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4일 오전 절정을 이루고 있는 전남 영광 불갑사 꽃무릇의 화사한 자태 조선일보/김영근 기자
꽃밭의 獨白
- 娑蘇 斷章 / 서정주 / 『사조(思潮)』 창간호, 1958. 6 / <신라초> 1961, 정음사 -
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山돼지, 매(鷹)로 잡은 山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門에 기대섰을 뿐이다.
門 열어라 꽃아. 門 열어라 꽃아.
벼락과 海溢만이 길일지라도
門 열어라 꽃아. 門 열어라 꽃아.
※ 娑蘇는 新羅 始祖 朴赫居世의 어머니. 處女로 孕胎하여, 山으로 神仙 修行을 간 일이 있는데, 이
글은 그 떠나기 전 그의 집 꽃밭에서의 獨白.
※'환단고기'에 따르면 그녀는 부여 황실의 딸이고 처녀로 잉태를 하여 남의 이목이 두려웠단다. 그
래서 도망하여 진한의 나을촌에 이르렀다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사소는 선도산(仙桃山)(경주
부근의 산)의 신모(神母)가 되었고, 이후 그녀는 산으로 신선수행을 간 일이 있다는 내용이 '고구려
국본기'에 적혀있다.
※ 작품해설 : 이 시는 『삼국유사』에 실려 전하는 ‘사소 설화’를 변용하여 구도자(求道者)의 신
앙적 염원인 영원한 절대 세계에 대한 열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사소’는 신라 시조인 박혁거
세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처녀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 수행(神仙修行)을 떠난 일이 있는데, 이 시는
집을 떠나기 전, ‘사소’의 집 꽃밭에서의 독백을 시화(詩化)한 것이다. 이 시는 인간 세계의 유한
성과 인간 본질의 한계성을 깊이 인식한 ‘사소’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부활을 갈망하는
구도적 정신을 보여 준다.
이 시는 전 14행의 단연시로 내용상 3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단락은 1~6행으로 인간 세계의 유한성
을 제시하고 있다. 화자는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힘차게
달리는 말도 바다에 이르면 멎을 수밖에 없음을 인식한다. 이러한 화자는 이제 산돼지나 산새들에게
도 입맛을 잃어 버렸다. 화자는 이러한 자각을 통하여 인간 세계의 유한성을 말한다.
2단락은 7~11행으로 자연과 동화될 수 엇ㅂ는 인간 본질의 한계성을 드러낸다. 핵심적 이미지인 ‘개
벽하는 꽃’은 소멸과 생성, 죽음과 부활이 반복됨으로써 거듭 태어나는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화
자는 ‘꽃’으로 상징된 자연의 세계, 곧 영원의 세계에 합일되려 하지만, 결국은 ‘네 닫힌 문에 기
대섰을 뿐’인 자신의 한계만을 자각할 뿐이다. 다시 말해, 신선이 되고 싶어하는 ‘사소’는 열심히
선(仙)의 세계를 꿈꾸고 있으나, 그 때마다 영원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성을 확인하고 절망한
다. 3단락은 12~14행으로 영원의 세계를 갈망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벼락’과 ‘해일’은
영원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화자가 극복해야 할 온갖 고통이나 형벌을 의미한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라는 반복되어 나타나는 주술적 성격의 절규 속에는 영원의 세계를 향한 뜨거운 열
망이 담겨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 세계의 유한의 존재를 벗어나 영원한 세계로 상승하고자 하는 시
인의 희원(希願)일 것이다.
귀촉도(歸蜀途)
- 서정주 / 『춘추』 32호, 1943. 10 -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 서역 : 중국의 서쪽에 있던 여러 나라를 통틀어 이르는 말. 넓게는 중앙아시아 서부 아시아 인도를
포함하지만, 좁게는 지금의 신장 성(新彊省) 텐산 남로(天山南路)에 해당하는 타림 분지를 가리킴.
* 파촉 : 중국 사천(四川)의 이칭(異稱), 파(巴)는 지금 사천성(泗川省)의 중경(重慶) 지방, 촉(蜀)
은 지금 사천성의 성도(成都) 지방임.
* 메투리 : 미투리의 방언, 삼이나 노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 흔히 날을 여섯 개로 한다.
* 은장도 : 은으로 만든 장도(粧刀). 장도는 주머니 속에 넣거나 옷고름에 늘 차고 다니는 칼집이 있
는 작은 칼.
* 이냥 : 이러한 모습으로 줄곧. 그냥
* 작품해설 : 이 시는 제2시집 『귀촉도』의 표제시로서 사별한 임을 향한 애끓는 정한과 슬픔을 처
절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시집 『귀촉도』에서 시인은 제1시집 『화사집(花蛇集)』에서 보여 주
었던 ‘보들레르’의 악마 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적 사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귀촉도’란 흔히 소쩍새 또는 접동새라고 불리는 새로, 이 작품에서는 촉제(蜀帝) 두운(杜宇)가 죽
어 그 혼이 화하여 되었다는[杜宇死 其魂化爲鳥 名曰 杜鵑 亦曰子規 ; 成道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죽은 임을 그리워하는 비통함을 표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귀촉도’는 말 그대로 ‘촉으로 돌아가
는 길’을 뜻함으로써 멀고 험난한 길[촉도지난(蜀道之難)의 의미로도 사용되는 충의적인 용법이다.
