나는 작은 나라일 수밖에 없는 건가?
神은 왜 그런 작은 나라에 장가계란 이런 만고에 없는
천하절경을 선사하였단 말인가?
침대에 누워 머리 속에 지도를 그리며
오늘 간 여정을 더듬다 보니 잠이 들었다.
배달9215/개천5916/단기4351/서기2018/04/26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 양가계의 대나무 가마
2) 양가계 케이블카(저 쯤 어디에 오룡채, 천연 장성, 천파부, 일보등천이?)
2-1) 양가계 하첨으로 거의 내려오니 농부들이 계단식 밭에 경작하는 모습이 보이고
전답 여기저기 화려하게 장식한 토가족 전통묘지들이 보였다.
3) 양가계 삭도 승차장으로 내려와 순환버스로 저 건물을 한바퀴 돌아서...
4) 도착한 도보 내림길에 보이는 원숭이(원승이 천국)
5) 양가계에서 황석채로 가는 알림도
6) 황석도인의 터전 황석채를 보니 안중근의 묵서가 생각남
7) 황석채로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8) 육기각 아래 편백나무 숲길을 지나...
9) 야생화원을 따라 내려가...
10) 도착한 오지봉(잘 세어보니 육지봉, 육손이봉)
11) 미혼대 보다도 아름답다는 황석채 오지봉 파노라마
14) 적성대에 오르는 계단에 올라서면
15) 이런 산수화 병풍이 펼쳐진다.
16) 육기각(山寄 水奇 雲奇 石奇 動物奇 植物奇)은 문닫아 미관람
17) 다시 편백길을 거쳐 케이블카로 내려와...
18) 금편계곡으로 내려옴.
19) 이제 금편계곡 입구로...
20) 여기도 원숭이 세상
21) 다 가보지 못한 금편계
22) 금편계의 편안한 모습
23) 22시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오늘 간 길들을 다시 더듬으며 잠들다.
■ 양가계(楊家界)
삼림 공원 입구에서 양자제쒀다오(杨家界索道)행 셔틀버스를 타고
룽펑옌샤(龙凤庵下) 정류장 하차, 룽펑옌상(龙凤庵上) 정류장으로
10분 정도 도보 이동하여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케이블카 탑승장에서 하차.
가장 늦게 개발되어서 호젓한 분위기가 남아 있다. 원가계와 톈쯔 산에서
북적이는 인파에 지쳤다면 이곳에서 한숨 돌릴 수 있다.
다른 풍경구의 봉우리들이 야구 방망이처럼 둥그스름한 반면,
양가계는 마름모와 부채꼴 등 다양하고 거친 매력의 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2014년에 케이블카를 설치해서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안전을 위한 잔도와 난간이
잘 설치되어 있지만, 좁고 경사진 길이 많아서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에는
추천하지 않으며, 어른들도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삭도를 타고 내려오며 보니 발 아래 천연장성으로 부터 내려가는 길이 보였는데 삭도를
타지 말고 걸어내려가면서 양가계 명소를 보아야 양가계에 왔다고 할 것임을 알겠다.)
양가계는 원가계와 천자산 중간 지대에 위치한 비경지로
북송시대 때 양씨성의 장군이 산적을 토벌하러와서 이곳에 진영을 구축했는데
전투가 길어지자 양씨 가문이 여기서 자손을 낳게 되고
후손들이 번성하게 되어 촌락을 이루자 1,000년이 넘도록 살게되어
여기를 양가계로 했다고 한다. 양가계에는 양천봉을 비롯해
8개의 웅장한 석봉(石峰)이 있는데 양씨 가문의 8명 장군을 상징한다.
■ 황석채(黄石寨)
황석채는 한나래 때 재상 장량(張良)의 스승인
황석공(黃石公)이 도를 닦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황석도인이 계시던 곳으로 일명 "황사채" 라고도 불리우는데
이는 석양이 바위를 비출 때 노란 사자가 앉아 있는 것 같다하여 생겨난 이름이란다.
웅대한 산세와 기이한 봉우리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그 광경을 보기 위해서는 해발 1,080m 위의 높고 탁 트인 전망대까지 걸어서 오르는 데는
2시간 30분이 걸리는데, 대부분의 여행자는 계단 대신에 케이블카 왕복을 선택한다.
황석채는 한고조인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일으킨
유명한 전략가 자방 장량과 얽힌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한신대장군과 함께 유방을 도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유방은
평소 부하들을 잘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하는데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자 유방은 한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어 그를 죽이게 된다.
이를 알아 챈 한신은 그의 친구이자 라이벌 이었던 장량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바로 유명한 토사구팽(兎死狗烹)이었다고 한다.
토끼사냥이 끝나면 토끼사냥을 도와주었던 사냥개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다.
