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 이경희(李京姬) -
창 너머 흘러가는
흰 구름 조각들은
꿈꾸는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자락
지친 몸 추스르면서
신록 한 입 베문다.
천둥과 번개치고
소나기 퍼부어도
묵묵히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낮은 음성
병마와 멀어질 다짐
차돌처럼 여문다.
솔바람 맑은 햇살
온몸을 감싸 안아
하나 둘 씩 내려놓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가득한 저 산의 神韻
눈길 오래 머문다.
* 신운(神韻) : 신운(神韻)의 뜻을 풀어보면 신비스러우며 고아(高雅)한 운치(韻致), 즉 고상한 품격
(品格)에서 나타나는 풍치(風致)나 멋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인품에 대한 경우에는 수일(秀逸)한 기
개(氣慨)를, 예술에 대한 경우에는 고상한 풍미(風味)를 뜻한다. 중국 당대(唐大)의 시인 사공도(司
空圖)는 <논시(論時)>에서 “음식에는 신맛과 짠맛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맛은 시거
나 짠맛만이 아닌 ‘맛 밖의 맛’에 있으며 그 ‘맛 밖의 맛’이라는 것이 바로 신운이다(飮食 不可
無酸離, 而其美味常在於酸醎之外. 酸醎之外者 何? 味外味也. 味外味者, 神韻也).”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 작품 감상/능곡 이성보(현대시조 방행인) : 시조 작품 〈집으로 가는 길〉은 이경희 시인의 작품으
로 3수 연작의 서정시조다. ‘병상이후’ 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병상에서와 퇴원후의 집으로 가는 길
에서의 심경을 읊었다.
첫 수는 병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창 너머 흘러가는 흰 구름 조각들은/ 마치 병마를 떨치고 일어나고
픈 환우들의 바람을 /꿈꾸는 사람들의 소박한 마음자락/으로 보았다. 신음을 삼키다말고/ 지친 몸 추
스르면서 신록 한 입 베문다./는 종장에서 / 신록 한 잎 베문다./는 결구로 해서 첫 수 전체에 윤기
가 흐른다.
둘째 수에선 병마의 고통을 / 천둥과 번개치고 소나기 퍼부어도/로 표현했다. 불이 뜨거운지는 데어
봐야 안다고 하던가. 통증을 견디다 말고 / 묵묵히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낮은 음성/ 으로 갈구한다.
낮은 목소리, 안으로 삭이는 간절함이다. /병마와 멀어질 다짐 차돌처럼 여문다./ 건강은 몸이 성할
때 지켜야 한다. 병상에서의 회환, 병마를 멀리 하리란 다짐이 차돌처럼 여문다./ 하였으니 어찌 눈
물겹다 하지 않으리오.
셋째 수에서의 정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청량한 솔바람 속에 비치는 햇살은 맑기가 그지없다. 축복
인양 이를 온몸에 받고 집으로 가는 길, 이제 몸을 제대로 건사하리라 다짐하며 하나 둘씩 부질없는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그 발길 가볍지 않겠는가. 언제 신록을 눈 여겨 보았겠는가. 아! 저렇게 황홀
하다니, 神韻은 신비롭고 고상한 운치를 일컫거늘, 눈길이 오래 머물 수밖에.
건강은 건강할 때 챙겨야 하련만 쉽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노자(老子)는 도덕경에서 섭생(攝生)을
가르치고 있다. 노자는 자기 생을 너무 귀하게 여길수록 오히려 위태로울 수 있고 억제할수록 오히려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선섭생자 이기무사지(善攝生者, 以基無死地) 섭생을 잘하는 사
람은 죽음의 땅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攝자는 손수(手)변에 귀이(耳)자 세 개로 되어있다. 귀를
두 개도 아닌 세 개를 잡아당기고 있으니 얼마나 괴롭겠는가. 몸을 혹사하고 괴롭혀야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노자의 말씀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내친김에 섭생과 관련한 선인장 얘기를 하여본다.
선인장을 가꾸어 봄에 꽃을 보려면 겨울에 물을 주지 않고 생체(生體)를 말려야한다. 또 이런 다육
질 식물을 삽목 하는데도 잘라낸 삽수(揷穗)를 일주일이나 열흘 쯤 말렸다가 꽂아야 활착이 잘된다.
말하자면 가열(苛烈)한 상황 속에 처하게 함으로써 생활력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그래서 선인장은 자
체의 생존에 위협을 느껴 필사적으로 뿌리를 내어 살아남으려고, 종족보존의 본능에서 더 많은 꽃을
피워 씨앗을 맺으려하는 것이다. 그 동기나 과정에서 볼 때 인간의 욕구 때문에 선인장은 가혹한 시
련을 겪는 것이겠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선인장 자신에게도 그 시련은 도리어 약이 되는 것이다.
