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여행 - 10) 아찔한 유리잔도와 1귀곡잔도 그리고 천문산사 - (Love Player 사랑의 기도 / T,S Nam)
이름없는풀뿌리2018. 5. 14. 22:22
장가계 여행 - 10) 아찔한 유리잔도와 1귀곡잔도 그리고 천문산사 -
2018/4/27
-> 13:20 ∼ 14:20 장가계시 이동 -> 14:25 케이블카 탑승(7.5km)
-> 14:50 천문산 상첨장 도착 -> 15:10 유리잔도 -> 15:10 제1귀곡잔도(서측)
-> 15:50 천문산사
10_1) 천문산 유람 개요
하첨장에서 세계 최장 케이블카로 해발1,277m 상첨장 도착 ->
서측 유리잔도(60m) -> 제1귀곡잔도(1.6km) -> 천문산 색교 ->
천문산사 관람 -> (여기서 리프트로 천문동개 쪽으로 가기도,
우리는 동측으로 한 바퀴 돌기로 함) -> 동측 제2귀곡잔도(km) ->
정상(해발 1518.6m)조망처 -> 에스컬레이터로 -> 천문동개 광장 ->
-> 버스로 99통천대로로 하산 -> 장가계 석식 -> 다시 버스로
천문산 중턱의 천문호선 공연장으로 가는 일정이다.
10_2) 유리잔도에서
상첨장에서 내린 광장은 인산인해,
우리는 지체 없이 유리잔도 입구로 갔다.
유리잔도는 해발1,400미터 높이의 절벽을 따라
캔티레버형으로 낸 판룽야(盤龍崖) 유리잔도.
길이100m, 폭1.6m로 2016.8.1 개통되었다니 얼마되지 않았다.
미끄럼 방지와 유리면의 긁힘과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덧신을 신고
1장당 1톤의 하중을 탑재할 수 있는 투명강화유리를 이어붙인
60여m 길을 걷는 코스인데 발밑이 아찔해 진땀이 난다.
천애(天涯)의 절벽(絶壁)이란 말이 바로 여기를 두고
한 말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오금이 저린다.
잔도는 절벽에 건설할 수 있는 지나 전통기술이라는데
유리잔도는 강화유리로 한 장 한 장 이어 붙인 것이다.
- 여기서 이런 길을 낸 기술에 대하여 생각.
스위스 융프라우 협괘열차를 타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99통천대로, 최장 케이블카, 절벽잔도를 보고는 그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
엄청난 위험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건설할 수 있었을까?
결론은 공산주의 국가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란 생각.
10_3) 제1귀곡잔도에서
유리 잔도를 건너니 이번엔
귀신도 곡소리를 내며 걸을 정도로 무서운 길이라는
1.6km의 길을 가야 하는 귀곡잔도이다.
천길 절벽의 잔도는 기계 공구를 사용하지 않고 인력으로만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2008년 완공되었는데
떠도는 말로는 200여명의 토가족 기술자가 목숨을 잃었다고도 하고
사형수들을 동원했다고도 한다.(믿거나 말거나...)
천문산 색교에 도달하니
전통의상을 입은 토가족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며 반겨준다.
머리위로는 고달픈 사람들을 위해 천문산사 쪽에서
곧장 천문동개 쪽으로 가는 리프트가 날아가고 있다.
그저 평탄한 길 양편으로 눈길을 주니
우리와는 다른 야생화들이 즐비하여 눈길을 끈다.
10_4) 천문산사에서
천문선사는 해발 1518.6 m 천문산에 위치한 사찰로
원래 "영천원(零泉院)이란 이름으로 870년 당나라 때 지어진 절이나
청나라에 와서 개축하여 "천문산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소실된 사찰을 1999년 청나라 건축구조로
개축된 것으로 역사적 의미는 적단다.
다만 사찰 입구에 "천문선사"라는 현패가 걸렸을 만큼
높은 산기슭에 종종 구름이 쌓여있는 고아한 모습으로 유명하단다.
