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김광섭> 성북동비둘기 / 생의감각 / 마음 / 저녁에

이름없는풀뿌리 2023. 10. 29. 08:48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 <월간문학>(1968)창간호 -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이 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진행돈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으로부터 점차 소외되어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성북동 비둘기’를 통해 보여 주는 작품이다. 따라서 비둘기는 사랑돠 평화, 축복의 메시지 전 달자라는 일반적 상징을 뛰어넘어 근대화, 공업화로 소외되어 버린 현대인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며, 그에 대한 관 찰자 내지 비판자로 형상화되어 있다. 기·서·결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1, 2연에서 묘사를 통해 비둘기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다음, 3연에서 명시적으로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번지가 새로 생겼다’는 표현은 주택가가 들어섰다는 뜻이지만, 문명의 침투로 인한 자연의 파괴를 의미하며, ‘번지가 없어졌다’른 표현은 비둘기가 보금자리를 잃어버렸음을 뜻한다. 또한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 ‘채석장 포성’ 등은 현대 문명의 병폐를 의미하며, ‘가슴에 금이 갔다’는 것은 이러한 문명의 병폐로 인해 파괴된 인간성, 즉 사랑이나 평화가 모두 사라졌음을 뜻한다. 그리고 ‘새벽부터 돌 개는 산울림에 떨다가’와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와 같은 구절은 현대문명에 의해 파 괴된 인간 존재의 애처로움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기계 문명으로 인해 점차 세속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 이제 는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어 버린 그들이 ‘금방 따낸 돌 온기에’ ‘향수’ 를 느낄 수밖에 없는 비극적 정경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자연의 파괴로 말미암아 생존의 터를 상실한 비둘기가 채석장 포성에 지향없이 쫓 기며 넉넉했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비극적 모습을 제시한다. 이 시는 이를 통해 오늘날의 황폐화된 인간 삶을 고발 하고 참다운 삶의 회복을 희구하는 한편,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촉구한다. 그 러므로 이 시는 ‘비둘기’를 통해서 현대 문명의 비정함과 소외의 비극을 제시하여 사랑과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과 인간성 회복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보듯이, 감광섭의 시는 근원에의 향수와 사회 비평 의식에 입각해 있다. 그의 시는 현대적 의미의 관 념을 깊이 간직하면서도 관념어의 구사나 표현의 추상적 부분을 제거하여 구체적 표현의 미를 세련된 솜씨로 나타 낸 것이 특징이다. 생의 감각 - 김광섭 / <현대문학>(1967) - 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 작품해설 : 이 시는 1965년 고혈압으로 쓰러져 일주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다시 소생한 체험을 구상화한 작품이 다. 여기서 '생의 감각'이란, 생에 대한 자각인 '부활'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시에는 인생론적인 면과 소생 과정 의 극적인 면이 동시에 수용되고 있다. 고통과 절망으로 이어진 투병 체험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 생명의 의 미와 인간 존재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동사에 나타난 시제를 유심히 살펴보면 1연과 2연에서는 현재형 시제가 사용되었으나 3연에서는 과거형 시제가 쓰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로 보 아 3연의 내용은 병마에 시달렸던 지난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추리할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기슭에 피어 있 는 채송화가 '나'에게 생의 감각을 흔들어주었다는 것은, 채송화가 '나'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존재로 작용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 - 김광섭 / <문장>(1939) -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바람, 구름 → 세속적인 인간사 * 고요한 물결 → 잔잔한 이미지를 주지만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쉬운 대상 * 돌을 던지는 사람 → 충격을 주거나 마음의 상처를 주는 사람 * 고기를 낚는 사람 → 나의 이익을 빼앗아 가지려는 사람 * 노래를 부르는 사람 → 달콤하게 유혹하거나 마음의 고요함을 방해하는 사람 * 물가 → 마음 * 별, 숲 →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 환경 * 백조 → 희망과 이상, 평화로운 마음 속에만 깃들일 수 있는 깨끗하고 맑은 시심 * 꿈 → 번잡한 생각들을 가라 앉히고 백조를 기다리는 마음 * 꿈을 덮노라 → 정신적 순결을 지키려는 태도 * 작품해설 : 이 시는 곱고 부드러운 격조와 적절한 은유로 아름다운 언어의 조화를 이룬다. 