한신이 보내온 편지의 뜻을 알아챈 장량은 모든 관직을 버리고 떠난다.
전국을 떠돌던 장량이 장가계의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어 이곳에 머물게 되는데
문자도 없고 성도 없이 살아가던 장가계의 원주민인 토가족들에게
장량은 문자를 가르치고 성을 내려주는데 토가족들은 장량의 지혜와 인복에 감복되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장량의 성을 이어받아 장씨가 되었고 장씨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하여
그 후로 이곳이 장가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장량이 죽은 후 유방으로부터
그의 시신이 손상될까봐 많은 무덤을 이곳저곳에 만들었는데
아직까지 정확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곳이 황석채로 불리게 된 배경은 이곳에 은거하며 도를 닦던 장량이
어느 날 조난을 당하게 되자 그때 그의 스승인 황석공이 그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황석공은 이곳에 터를 잡고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사람들은
이곳을 황석이라 부르게 되었고 많은 산적들이 이곳에 산채를 새우고 산적 질을 하여
수많은 양민들을 괴롭히게 된다. 그때마다 관군들이 이들을 토벌하려 수차례 출병하였으나
한번도 성공하지 못하여 사람들은 이곳을 황석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평균 해발이 1,080m이며 육기각(六奇閣), 오지봉(五指峰), 전화원(前花园),
유군일좌(留君一坐), 후수점병(猴帅点兵) 등의 멋진 경치가 모여 있는 곳으로
특히 정상에 올라서면 기이한 봉우리와 바위들이 한 눈에 들어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五步称奇(오부칭기),다섯 발자국을 걸으면 신기하다고 하고
七步叫绝(칠부규절),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 경관에 절규를 하고
十步之外(십부지외), 열 발자국 밖을 걸으면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目瞪口呆(목징구태) - 경치에 반한다
라고 부르는 곳으로 장가계의 경관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곳이다.
또한 “부상황석채(不上黃石寨) 왕도장가계(枉到張家界)
- 황석채에 오르지 않으면 장가계에 왔다고 말하지 말라” 라고 새겨 놓을 만큼
장가계 안에서 웅장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고 아름답다.
풍경은 원가계와 전반적으로 비슷하며, 어떤 면에서는 원가계가 훨씬 아름답다.
황석채를 좀더 깊이 있게 구경하려면
황석채 케이블카 승강장 옆길로 올라간 뒤 금편계 입구로 내려오면 좋다.
또한 황석채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므로 편하게 이용할 수도 있는데
케이블카는 1995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7년 7월에 완공하였으며
길이는 973m 이고 높이는 430m이다. 절벽과 절벽사이를 휘감아 돌며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기암괴봉들의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과연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시원한 쾌감과 함께 짜릿함을 선사해준다.
황석채 케이블카에서 내려 맨 처음 오르는 전망대가
육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정자인 육기각인데 3층 전망대에 오르면 황석채 전경을
조망할 수 있어 확 트인 시야 속에 들어나는 비경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동쪽으로는 수요사문과 금편계곡 그리고 천자산이 바라보이며,
남쪽으로는 장가계 시내와 천문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조천관, 용봉암, 옥황궁을 조망할 수 있다.
육기라는 이름은 이곳에 오르면 여섯 가지의 기이한 것
(하늘, 산, 물, 구름, 바위, 나무,)을 모두 볼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정상 주변을 빙 돌며 육기각 ~ 오지봉 ~ 적성대 ~ 남천주등을 구경할 수 있다.
■ <고막고어자시 (孤莫孤於自恃)>
안중근 安重根(1879~1910),
비단에 먹, 39.8×75.3 cm, 1910년 2월, 보물 569-16, 개인소장
孤莫孤於自恃
庚戌二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외로움은 스스로를 믿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1910년 2월 여순 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황석공(黃石公)『소서(素書)』제4장 본덕종도(本德宗道)에 나오는 말이다.
