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술래
- 이동주 / 시집 <강강술래>(1955) -
여울에 몰린 은어(銀魚)떼.
삐비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비잉 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 래에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
백장미(白薔薇) 밭에
공작(孔雀)이 취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뇌누리에 테이프가 감긴다.
열두 발 상모가 마구 돈다.
달빛이 배이면 술보다 독한 것.
기폭(旗幅)이 찢어진다.
갈대가 스러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 뇌두리 : 물살, 소용돌이의 옛말
* 상모: 벙거지의 꼭지에다 참대와 구슬로 장식하고 그 끝에 해오라기의 털이나 긴 백지오리를 붙인
것. 털 상모와 열두 발 상모가 있다.
* 이동주(1920~1979)
전남 해남 출신, 시인. 남성고교 교사. 전북대학교 원광대학교 강사. 호남신문 문화부장
1920년 전남 해남 출생. 1979년 위암으로 사망. 혜화전문(現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중퇴. <조광>,
1950년 <문예> 추천으로 등단. 시집 『혼야(婚夜)』(1951)와 『강강술래』(1955), 시선집 『산조(散
調)』(우일문화사, 1979) 등과, 유고 시집 『산조여록(散調余錄)』과 시선집 『이동주 시집』(범우
사, 1987), 수필집 『그 두려운 영원에서』등 100여 편의 수필과 『빛에 싸인 군무(群舞)-문인 실명
소설집』(문예비평사, 1979) 등 50여 편의 소설을 남겼다.
강강술래. 무형문화재 제8호로, 해마다 팔월 한가윗날 밤, 둥그런 달빛 따라 곱게 단장한 여인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마을 언덕에 오르면, 그새 풍악 한마당 선창에 뒷소리 ‘강강술래’가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돌면서 뛰노는 여인들의 놀이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수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 군세의 많음을 보이기 위하여, 또는 적군의 해안상
륙을 감시하기 위해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 산봉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강
강술래를 부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전란이 끝난 뒤 해안 지대의 부녀자들 사이에 당시를
기념하기 위하여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며 놀던 것이 전라도 일대에 퍼져 전라도 지방 여성들
의 민속놀이가 되었다. ‘강강술래’라는 말을 두고 한자의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 -강한 오랑
캐가 물 건너 온다- 에서 온 것으로 유추하기도 하나, 그것이 아니라, - ‘강강’의 ‘강’은 주위・
원(圓)이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고, ‘술래’는 한자어로 된 ‘巡邏(순라)’에서 온 말로서 ‘경계하
라’는 뜻이니, 이는 ‘주위를 경계하라’는 당시의 구호인 것으로 생각된다.
화려한 대원무(大圓舞) 사노라 서럽게 사노라 하면 어김없이 반갑게 찾아드는 팔월 한가위. 담장 안
부엌과 장독간을 세월 닳도록 숨어버린 이녁의 안이다. 모처럼 지기 펴고 놀아보세. 그렇게 거울 앞
에 앉아 분단장 옷매무시하고 삼삼오오 손잡고 산에 오르면, 이녁들은 여울에 몰린 은어(銀魚)떼가
된다. 비잉 둘러지는 달무리 삐비꽃 손들의 둘레가 비잉 빙 돈다.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 레에’
선창이 돋고 이내 뒤따라나서는 뒷소리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 레에 가아응 가아응 수우워얼 레에-
아! 보고 또 봐도 백장미 밭 정화된 달빛세상 아래 공작들이 깃을 접고 취한 양 그만 내가 이녁을 잃
고 말았다. 세상만사! 모든 응어리들을 오늘 이 날 이 밤만은 훌훌 떨쳐버리고 뛰자 뛰자 뛰어나 보
자. 강강술레 가쁘게 돌아가는 뜀박질이 소용돌이에 휘돌리고 열 두발 상모가 마구 도는 것이 휘몰이
다. 강강술래강강술래집단원무(集團圓舞). 이는 코사크 족, 특히 동구권의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
아, 루마니아 등지에서 볼 수 있는 민속춤이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다르다. 우선 그들은 자연발
생적에다 남녀 혼성이지만, 우리는 역사적인 것이 부녀자들에 한하는 놀이이다. 그리고 ‘놀이’의
특성상 여인들만의 카타르시스이다. 그렇지만 시인의 <강강술래>는 어두운 색채를 물리치고 밝고 화
사한 빛깔로 화려한 대원무인 것이 시의 건강함이 돋보인다.
강강술래(국립남도국악원) / 국악한마당(KBS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