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 <개벽>(1926) -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나의 침실로
- 이상화 / <백조3호>(1923) -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寢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런지 -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 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느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
내 몸에 피란 피 -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 내 침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 작품해설 : 이 시는 1923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시인의 초기 시경향(퇴폐적이고 감상적인 낭만주
의)에 잘 어울리는 대표작이다. 사랑과 죽음, 곧 에로스(eros)와 타나토스(thanatos)가 하나로 어울
려 주제를 이룬 작품이다. 죽음을 계기로 한 사랑의 재생을 노래하고 있어, 결국 사랑과 죽음과 재생
의 세 관념이 엇갈려 이루는 높은 긴장도에서 이 작품의 극적 상황이 마련된다. 어둠, 피안에 까지
삶을 넓혀 체험하려는 곳에서 낭만파 초기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마돈나는 분명치는 않으나, 3·1운동 직후 피폐했던 시대상황 속에서의 지식인들의 절망, 좌절과 연
관지어 볼 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자기 구원의 대상'임에 틀림이 없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긴장
과 불안, 안타까움은 고조되고, 끝내 마돈나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이 시를 감상하는데 있어 중요
한 요소가 바로 시적자아가 간절히 가기를 원했던 '침실'이라는 공간이 지닌 의미이다. 침실에 대해
본문에서는 '오랜 나라',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 다리 건너에 있는 곳', '언젠들 안 갈 수 없는
곳' , '부활의 동굴' ,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곳은 한마디로 죽음의 세계, 영
원한 안식의 세계이다. 하지만 시인이 노래한 죽음은 생명의 종말로서의 단순한 죽음은 아니었다. 오
히려 죽음을 한없이 아름답고 자유로우며 영원한 삶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그들이
당시의 상황에서 자신들의 젊은 정열과 현실의 암담함 사이에 놓인 큰 거리감을 절망적으로느꼈기 때
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의 예찬은 곧 추악하고 괴로운 현실을 부정하려는 의식의 산물이며, 순수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삶의 세계를 향한 간절한 염원의 역설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
나 그의 간절한 부름에도 마돈나는 오지 못하며, 죽음은 실제로 이루어 질 수 없다. 그것은 마돈나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의 여인이고, 죽음은 현실적으로 삶의 종말이자 모든 문제의 포기이기 때
문이다.
* 이상화(李相和, 1901-1943)
이상화(李相和), 상화(尙火, 想華), 무뉘, 무성(無星), 백아(白啞)
1901년 대구 출생
1915년 중앙학교 입학
1919년 3.1운동 때 대구에서 거사하려다 실패
1922년 문학 동인지 『백조』 동인
1925년 KAPF에 참여
1927년 의열단 이종암(李鐘岩) 사건으로 구금
1935년 중국으로 건너감
1936년 귀국 후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1943년 사망
시집 : 『상화와 고월』(1951), 『늪의 우화』(1969), 『나의침실로』(1977), 『석인상』(1984),
이상화시집(1985),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86)
나의 침실로 / 시낭송 오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