바로 앞 구절은 “어두운 것은 욕심내고 인색함보다 愚昧한 것이 없고
[幽莫幽於貪鄙]”이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믿으면
상대와의 관계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외롭게 된다는 뜻이다. (제공/국립대구박물관)
<黃石公 素書> 황석공 소서
絶嗜禁欲은 所以除累오. (절기금욕 소이제누)
즐기는 것을 끊고 욕심을 금하는 것은 더럽혀짐을 막으려는 것이오,
高行微言은 所以修身이오 (고행미언 소이수신)
행동을 고결하게 하고 말을 적게 하는 것은 몸을 닦으려는 것이오
沈計遠濾는 所以不窮이오 (심계원려 소이불궁)
계획을 깊게 하고 생각을 멀리함은 막힘이 없으려는 것이오
親仁友直은 所以枎顫이오 (친인우직 소이부전)
어진이를 친하고 곧은 이를 벗함은 넘어지지 않게 붙들려는 것이오
近恕篤行은 所以椄人이오 (근서독행 소이접인)
용서함을 가까이하고 행실을 돈독히 함은 사람을 사귀려는 것이오
癉惡斥讒은 所以止亂이오 (단악척참 소이지란)
악한 것에는 성내고 참소하는 것을 물리침은 어지러움을 그치게 하려는 것이오
先湀後度은 所以應卒이오 (선규후탁 소이응졸)
먼저 헤아리고 나중에 자로 재는 것은 갑작스러운 일에도 대응하려는 것이오
括囊順會는 所以無咎오 (괄낭순회 소이무구)
입을 다물고(주머니를 묶고) 공론에 순응하는 것은 허물이 없으려는 것이오
橛橛梗梗은 所以立功이오 (궐궐경경 소이입공)
흔들림과 굽힘이 없이 의연함을 유지하는 것은 공을 이루려는 것이오
苦莫苦於多願하고 (고막고어다원)
괴로움은 많이 원하는 것보다 더 괴로움이 없고,
病莫病於無常하고, 短寞短於苟得하고 (병막병어무상 단막단어구득)
나쁨은 행위에 일정한 기준이 없는 것보다 더 나쁨이 없고,
(안목이) 짦음은 구차하게 얻으려는 것 보다 더 짧음이 없고,
幽寞幽於貪鄙하고, 孤寞孤於自恃하고 (유막유어탐비 고막고어자시)
어두움은 비열하게 탐하는 것보다 더 어두움이 없고,
외로움은 자신만을 믿는 것보다 더 외로움이 없고,
以明示下者는 闇하고, 有過不知者는 敝하고 (이명시하자암 유과부지자폐)
밝음만으로 아래 사람을 살피는(평가하는) 자는 어둡게 되고,
허물이 있으면서 깨닫지 못하는 자는 무너지게 되고,
迷而不返者는 惑하고, 以言取怨者는 禍하고 (미이불반자혹 이원취원자화)
길을 잘못 들었으되 돌아서지 않는 자는 미혹하게 되고,
말로써 원망을 사는 자는 화를 입게 되고,
令與心乖者는 廢하고, 後令謬前者는 毁하고 (령여심괴자폐 후령류전자훼)
명령이 마음속과 다르게 내려지면 행해지지 않게 되고,
뒤의 명령이 전의 명령과 어긋나게 내려지면 (권위가) 무너지게 되고,
怒而無威者는 犯하고, 好直辱人者는 殃하고 (노이무위자범 호직욕인자앙 )
성을 내되 위엄이 없는 자는 (권위가) 침범 당하게 되고
곧은 것만을 좋아하여 남을 욕되게 하는 자는 재앙을 입게 되고,
戮辱所任者는 危하고, 慢其所敬者는 凶하고 (륙욕소임자위 만기소경자흉)
맡은 바 임무를 욕하고 비난하는 자는 위태롭게 되고
마땅히 존경해야할 바를 태만히 하는 자는 화를 입게 되고,
貌合心離者는 孤하고, 親讒遠忠者는 亡하고 (모합심리자고 친참원충자망)
겉으로는 영합하면서, 속마음이 다른 자는 외롭게 되고,
참소하는 자를 친하고 충성된 자를 멀리 하는 자는 망하게 되고,
凌下取勝者는 侵하고 (능하취승자침)
아랫사람을 업신여기며 이기려는 자는 침범 당하게 되고
名不勝實者는 耗하고, 略己而責人者는 不治하고 (명불승실자모 약기이책인자불치)
명성이 실제보다 과장된 자는(명성과 사람이) 소모되고
자기 잘못은 소홀히 하고 남 잘못만 꾸짖는 자는 다스릴 수 없게 되고, ,
自厚而薄人者는 棄하고, (자후이박인자기)
자신에게는 후하면서 남에게는 박하게 하는 자는 버림을 받게 되고
行常悋色者는 沮하고, 多許小與者는 怨하고 (행상인색자저 다허소여자원)
상을행하되 인색한 자는 일이 그치게되고, 많이 허락하고 적게 주는 자는 원망을 사게되고,
薄施厚望者는 不報하고 (박시후망자불보)
적게 베풀고 후하게 바라는 자는 보답 받지 못하게 되고,
貴而忘賤者는 不久하고, 念舊怨而棄新功者는 凶하고 (귀이망천자불구 염구원이기신공자흉)
귀해졌다고 천했을 때를 잊는 자는 오래가지 못하게 되고,
옛 원한을 마음에 담고 새로운 공을 무시하는 자는 화를 입게 되고
厚斂薄施者는 凋하고, (후렴박시자조)
많이 거두고 엷게 베푸는 자는 쇠퇴하게 되고
聞善忽略하며 記過不忘者는 暴하고 (문선홀략 기과불망자폭)
착한 일을 들으며 소홀히 하고, 허물을 기억하며 잊지 않는 자는 포악하게 되고,
牧人以德者 集하고 縄人以刑者 散하고 (목인이덕자집 승인이형자산)
덕으로 사람을 기르면 모여들게 되고, 형벌로 사람을 얽어매면 흩어지게 되고,
小怨不赦면 則大怨必生하고 (소원불사 즉대원필생)
작은 원망을 용서하지 않으면 큰 원망이 반드시 생겨나게 되고,