일반인이 출입이 안 되는 요사채에라도 있는지
정작 주인인 스님들이 어디에 계시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드넓은 절간 마당은 정갈하기가 이를 데 없고
우리의 종루는 단층인데 2층구조로 되어있고
우리의 대웅전(大雄殿) 격인 “覺海慈航”殿은 현판이 3개일 정도로
가람배치 전체가 지나(支那)답게 웅장하기가 이를 데 없다.
부처님의 평안한 모습은 우리의 절간에 있는 부처님과 똑 같아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의 흐름이 체감된다.
그런데 우리의 절간에 가면 반드시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뒤편에 산신각, 삼성각이 있는데 여기에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부처님의 용안, 종루, 사천왕등 비슷한데 어디에도 대웅전이 없다.
가람의 주전(主殿)을 왜 우리나라에서만 대웅전(大雄殿)이라 할까?
또한 우리나라에만 절간에 가면 뒤편에 왜 꼭 삼성각(三聖閣)이 있을까?
간과하기 쉽지만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알고 싶으신 분은
본 블로그 하단에 “댓글” 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배달9215/개천5916/단기4351/서기2018/04/27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 유리잔도로 가는 문
2) 하첨장에서 세계 최장 케이블카로 해발1,277m 상첨장 도착 ->
서측 유리잔도(60m) -> 제1귀곡잔도(1.6km) -> 천문산 색교 ->
천문산사 관람 -> (여기서 리프트로 천문동개 쪽으로 가기도,
우리는 동측으로 한 바퀴 돌기로 함) -> 동측 제2귀곡잔도(km) ->
정상(해발 1518.6m)조망처 -> 에스컬레이터로 -> 천문동개 광장 ->
-> 버스로 99통천대로로 하산 -> 장가계 석식 -> 다시 버스로
천문산 중턱의 천문호선 공연장으로 가는 일정이다.
3) 유리잔도변 야생화
4) 잔도의 서곡
4_1) 중국 장가계 천문산에 위치한 판룽야(盤龍崖) 유리 다리. 2016년 절벽 위에
지어져서 현재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총 길이는 100m로
다리의 폭은 1.6m다.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가파른 낭떠러지가 아래로 훤히
보인다.(2018/7/7 파이낸셜뉴스 "세계에서 가장 아찔한 다리 톱5"中)
5) 미끄럼 방지와 유리면의 긁힘과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덧신을 신어야...
6) 유리 1장당 1톤의 하중을 견딜 수 있으니 안심하라는데...
7) 저렇게 많은 사람이 끝없이 부담을 주면 위험하지 않을까?
8) 60여m의 유리잔도가 끝나고 귀곡잔도로 내려가는 지점
9) 지나(支那)의 이런 잔도 기술자는 2배의 보수를 받고 한다는데...
10) 이 잔도를 건설하는데에도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데 이 길을 가는
자체가 그 분들에게 죄송하고 너무 호사가 아난가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11) 잔도 옆의 앵초, 제비꽃 비슷한 야생화
12) 귀곡잔도 끝나는 지점의 휴식처에서 노래하는 토가족
13) 천문산사까지 걷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리프트가 바로 상공 위로...
14) 지나온 귀곡잔도가 절벽에 걸려있는 천애의 천자산 절벽
15) 운몽선정(雲夢仙亭, 천문산 주변의 16개 봉(峰)과 무릉원의 경치,
장가계 시내를 모두 볼수 있는 천문산 정상부에 있는 정자)
16) 천문산 색교의 한국어가 있는 안내도(많이들 찿으시나 보죠?)
17) 벌깨덩굴, 풀솜대, 기타 이름모를 야생화와 눈맞춤하며 가다보니...
18) 어느덧 멀리 숲 사이로 “천문산사”가 보이고...
19) “天門山寺”란 대문으로 들어갔다.