1연에서는 ‘임’이 가시던 모습과 그 가신 길이 너무 멀기에 다시는 돌아 올 수 없음을 ‘삼만 리’
라는 거리감으로 보여 준다. ‘삼만 리’가 상징하듯 그렇게 먼 곳으로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인
여인은 억누를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눈물이 ‘아롱아롱’ 매힌다. 두견화인 ‘진달래꽃’은 새의 전
설과 관련된 시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에서도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백의민족(白衣民族)이 갖는 근원적인 한(恨)을 느낄 수 있다.
2연은 돌아오지 못하는 임에 대해 ‘신이나 삼아 줄 걸’,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하면서 생전에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를 나타내는 한편, 임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
면, 지극한 정성을 다할 것이라는 비원(悲願)을 말하고 있다.
마직막 3연에서는 화자의 감정 이입인 ‘귀촉도’의 울음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새는 그리움·서
러움·후회스러움 등의 감정이 사무치고 북받쳐서 ‘목이 젖은 새’이며 ‘제 피에 취한 새’이다.
그러므로 새의 울음은 겉으로 표출되지 않고 안으로만 조여든다.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이기에
그 임을 생각하는 그리움의 고뇌는 안으로 응어리져 피맺힌 눈물을 이룬다. 따라서 귀촉도의 울음은
바로 시인 자신의 애끓는 슬픔이자 사랑인 것이다. 1연에서 ‘아롱아롱’ 하던 눈물이 마지막에 와서
는 내면으로 깊이 스며드는 피맺힌 눈물로 깊어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임의 떠남 → ’화자의 회환‘ → ’귀촉도 울음‘이라는 기본 구조로 짜여
있으며, 사랑의 본질, 더 나아가서는 생의 본질이 이 같은 비극적은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게 해 준다.
국화 옆에서
- 서정주 / 『경향신문』, 1947. 11.9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뒤안길 : 늘어선 집들의 뒤쪽으로 나 있는 길
* 무서리 : 그 해의 가을 들어 처음 내리는 묽은 서리
* 작품해설 : 가장 한국적인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당의 대표작이다. 우리나라 현대시를
대표하는 명시의 하나이다. 국화의 개화(開花) 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생명체라도 치열한 생명 창조의
역정을 밟고 태어난다는 것을 선명히 보여 주는 이 시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因緣說)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한다고 할 때, 그것이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강한 힘을 부여
하는 인(因)과 약한 힘을 보태는 연(緣)과의 상호 결합의 결과로 본다. 이 시에서도 국화 자체의 힘
[因]과 소쩍새·천둥·무서리가 봄부터 가을까지 작용(緣)함으로써 국화가 꽃을 피우는 것이다. 여기
에서 국화는 모든 생명체의 대유이자, 나아가 생명이 그러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상태의 상징이며,
동시에 시적 자아의 ‘누님’과 같은 40대 중년 여인이 도달할 수 있는 원숙하고 평온한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래 국화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지만, 이 시의
국화는 이러한 관습적 상징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시인은 생명 탄생의 고귀함과 원숙한 중년 여인의
불혹(不惑)의 미를 상징하는 창조적 상징의 차원으로 국화를 노래한다. 이와 같은 함축미를 지닌 국
화의 개화를 위해서 외적(外的)으로는 소쩍새의 울음·천둥·무서리 등의 협동이 필요했고, 내적(內
的)으로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로 상징된 설움과 번민의 시련과 고통 등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국화는 마침내 ‘내 누님같이 생긴’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피우게 되고,
무수한 괴로움과 역경을 극복하 인간은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앉아 조용히 자신을 투영, 성찰
하는 완전한 모습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상리과원(上里果園)
- 서정주 / 『현대공론』 11호, 1954. 11 -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洛東江) 상류와도 같은 융륭(隆隆)
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이나 그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트리는 몸뚱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
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패기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발
꿈치에까지도 이쁜 꽃숭어리들을 달았다. 멧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새끼들이 조
석(朝夕)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 만 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고
치고 마짓굿 울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 자기도 하는 것
은 참으로 당연(當然)한 일이다.
우리가 이것들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묻혀서 누워 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
래 저것들을 비취고 누워서, 때로 가냘프게도 떨어져 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잎사귀들을
우리 몸 위에 받아라도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山)들과 나란히 마주 서서, 이것들의 아
침의 유두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 속에 이것들이 잦아들어 돌아오는
아스라한 침잠(沈潛)이나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微物) 하나
도 없는 곳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저것
들을 축복(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 나비의 어느 것, 또는 저것
들의 꽃봉오리와 꽃숭어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 귀소(完全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
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래인 종(鐘)소리를 들릴 일이다.
