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랜 사랑
- 고재종 / 날랜 사랑 / 창비 / 2000년 12월 -
얼음 풀린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봄햇발 튀는구나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 세울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
그리운 죄
- 고재종 -
산아래 사는 내가
산 속에 사는 너를 만나러
숫눈 수북이 덮힌 산길을 오르니
산수유 고 열매 빨간 것들이
아직도 옹송옹송 싸리울을 밝히고 서 있는
네 토담집 아궁이엔 장작불 이글거리고
너는 토끼 거두러 가고 없고
곰 같은 네 아내만 지게문을 빼꼼이 열고
들어와 몸 녹이슈! 한다면
내 생의 생생한 뿌리가 불끈 일어선들
그 어찌 뜨거운 죄 아니랴
포르릉 ,어치가 날며 흩어놓은
눈꽃의 길을 또한 나는 안다.
세한도(歲寒圖)
- 고재종 -
날로 기우듬해 가는 마을 회관 옆
청솔 한 그루 꼿꼿이 서 있다.
한때는 앰프 방송 하나로
집집의 생쥐까지 깨우던 회관 옆,
그 둥치의 터지고 갈라진 아픔으로
푸른 눈 더욱 못 감는다
그 회관 들창 거덜 내는 댓바람 때마다
청솔은 또 한바탕 노엽게 운다.
거기 술만 취하면 앰프를 켜고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이장과 함께.
생산도 새마을도 다 끊긴 궁벽, 그러나
저기 난장 난 비닐하우스를 일으키다
그 청솔 바라보는 몇몇들 보아라.
그때마다, 삭바람마저 빗질하여
서러움조차 잘 걸러내어
푸른 숨결을 풀어내는 청솔 보아라.
나는 희망의 노예는 아니거니와
까막까치 얼어 죽는 이 아침에도
저 동녘에선 꼭두서니빛 타오른다.
* 1957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동구밖집 열두 식구」 등 7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 시집으로 『바람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꽃의 권력』, 『고요
를 시청하다』와 육필시선집 『방죽가에서 느릿느릿』이 있고,
* 산문집으로 『쌀밥의 힘』,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 『감탄과 연민』과 시론집 『주옥시
편』, 『시간의 말』
* 수상 :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
*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을 역임
제주찾기(세한도) / KBS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