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서정주(친일)> 노을/동천/자화상/영산홍/무등을보며/추천사/춘향유문/화사/문둥이

이름없는풀뿌리 2023. 10. 16. 08:11
노을 - 서정주 / <서정주전집1> p83, <귀촉도> 1948 - 노들강 물은 서쪽으로 흐르고 능수 버들엔 바람이 흐르고 ​ 새로 꽃이 핀 들길에 서서 눈물 뿌리며 이별을 허는 우리 머리 우에선 구름이 흐르고 ​ 붉은 두볼도 헐덕이든 숨 ㅅ결도 사랑도 맹세도 모두 흐르고 ​ 나무 ㅅ닢 지는 가을 황혼에 홀로 봐야할 연지 ㅅ빛 노을. * 노들 : 예전의 과천 땅으로 지금의 한강 남쪽 노량진동 일대 * 능수버들 : 버드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 “고려수양”이라고도 함. 동천(冬天) - 서정주 / 『현대문학』 137호, 1966.5 - 내 마음 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작품해설 : 3음보 율조의 5행 한 문장으로 된 이 시는 짧은 형식 속에 인간의 본질과 의미라는 무 게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일체의 설명을 배제하고 고도의 상징적 수법을 구사함으로써 강렬한 언 어적 긴장을 이루고 있는 차원 높은 시가 되었다. 싸늘하면서도 유리같이 투명한 ‘동천(冬天)’에 초승달이 떠 있고, 그 한 편에 한 마리 ‘매서운 새’가 날고 있는 것이 이 시의 전부이다. 이 시는 화자의 행위를 타나내는 1~3행까지의 전반부와 그에 대한 반응, 즉 새의 행위로 나타나는 반응인 4~5 행의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행의 ‘고운 눈썹’은 초승달을 의미한다. 이 초승달이 화자의 마음속에서 천 년 동안 맑게 씻 긴 것임을 고려한다면, ‘눈썹’은 곧 사랑의 표상이다. 2행의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는 행위 는 지금까지 겪어온 온갖 모순과 갈등을 투명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3행의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는 절대적 경지로 비약하려는 행위로, 보다 가치 있는 삶ㅇ르 지향하는 화자의 태도를 반영 한다. 4행의 ‘매서운 새’는 공격적 특성을 환기하는 시어로 차가운 겨울 밤하늘과 어울려 그 ‘매 서움’이 배가된다. 그러나 ‘매서운 새’는 달과 조화를 이룸으러써 5행의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 끼어 가’는 유순함으로 나타난다. 결국 새는 달을 공격하지 않는, ‘매서움’으로소의 특성이 나타 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동지섣달의 밤하늘을 날며 ‘시늉하며 비끼어 가’는 ‘매서운 새’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 까? 이 시의 평면적 의미는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임의 고운 눈썹을 천 년 동안 마음속에 아로새겨 하늘에 옮기어 놓았더니, 동지섣달 하늘을 나는 매서운 새가 눈썹의 절대적 가치를 알고 비 끼어 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운 눈썹’인 초승달이 ‘즈믄 밤의 꿈’으로 이어지는 것은 초승 달이 여러 차례의 변신을 통해 최종 단계인 ‘만월’에 다다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초승달은 화 자가 염원하는 동경과 구도의 상징물로서, 그가 추구하는 어떤 절대적 가치를 ‘임’(절대적 대상) → ‘초승달(미완성의 상태) → ’만월‘(완전한 영원의 세계)의 순서로 전개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매서운 새;는 ‘만월’인 영원의 세계를 동경하는 인간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매서운 새’가 현실 세계인 ‘동천’에 존재하며 끈질기게 영원의 세계인 ‘만월’에 접근하려고 노력하지 만, 결국은 ‘시늉하며 비끼어’ 가는 한계에 부딪치고 말 뿐이다. 이렇게 이 시는 절제된 시와 짧은 형식을 통해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畏敬)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자화상(自畵像) - 서정주 / 『시건설』 7호, 1939. 10 -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실제로 서정주의 아버지는 인촌 김성수 일가의 머슴살이를 했다. * 한 주 : 한 그루 * 달을 두다 : 여자가 아이를 배다 * 갑오년 :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해 * 작품해설 : 이 시는 미당이 스물 셋의 나이에서 자신이 살아온 지난 생애를 회고하는 내용이다. 그 가 이 글에서 밝히고 있는 그의 가족사와 이력이 사실에 얼마나 부합되는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과장하거나 미화하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텐데, 도리어 그는 자상스럽지 못한, 부끄러워 감추려고 할 만한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밝히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비상한 충격과 함께 신선한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가 이 작품에서 얻어야 할 것은 (물론 무엇을 얻기 위해 시를 읽는 것은 아니지만) 한 인물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근원적 고통과 올랜 방황, 그리고 이 로부터 나타나는 결연한 생명 의식이다. 1연은 ‘나’의 출생 배경을 할아버지 대(代)로부터 보여 주고 있다. 