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값
- 정끝별 -
얼마나 오래 혼자인가요?
얼마나 오래 말을 해본 적이 없나요?
얼마나 오래 날짜와 날씨와 요일과 요즘을 잊나요?
얼마나 오래 거울에서 얼굴을 보지 않나요?
얼마나 오래 여기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나요?
얼마나 자주 자기를 웃어넘기나요?
얼마나 자주 누군가의 말과 눈빛에 베이나요?
얼마나 자주 이가 상할 정도로 이를 악무나요?
얼마나 자주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얼마나 자주 칼날에 혀를 대보나요?
얼마나의 해저를
산 채로 파고들어 저를 묻고 적을 묻다
두 눈이 불거지고 온몸이 투명해져 스스로 빛을 낼 때면
눈물에 부력이 생기고
가슴에 부레가 차올라
마침내 심해의 바닥을 치고 솟아오른다 언제나 너는
모래는 뭐래
- 정끝별 -
모래는 어쩌다 얼굴을 잃었을까?
모래는 무얼 포기하고 모래가 되었을까?
모래는 몇천 번의 실패로 모래를 완성했을까?
모래도 그러느라 색과 맛을 다 잊었을까?
모래는 산 걸까 죽은 걸까?
모래는 공간일까 시간일까?
그니까 모래는 뭘까?
쏟아지는 물음에 뿔뿔이 흩어지며
모래는 어디서 추락했을까?
모래는 무엇에 부서져 저리 닮았을까?
모래는 말보다 별보다 많을까?
모래도 제각각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래는 어떻게 투명한 유리가 될까?
모래는 우주의 인질일까?
설마 모래가 너일까?
허구한 날의 주인공들처럼
세세세
- 정끝별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문학동네, 2019 -
시간이 너라면 시간이 나라면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가 놓친 엽서 한 장이라면
신데렐라는 어려서 나보다 늦게 늙고
계모와 언니들 보다 먼저 춤추고
서리서리 찬 바람에 너보다 오래 울고
푸른 하늘 은하수에 무럭무럭 차오르는
하얀 쪽배는 대박일까 쪽박일까
계수나무 한 나무에 도끼 한 자루는
눈먼 바람 찬 바람에 썩어가고
울지 마요 그믐의 구름
가지 마요 그날의 여름
너랑 나랑은 그렇게 빨리
서로에게 털린 두 손을 백기처럼 내밀고
그래도, 다시, 세세세(歲歲歲)!
과일의 일과
- 애너그럼을 위한 변주 -
- 정끝별 /『시로여는세상』 2016 여름 -
창문 너머는 춘망
봄 추위를 내모는 봄 취우와
두엄과 어둠과 엄두와 더움의
우매한 애무에
망고의 오감이 쓰윽
수박의 박수와 유자의 자유가 으쓱
파인애플의 잎은 파래
이상의 레몬은 이상의 메론
앵두는 운대하고 자몽은 종마답지
으 오렌지 하나, 한낮의 에로
신이한 시인들이
공중 옥중에 매단 어언의 언어
지구의 주기에따라
다른 채도로 초대된 서정의 정서
깁스한 시급
- 애너그럼을 위한 변주 -
- 정끝별 /『시로여는세상』 2016 여름 -
시방 사회의 비상 해소는
소비가 보시
알바의 물가는 아랍보다 가물고
당일의 일당이 담긴
알바의 바랑을 메고
저기 거지처럼
사라다를 다 사라로 읽는
박리다매의 갈비마대처럼
성장에 쓸어담긴 정상
얼룩진 얼굴로
자소서와 조사서
사이를 이사하면서 매일 매일
대박전문 앞에서 문전박대당하는
두엄 속 어둠에 안긴 인간의
지지 않는 지지
비굴한 굴비에게도
미개한 개미에게도
온다, 돈아
다 돈다, 단도다!
자살자살자살자
여기를 이겨!
* 애너그램이란 '어구전철(語句轉綴)'은
단어나 문장을 이루고 있는 문자를 바꾸어 다른 단어나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언어유희의 한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애너그램은,
특히 우리의 '진지한' 문화 아래서,
그리고 '진정성'을 요구하는 문학장(文學場)에서 '제대로 된' 문학 기법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치기(稚氣)의 증거로도 여겨지는 이 기법을,
정끝별은 반항적인 래퍼 반항적이지 않은 래퍼도 있으니까처럼
전언과 결합하는 식으로 '진지하게' 만듦으로써 다시 살려내고 있다.
'진지하게'라고, 작은따옴표로 강조한다고 해서 '순수 유희'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진지한' 유희조차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우리 문단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래퍼들이 물론 정끝별의 이 시는
랩의 우리나라 버전인 사설시조나 탈춤 속 말뚝이의 대사,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산문시조차 아니기 때문에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애너그램을 통해 사회비판이나 자아비판을 하는 것도,
모두 이 기법이 광기어린 유희적 주체를 탄생시키고,
그럼으로써 비판의 한 극점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끝별의 이 시는 재미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재미있기 때문에 그러한 씁쓸함이 배가된다.
"소비"를 "보시"로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아랍보다 가물"어 말라비틀어지는 "물가"에서 목을 축이려고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들,
그런 "두엄 속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입사에 필요한 '자기소개서'인 "자소서"를 내지만
그것은 어느 새인가 범죄자와 관련된 "조사서"가 되는 현실,
그토록 원했던 "돈"이 "단도"가 되는 현실.
농담이 아니어서 농담의 형식이 더 배가되는 시인 것이다.
무의미를 지향하는 언어의 순수한 유희가 현실적 언어를 해체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진리를 보전한다는 차원에서 정끝별의 시는 여전히 온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효과는 우리 시단에서 그리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상』2016-가을호 <다시 읽기, 해설_김청우>에서
*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
* 1988년《문학사상》신인상에 시, 1994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
* 시집『자작나무 내 인생』『흰책』『삼천갑자복사빛』『와락』『은는이가』등.
* 수상 : 2004년 유심작품상, 2008년 제2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청마문학상 수상
*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재직 중
시인 정끝별과 함께 찾은 숲속 책방 / 동네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