* 융륭 : 힘이 성(盛)한 모양
* 꽃숭어리 : 많은 꽃송이가 달려 있는 덩어리
* 소고 : 작은 북
* 마짓굿 : 부처에게 밥을 올리는 굿. 마지-굿(摩旨-굿)
* 유두분면 : 기름칠한 머리와 분바른 얼굴
* 비비새 : 오디새의 옛말 후투티.
* 작품해설 : 이 시는 슬픔을 넘어서 삶의 환희를 노래한 작품으로 제목이 ‘상리과원’은 ‘상리’라는
마을의 어느 과수원이이란 곳이다. 과수원의 만개한 꽃들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우리의 삶이 힘겨움
속에서도 즐거울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시인은 6.25 때 소위 자살 미수를 겪은 후 범신론
적(汎神論的) 낙천주의를 깨달은 바 있다. 이 시는 이러한 시인의 사상과 꽃이 만발한 과원(果園)에
서 발견한 자연의 아름다움ㅇ르 결합함으로써 봄과 같이 태탕(駘蕩)한 생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연 구분이 없는 산문시이지만, 5개의 형식 단락으로 이루어진 구성이므로 각 단락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단락은 과수원의 만발한 꽃의 모습을 ‘조카딸년과 그 친구들의 웃음판’으로 비유하여 순진
무구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출한다. 2단락은 만발한 꽃을 찾아드는 온갖 새들과 꿀벌들의 모습을 통
해 생동감 넘치는 과수원의 모습을 제시한다. 3단락은 앞의 두 단락에서 분출되던 격정적인 호흡을
멈추고, 서경적 표현을 서정적으로 전환시켜 아름다운 자연과 합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 준
다. ‘유두분면’이란 기름칠한 머리와 분을 바른 얼굴로 흔히 부녀자의 화장을 의미하지만, 여기에
서는 꽃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유하고 있다. 4단락은,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
자연 속에는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은 화자가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며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세상을 소망하는 모습을 그린다.
마지막 5단락은 주제연이다. 화자는 깊은 밤이 오게 되면,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
의 별’을 보여 주고, ‘제일 오랜 종소리’를 들려 주고자 한다. 이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
력으로서의 꿈과 지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서 우리는, 화자가 현실을 낙관적
으로만 인시가는 것이 아니라, ‘어둠’으로 상징된 고통이 엄연히 존재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의 창작 시기가 6.25 직후인 것을 고려한다면, 시인은 전후의 허무적이고 비극적인
현실 인식 태도를 극복하고, 더 나아가 ‘상리과원’ 같은 기쁨이 충만한 미래 지향적인 삶을 지향하
기 위하여 이 시를 창작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보물 , 金弘道筆 風俗圖 畵帖,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 길쌈, 39.7cm*26.7cm,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의 풍속도하면 바로 이 화첩에 속한〈씨름〉〈무용〉 〈서당〉이 연상되리 만큼 지금까지 이
분야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화첩은 1918년 趙漢俊에게서 구입했고 모두 27점이었으나
1957年 원 화첩의 首尾에 위치한 〈群仙圖〉2점은 별도의 족자로 만들고 풍속도 25점만 새롭게 화첩
으로 꾸몄다. 이 화첩에 속한 그림 중 4점이 1934年 간행된 『朝鮮古蹟圖譜』에 게재되었다. 1970年
〈群仙圖〉를 제외한 이 화첩은 《檀園風俗圖帖》이란 명칭으로 보물 제527호로 지정되었다. 이 화첩
의 게제순은 1)서당, 2) 논갈이, 3) 활쏘기 4) 씨름, 5) 행상, 6) 무동, 7) 기와이기, 8) 대장간,
9) 노상과안, 10) 점괘, 11) 나룻배, 12) 주막, 13) 고누놀이, 14) 빨래터, 15) 우물가, 16) 담배썰
기, 17) 자리짜기, 18) 벼타작, 19) 그림감상, 20) 길쌈, 21) 편자박기, 22) 고기잡이, 23) 산행,
24) 점심, 25) 장터길이다. 이들 작품명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각계층의 생업장면과 놀이 등 생활
의 이모저모가 잘 나타나 있다. 예외도 없지않으나 대체로 배경을 생략하고 등장인물들이 취하는 자
세와 동작만으로 적절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평범한 일상사이나 화가의 따뜻한 시선과 예리한
시각에 의한 순간의 포착은 이를 볼거리로 부각시켜 그림이 그려진 사회분위기를 잘 전한다. 이 화첩
에 속한 그림 중 〈점괘〉는 〈시주〉로, 〈고두놀이〉는 〈윷놀이〉로 보기도 한다. 또한 이 화첩에
대한 이와 유사한 그림들이 적지 않게 전해지는 사실, 그림사이에 기량과 격조에서 차이를 보이는점,
부분적으로 감지되는 표현의 미숙함, 보수와 加筆 등의 요인으로 이 화첩에 대해 일각에서는 다소 부
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견우의 노래
- 서정주 / 시집 『귀촉도』, 1948 / <현대공론>(1954) -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 은핫물 : 은하수(銀河水), 은하를 강에 비유하여 이른 말.
