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李白> 山中問答(산중문답)

이름없는풀뿌리 2023. 8. 28. 06:18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산중문답’, 1980-90년대 초, 120×190㎝, 종이에 엷은 색. 개인 소장 山中問答(산중문답) - 李 白 - 問余何事棲碧山 (문여하사서벽산) 그대는 왜 푸른 산에 사는가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閒 (소이부답심자한) 웃을 뿐, 답은 않고 마음이 한가롭네. 桃花流水杳然去 (도화류수묘연거) 복사꽃잎 아득히 물에 떠 가는 곳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여기는 별천지라 인간 세상 아니네. ​ 중국 당나라의 시인(701~762).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두보(杜甫)를 시성 (詩聖)이라 칭하는 데 대하여 시선(詩仙)으로 일컬어진다. 정치적 포부가 컸으며 현종(玄宗)의 궁정 시인이 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일생을 방랑 속에서 불우하게 보냈다. 성격이 호탕하여 세속의 생활에 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시를 읊었다. 후세에 편찬된 《이태백 전집(李太白全集)》 30권 이 전한다. 천재적인 시인 이백은 원래 정계에 투신하여 자신의 포부를 일거에 크게 펼쳐 보려는 야 망을 가지고 있었다. 25세부터 42세까지 호남, 강소 등을 유람하는 생활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황제에게 연결시켜 줄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742년(천보 2년) 당현종(唐玄宗)의 여동생 옥진(玉眞)공 주를 통해 당현종에게 발탁되었다. 당현종은 그를 중용하긴 하였으되, 이백의 야망과는 달리 정치적 인 동반자가 아닌 오락의 동반자로 중용했다. 아마도 이백에게서 정치적인 재능이나 그릇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이백의 직책은 한림대조(翰林待詔) 중의 시문대조(詩文待詔), 즉 황제의 부름을 기다리다가 부름이 있으면 달려가 황제와 시문으로써 오락을 함께하는 일종의 어용문인(御用文人)이 었다. 이는 황제의 조서를 기초하는 한림학사(翰林學士)와는 천양지차가 있는 직책이었다. 정치적 포 부를 펼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던 이백은 마음에 가득한 불평과 불만을 술로 풀었는데, 황제의 부름 을 받을 때마다 술에 취해 제정신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도 거침 없이 시문을 지어 내는 그의 문학 재능을 아끼고 사랑했던 현종은 이백에 대해 아주 관대했다. 이백 은 햇수로 3년후인 744년(천보 4년) 당현종의 곁을 떠났다. 〈산중문답〉은 이백이 당현종을 떠난 후 에 지은 시로, 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소박하면서도 도가적인 풍류가 스며 있는 시다. 무 릉도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오. 불필요한 속된 욕심을 버리고 살면 바로 내가 기거하는 곳이 무 릉도원이고 ‘별유천지비인간’이 아니겠소?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산중문답’부분도, 1980-90년대 초, 120×190㎝, 종이에 엷은 색. 개인 소장 아산 조방원(雅山 趙邦元) ‘‘도강’, 1980년대, 종이에 옅은 색, 125.3×161㎝ . 부국문화재단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