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 <월간중앙>(1981) -
映畫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무등(無等)
- 황지우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7) -
山
절망의산,
대가리를밀어버
린,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산, 침묵의
산,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산, 생의산, 회생의
산, 숨가쁜산, 치밀어 오르는산, 갈망하는
산,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 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인산, 아아너무나너무나 폭발적인
산,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01월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게 눈 속의 연꽃
- 황지우 / <게 눈 속의 연꽃>(1990년) -
1
처음 본 모르는 풀꽃이여, 이름을 받고 싶겠구나
내 마음 어디에 자리하고 싶은가
이름 부르며 마음과 교미하는 기간,
나는 또 하품을 한다
모르는 풀꽃이여, 내 마음은 너무 빨리
식은 돌이 된다. 그대 이름에 내가 걸려 자빠지고
흔들리는 풀꽃은 냉동된 돌 속에서 흔들린다
나는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는 짐승이다
모르는 풀꽃이여, 유명해졌구나
그대가 사람을 만났구나
돌 속에 추억에 의해 부는 바람,
흔들리는 풀꽃이 마음을 흔든다
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그대가 있다
불을 기억하고 있는 까마득한 석기시대,
돌을 깨뜨려 불을 꺼내듯
내 마음 깨뜨려 이름을 빼내가라
2
게 눈 속에 연꽃은 없었다
보광(普光)의 거품인 양
눈꼽 낀 눈으로
게가 뻐끔뻐끔 담배연기를 피워올렸다
눈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연꽃을
게는, 그러나, 볼 수 있었다
3
투구를 쓴 게가
바다로 가네
포크레인 같은 발로
죽고 낳고 죽고 낳고
바다 한가운데는
바다가 없네
사다리를 타는 게,
게좌(座)에 앉네
* 작품해설 : 이 시는 禪的인 사유와 이미지가 번뜩이는 작품이다. "연꽃" "보광"이라는 시어와, "게
눈 속에 연꽃은 없었다"와 "바다 한가운데는/바다가 없네"라는 말속에 담긴 사유가 그렇다. 바다를
찾아 바다에 이르렀더니 그곳에 바다가 없더라는 인식 속에 담긴 정신은 투구게의 이미지와 동일하
다. 투구게는 포크레인 같은 발로 "뻘밭"을 기어 몇 세대 걸쳐 바다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곳에 바다
는 없었다. 그래서 "게좌"가 되어버렸다. 일종의 신화적 이미지를 풍기는 이러한 시 전개 속에서 파
악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이 "뻘밭" 같이 고통으로 가득 찼다는 인식이다. 이 고통을 넘어 바다에 이르
는 도정은 연꽃을 찾는 해탈의 과정으로 바유되고 있다. 그래서 게의 거품은 "보광"이다. 그러나 "게
눈 속에 연꽃은 없었다.
* 황지우(黃芝雨, 1952-)
본명 : 황재우(黃在祐)
출생 : 1952년
출생지 :국내 전라남도 해남
데뷔 : 1980.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
1952년 전남 해남 출생. 본명은 황재우(黃在祐). 서울대 미학과 및 동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같은 해 『문학과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3년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
였다. 시집으로 기호‧만화‧사진‧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시 형식을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화엄사상(華嚴思想)과 마르크스주의를
기저에 둔 『나는 너다』(1987), 현실과 초월 사이의 갈등을 노래하며 그 갈등을 뛰어넘는 화엄의 세
계를 지향한 『게 눈 속의 연꽃』(1991), 동시대인의 객관적인 삶의 이미지와 시인의 개별적인 삶의
이미지가 독특하게 겹쳐져 생의 회한을 담고 있는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
(1998) 등을 간행하였다. 황지우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기법을 통해 풍자와 부정의 정신 및 그 속에
포함된 슬픔을 드러내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대를 풍자하고 이상향을 꿈꾸는 그의 시에는 정치
성‧종교성‧일상성이 고루 배어들어 있다.
서울대학교 - 미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철학
1980년 작품명 '연혁(沿革)' -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
1983년 작품명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김수영 문학상
흩어져 모이는 ‘작은 문학운동’, 그 인맥과 사상,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 나무에서 봄 나무에로, 나는 너다,
고은론-탄압받는 시인은 끝내 탄압을 이긴다
게눈 속의 연꽃,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황지우 문학앨범 : 진창 속의 낙원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오월의 신부(新婦)
뼈아픈 후회,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심인
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 시낭송 정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