* 오롯한 : 모자람이 없이 온전한
* 북 : 베틀에서 날실의 틈으로 왔다 갔다 하며 씨실을 푸는 기구
* 작품해설 : 이 시는 전래 설화인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창작 모티프로 하여 사랑하면서도 만나
지 못하는 남녀의 애절한 감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일 년 중 단 하루만 만날 수 있는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 만남과 이별의 정서를 그려낸 이 작품은, 설화의 주인공인 ‘견우’를 시적
화자로, ‘직녀’를 시적 대상이자 청자로 설정하여 만남과 이별의 역설적 의미를 형상화하고 있따.
이별은 일반적으로 사랑의 종말로 인식되지만, 이 시에서는 그것이 사랑을 위한 내적 성숙의 기간으
로 설정되어 있기에, 화자는 이별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긍정한다.
맞닥뜨린 이별의 상황에 가슴 아파하는 연인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이 시는, 1연에서
이별의 시간이 바로 진정한 사랑을 위한 내적 성숙의 시간임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사랑과 이별
은 상반되고 모순되는 상황이거나 정서임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여기서 사랑을 위해서는 이별이 필요
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곧 이별을 통해서만 사랑음 성숙해진다는 의미이다. 2연과 3연에서는 화
자의 정서가 이별의 장면, 이별 후의 기다림과 안타까움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따라서 ‘출렁이
는 물살’ · ‘물살 몰아 갔다 오는 바람’ · ‘푸른 은핫물’은 성숙한 사랑을 위해 감당해야 할
장애물과 고난을 의미한다.
만남의 장애물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4~8연에 나타난 시적 화자와 시적 대상의 모습으로 연결된다.
그것이 바로 4연에서의 ‘불타는 홀몸’으로 남아 있는 ‘나’의 모습과, 5연에서의 ‘모래밭에 돋아
나는 풀싹’을 세는 ‘나’의 모습이다. 또한 그것은 8연의 ‘검은 암소를 먹이’며 재회의 날을 기
다리는 ‘나’의 모습이며, 6연과 8연에서의 ‘베틀로 비단을 짜는’ ‘그대’의 모습이다. 따라서
‘번쩍이는 모래밭’과 ‘허이연 구름’은 견우와 직녀가 각각 처해 있는 시련의 공간을 의미하며,
‘풀싹을 네는’ 나의 모습은 간절한 그리움으로 보내는 막막한 세월을 상징한다. 모래밭은 풀이 쉽
게 자랄 수 없으며, 풀이 자라나지 않으면 견우는 소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4연에서의 ‘불타는 홀몸’은 고독 속에서 지펴지는 사랑의 불길과 인고의 시간이 형상화된 구
절로, 직녀를 향한 견우의 사랑과 연결, 또는 그리움과 재회의 욕구에서 비롯된 그의 몸부림을 의미
한다. 이 같은 불의 이미지는 2,3연의 물과 바람의 이미지와 대립됨으로써 이별의 상황에서 빚어지는
쓸쓸함과 그리움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속에서 더욱 뜨거워진 사랑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보다 효
과적으로 보여 주게 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주어진 본분에 충실하면서 ‘눈썹’의 이미지만큼이나
아름답고 황홀한 ‘칠월칠석’의 재회를 기약하는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이러한 고난을 딛고 홀로 설
수 있는 성숙한 사람만이 진정한 만남, 완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 1887~1956)의 Korean Bride (1938) - 새색시
신부(新婦)
- 서정주 / <질마재 신화>(1975) -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
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
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
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
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
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
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돌쩌귀 : 문짝을 문설주에 달아 여닫는 데 쓰는 두 개의 쇠붙이
* 작품해설 : 미당은 전북 고창 선운리의 생가(生家)에서 멀리 내다보이는 ‘말안장 같이 생긴 고
개’[질마재]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일곱 번째 시집을 『질마재 신화』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시집
에 수록된 시들은 산문시의 형식과 관능미 넘치는 토속적 흥취를 주된 정서로 지니고 있어 이전의 경
향과는 판이하게 다른 특성을 보여 준다. 「신부」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 주는 그 중의 한 작품이
다. 이 시는, 혼인 첫날밤에 생긴 오해로 인해 신부가 40~50년을 첫날밤 모양 그대로 앉아 있어야 했
고, 신랑의 손길이 닿고서야 재가 되어 내려앉았다는 비극적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신비주의
적인 내용에다 다분히 관능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 읽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은 재가 되어
버리는 신부의 비극이 더욱 처절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이 시는 신부의 수동적이고 침착한 기다림과 신랑의 조급성이 대립됨으로써 처절한 비극
이 유발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옷자락이 돌쩌귀에 걸린 것을 신부가 음탕해서 잡아당
기는 것으로 오해한 신랑에게 신부는 40~50년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저항으로 맞서게 된다. 40~50년이
란 세월은 한 인간의 삶 전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신부는 한 생애 모두를 기다림으로 보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다림은 자기 소멸이라는 더 큰 비극을 가져오게 된다. 다시 말해, 신랑은 자신의 성
급하고 지각없는 판단으로 인해 신부를 소박한 채 40~50년을 철저히 잊어버리고 지냈지만, 그 무관심
이 결국 신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이러한 세월이 흘러서여 신랑은 옛집에 우연히 글러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
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는 신부의 존재를 확인한다. 신랑은 비로소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어루만지‘지만 그 행위로 인해 신부는 그만 ’매운 재‘로 부서지고 만다.