갑오농민전쟁에 나가 죽은 외할 아버지,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주인을 위해 밤 깊도록 일만 하는 종인 ‘애비’, 그리고 동 생을 임신한 몸이지만 ‘손톱이 까매’질 정도로 일을 하는 ‘어매’를 통하여 그의 집안은 유교적 봉건시대의 모순된 사회제도에 의해 고통 받으며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흙으로 바람벽한’ 퇴락한 초가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인 그 집은 대대로 가난에 시달려 왔을 뿐 아니라, 동 생을 임신한 ‘어매’가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그것 하나도 갖다 드릴 수 없 을 정도로 궁색하기만 하다. 2연은 시상을 전환하여 화자의 지난 생애를 요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종의 자실이라는 남들의 멸 시, 그것으로 인한 끊임없는 방황과 부끄러움, 그리고 무지(無知) 등으로 힘겹게 살아온 자신의 지난 생애를 회상한 다음, 그는 괴로웠던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삶의 시련과 고 통이 오히려 그로 하여금 더욱 굳건한 생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힘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 강한 생의 의지로써 마침내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는 진실 된 시가 됨을 3 연에서 밝히는 한편,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회상과 생의 강한 욕구를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 리며 나는 왔다.’로 끝맺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이처럼 원색적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화자의 개인적 생애와 더불어 험난했던 우리 근대사를 돌아보게 해 주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영산홍((映山紅) - 서정주 / 『文學』 1966.11 -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小室宅)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너머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 작품해설 : 영산홍은 글자 그대로 산의 그림자가 어린 꽃이다. 놋요강은 밤에는 방에 있고, 아침이 되면 툇마루에 내온다. 바로 소실 댁의 처지에 대한 은유다. 소금 발이 쓰려 우는 갈매기도 소실 댁 의 은유라 하겠다. 소실은 정식 부인이 아니니 족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호적에도 이름 석 자를 올리 지 못한다. 어디에도 남편이나 자식을 증명할 것이 없으며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아마 서정주 시인은 영산홍에서 애처로이 첩살이를 하는 소실 댁을 연상하였나 보다. - 이해우 무등을 보며 - 서정주 / 『현대공론』 8호, 1954.8 -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 무등 : 무등산, 광주광역시 북구와 화순군 이서면, 담양군 남면과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187m * 남루 : 헌 누더기 * 갈매빛 : 짙은 초록빛 * 지란 : 영지와 난초 * 농울쳐 : 기운을 잃고 풀이 꺾이어 * 쑥구렁 : 쑥이 자라는 험하고 깊은 구렁. 무덤 * 청태 : 푸른 이끼. * 작품해설 : 이 시는 초기시의 특징이던 생명 현상에 대한 강렬한 탐구가 끝나고 화해와 달관의 세 계로 나아간 미당 시의 제2기 대표작이다. 미당은 6.25 직후 광주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 다. 시인은 전쟁으로인한 상처와 가난으로 얼룩진 현실 속에서, 무등산의 높은 기개와 의젓한 자태를 인간 삶이 배워야 할 하나의 모형으로 생각하여 이 시를 창작하였다고 한다. 미당에 의하면, 가난은 ‘한낱 남루헤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여름 무등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는 가릴 수 없다. 이것은 그의 생활 철학의 반영으로, 가난이란 그야말로 누더 기 옷과 같이 우리를 간혹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고 불편하게 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성인 순수성은 결코 덮어 가릴 수 없다. 다시 말해, 무등산이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서 아름다움을 구현하여 보여 주듯, 인간도 순수한 알몸 그 자체로 자신의 참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푸른 산이 제 품에 영지와 난초로 대표된 기품있는 꽃을 키우듯, 우리들도 비록 가 난한 생활이라 하더라도 자시만큼은 지란처럼 고결하게 키워야 한다는 의연한 삶의 자세를 제시한다. 