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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길8(광주향교길1 ⑥선법사마애불, 광주향교, 그대 머물면 / 유태광)

이름없는풀뿌리 2020. 11. 26. 08:29
요즈음 – 산성길8(광주향교길1 ⑥선법사마애불, 광주향교) – - 선법사마애불 - 溫祚의 전설 깃든 어용샘 곁에 두고 이승의 길을 찾아 佛心을 모아 새겨 千年여 歲月 지나도 求道중인 如來여! * 여래(Tathagata, 如來) 부처의 여러 칭호 가운데 하나이자 역사상 석가모니가 자신을 가리킬 때 가장 자주 사용. 가장 널리 채택되는 해석은 '그렇게(tathā 如) 간(gata 去) 이'라는 해석과 '그렇게(tathā 如) 도달한(āgata 來) 이'라는 해석이며, 양쪽 모두 역사상 석가모니가 과거 또는 미래에 깨달음 을 체험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내포. 후기 대승불교에서 여래는 모든 사람에게 내면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본질인 불성을 가리킴. 즉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진여(眞如)와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됨.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참된 상태로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궁극적 실재를 지칭하기도 한다. - 광주향교 - 동경주 달이 뜨면 마방은 부산했고 명륜당 들썩이도록 글소리 울렸다고 고목은 듣고 본대로 소곤소곤 말한다. 배달9217/개천5918/단기4353/서기2020/11/07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5) 선법사-광주향교-황골마을-동사지 (+50=383분(13:50-14:40), +3.1=15.2km) 선법사 유래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객산 아래 바위벽에 새겨진 태평2년銘 『太平二年 丁丑 七月九日 古石佛在如賜乙 重脩爲今上 皇帝萬歲願』 (太平 2년 정축 7월9일에 ‘如賜乙’에 있는 옛 석불을 임금이신 황제를 위해 중수하오니 황제여 만세하시기를 기원합니다)란 마애약사여래좌상이 불상이 만들어 진 것은 고려 초 5대 경종(景宗 : 太平은 경종의 연호) 때(997년)로 백성들이 임금을 황제라 칭하고 황제의 만세를 기원하여 세운 불상인 것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다른 마애불과 달리 이 불상은 규모는 작지만 조성된 시기와 만들게 된 동기 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불상의 조형미가 뛰어나 역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마애약사여래좌상 옆에는 온조왕이 마셨다하여 어용샘으로 부르고 있는 약수가 있어 한 잔 마셔보고 선법사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만 어디에고 사찰에 대한 기록은 없고 백제시대의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하기도 한다는데 그러나 지금은 선법사의 모든 것이 세월에 묻히고 역사는 흩어져 버려 신축한 극락보전과 삼성각이외 온전한 모습을 찾을 수 없는데 높은 계단 위의 극락보전이 오래전 가 보았던 덕유산 백련사 대웅전을 연상케 한다. 극락보전 계단 아래를 돌아 나오니 객산과 선법사 갈림목이 나오는데 광주 향교로 가는 서하남로인데 大路 옆에 깅릉막국수가 있어서 먹어보니 별미. 잠시 휴식 후 서하남로를 건너 드넓은 덕풍천 하류의 물결을 바라봄. 연금이능과 벌객샘능선에서 모아지는 모든 물들이 흘러들어 아리수까지 실어나르는 덕풍천이 제법 하천의 위용을 지녔다. 바로 덕풍천 옆에 자리한 광주 향교 공원. 향교(鄕校)는 각 지역에서 공자를 비롯한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보통교육을 담당하였던 국립학교였단다. 이곳에서 수학한 우수한 학생 중에 선발하여 고등교육 기관인 한양의 성균관으로 유학을 보냈던 것이다. 광주향교는 원래 고읍 서쪽(현 향여고개 아래로 짐작)에 있었는데 1703(숙종29)년에 이 곳에 있던 광주 읍치는 산성 안으로 이전하고 그 읍치가 소재했던 장소로 향교가 이전 했다는데 외삼문을 들어서서 유생의 숙소였던 동재와 서재를 바라보며 뒤꼍의 시종들 숙소인 수복사도 쳐다보고 전사청과 제기고터도 눈맞춤을 하고 강론을 하던 명륜당을 경건히 바라보다 내삼문을 지나 동무와 서무를 좌우에 거느린 대성전에 모셔진 儒祖를 생각하며 대성전 뒤편 오랜 연륜의 향나무도 바라보다 다시 한번 건물 하나하나에 인사드리고 4-500년된 광주향교 주변의 고목들은 이곳에 소재했던 읍치와 객사와 청풍루와 동경주, 휘달려가던 마방들의 역사를 알고 있겠다는 생각. 향교를 나와 전번 연금이 능선 종주시 덜미재에서 보았던 황골마을을 길찾기로 찾아갔으나 찾긴 찾았으되 현대식 주택단지만 자리했고 황금물결 넘실댔다던 들판은 보이지 않았고 궁안마을 이라는 지명이 살아있는 마을회관과 당산목 아래 대동제란 토주신께 지냈던 것으로 보이는 제단 발견. 그러나 이런 것들도 신도시 개발로 철거가 분명한데 제발 저런 지명, 유물이 유적공원을 만들어 보존되길 빌어본다. 