결국 신랑의 잘못된 선택은 신부를 두 번씩이나 죽이고 만 셈이 된다.
이렇듯 이 시는 한 여인의 한(恨) 속에 담긴 숙명적 비극, 인생의 유한함과 허망함, 육체를 초월한 영
적(靈的) 존재의 아름다움 등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이러한 서정이 쉬운 이야기 구조와 산문적가락
속에 교묘하게 복합적으로 녹아 있는 점에서 시인의 성숙한 시재(詩才)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해일(海溢)
- 서정주 / <질마재 신화>(1975) -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
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알발로 낄낄
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누에가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 이야기만 무진장 하시
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
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쪽만 멍하니 넘어다 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아직 미처 몰랐습니다만, 그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간신히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리
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
집 마당에 몰려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 작품해설 : 이 작품은 미당의 제6 시집 <질마재신화>에 나오는 시이다. 이 시집에서 미당은 유년
시절의 체험을 신화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이 시집은 전통 탐구의 한 성과이고, 한국시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려는 시도로 평가되고 있다. 모두 평범한 이야기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미당 특유의
시적 자질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해일의 신화성은 무속 신앙과 동양 정신에 기반한다. 어린 소년으
로 설정된 화자가 바다에서 죽은 할아버지가 해일이 되어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불연속이 연속의 세계로, 양분적 대립이 동질
적 화합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개안의 경지를 형상화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에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 할머니의 모습이 매우 따뜻하게 담겨 있다. 서정주의 또 다른 작품
<신부>에서 언젠가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빈 방을 지키고 있었던 여인처럼, <해일> 속의 여
인도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여성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해일>은 <신부>보다 독자에게 더 풍부한
감정을 이끌어 내는 힘이 담겨 있는 듯하다. 과거 우리나라의 유교적 도덕관의 사회 속에서 여인들이
보낸 인고의 세월을 시인은 젊은 여인이 아닌 할머니를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시인은 시 속에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 작품의 내용은 아마도 허구이겠지만, 과거에 어쩌면 진짜 있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
각을 하게 한다. 너무나도 있음 직한 이야기를 그림을 그리듯 말하고 있는 시인이 또한 위대해 보인다.
부활(復活)
- 서정주 / 《조선일보》 (1939.7) 수록 -
내 너를 찾아왔다 수나(叟娜).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닭이 울 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귓가에 들
리드냐. 수나, 이게 몇만 시간 만이냐. 그날 꽃상여 산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더니, 매만져볼 머릿카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없더니, 비만 자꾸 오고……
촉(燭)불 밖에 부흥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천 린지, 한 번 가선 소식 없던
그 어려운 주소(住所)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중에도 열아홉 살
쯤 스무 살쯤 되는 애들.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들어앉아 순아! 순아! 순
아!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다시 밝은 날에
- 서정주 / <서정주 시선>(1956) -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 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랑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아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당신이 다시 그를 데려가시고
그 훠 ― ㄴ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노을을 두셨습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 번 내 위에 밝는 날
이제
산골에 피어나는 도라지꽃 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 신령님 → 청자로, 운명론적 사고가 반영된 시어임.
* 아지랑이, 애기 구름 → 순수함과 평온함의 이미지
* 회오리 바람, 폭포, 소나기 비 → 격정적인 사랑의 상징
* 당신은 다시 그를 데려가고 → 임과의 이별이 운명적인 것임을 의미함.
* 그 훠-ㄴ한 내 마음 → 이별 후의 상태, 상실감과 허전함.
* 저녁 노을 → 이별 후의 상태로, 불 타는 듯한 그리움을 의미
* 기인 밤 → 이별 후의 상태로, 기다림의 고통을 나타냄.
* 또 한 번 내 위에 밝는 날 → 임과의 재회
* 도라지꽃 →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상징, 화자의 내적 성숙을 형상화
* 작품해설 : 고대소설의 하나인 <춘향전>에 나오는 '춘향'을 소재로 한 시로는, 서정주의 “추천사”,
<춘향유문>, <다시 밝은 날에>, 강은교의 <춘향이의 꿈 노래>, 박재삼의 <자연>, 김영랑의 <춘향> 등
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중 한 편인 이 시는, 춘향이 사랑하는 임과 이별하고 재회의 날을 간절히 소망하
며 자신의 사랑을 굳게 지키겠다는 의지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1연은 춘향이가 '그'를 만나기 이
전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사랑의 격정에 휩싸이기 이전의 평화롭던 마음을 보여 주고 있다.