하지만 그런 생활 속에서도 끼니를 걸러야 할 정도의 견딜 수 없이 괴로운 때가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일손을 잠시 놓고 따뜻한 눈길을 서로 주고 받는 사랑과 신뢰로써 가난을 참고 견디라고 화자 는 자상하게 충고한다. 그러다 마침내 두 사람이 고통스런 삶을 마감하고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그들 부 부가 가난 속에서도 진정 행복했었음을 알고 있기에 우리들은 그들 부부가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 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무덤가에 이끼가 자욱하게 덮여 그들의 죽음을 거룩하게 할 것임 을 믿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어떠한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고 늠름하게 서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무등 산의 지혜를 가난으로 고통받는 우리 민족 모두에게 뜨거운 육성으로 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무 등산’의 ‘무둥’(無等)은 등급이 없는 평등을 이르는 불교 용어인 바, 이 작품을 통해 시인이 제시 하고 싶었던 인간 삶의 궁극적 지표도 결국은 ‘무등의 세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鞦韆圖(추천도), 그네 타는 그림, 길이 57cm, 너비 37.5cm, 신윤복, 국립중앙박물관 이 작품은 긴 머리를 땋은 강한 인상의 여인이 뒷뜰에서 그네를 뛰고 있는 장면과 나무 옆 그루터기 에 앉아 긴 곰방대를 물고 담배를 피우는 여인들을 묘사하고 있다. 신윤복의 도인과 관지(款識; 작가 의 이름과 함께 그린 장소나 일시, 누구를 위하여 그렸는지 등을 기록한 것)가 그림에 나타나 있으나 그가 직접 그린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여인들은 자태와 머리 모양새로 미루어 보아 기녀(妓女)로 짐 작된다. 화면의 중심은 구부러진 활엽수에 맞춰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약간 산만한 구성을 보이지만 인물의 묘사나 필치는 섬세한 편이다. 추천사(鞦韆詞) - 춘향의 말 1 / 서정주 / <서정주 시선>(1956) -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 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한 풀꽃더미들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 추천(鞦韆) : 그네 * 벼갯모 : 베갯모. 베개의 양쪽 마구리에 대는 꾸밈새. 조그마한 널조각에 수를 놓은 헝겊으로 덮어 끼우는데, 남자의 것은 네모지고 여자의 것은 둥글다. * 작품해설 : 이 시는 ‘춘향(春香)의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3편의 연작시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시는 대수롭지 않은 소재를 이용하여 그것을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세계로 끌어 올려 차원 높 은 이미지로 승화시키는 미당의 시작 능력(詩作能力)이 잘 발휘된 작품이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춘 향으로 이 ‘춘향’은 시인에 의해 새로이 성격화된 인물이다. 이 시의 ‘춘향’은 낮은 신분에서 오는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답답한 심경으로 그네를 타면서 ‘향 단’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고백·토로하는 고뇌의 여인이다. 이 시의 장면은 춘향과 이몽룡이 만나기 이전으로 소설에서는 그네를 타는 ‘춘향’의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춘향이 생각하는 바를 ‘그럴듯하게’ 보여 준다. 현실적 고뇌를 가진 ‘춘향’은 그네를 타는 행위를 단순한 유희가 아닌 땅 위의 현실적 인연을 끊어 버리고,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상징적 행동으로 생각한다. 현실을 떠나고 싶은 욕망과 의지는 ‘머언 바다로 / 배를 내어 밀 듯이’ 그넷줄을 밀어 달라는 ‘춘향’의 말로 나타난다. 그러나 아주 내어 밀 듯 그네를 밀어 달라고 하지만,‘수양버들’,‘풀곷데미’,‘나비’,‘꾀꼬리’들로 표상된 아 름다운 현실 세계에 대한 강한 집착 때문에 쉽게 떠나지 못하는 번뇌가 있다. 현실이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굳이 떠나려 하는 것은 자신의 소망을 이룰 수 없는 현실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 이다. 그래서 ‘춘향’은 좌초와 충돌, 곧 어떠한 제약도 없는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인 동경 의 세계에 도달하고 싶어한다. ‘춘향’은 이 고뇌에 찬 세상을 ‘채색한 구름같이’ 벗어나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초월적 세계 속의 존재가 되도록 ‘밀어 올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춘향’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현실적 깨달음을 얻고는 이내 ‘서으로 가는 달같이는 /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라고 독백을 한다. 