은유와 상징이 잘 구 사되어 세련미와 함께 지적 관조도 보인다. 자기의 마음을 고요한 물결에 비유하여, 심리적 갈등과 함께 파문을 일으키기 쉬운 마음을 지키려는 경건한 자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초기 작품에 속하는 이 시는 자기의 꿈을 잃지 않고 '밤마다 덮음'으로써 시인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지적 관조를 곱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저녁에 - 김광섭 / 『월간중앙』 20호, 1969. 11 -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작품해설 : 이 시는 3연 11행의 짧은 형식이지만, 구 속에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 다. 최근 대중가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는 ‘저녁에’라는 저목부터 여러 가지를 암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저녁은 안식과 평화의 시간이다. 하루의 분주하고 고단한 일상에서 가정으로 돌아오는 저녁 시간, 하늘에선 하나 둘 별들이 떠오르고, 안식과 평화의 마음속에선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자리 잡 기 시작한다.이러한 안식의 시간에 떠오르는 무수한 별들은 사람들에게 끝없는 외로움과 하염없는 그리움에 빠져 들게 하기 마련이다. 밤이 깊어 갈수록 별들은 더욱 밝은 빛으로 빛나지만, 상대적으로 사람들은 점점 고뇌와 어 둠으로 물드러가게 된다. 어둠 속에서 빛나기 시작하는 별들의 그 밝음과, 그에 대조되는 인간 현실의 고뇌와 어 둠은 결국 ‘저렇게 많은 중에서 / 별 하나’와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나 하나’의 대응을 통해서 단독자(單 獨者)로서의 인간적 고절감(孤絶感)을 심화시켜 준다. 어쩌면 이 1연은 어둠 속에 빛나는 밝은 별빛으로써 인간 세계의 온갖 더러움과 어둠을 정화하고 싶은 시인의 소망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2연에서는 ‘밝음 속에 사라지는 별’과 ‘어둠 속에 사라지는 나’의 대조를 통해 ‘별’로 대표되는 자연과 ‘나’로 대표되는 인간과의 영원히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보여 준다. 또한 역설적으로 어둠이 깊을수록 별이 더 욱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도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고소 참된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소중한 깨 달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별과 나의 거리감은 곧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인간관 계의 단절감을드어내고 있으며, 수많은 군중 속에서 살면서도 영원히 혼자일 수밖에 없는 단독자로서의 숙명성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단독자로서의 숙명적인 고절감은 마침내 ‘이렇게 정다운 / 너 하나 나 하나는 /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 시 만나랴’라는 3연을 통해 유한적 인생으로서의 존재론적 생의 인식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인 단독자로 태어나 무수한 만남을 겪으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지만, 결국에는 태어 날 때와 마찬가지로 홀로 죽어 가는 일회적 존재에 불과하는 생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 다시 만나랴’라는 구절 속에는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설마 죽는다 하더라도 저 세상 어 디선가 꼭 다시 만나야 한다는 안타깡누 기대와 간절한 소망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밝음 속에 사라지는 별’의 외로운 모습은 바로 모진 세파를 헤치며 힘겹게 살아가다가 홀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적 고독과 운명을 상징한다. 이렇게 볼 때, ‘별’과 ‘나’, 어둠과 밝음의 대조는바로 영 혼과 육신, 현실과 이상, 그리고 생과 사의 갈등 속에서 전개되는 인간의 숙명적 비극성을 표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물질문명으로 인해 점차 인간적인 따뜻함과 진솔망을 상실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외로운 자 화상을, ‘별’과 ‘나’의 대조를 통해 존재론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표현해 낸 성곡적인 작품이라 평할 수 있다. * 김광섭(金珖燮, 1904-1977)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이산(怡山). 