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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문화유산(426)/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고고 유적

이름없는풀뿌리 2018. 4. 9. 13:01

세계문화유산(426)/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고고 유적(Archaeological Site of Atapuerca; 2000)

 

 

 

 

 

 

 

 

 

 

 

 

 

 

 

 

 

 

 

 

 

 

 

 

 

 

 

 

 

 

 

 

  시에라 데 아타푸에르카(Sierra de Atapuerca)의 동굴군(群)에서 약 100만 년 전부터 기원전후까지 거주했던 유럽의 초기 인류에 관한 화석이 풍부하게 발견되었다. 이 동굴군은 매우 특별한 자료의 보고(寶庫)이다. 이곳 동굴과 화석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를 통해 인류 조상의 생김새와 생활상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시에라 데 아타푸에르카의 유적지는 지금까지 전해 오는 인류 문명과 지금은 사라져버린 문화의 기원과 진화에 관해 매우 독특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조상들로부터 비롯되는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진화 계보에 관한 자료가 이 유적지에서 발굴되었다. 최초로 유럽 거주 인류에 관한 풍부한 증거 자료를 시에라 데 아타푸에르카의 동굴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유적지는 독특한 생태계와 지리적 입지 때문에 인류가 꾸준히 거주해 온 지역이다. 시에라 데 아타푸에르카에 남아 있는 화석은 유럽에 살던 초기 인류 공동체의 생김새와 생활상에 관한 귀중한 정보가 남은 매우 특별한 자료의 보고이다. 이 유적지는 카스티야(Castilian) 고원의 북동쪽 끝자락에 있다. 해발 1,000m 이상의 고원 지대이지만 대부분 관목으로 우거지고 일부가 경작되는 이곳은 오늘날 단순한 산등성이에 불과하다. 강줄기에 의한 침식이 과거 500만 년 동안 진행된 결과 동굴 체계가 정교하게 발달한 카르스트(karst; 용식 지형) 풍광이 형성되었다. 지형이 발달함에 따라 지하수면도 낮아졌다. 덕분에 이곳의 동굴은 동물이나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되었다. 시에라 산 남쪽의 가장자리를 따라 형성된 계단식 지형을 통해 홍적세[Pleistocene; 플라이스토세] 중기와 초기에 강줄기가 이들 동굴 입구 가까이에 흘러 특히 인간의 정주에 매우 적합한 조건을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조상이 유럽의 홍적세 퇴적층에 남긴 최초의 인간유골 화석을 트린체라 델 페로카릴(Trinchera del Ferrocarril) 유적군 중의 하나인 시에라 데 아타푸에르카의 그란 돌리나(Gran Dolina) 유적지에서 발굴했다. 고지자기 분석[palaeomagnetic analysis]에 따르면 이 화석의 연대는 현세로부터[BP; 연대를 과학적으로 측정해 구분한 상고시대를 일컫는데 모든 탄소 연대 측정법의 기준이 되는 ‘1950년 이전’이라는 뜻이다.] 80만 년 전쯤이다. 이 인간 유골 화석들은 아슐리안(Acheulean) 이전 시대에 단순한 형태로 만든 석기들과 관련이 있으며, 유적지의 연대를 측정해 보니 시기가 일치했다. 또한 트린체라 델 페로카릴(Trinchera del Ferrocarril) 유적군에는 트레스 시마스(Tres Simas)라고 알려진 유적도 있다. 갈레리아(Galeria) 유적지에서 발굴한 가장 연대가 오래된 유골은 현세로부터 40만 년 전과 20만 년 전 사이에 아슐리안의 석기를 사용하던 인류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쿠에바 마요르(Cueva Mayor)의 시마 데 로스 우에소스(Sima de los Huesos; ‘해골의 구덩이’)에서 발굴한 인간 유골도 연대가 비슷하리라고 추정된다. 이 지역에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초식동물이 없었는데 32구 이상의 인간 유해가 발굴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이 아마도 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많은 수의 표본으로 대부분 청소년이나 젊은 성인으로 판단된다. 그 덕분에 이 유적지에 살았던 인구에 대한 고대 질병 연구, 원인(猿人)들의 성장과 발달, 그들의 평균 체격에 관한 매우 중요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현세(現世; Holocene)의 퇴적층은 측정 결과 제4기에 속한다. 쿠에바 마요르의 포르탈론(Portalon)이 고고학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1910년에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다. 동굴 입구에서 말의 머리를 묘사한 화석을 발견했는데 구석기시대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잇따른 발굴 조사를 통해 다양한 인류 집단이 청동기시대부터 시작해 로마 시대, 초기 서고트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세기에 걸쳐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갈레리아 델 실렉스(Galeria del Silex)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인류가 거주했다는 풍부한 증거를 발굴했다. 기록에 따르면 기하학 문양, 수렵 장면, 의인화한 동물 또는 동물 형상을 한 인간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으로 새긴 패널이 50점 이상 발굴되었다. 제의를 치르던 성소도 찾아냈다. 이곳에서 대부분이 젊은 성인이거나 어린이인 유골과 자기(磁器) 파편이 출토되었는데 아마도 제물을 바치는 의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갱도의 맨 끝에서는 동굴 이름을 차용한 부싯돌을 발견했다. 쿠에바 델 실로(Cueva del Silo)에도 비슷한 성소가 있었다는 증거가 출토되었다. 인류의 여러 가지 활동은 쿠에바 펠루다(Cueva Peluda), 쿠에바 시에가(Cueva Ciega), 엘 미라도르(El Mirador) 같은 다른 몇몇 유적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고원 아래쪽에 영구 정착촌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특히 중세 시대에 시에라 데 아타푸에르카 산에 있었던 초기 인류의 활동은 쇠퇴했다. 학계는 19세기 중반부터 이들 동굴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특히 쿠에바 마요르에 집중했다. 남쪽에서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이 동굴은 곧바로 엘 포르탈론(El Portalon)과 연결된다. 동쪽에는 갈레리아 델 실렉스가 구불구불한 형태로 300m 이상 뻗어 있다. 서쪽에는 일단의 동굴군[시마 데 로스 우에소스]은 자체의 입구가 따로 있는 갈레리아 델 실로를 향해 1㎞ 이상 뻗어 있다. 북서쪽에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광산 철로[여기서 라 트린체라 데 페로카릴(La Trinchera del Ferrocarril)이라는 이름이 비롯됨]의 굴착 작업을 하다가 드러난 유적지가 있다. 이들 동굴과 암반 은신처는 사실상 광산 철로 공사 때문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북쪽에는 그란 돌리나(Gran Dolina)가, 더 먼 남쪽에는 트레스 시마스(Tres Simas)가 있다. 라 갈레이아(La Galeria)에서도 중요한 유물을 발굴했다.

출처 : 불개 댕견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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