그네가 아무리 하늘 높이 올라가더라도 다시 땅으로 떨어 지게 마련인 것처럼 ‘춘향’은 자신의 소망도 결국은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자각 (自覺)은 바로 ‘춘향’의 간절한 초월의 의지와 그것의 필연적 좌절을 상징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소망을 끝내 버릴 수 없어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밀어 달라고 한다. 파도가 어쩔 수 없이 다시 떨어져 내려오듯이 자신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깨닫고 있으면서도 화자는 이 현실 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렇듯 이 시는 ‘춘향’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실을 초극 하려는 의지와 현실적 불가능 사이에 놓인 인간의 본질적 비극성을 그리고 있다. 춘향유문(春香遺文) - 서정주 / <서정주 시선>(1956) -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여요. * 도솔천 : 욕계 육천(欲界六天) 가운데 넷째 하늘 하늘에 사는 사람의 욕망을 이루는 외원(外院)과 미륵보살의 정토인 내원(內院)으로 이루어졌다 함. * 작품해설 : 이 시는 죽음을 앞둔 ‘춘향’이 이몽룡에게 남기는 유서 형식의 작품으로, 시공을 초 월한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부드러운 독백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여성적인 섬세함과 부드러 움 속에 강렬한 영상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연은 임에게 하는 체념적 인사이고, 2연은 행복했던 지난날에 대한 회상과 함께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은 열렬한 애정을 표현한 부분이다. 3연은 멀고 먼 저승도 자신의 사랑보다는 가까이 존재한 다고 하며 죽음의 세계까지도 그녀의 사랑 속에 있음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4연은 생사(生死)와 시공 을 초월하는 자신의 사랑을, 지옥세 떨어져 썩은 물로 흐르거나 극락에 올라 구름으로 떠 있다 해도 결국은 도련님 곁이 아니겠느냐는 반어적 의문 형식으로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5연에서는 하늘의 구 름이 소나기가 되어 내려올 때, 자신도 함께 그 곳에 있을 것이라는 영원불변의 사랑을 다시금 강조 한다. 이렇게 이 시는 윤회전생(輪廻轉生)에 의해 ‘검은 물’ → ‘구름’ → ‘소나기’로 춘향을 변신시켜, 결코 소멸하거나 중단되지 않는 그녀의 영원한 사랑을 불교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화사(花蛇) - 서정주 / 『시인부락』 2호, 1936.12 -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 놈의 대가리 !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길 저 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 석유 먹은 듯 ……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 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 사향 : 사향노루의 사향샘을 건조하여 얻는 향료 * 박하 :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방에서는 잎을 약용하고 향기가 좋아 향료, 음료, 사탕제조에도 쓴다. * 꽃대님 : 색대님. 고운 색과 무늬가 있는 천으로 만든 대님. 대님은 한복 바지의 발목을 졸라매는 끈임. * 클레오파트라 : 로마시대 이집트의 여왕. 뱀에 물려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 작품해설 : 이 시는 첫 시집 『화사집』의 표제시로서 미당의 초기 시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의 초기 시는 자연보다는 인간을, 선보다는 악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선택함으로써 자연과 선의 세 계를 주된 주제와 소재로 다루었던 우리의 전통 시가에 대해 반기를 들게 되었다. 이 시는 원초적 생 명력의 상징적 존재로 서의 ‘배암’을 통해 소위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초기 시 세계의 문을 연 작품이다. 『화사집』은 ‘보들레르’의 퇴폐적 관능미와 저항 정신이 미당의 토속적 원생주의(原 生主義)와 결합됨으로써 탄생한, 한국시사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미적(美的) 세계의 확대와 구축이었다. 먼저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가 되는 ‘화사’는 꽃뱀을 뜻한다. 흔히 뱀은 그 징그럽고 꿈틀거히는 생김새로 인해 ‘악(惡)’을 상징하는 존재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는 여기에 ‘꽃’이 결합 된 꽃뱀이므로 뱀의 일반적인 의미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화사’는 표면적으로는 꽃 처럼 아름다운 빛깔과 무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징그럽고 꿈틀거리는 모습을 지니고 있는 양면성의 존재, 모순의 존재인 것이다. 