다시 길찾기로 텃밭촌을 지나 구릉지의 길없는 산속을 헤치고 나오니 저 멀리 잘 생긴 탑들이 보이는 동사지인 듯 정갈한 2기의 탑파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배달9217/개천5918/단기4353/서기2020/11/07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1) 선법사 마애약사여래좌상, 선법사(12:45-12:55) 관람 2) 마애약사여래좌상 옆의 빈 암벽은? 가만히 바라보니 미래불인 미륵불의 모습이 보일 듯... 3) 태평2년銘으로 고려 경종2년(977)년 조성으로 이 곳 호족 왕규 가문과의 관련성 근거임. 4) 선법사의 구체적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어용샘 설화로 백제와의 연관성은 분명하고 후일 중창과 폐사 반복되다 고려 시대 부흥(극락보전, 삼성각은 최근 재건했다 함.) 5) 선법사입구(12:57, 선법사0.1k, 광주향교1.2k, 객산1.0k, 남한산성5.5k) 선법사에서 서하남로로 나와 강릉막국수 점심(13:15-13:35) 6) 서하남대로 교산교에서 바라 본 드넓은 덕풍천 7) 교산교를 건너 샘재입구사거리에서 고골로로 좌회전 하면 향교공원 8) 광주향교(13:35-13:50) 관람 숙종 29년(1703) 고읍 서쪽에서 이 곳으로 이전했다는데 원 위치는 향여고개 아래로 짐작 9) 향여고개 설명 10) 외삼문(外三門) 11) 명륜당(明倫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12) 수복사(守僕舍) 13) 내삼문(內三門) 14) 대성전(大成殿), 동무(東廡), 서무(西廡) 15) 광주 향교 주변의 400∼500년 된 고목들(향교관람 :13:35-13:50) 16) 전답의 황금빛은 볼 수 없고 주택들만 자리한 황골마을(14:00) 17) 궁안경로당, 춘궁동마을회관, 당산목 아래 제단(大同祭) 이름 하나 하나가 정겹다. 18) [선법사-광주향교-황골마을-동사지]까지의 길찾기 □ 선법사(善法寺) 경기도 하남시에 자리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 객산의 초입에 자리한 선법사는 풍경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맴도는 조용하고 그윽한 곳이다. 간혹 약수를 떠러 오는 사람들과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발자국 소리만 들려올 뿐 일체의 번잡함은 찾을 수 없다. 이러한 선법사에 대해 크게 알려진 것은 없다. 다만 선법사에는 태평2년(977, 고려경종2년) 명문이 새겨진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있어 최소한 그 이전부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그런가하면 이곳은 백제시대의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선법사의 모든 것이 세월에 묻히고 역사는 흩어져 버려 온전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작은 약수를 백제 온조왕이 마셨다하여 어용샘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이 역사를 잃은 선법사로서는 작은 위안이다. □ 선법사 마애약사여래좌상 질병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바위 남쪽면에 전체 높이 93㎝로 새겨져 있다. ‘태평 2년 정축 7월 29일’이라는 글을 통해 만든 시기가 고려 경종 2년(977)임을 알 수 있다.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고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 표현에서는 가지런함이 엿보인다. 손바닥을 위로 한 왼손에는 약그릇이 놓여져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가락을 위로 하고 있다. 몸 뒤편에 있는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계단식으로 새기고 있으며, 주위에는 불꽃무늬가 둘러져 있다. 대좌(臺座)는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모양의 하대석 위에 4개의 짧은 기둥으로 이루어진 중대석이 있으며, 그 위에 5잎의 활짝 핀 연꽃이 불신을 떠받치고 있다.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은 이 불상은 만들어진 연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어 고려 초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o o o 그대 머물면 / 유태광 o o o 마음 저린 이름을 떠 올리면 가슴은 또 이렇게 부릅니다 살다 보면 가슴에서 바람을 타고 높은 파도를 헤칠 때 붉은 눈시울로 들어서는 사람이 그대입니다 외로운 날도 몇 번은 잘 넘겼지만 가슴 뭉클한 날도 몇 번은 잘 넘겼지만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그댈 애써 밀어내던 날 내 안에 등불 하나 내걸고 그 불빛 때문에 가슴 저리며 눈물로 나를 잠들게 하는 그 그리움도 외로움도 그대입니다 외로운 날도 몇 번은 잘 넘겼지만 가슴 뭉클한 날도 몇 번은 잘 넘겼지만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그댈 애써 밀어내던 날 내 안에 등불 하나 내걸고 그 불빛 때문에 가슴 저리며 눈물로 나를 잠들게 하는 그 그리움도 외로움도 그대입니다 그 그리움도 외로움도 그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