2연은 '그'를 만난 이후, '미친 회오리바람'과 '벼랑의 폭포'와 '소나기비'와 같은 열정에 빠진 자신
의 심리를 나타내고 있다. 3연은 이별의 아픔을 겪은 후의 심리를 표현한 것으로, '그 훠―ㄴ한 내
마음에'는 아직 '마지막 타는 노을'같이 뜨거운 사랑이 타오르고 있지만, 재회를 기다리는 그 하루하
루는 마치 '기인 밤'과 같다는 화자의 애절한 고백을 통해 이별을 겪은 후의 아픔을 잘 보여 주고 있
다. '그'가 떠나간 것은 단순히 '그'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신령님
께서 데리고 간 것이라는 구절은, 화자가 운명론적 인생관을 가진 존재임을 알게 해 준다. 4연은 화
자가 '도라지꽃 같은 사랑'을 지키며 '또 한 번 내 위에 밝는 날'로 표상된 재회의 날을 기다리겠다
는 화자의 굳은 결의를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이 결의는 '정절'이나 '열녀불경이부'와 같은 봉건적
윤리관의 반영이 아닌,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춘향의 사랑을 느
낄 수 있게 해 준다.
* 서정주(徐廷柱, 1915-2000)
미당(未堂), 궁발(窮髮)
1915년 전라북도 고창 출생
1929년 중앙고보 입학
1931년 고창고보에 편입학, 자퇴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등단, 시 전문 동인지 『시인부락』 창간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 시분과 위원장직을 맡음
1950년 종군 위문단 결성
1954년 예술원 종신 위원으로 추천되어 문학분과 위원장 역임
1955년 자유문학상 수상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2000년 사망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했다. 1925년 줄포보통학교를 수료하고, 1929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입
학, 1930년 광주학생운동과 관련해 구속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 이로 인해 퇴학당했다. 1931년 고
창고등보통학교에 편입했으나 곧 자퇴, 방랑을 하다가 고승 박한영 문하에 입산했다. 서울 대한불교
전문강원에 입학해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수업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壁)이 당선
되었고, 같은 해에 김광균, 오장환과 함께 동인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을 창간하고 주간을 지냈
다. 1940년~1941년 2월까지 만주 간도에서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으로 있었고 용정에서도 체류했다.
1941년 첫 시집 『화사집』을 출간했다. 1941년 동대문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후 동아대학교·조선
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1960년 이후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친일문학을 발표했는데, 주로 시·소설·잡문·평론 등을 통해 일제에 협력했
다. 『매일신보』(1942)에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라는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시의 시야기-주로
국민시가에 대하여」를 발표, 친일문학지 『국민문학』, 『국민시가』의 편집에 참여하면서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 「인보(隣保)의 정신」(1943), 「스무 살 된
벗에게」(1943), 일본어 시 「항공일에」(1943), 단편소설 『최제부의 군속 지망』(1943), 시 「헌시
(獻詩)」(1943), 「오장 마쓰이 송가」(1944) 등 11편을 발표했다. 대부분의 내용은 태평양전쟁을 성
전(聖戰)으로 미화하면서 학병지원 권유, 징병의 필요성과 의미를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일제의 식민
정책에 동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주장하는 글을 썼다. 서정주의 친일작품은 특히 1943년에 많이 발표
되는데, 그 배경에는 같은 해에 최재서와 함께 일본군 종군기자로 사병의 군복을 입고 취재를 다녔다.
松井(마쓰이) 오장 송가 / 1944.12.9. 매일신보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멫천 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테만은
여기서 멫만 리런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x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띄우고
「갔다가 오겠습니다」
웃으며 가드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드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x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신풍(神風,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정국대원(靖國隊員).*
정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x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내리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국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x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x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멫천 길의 바다런가.
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 오장(伍長).[현대 대한민국 국군으로 치면 하사에 해당하는 계급. 오장은 구 일본군 육군에서만 쓰
이던 계급임을 감안하면 밑에 언급될 육항대 소속이라는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구 일본군 해군에서
는 삼등병조가 오장과 비슷한 위치였다.]
* 정국대원(靖國隊員).[정국대(靖國隊)는 비행부대명으로, 여기서 "정국(靖國)"은 "야스쿠니 신사(靖
國神社)"의 "야스쿠니(靖國)"를 말한다. 기존에는 "귀국대원(歸國隊員)" 또는 "구국대원(救國隊員)“
으로 오독되어 왔는데, 2009년에 발간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와 사료집, 그리고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서 처음으로 바로잡혔다.]