이 작품은 얼핏 보아서는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유혹의 뱀’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뱀을 원시적 생명의 대상으로 보아 인간이 타락하기 전의 원초적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추구하고 있으며, 때 묻지 않은 생명의 신비를 탐구하고 있다. 1연은 아담 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배암’은 인간의 증오의 대상으로 태어난 슬픔 때문에 징그러운 몸뚱 이를 갖고 있다는 뱀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사향 냄새가 나는 향기로운 풀숲 길에서 발견한 ‘아름 다운 배암’을 ‘징그러운 몸뚱아리’로 인식하는 데서 ‘화사’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2연은 징그러 우면서도 매혹적인 이율배반의 ‘배암’의 모습을 ‘꽃대님’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님’은 한복 바지를 입운 뒤, 바짓가랑이 끝을 접어서 졸라매는 끈을 뜻한다. 뱀의 길이와 비슷할 뿐 아니라, 우 리와 친숙한 소재이므로 화사를 ‘꽃대님 같다’로 표현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러한 아름다움 은 3연에서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변화한다. ‘이브를 꼬여 내던 달변의 혓바닥’은 소리를 잃어버리고, 남은 것은 다만 ‘날름거리는 아가리’뿐이다. 옛날의 달변과 지금의 실어(失語)로 대비되는 ‘배암’의 슬픈 운명을 보며 화자는 ‘푸른 하늘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라’라며 뱀을 부추긴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는 존재이ㅡ 원죄적 모순성 에 대한 화자의 강한 저주와 증오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4연은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라는 하나의 시행으로, ‘물어뜯어’라며 부치기던 시행과 관 련되어 더욱 심한 저주와 증오를 드러낸다. 5연은 원죄적 숙명을 극복하려는 운명과의 대결 자세를 보여 준다.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라는 표현은 화자의 공격적 행위를 의미하지만, 화자는 곧바 로 뱀과의 대립에서 오는 긴장을 풀며, 뱀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자신의 내보루 옮기는 반성적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돌을 던지며 뱀을 뒤쫓는 화자의 행위는 뱀에 의해서 우리가 원죄를 얻게 된 데 대한 복수심 때문이 아니라, ‘석유 먹은 듯’ 불타는 ‘가쁜 숨결’로 인한 것임을 밝히며 그간 의 저주와 증오를 완화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가쁜 숨결’이란 뱀을 뒤쫓는 데서 오는 숨 가쁨이 아니라, 관능적인 숨 가뿜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화자에게서 우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 의식을 부정하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관능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석유 먹은 듯’의 반복과 생략 부호의 반복은 바로 ‘가쁜 숨결’의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표현이다. 4연의 ‘대 가리’는 남성의 성기를 충동적으로 느낀 뱀의 원형적 심상으로, 5연의 ‘석유~ 가쁜 숨결’로 이어 져 8연의 ‘순네’와 연결되고 ‘스물 난 색시’의 관능으로 확대된다. 6연은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으로 나타난 뱀을 두르고 싶다는 소유욕을 말하며, 7연에서는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클레오파트라의 고운 입술로 나타난 뱀의 입술이 화자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관능적 욕망을 보여 준다. 8연은 관능과 생명력이 고조된 연으로 스무 살 ‘순네’의 고운 입 술을 뱀의 입술로 인식하는 화자는 마침내 ‘순네’가 뱀이 되어 자신의 몸속으로 스며들기를 바란 다. 결국 이 시는 인간의 원시적 생명력과 욕망에 오는 악마적 전율과 예찬을 통해 서구적 발상과 토 속적 사고의 융합을 교묘하게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둥이 - 서정주 / 『시인부락』 창간호, 1936.11 -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 작품해설 : 이 시는 전 5행에 불과한 짧은 형식이지만, 언어의 관능적 융법과 생명 현상에 대한 집 착으로 대표되는 생명파 시인으로서의 미당의 초기 시 세계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먼저 피를 토 하듯 우는 슬픈 울음을 ‘꽃처럼 붉은 울음’으로 표현한 데서 언어의 공감적 표현과 관능적 용법을 찾아볼 수 있다. 꽃처럼 붉은 피가 배어나는 처절한 울음 속에는 단순한 감각적 차원을 넘어선 근원 적인 체럼 의식까지 깃들어 있다. 