함경북도 경성 출신. 아버지는 김인준(金寅濬)이며, 3남3녀 중 장남이다. 1917년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중동학교로 옮겨 1924년에 졸업했다. 1926 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같은 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적을 둔 이헌구(李軒求) 와 친교를 맺었으며, 이어 정인섭(鄭寅燮)과 알게 되어 해외문학연구회에 가담하였다. 1932년 대학졸업 후 귀국하 여 1933년 모교인 중동학교의 영어교사가 되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하여, 1941년 일본경 찰에 붙잡혀 3년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문화 및 정치의 표면에서 활동하였다. 중앙문화협회의 창립,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민주일보 사회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민중일보 편집국장,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거쳐,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 령 이승만(李承晩)의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이후에는 주로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자유문학가협회를 만 들어 위원장직을 맡고, 『자유문학(自由文學)』지를 발행했 다. 그가 문학에 뜻을 갖게 된 것은 대학시절 이헌구와 교분을 맺으면서부터인데, 1927년에는 와세다대학의 우리 나라 학생 동창회지인 『R』에 시 「모기장」을 발표했다. 1933년 『삼천리(三千里)』에 「현대영길리시단(現代英吉利 詩壇)」을 번역, 발표했고, 같은 해 시 「개 있는 풍경」을 『신동아』에, 평론 「문단 빈곤과 문인의 생활」을 『동아일보』(1933.10.2.)에 발표했다. 이어서 1934년 『문학(文學)』에 「수필문학고(隨筆文學考)」, 『조선문학 (朝鮮文學)』에 「현대영문학에의 조선적 관심(朝鮮的關心)」을 발표하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했다. 본격적으로 시작(詩作)에 들어선 것은 1935년 『시원(詩苑)』에 「고독(孤獨)」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 시는 일본에의해 주권을 상실한 좌절과 절망을 읊은 것이었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동경(憧憬)」·「초추 (初秋)」 등이 있는데, 만주사변을 배경으로 한 고독·불안·허무의식이 배경이 된 것들이었다. 1937년 극예술연 구회에 참가, 연극운동에 가담하면서 서항석(徐恒錫)·함대훈(咸大勳)·모윤숙(毛允淑)·노천명(盧天命) 등과 교 유했다. 1938년 제1시집 『동경(憧憬)』을 간행했다. 광복 후에는 민족주의 문학을 건설하기 위해 창작과 단체활동을 병행 했다. 이 무렵의 시로는 「속박과 해방」·「민족의 제전」 등이 있는데, 광복의 환희와 민족의식을 표현한 것이 었다. 한편, 계도적인 민족주의 문학론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경향신문』에 「정치의식과 문학의 기본이념」 (1946), 『민주일보』에 「문학의 당면 임무」(1946), 『만세보(萬歲報)』에 「민족문학의 방향」(1947), 『백민 (白民)』에 「민족문학을 위하여」(1948)·「민족주의 정신과 문학인의 건국운동」(1949) 등을 발표했다. 이러한 일련의 시론(時論)들은 그의 시정신과 동일한 맥락을 이루는 것이었다. 1949년에 간행된 제2시집 『마음』과 1957 년에 간행된 제3시집 『해바라기』의 시는 민족의식과 조국애가 더욱 확대되고 심화된 시편들이었다. 작품 「마음」은 맑은 물과 백조의 조응을 통하여 한 생명의 실상을 읊은 것이고, 「해바라기」는 높은 이념을 해 로써 상징하고 민족의 지표를 제시한 것이었다. 후기의 작품들은 1966년에 간행된 시집 『성북동 비둘기』와 1971 년 간행된 『반응(反應)』에 수록되었는데 전자에서는 병상에서 터득한 인생·자연·문명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1960년대의 시대적 비리도 비판하였고, 후자는 사회성을 띤 시들로서 1970년대 산업사회의 모순 등을 드러내고 있 다. 이 때의 시편들은 관념이 예술적으로 세련, 승화되어 관조와 각성의 원숙경을 보여준다. 그는 민족적 지조를 고수한 시인이며, 초기의 작품은 관념적이고 지적이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인간성과 문명의 괴리현상을 서정적으 로 심화시킨 시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밖에 저서로는 『김광섭시전집』(1974)과 번역시 『서정시집(抒情 詩集)』(1958) 등이 있다. 1957년 서울특별시문화상, 1970년 문화공보부예술상, 같은 해 국민훈장모란장, 1974년 에는 예술원상등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김광섭론」(김현승, 『창작과 비평』, 1969.봄호) 「김광섭론」(정태용, 『현대문학』, 1967.4.) 저녁에...(김광섭) / 노래 신재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