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이름없는풀뿌리 2023. 9. 19. 05:04
봄은 고양이로다 - 이장희 / <금성>(1924) -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 작품 해설 : 이 작품은 봄과 고양이의 유사점이 시인의 감각에 의해 한군데 묶여진 작품이다. 고양 이의 털, 눈, 입술, 수염에 각각 봄의 향기, 불길, 졸음, 생기가 연결되어 있다. 완전히 별개의 것으 로 여겨지던 봄과 고양이가 결합되어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발견하 지 못했던 신선한 감각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심오한 의미보다는 그러한 신선한 감각에 주목해서 읽어야 마땅할 것이다. 흔히 이장희는 20년대의 모더니스트라고 불리워진다. 한국에 있어서 모더니스트라는 말은, 작품에 있 어서 자연발생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감각적인 언어를, 그것도 가능한 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제시하고 자 한 시인에 의해 쓰여진다. 그리고 이장희가 시를 쓰기 시작한 20년대 초반은 대개 한국 시단에 주 관의 범람, 감상적 낭만주의가 판을 치고 있던 때다. 이런 때 그는 아주 냉정한 손길로 이미지 시의 제시를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당시의 우리 문학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 준 것 또한 사 실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당시 시단의 경향과 비교해 볼 때, 고양이를 통해 봄을 드러내는 뛰어난 연상 능력 과 완벽한 구조적 통일성은 인정되지만, 내면세계나 의식의 깊이나, 독자의 내면을 울리는 감동이 거 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아무튼 섬세한 감각과 상징적 표현은 당시에 있어 시인의 독 자적 위치를 마련해 주었다. * 이장희(李章熙, 1900-1929) 본관은 인천(仁川). 본명은 이양희(李樑熙), 아호는 고월(古月). 대구 출신. 1920년에 이장희(李樟熙)로 개명하였으나 필명으로 장희(章熙)를 사용한 것이 본명처럼 되었다. 아버지는 이병학(李炳學)이며, 어머니는 박금련(朴今連)이다. 대구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교토중학[京都中學]을 졸업하였다. 문단의 교우 관계는 양주동(梁柱東)·유엽(柳葉)·김영진(金永鎭)·오상순(吳相淳)· 백기만(白基萬)·이상화(李相和)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여 고독하게 살다가 1929년 11월 대구 자택에서 음독, 자살하였다. 1924년 『금성(金星)』 5월호에 「실바람 지나간 뒤」·「새 한 마리」·「불놀이」· 「무대(舞臺)」·「봄은 고양이로다」 등 5편의 시작품과 톨스토이(Tolstoi) 원작의 번역소설 「장구한 귀양」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신민(新民)』·『여명(黎明)』·『신여성(新女性)』·『여시(如是)』·『생장(生長)』· 『조선문단(朝鮮文壇)』에 「동경(憧憬)」·「석양구(夕陽丘)」·「청천(靑天)의 유방(乳房)」· 「하일소경(夏日小景)」·「봄철의 바다」 등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시는 사후 1951년 청구출판사(靑丘出版社)에서 간행된 백기만 편의 『상화(尙火)와 고월(古月)』에 실린 11편만 전해지다가 1970년대 초반부터 그의 시연구가 본격화되면서 『봄과 고양이』(李章熙全集, 문장사, 1982)와 『 봄은 고양이로다』(李章熙全集·評傳, 문학세계사, 1983) 등 두 권의 전집에 그의 유작이 총정리되었다. 이장희의 전 시편에 나타난 시적 특색은 섬세한 감각과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시적 소재의 선택에 있다. 대표작 「봄은 고양이로다」는 다분히 보들레르와 같은 발상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고양이’라는 한 사물이 예리한 감각으로 조형되어 생생한 감각미를 보이고 있다. 이 시는 작자의 순수지각(純粹知覺)에서 포착된 대상인 고양이를 통해서 봄이 주는 감각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920년대 초반의 시단은 퇴폐주의·낭만주의·자연주의·상징주의 등 서구 문예사조에 온통 휩싸여 퇴폐성이나 감상성이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섬세한 감각과 이미지의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뒤를 이어 활동한 정지용(鄭芝溶)과 함께 한국시사에서 새로운 시적 경지를 개척하였다. <참고문헌> 『봄은 고양이로다』(김재홍 편,문학세계사,1983) 『한국작가전기연구』(이어령,동화출판공사,1980) 『한국현대시인연구』(정태용,어문각,1976) 『한국근대시인연구』(김학동,일조각,1974) 『상화와 고월』(백기만 편,청구출판사,1951) 「기재 이장희군의 추억」(양주동,『현대문학』,1963.1.) 「조춘시정: 고월과 상화와 나」 (윤붕원,『죽순』,1948.3.) 「고월이장희의 추억」(김영진,『여성』,1939.7.) 봄은 고양이로다 / 백창우곡_권진원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