그리고 생명 현상에 대한 집착은 ‘애기 하나 먹는’ 것으로 나타 난다. 어둠 속에서 숨어 살며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문둥이’는 그저 ‘해와 하늘 빛이’서러울 뿐이다. 문둥이는 해와 하늘빛이 있는 대낮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삶을 갈망한다. 문둥이는 ‘얘기 하나 먹’음으로써 병을 고치려 하지만, 이 같은 생에 대한 집념 이 부도덕함을 깨닫고, 마침내 자신의 숙명적 운명에 대한 몸부림으로 인하여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 게되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시인의 체험이 아니다. 그러나 시인의 풍부한 상상력과 함 께, 인간성이 파멸된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성이 회복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그의 강한 생명 의식 이 「문둥이」를 낳게 한 것이다. ▲ 가미카제 특공대원들. 미당은 특공대원으로 죽어간 조선청년을 찬양하는 '송정오장 송가'를 썼다. ▲ '송정오장 송가'가 실린 〈매일신보〉( 1944. 12. 9.) * 서정주, 친일은 하늘뜻에 따랐다? 이 풍진 세상에 / 친일문학 이야기 / by 낮달 2018 2018. 12. 17. 이 글은 2019년 5월에 출판된 단행본『부역자들-친일 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의 초고임. [관련 기사 : 30년 문학교사가 추적한 친일문인의 민낯] 서정주(徐廷柱, 1915~2000)는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시인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그의 서정시가 이른 성취는 곧 한국 현대시의 성취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교과서마다 다투어 그의 시를 싣고, 지 역의 나이 지긋한 시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온 그의 제자들이다. 진보 문 학 진영의 원로 고은도 그의 제자다. 그는 첫 시집 『화사집』(1941) 이래 『귀촉도』(1946), 『시선』(1955), 『신라초』(1960), 『동천』(1968), 『질마재 신화』(1975), 『늙은 떠돌이의 시』 (1993)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펴내면서 가히 시선(詩仙)의 지위를 얻은 듯하다. 그는 마치 우리 현대 시단의 살아 있는 '표준' 같은 존재로 보이기도 했다. 서정주는 ‘화사집’ 시대, ‘귀촉도’ 시대, ‘동천-신라초’ 시대 등으로 명명된 개인의 시사(詩 史)가 버젓이 고교 교과서에 오를 만큼의 지위를 지닌 흔치 않은 시인이었다. 초기의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에서 ‘동양사상’과 ‘불교와 토착적 전통의 융화’를 거쳐 ‘우주와 공감할 수 있 는 시적 깊이’까지 이른 미당 시세계의 변천은 그대로 우리 현대시사의 주요 흐름의 일부였던 것이다. 서정주의 시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것은 고교 시절이다. 형이 사 온 민음사판 얄팍한 미당 시집이 있었는데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책머리에는 “스승의 시는 한 편도 뺄 수 없다”는 엮은이 고은 시인의 글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은은 70년대에 민중시를 쓰면서 스승과 정신적으 로 결별하게 된다.) 그 시집에서 읽은 ‘자화상’과 ‘밤이 깊으면’을 달달 외워버렸다. ‘밤이 깊으면’은 미당이 젊은 시절, 자신의 아내에게 바친 시라는데, ‘달래마늘같이 쬐그만 숙아’ 어쩌고 하는 시구의 울림이 어 쩐지 마음에 감겨왔던 것이다.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 시 ‘자화상’은 미당이 스물세 살 적에 쓴 시다. ‘나를 키운 건 8 할이 바람이다’는 시구로도 유명한 이 시는 고교 문학 교과서에도 더러 실려 있고 모의고사에도 가 끔 출제되기도 한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실제 그의 부친은 종이 아니라, 전북 고창의 거부 인촌 김성수 집안의 마름이었다고 한다. 미당은 전북 부안의 줄포공립보통학교를 나와 1929년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에 보결생으로 입학했 다. 이듬해 11월 광주학생운동 기념시위를 주도해 퇴학과 함께 구속되었으나 나이가 어려 기소유예되 었다. 1933년 중앙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해 12월 <동아일보>에 시 ‘그 어머니의 부탁’으로 등단했다. 1936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壁)’이 당선되었고,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한 후 11월 부터 다음 해 12월까지 시가(詩歌) 중심의 문예 모임인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했다. 1939년 만주 로 가서 회사원으로 일하다 1941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 미당 서정주가 펴낸 시집들. 같은 해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을 발간하고 동대문여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1942년 봄까지 근무했 다. 