怨在不赦小過하고, 福在積善하고 禍在積惡하며 (원재불사소과 복재적선 화재적악)
원망은 작은 허물을 용서하지 않는 데서 생기고,
복은 선을 쌓는 데서 생기고 화는 악을 쌓는 데서 생기며,
富在迎來하고 貧在棄時니라 (부재영래 빈재기시)
부는 오는 것을 맞아들이는 데서 생기고,
가난은 그 시기(일할 시기)를 놓치는 데서 생기느니라,
地薄者는 大物不産하고, 水淺者는 大魚不遊하며 (지박자대물불산 수천자대어불유)
땅이 척박하면 큰 물자가 생산되지 않고, 물이 얕으면 큰 고기가 놀지 않으며,
樹禿者는 大禽不棲하고, 林疎者는 大獸不居하며 (수독자대금불서 임소자대수불거)
나무가 잎이 적으면 큰 새가 깃들지 않고, 숲이 성글면 큰 짐승이 살지 않으며,
山峭者는 崩하고, 擇滿者는 溢하며 (산초자붕 택만자일)
산이 가파르면 무너지고, 못이 가득 차면 넘치며,
羊質虎皮者는 辱하며 (양질호피자욕)
양의 몸에 호랑이 가죽을 쓴 자는 욕을 당하게 되며,
畏危者 安하며 畏亡者 存하나니 (외위자안 외망자존)
위태함을 두려워하는 자는 편안하며 멸망을 두려워하는 자는 보존하게 되나니
無遠慮者는 有近優니라 (무원려자 유근우)
멀리 내다보는 생각이 없으면 가까워져서야 근심이 생길 것이니라
釋己而敎人者는 逆하고, 正己而化人者는 順이니라 (석기이교인자역 정기이화인자순)
자기를 꾸미면서 남을 가르치는 자는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고,
자기를 바르게 하면서 남을 교화하는 자는 이치에 따르는 것이니라
■ 금편계(金鞭溪)
금편계곡은 장가계 삼림공원의 동부에 위치해 있고,
금편이라는 이름은 금편암을 지나서 흐른다는 데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서쪽으로는
비파계로 모여들고, 동쪽으로는 삭계로 들어가는 한줄기의 깊고 요한 협곡이다.
뱀처럼 꼬불꼬불하게 늘어서 있는 돌길은 전체 길이가 7.5KM로,
통과하는 데에 약 2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른 아침 금편계곡을 따라
2시간여 걷는 산책길은 가히 무릉도원을 느끼게 한다.
금편 대협곡이라고도 한다. 삼림 공원 입구에서 ‘수요사문(水绕四门)’까지
길 양쪽으로 기이한 봉우리들이 이어지며 무척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천리상회(千里相会)’, 낙타를 닮은 ‘낙타봉(骆驼峰)’이 특히 유명하다.
부부암, 묘자채, 문성암(로신 소설가), 쌍구탐계(거북이 두 마리가 시냇물을 바라봄),
화과산(손오공 탄생), 천리만남 (남녀 형상화), 중환수(헤어져 다시만남)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장가계삼림공원 입구에서 바라보면
두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부부암(夫妻岩)이라고 불린다. 하나는 남자 모양이고
다른 하나는 여자 모양으로 서로 몸을 기대고 있으며 눈, 코, 머리카락, 입술 등이
똑똑하게 구분된다. 입구에서 관광객을 환영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전해지고 있다.
옆에 천여 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고,
수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서 공기가 상쾌하며 한적하다.
금편계곡을 따라 걷다가 쭉 올라가면 원가계로 이어집니다.
산책로를 따라 봄이면 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무성한 잎을 드리운 나무들이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무엇보다 계곡의 청아한 물소리에 마음의 때가
씻겨 내려간 것처럼 상쾌해서 걷기 좋다. 걷다가 힘들면 가마를 이용할 수도 있는데,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면 금액을 확실히 정하고 출발하자.
나무 그늘이 많아서 미끄러운 구간이 있으니 주의할 것.
중간에 지나는 원숭이 숲(猴子林)에는 실제로 원숭이가 무척 많다.
간식이나 물건을 빼앗기지 않도록 유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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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is Alexiou - Patoma (비가 내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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