20) 그 문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
21) “天王殿”
22) 2층 구조의 “鐘樓”
23) (先山佛緣 覺海慈航 三男導師) 主殿(우리의 大雄殿)
慈航 : 자비심을 싣고 가는 배, 자비의 배로 중생을 제도함.
각해자항(覺海慈航) : 중생을 제도하여 깨달음의 바다로 건네주는 부처의 자비
그런데 우리의 절간에 가면 반드시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뒤편에 산신각, 삼성각이 있는데 여기에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부처님의 용안, 종루, 사천왕등 비슷한데 어디에도 대웅전이 없다.
가람의 주전(主殿)을 왜 우리나라에서만 대웅전(大雄殿)이라 할까?
또한 우리나라에만 절간에 가면 뒤편에 왜 꼭 삼성각(三聖閣)이 있을까?
간과하기 쉽지만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알고 싶으신 분은
본 블로그 하단에 “댓글” 주시면 답변 드리겠습니다.
24) “觀音閣”(觀音 : 자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한다는 보살)
25) 부처님 용모는 우리와 너무도 같아서 동질감이 느껴짐.
26) 전각들을 다 보지 못하고 시간에 쫏겨 돌아 나오니...
27) 출구의 사천왕이 좋은 일 많이 하라고 하신다.
28) 사파세계를 내려다 보는 山門 앞
29) 山門 밖 토가족 의상 가계가 너무나 정갈하여 폰카에 담다.
■ 포대화상(布袋和尙)
포대화상은 우리 말로 표현하면 "복스님"이고
영어로는 "해피 붓다(Happy Buddba)라고 할 수 있다.
스님은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契此(계차)이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처럼 하고 다녔다.
화상이란 덕 높으신 스님을 일컫는 말이고 포대는 자루이다.
쌀이나 밀가루 같은 것을 넣어두는 자루이다.
포대스님은 늘 어깨에 자루를 메고 다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시장이나 부자집을 다니면서 여러가지 시물을 구걸 하였다
보시를 받아 가난하고 굶주린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구걸한 물품을 자루에서 꺼내어 나누어 주었다.
스님은 늘 자루 속에 중생들의 행복을 담아 가지고 다녔는데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먼저 아이들이 스님에게 매달리고 보챈다.
스님은 자루 속에서 아이들이 필요한 것을 꺼내어준다.
아이들은 스님을 좋아했으며 스님 역시 어린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였다.
스님이 정자 나무아래에 쉬고 있으면
아이들이 귀를 만지고 코를 만지고 배꼽을 손으로 후볐다.
스님은 아이들을 귀여워하며 웃을뿐 아이들을 멀리하지 않았다.
포대스님은 고독한 사람이었고 외로운 분이었다.
그는 이런 게송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一鉢千家飯 바릿대 하나들고 천 집에 밥을 빌며
孤身萬里遊 외로운 몸은 만리를 노닌다
靑目覩人小 나를 알아보는 이 별로 없음이여!
問路白雲頭 다만 떠도는 흰 구름에게 길을 묻노라.
彌勒眞彌勒 미륵 참 미륵이여!
分身千百億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
時時示市人 때때로 세상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나
市人自不識 세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我有一布袋 나에게 하나의 포대가 있으니
虛空無挂碍 허공에도 아무런 걸림이 없다.
展開遍宇宙[十方]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 하고
入時觀自在 오므려 들일 때도 자재로움을 보노라.
포대흠신(布袋欠伸, 김득신 작)
조선 후기의 화원인 김득신(金得臣, 1754~1824)이 그린 포대화상 그림.
소나무 밑에서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포대화상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린 작품이다. 당시에 유행하던 선종화의 양식과는 달리,
보는 이에게 웃음을 주는 파격을 더했다. 조선 후기 18세기 후반(추정),
종이에 채색, 22.8x27.2㎝,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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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Player 사랑의 기도 / T,S Nam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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