서정주가 문필로 친일 대열에 합류한 것은 같은 해 7월, <매일신보>에 평론 ‘시(詩)의 이야기- 주로 국민시가(國民詩歌)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대동아공영권이란 또 좋은 술어(述語)가 생긴 것이라고 나는 내심 감복하고 있다. 동양에 살면서도 근세에 들어 문학자의 대부분은 눈을 동양에 두지 않았다. 몇몇 동양학자들이 따로 있어 자기들의 일 상 사용하는 한자의 낡은 문헌들을 자의적(字義的)으로 해석해 내는 정도에 그쳤었다.…… 시인은 모 름지기 이 기회에 부족한 실력대로도 좋으니 중국의 고전에서 비롯하여 황국(皇國)의 전적(典箱)들과 반도의 옛것들을 고루 섭렵하는 총명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동양에의 회귀가 성(盛)히 제창되는 금일” - <매일신보>(1942. 7. 13.~17.) 불과 스물여섯, 등단한 지 10년도 안 된 젊은 시인은 ‘동방 전통의 계승과 보편성에의 지향’을 내 세우면서도 은근히 ‘대동아공영권’의 논리를 내면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1943년 10월에 최재서와 용산 주둔 조선군이 김제평야에서 진행한 전쟁연습에 조선군 보도반원 자격으로 종군했다. 그 후, 최재서가 경영하던 인문사에 입사하여 1944년 2월까지 일본어로 간행된 친일노선의 문예지인 <국민문학>과 <국민시가>를 편집했다. 서정주는 주로 시·소설·잡문·평론 등을 통해 일제에 협력했 다. <국민문학> 1943년 10월호에 발표한 ‘항공일(航空日)에’ 는 일제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동원을 독려하기 위해 제정했던 항공일 행사에 맞춰 쓴 기념시다. 아아 날고프구나 날고 싶어 부릉부릉 온몸을 울려 사라진 모든 것 파랗게 걸린 저 하늘을 힘차게 비상함은 내 진작 품어 온 소원! <매일신보>에 발표한 ‘헌시(獻詩)’(1943. 11. 16.)는 ‘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라는 부제 를 달고 있다. 학도지원병 제도는 일제가 1943년 8월부터 실시한 징병제와 함께 식민지 청년들에게 황국신민의 의무로 강요된 전쟁동원령이었다. 이 시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학도지원병의 영웅적 전투 행위를 그려내면서 조선 학생들에게 학도지원병 출정을 독려하고 있다. 어머니여, 저 용맹스런 함성은 저 곳이리 푸른 혈조가 끊임없이 내려와 커다란 목소리, 나를 부른다 아아, 기쁘도다 기쁘도다 희생 제물은 내가 아니면 달리 없으리 어머니여, 나 또한 창을 들고 일어서리 배를 띄우리 사이판으로! 매킨·타와라로! 아투로! -‘무제- 사이판 섬에서 전원 전사한 영령을 맞이하며’(<국민문학> 1944년 8월호) 중에서 무제- 사이판 섬에서 전원 전사한 영령을 맞이하며’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사이판 등지에서 일어난 일본 병사들의 옥쇄(玉碎)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를 통해서 미당은 옥쇄를 감행한 병사들 과 하나가 되어 적과 맞서 싸우자고 선동했다. 일반에도 널리 알리진 ‘송정오장 송가’(<매일신보> 1944. 12. 9.)는 1944년 11월 24일 한국인 출신 소년 비행병으로 제일 먼저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로 전사한 인재웅(창씨명 송정수웅)을 추모하는 내 용이다. 서정주는 이 시에서 미국과 영국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조선 병사의 죽음 을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위한 영광스런 자기희생인 양 노래했다. 서정주는 수필 ‘인보정신(隣保精神)’(<매일신보> 1943. 9.1~9.10.)에서는 이웃 간에 일어난 촌극을 통해 일본 국기에 대한 흠모의 정을 그렸다. ‘스무 살 된 벗에게’(<조광> 1943년 10월호)와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춘추>1943년 10월호)에서는 일제의 징병에 젊은이와 어머 니들이 적극 부응해야 한다고 선전했다. “이보단 앞서서 이미 우리들의 선배의 지원병들은 우리들의 것이요 동시에 천황 폐하의 것인 그 붉 은 피로써 우리들 앞에 모범을 보이어 우리들의 나갈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미 야스쿠니 신사의 영 령이 된 한 사람의 이인석(李仁錫) 상등병의 피는 절대로 헛되이 흘려져 버리고 말 성질의 것은 아닙 니다. 가나우미. 땅에 흘려진 피는 또한 늘 귀 있는 자를 향하여 외치는 것이라는 것도 총명한 그대 는 잘 알 것입니다. 지원병들의 뒤를 이어서 인제부터 젊은 사람들은 스물한 살만 되면 부절(不絕)히 일어서서 일본제국 군인으로서의 자기를 단련해 갈 것입니다.” - ‘스무 살 된 벗에게’ 중에서 서정주는 소설로도 일제에 협력했다. <조광>에 발표한 ‘최체부 (崔遞夫)의 군속지망’에서 침략전쟁 에 복무하는 것이 부와 명예를 누리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였다. 자신의 갈래도 아 닌 소설을 써서 거기 일제의 전쟁 논리를 따른 것이다. “덴노헤이까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하고 큰 획으로 맨 처음 줄을 아로새긴 밑에, 신문지를 두 쪽 에 낸 것만 한 백로지 위에 탄원의 문구가 가득히 쓰이어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최체부의 소 원은 마침내 관계 관원들을 울린 바 있어서, 그의 벗인 해리면 사무소의 가네무라 군과 같이 얼마 후 에 두 사람 은 군속이 되어 먼 남녘 나라로 떠났다. 