* 친일시 중 가장 잘 알려진 「松井(마쓰이) 오장 송가」. 시의 마쓰이 오장, 인재웅(印在雄)은 실존인
물로 서정주 외에 노천명도 마쓰이 오장을 기리는 친일시를 내기도 했다.[시의 주인공 인재웅은 이후
생존하여 해방 후 귀국했다고 잘못 알려져 왔는데, 이는 근거 없는 낭설이다. 해방 후에도 인재웅을
본 사람은 전혀 없었다. 1946년 1월 12일 『자유신문』의 기사를 통해 미국포로가 되어 하와이 수용
소에 들어갔다 생환한 2,500명이 인천항에 상륙하였으나, 명부를 조사한 결과 인재웅의 생존은 허보
임이 판명되었다고 보도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인재웅의 양친은 "찬바람이 살을 여위듯 하는 부두에
온종일 서 있으며 아들을 만나려다 그것이 허사인줄 알게되자 애통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
다.] 전쟁이란 딱딱한 소재를 운문으로 세련되게 묘사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유려하게 시상
을 전개해 후반부에 단번에 감정을 폭발시킨다. 문체만 보면 웬만한 서정시 저리가라다. 수미상관의
구조로 자아내는 여운은 덤. 친일시인데도 그 와중에 쓸데없이 고퀄리티다. 시에서 자주 언급되는 레
이테 만 해전은 가미카제가 첫 등장한 전투이다. 일본 해군은 이 레이테만 해전의 사마르 해전에서
미군의 호위 항공모함과 구축함으로만 이뤄진 작은 함대의 용맹한 분투에 쫓겨 도망쳐야 했다. 위의
친일시에서 그렇게 찬양해대던 가미카제로 깨부쉈다는 항공모함도 위에 일본 함대를 내쫓은 호위 항
공모함 한 척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때 일본 공군의 특공대들이 연합군의 큰 군함 등을 돌격하여 기체와함께 자폭했는데
이들을 일컬어 '가미가제 특공대' 라 하였다.
항공일에 / 서정주 /1943.10 국민문학
여린 숨을 폭폭 내쉬며
내 귓가에서 자그마한 서운녀(西雲女)가
일곱 살 서투른 고향 말씨로
아이 하늘은 서울이레야,
속삭이던 그 하늘이구나
마늘이랑 파랑 고추를 먹고
기름때 절은 하이얀 옷을 입은
뜨겁디뜨거운 가슴을 안은 이들이
산비둘기 울던 노오란 길을
가고 가던 진초록
바로 그 하늘이구나
아아 애달퍼라 아직은 감을 수 없는 눈과 눈이여
잊을 수 없는 파아란 정
해 저물어 밤이 되면
별똥은 반짝거려
아아 애달퍼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
스러져 나날이 하늘은 깊어만 가고
여기 있는 건 내 덧없는 몸짓과 말뿐
메아리와 파도소리와
해맑은 좁은 마당엔
꽃축제 올리는
쇠가죽 북소리만 은은해
아아 날고프구나 날고 싶어
부릉부릉 온몸을 울려
사라진 모든 것
파랗게 걸린 저 하늘을
힘차게 비상함은
내 진작 품어온 바람!
* 실제로 일본의 노리타케 미츠오는 서정주의 이 작품을 보고 40년대에 발표된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이
라 칭하며 시인 미당이 일본 문학가들에게는 없는 묘한 유통력이 있다고까지 하였다 한다. 이것을 고
려했을 때, 서정주의 친일파로서의 명성은 일본 문학가들의 지지로 인한 것임을 추측해 낼 수 있다.
서정주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13호
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8: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229∼251)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해방 후에는 좌익측의 조선문학가동맹에 대응하여 우익측이 결성한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시분과 위
원장으로 활동했으며, 동아일보사 문화부장,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을 역임했다. 1949년 한국문학가협
회 창립과 함께 시분과 위원장을 지냈고, 1950년 6·25전쟁 때는 문총구국대가 급조되어 실무책임을
맡았다. 미당은 구상과 함께 일선부대에 나가 신문편집, 시낭송, 연설 등을 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한강 도강에 성공하여 조지훈, 이한직 등과 함께 피난을 갔으나 전쟁의 상흔으로 조현증(調絃症,
정신분열증)이 나타나 병원에 요양했다. 정신병 증세는 그의 시세계를 새롭게 확장하는 요소로 작용
했다.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에 추천되었고,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41년에 발간한 첫시집 『화사집』은 생명탐구에 집중되어 관능적, 본능적인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
고 있어 초기의 치열한 정신적 방황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는 본능과 도덕과의 갈등, 혹은 내면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끊임없는 물음과 충돌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48년 『귀촉도』
는 일제말기에 쓴 시와 해방 뒤에 쓴 시를 함께 수록하고 있어서 『화사집』과 유사한 작품도 있고
이조백자나 노자, 장자 등 동양사상을 중요한 세계관으로 수용한 변화를 잘 담아내고 있다. 『서정주
시선』이 발간된 1955년은 미당이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직후로 해방과 한국전쟁의 격동기를 보낸 시기
여서 시세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또한 이 시집은 「국화옆에서」, 「무등을 보며」, 「추천사」,
「광화문」, 「상리과원」 등 대표작들이 수록되어 있다. 1960년 『신라초』는 미당의 인생관 정립을
위한 신라정신이 시적 주제로 등장하는데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고전을 통해 문학적 성취를
시도하였다. 그 외 『삼국사절요』, 『신라수이전』(최남선 편집)까지 섭렵했다. 그러나 『신라초』
는 사료(史料) 차용에 그쳤다는 인상을 준다면 1968년 『동천』에 와서 시적 형상화를 이루었다는 평
가를 받았다. 신라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영원주의 추구가 이 시집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1975년 『질마재 신화』는 고향 질마재에서 전해오는 설화를 소재로 했다. 이야기체를 그대로 수용하
여 산문시 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이 시집은 미당이 회갑에 이른 때로 고향에 대한 회귀의식이 시적
구성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는 달리 고향의 전통과 서정을 잘 갈무리하면서 옛
마을 문화의 소중함을 간직한 시집이다. 1976년 『떠돌이의 시』 이후의 작품은 그 전 작품만큼 정제
되어 있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라정신의 연장선에서 신라는 물론 고려, 조선시대의 인물과
사건을 시적 내면으로 구체화 시켰고, 외국여행을 체험한 느낌도 포함시켰다. 1980년 『서으로 가는
달처럼』, 1982년 『울고 간 날들의 시』, 1983년 『안 잊히는 일들』, 1984년 『노래』, 1988년
『팔할이 바람』, 1991년 『산시(山詩)』, 1993년 『늙은 떠돌이의 시』 등을 출간했다. 2000년 12월
24일 사망했다.
