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 외성길6(동림사지) –
벌봉을 내리쳐서 精氣 뺀 홍타이지
황산을 받쳐 들고 행궁을 내려 보며
꽝꽝꽝 홍이포 쏘아 아비규환 만들어
다시는 발 못 딛게 城 쌓은 승군들이
낮에는 사역하고 밤에는 예불 드리며
머물러 목을 축이며 호국의지 새긴 곳
무너진 성벽 틈에 야생화 뿌리내려
빈터에 울을 치고 일궈 논 텃밭 가에
그 날을 잊지 말자고 태극기가 펄럭여
배달9219/개천5920/단기4355/서기2022/04/28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외성길6(동림사지)(1) 계획
지난 번(4/11) 실패한 법화골의 봄꽃 능선
장딴지가 땡겨 용당허리에서 좌절한
그 여정을 밟아 보려 다시 나선 길.
(행궁-북장대-고골-성문사-벌봉-현절사) 약 10km 다시 계획
이번에는 만해기념관에서 수어장대로 오르기로 하고 나아가다
말로만 듣던 천주사터 발견.(지나치긴 했지만...)
다시 알현하는 新綠의 수어장대도 늠름.
(2) 용당허리 마룻길
진달래는 자취를 감추고 철쭉의 계절.
어느덧 연초록의 잎은 초록으로 변해가고 있다.
북장대에서 내려선 용당허리까지 철쭉 행렬.
고골, 법화골, 덕풍천의 합류점에서 성문사로 向.
성문사 비구니는 꽃밭 가꾸시느라 바쁘시고
아담한 대웅전이 벌봉을 등지고 있다.
벌봉 향하는 오름길에
키 큰 얀철쭉만 늘어서 있고 기대했던 들꽃은 全無.
(3) 동림사지
예상했던 대로 오름의 끝에 동림사지.
지금은 주민들의 텃밭으로 남은
허물어진 성벽 틈 위 절터에 올라서니
텃밭의 울타리 모서리에 깨끗한 태극깃발이 펄럭인다.
정기를 없애고자 홍타이지가 깨었다는 벌봉은 우회하고
남한산으로 가는 봉암성 여장 아래 봄꽃 관찰.
황산(黃傘)을 쓰고 행궁을 내려다 보았다는 망월봉이 바로 남한산 벌봉.
망월봉(벌봉)과 남격대(검단산 신남성)에서 행궁을 향하여
종일 홍이포를 쏘아 행궁 기둥이 명중되어 무너져 내렸다는데
조선으로서는 천자포로 대항하기도 했지만
射距離로나 위력이 비견할 바 못되는 미증유의 공포 그 자체였으리라.
동림사지에서 벌봉13암문, 봉암성14. 15암문을 돌아가는
봉암성에 가득했던 금붓꽃은 자취를 감추고
각시붓꽃은 아직 滿開상태 유지.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나지만 귀한 금붓꽃이 먼저 지는 듯...
대신 여기저기 작고 앙증맞은
큰구슬붕이가 진주알처럼 흩어져 있다.
12암문에서 봉암성을 나와 3암문을 통해 본성에 들어와
동장대지에서 봉암성을 내려다 보다 휴식 후 현절사 방면 하산.
(행궁-수어장대-서문-연주봉-북장대-용당허리-성문사-동림사-봉암성-현절사-종로)10km
배달9219/개천5920/단기4355/서기2022/04/28 이름없는풀뿌리 라강하
1) 행궁(08:50)
2) 천주사지(天柱寺址, 09:15), 정조 남한산성 순행시(정조 3년(1779년) 8월 7일 실록)
『임금이 남한(南漢)에 있었다. 서장대(西將臺)에 나아가 성조(城操)를 행하였는데
---중략--- 여(輿)를 타고 서장대를 나가 서성(西城)에 이르러 주필(駐蹕)하여 성
안팎을 둘러보고 임금이 말하기를, "천주봉(天柱峰) 아래 숲 사이에 은은히 나타나
는 누각은 천주사(天柱寺)인가?"하매, 승지(承旨) 서유방(徐有防)이 말하기를, "그렇
습니다."하였다. 임금이 성 밖 산골짜기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곳은 조금 낮기는
하나 사면의 언덕 기슭이 험준하니, 이 성의 요해라 할 수 있다."하였다.---하략---』
3) 제6암문(천주사암문, 09:20)
4) 언제 보아도 우람한 서장대(09:25)
5) 제5암문(연주봉암문)근처의 속단 새싹(09:45)
6) 북장대지 앞 고골 갈래길(10:00)
7) 용당허리까지 내림길은 얀철쭉 터널
8) 아담한 성문사 대웅전(11:05)
9) 벌봉 가는 길가의 줄딸기(11:15)
10) 예상했던 대로 도달한 무너진 봉암성의 동림사지
11) 올라온 방향을 카르키는 이정표
12) 꽤 큰 사찰이었던 동림사지
13) 동림사터(東林寺址)
남한산성의 축성과 관련된 사찰은 모두 10개가 있는데 이 중 국청사등 8개 사찰은
본성 내에, 영원사는 한봉성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동림사는 숙종 12년(1686년) 봉암
외성을 신축할 때 봉암 외성의 수비를 위하여 창건된 것으로 원성 내에 있는 8개의
사찰에 비해 62년 정도 늦게 지어졌다. 남한산성 내에 있는 10개의 사찰중 가장 해발
고도가 높은 곳으로서 봉암 서쪽에 의지하였다. 현재 우물과 맷돌 한 짝이 남아 옛
절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14) 우물근처의 이정목(벌봉 0.2km, 한봉1.2km, 상사창동2.5km, 동문1.8km)
14) 옥정사지, 남단사지에서도 보았던 우물 근처의 맷돌
15) 동림사지 우물 원경
16) 마르지 않는다는 동림사지 우물
17) 동림사 승려들의 호국의지를 기리는 태극기
18) 망월봉(남한산 벌봉, 552m)에서 홍타이지가 청량산(498m) 행궁을 내려다 보았다 함.
『청나라 한이 탄천에 진을 쳤다고 하다. 청나라 한(汗)이 모든 군사를 모아 탄천(炭川)
에 진을 쳤는데 30만 명이라고 하였다. 황산(黃傘)을 펴고 성의 동쪽 망월봉(望月峯)
에 올라 성 안을 내려다 보았다.』 (虜汗合諸軍, 結陣于炭川, 號三十萬, 張黃傘, 登城東
望月峯, 俯瞰城中。 조선왕조실록1637년 1월 1일)
19) 동림사지에서 올라선 봉암성은 각시붓꽃 천국(12:20)
20) 동림사지에서 올라선 봉암성의 금붓꽃은 대부분 사라졌다(12:35)
21) 동림사지에서 올라선 봉암성 곳곳은 구슬붕이 천국(12:35)
22) 봉암성 15암문 근처의 덩굴봄맞이(12:45)
23) 봉암성 15암문 근처의 족두리풀(12:45)
24) 동장대지(13:10)
25) 현절사(13:30)
26) 오늘의 여정(행궁->만해기념관->수어장대->서문->연주봉->북장대->연리목->토성->
용당허리->성문사->진달래숲->동림사지->봉암성->동장대->현절사->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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