최체부는 떠날 달부터 꼭꼭 그의 집에 돈을 부치 어, 집안은 전보다 살기에 궁색지 않았고, 마을사람들의 끝없는 호의와 존경 속에서 최체부의 어머니 도 손자를 따라 아침 해가 떠오를 때면 규-조-요하이(궁성요배)를 하는 갸륵한 습성이 생기었다.” - 소설 ‘최체부(崔遞夫)의 군속지망’(<조광> 1943. 11) 결말 부분 해방을 맞이할 때 서정주는 우리 나이로 갓 서른이었다. 그것은 그가 일제에 협력하라는 압력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뜻인데 이는 그의 친일이 자신의 자발적인 행위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이다. 그러나 자신의 부역행위에 대해 서정주는 어떠한 반성의 뜻도 표하지 않았다. <서정주문학전집>에 실린 자전적 성격의 글인 ‘천지유정’의 ‘흑석동시대’와 ‘창피한 이야기들’ 에서 그는 자신을 ‘친일파’, ‘부일파’로 부르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자신은 다만 일본의 “욱일승천지세 밑에서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로 체념하면서 살아간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강변 했던 것이다. '하늘뜻에 따라 일제에 순응했다'는 것인데, 반민족적 행위에 '하늘뜻' 운운하는 것은 '파렴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당은 1992년 월간 <시와 시학>에서도 자신의 친일행적 시비와 관련,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국민총동원령의 강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친일문학을 썼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고백했다. 일찍이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 다. 못 가도 몇 백 년은 갈 줄 알았다”는 토로와도 맥을 잇는 발언이었다. 해방 후 서정주의 삶은 여느 친일 문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여 시분과위원장으로 활동했고, <동아일보>에서 사회부장, 문화부장으로 활동하다 정부 수립 후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으로 근무했다. 어떤 시대든 주류로 살아가는 데에 그는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창립과 함께 시분과위원장으로 활동했고, 전기 <이승만 박사전>(삼팔사)을 발 간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종군문인단을 결성해 활동했다. 이후 그는 정년까지 대학 교수로 후진 을 가르쳤고, 문단의 중진과 원로로서의 지위를 누리면서 평탄한 삶을 살았다. 서정주는 해방 후 이승만 정권과의 관계도 만만치 않았지만,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의 신군 부와의 유착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 후보의 찬조 연사, 대통령 당선 축하 축시 헌사, 광주항쟁 이후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행한 군사 파쇼 정권에 대한 지지 발언 등으로 일 제와 독재정권 주변을 맴돌며 권력과 야합한 인물로 지탄을 받았다. ▲고향인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폐교 터에 세워진 미당시문학관. 1987년 1월 18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생일 축하장에서 자작시 ‘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 에 드리는 송시’를 낭독했다. 낯부끄러운 찬양과 아부로 점철된 이 시는 문인이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 극한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전략…]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육천만 동포의 지지를 받고 있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홍기할 발판을 이루시고 쥐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서정주는 2000년 12월에 사망했고,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2001년 6월, <중앙일보>에서 미당문 학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2001년에는 고창에 미당시문학관이 건립되었으며, 이곳에서 2005 년 이후 매년 가을 ‘미당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미당시문학관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유족회의 친일·친독재 작품 병행전시’ 요구를 받아들 여 2006년부터 문학관 안에 친일작품과 전두환 생일 축시 등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게 그나마 우리가 청산한 식민지 역사의 일부라고 자위할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다. 2014. 5. 28. 낮달 무등을 보며(서정주) / 시낭송 조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