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모글로빈, 알코올, 머리칼 - 김선우 - 『머리가 깨진 날 기뻤어요 내상보다 외상이 덜 위험하거던요』 보도블록을 깨다 손목 베이자 불타는 머리칼. 그 격렬한 외상의 날들 자고 일어나면 새살이 돋아 있곤 했지요 추억의 쓴 물에 어금니를 담그거나 이적성 표현은 아닙니다 구십년대는 우울한 내상의 날들이어서 걸핏하면 넘어지고 발목을 삐는데 피 한방울 흐르지 않고 멍만 듭니다 세계 인구의 열배도 넘는 세포가 모여 이룬, 육체의 나날은 출혈 없이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어제 머리를 깼지요 만취해 돌아오다 길에 누워버렸습니다 두개골은 멀쩡하고 상처도 크지 않은데 폭포처럼, 피 흘리는 머리칼 친구의 웃옷을 벌겋게, 치마를 물들이고 길바닥에 누워 헤실헤실 웃더랍니다 "아아 상쾌해" 하면서 말예요 빨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