각설하고, 시조작품 〈집으로 가는 길〉은 코로나 19로 인한 시련으로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이 그리
운 때에 우리 모두에게 주는 어떤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세 수 각 수의 종장에서 보
여주는 ‘신록 한 입 베문다.’ ‘차돌처럼 여문다.’ ‘눈길 오래 머문다.’에서 ‘~문다’를 각 수
마다 마무리하였음은 이는 시인의 언어구사 능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기에 크게 방점을 찍는다.
평범한 소재를 비범하게 꾸며 놓은 작품에서 신선한 감흥을 느끼는 것도 시조감상의 재미가 아닌가
싶다. 시인의 눈길이 머문 신록에 마음을 실어본다. 어느새 孟夏다. <능곡시조교실 제공>
빈 집
- 이경희(李京姬) / 2003.10.19 -
말을 건네고 싶어서, 말이 듣고 싶어서
문살도 기와도 휑하니 뚫어 놓았다만
미친다, 훤한 달빛아 너마저도 벙어리구나.
원각사 '능엄경'은 1401년 당시 태상왕(太上王·조선시대에 현재 왕 이외에 前前王이 살아 있을 때
부르던 호칭)이던 태조의 명으로 간행한 왕실본이다. 불교 경전의 하나인 능엄경 경문에 송나라의 계
환(戒環)이 해석을 붙인 것을 당대 명필인 신총(信聰) 대사가 글씨를 써서 판을 새기고 찍었다.
글이 숨 쉬는집
- 이경희(李京姬) -
소리는 고요하고
달빛은 소곤소곤
어둠 속 투명한 책
냄새에 잠 못이뤄
글들이
숨쉬는 그곳
모음하나 자음 하나
인연
- 이경희(李京姬) -
새치 머리 염색으로
인연으로 만나 앉아
팔자란 무엇인가
이야기 오가는데
무수한
삶의 이야기
오늘 여기서 배운다
어설피 서성이다
무심히 들은 그말
내 삶을 말한다
아픈 기억 맺힌 사연
눈물은
어느새 가득
그 사연을 남긴다
웃어 봐
- 이경희(李京姬) -
어느듯 향기로운 메아리로 돌아와서
웃음꽃 활짝 피워 넌출 넌출 흰 날갯짓
웃어 봐 유연한 얼굴 한 겹 채운 꽃잎처럼
동그란 웃음 한 올 젖지 않고 깨어 있다
조용하게 떨어지는 잔주름이 눈부시다
웃음의 날개를 달아 가슴 가득 노을 지네
꽃처럼 피워야지 아름다운 별빛처럼
이제는 꿈 하나쯤은 이슬 속에 고여있다
조금씩 외실을 뽑아 풀꽃으로 웃음 짓네
가을날
- 이경희(李京姬) -
국화 송이 조롱조롱
꽃등처럼 확짝 피네
작년 한해 흠뻑 핀 꽃
또 핀다 꽃 망우리
오래도
함께 못할 꽃
사진 속에 가득 채운다
나들이
- 이경희(李京姬) -
가을볕 고운 바람이
살며시 가슴에 젖어
바람에 잠 깬 꽃망울
품속까지 열어주고
먼저 깬
작은 꽃망울들
풍경 속을 두른다
조각조각 흩어지는
구름 먼발치에 걸어두고
풀냄새 피어올라
나들잇길 나서보니
스치는
폴대 소리가
부딧치며 함께 한다
* 이경희(李京姬)
시인, 시조 시인, 수필가
사 종합문예유성 글로벌문예협회 회원
솔리드캘리아트연회회원
그림나라솔리아트 부회장
2015 문장21시인장 수상
2016 나 여자라서 행복해
2017 시로 수놓은행복
2018 있잖아(시조)
2019 얼룩진일기장(시.시조.수필)
* 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 소감 / 이경희 시조시인
(사)종합문예유성 문예지 8호 신인문학상
2021년 1월 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이경희 시조시인 당선 소감문
시가 좋아서 시를 쓰다 보니 시인이 되었고
사단법인 종합문예유성 글로벌문예 대학에서 시 창작을 배움하고
글로벌문예대학원에서 황유성 총장님과 신계전 교수님께 시 창작과 시조를 배우면서
시조에도 매력을 느끼던 중 설아 백 덕임 부회장님께서 시조 시인으로
등단을 함께 해보자는 권유가 있어서 시조 부문으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하지만 등단하게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막 걸으려고 하는 단계인지라 열심히 더 배움하고 노력하여서
좋은 시조를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Deceived heart again (Porque 2) / Umar Ke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