해방 이후 우파로 스탠스를 확립한 후 좌익 문인단체 '조선문학가동맹'을 비난하는가 하면, 이승만을
기리는 전기를 썼고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베트남 파병을 촉구하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1981
년 대선 당시 전두환 대통령 후보를 위해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그를 지지하는 지원연설을 하기도 했
다. 그리고 1987년에는 전두환의 만 56세 생일을 기념하여 찬양시를 지어 바쳤다. 시의 전문은 다음
과 같다.
처음으로
-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 1987.1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 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 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순치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 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서울 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 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 대결에서 우리는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쥐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 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1987. 1.)
* 위의 '松井(마쓰이) 오장 송가'를 읽고 이 시 중간의 '86 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을 이기게 하시고'
부분을 읽으면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문학평론가 이경철은 「미당 서정주 평전」에서 이 시를 일컬
어 '서정주 자신도 다시 보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어했겠지만, 지금도 인터넷에 전문
이 떠돌며 시인의 이름을 먹칠하고 있는 시'라 말하였다.
이러한 친전두환 행위에 대한 반론도 존재하는데, 친일행위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요된
행위라는 주장. 이들은 위에 서술된 전두환 축하시가 '전혀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고 표현력도 낮다’
라며 서정주를 옹호하나, 전두환이 웃는 얼굴을 보고 "세상을 구제하실 미륵의 미소다"라고 한 적도 있다.
서정주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대체로 서정주 특유의 순응주의적 태도
와 정치감각의 결여[이 때문에 '정치적 무뇌아'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반공주의가 낳은 비뚤어진
정치적 보수주의, 개인적으로 연루된 정치적 사건의 여파[서정주는 6.25 전쟁 전후 좌우익 대립이 극
심하던 무렵 정치공세로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강박관념으로 인해 환청과 신경쇠약 등에
시달린 적이 있고,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4.19 혁명 때는 시를 가르치던 제자가 시위
에 참가했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고, 5.16 군사정변 무렵에는
이유 없이 감옥으로 연행됐다가 풀려나오기도 했다.]로 인해 생긴 정치에 대한 정신적 불안 등이 합
쳐져 그런 지나친 권력 옹호로 드러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도 언급된 평론가 이경철은 서정주와 여러 번 인터뷰를 갖기도 했을 만큼 친분이 있었던 인물
이다. 그는 서정주가 두고두고 비난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생전에 사죄의 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해 여러 차례 이 문제에 대해 사죄를 할 것을 추궁했고, 결국 서정주는 중앙일보에 실린 말년의
인터뷰에서 "생각해보니 무척 잘못된 일이었네. 그때 그들에게 짓눌리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안위를
위해 협조했으나 돌이켜보니 내 짧은 생각이었네."라고 말하게 된다.
<상훈과 추모>
1962년 ‘5·16 문예상’ 본상과 1966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으며, 1980년에는 중앙일보가 주
관하는 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정부에서는 2000년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으며, 중앙일보사는
2001년에 미당문학상을 제정했다.
<참고문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8: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
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인명사전』2(민족문제연구소, 2009)
『서정주』(박호영, 건국대학교출판부, 2003)
『미당 서정주 연구』(송하선, 선일문화사, 1991)
서정주문학관(www.seojungju.com)
시집 : 『화사집』(1941), 『귀촉도』(1948), 『흑호반』(1953), 『서정주시선』(1956), 『신라초』
(1961), 『동천』(1969), 『서정주문학전집』(1972), 『국화옆에서』(1975), 『질마재 신화』
(1975), 『떠돌이의 시』(1976), 『학이 울고간 날들의 시』(1982), 『미당서정주시선집』 (1983),
『안 잊히는 일들』(1983), 『노래』(1984), 『시와 시인의 말』(1986), 『이런 나라를 아시나요』
(1987), 『팔할이 바람』(1988), 『연꽃 만나고 가는 사람아』(1989), 『피는 꽃』(1991), 『산시(山
詩)』(1991), 『늙은 떠돌이의 시』(1993), 『민들레꽃』(1994), 『미당시전집』(1994), 『견우의 노
래』(1997),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
꽃밭의 독백 / 시노래 이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