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춘부(待春賦)
- 신석정 / 삼남일보 1956.1.1. / <빙하>, 정음사, 1956년 -
우수(雨水)도
경칩(驚蟄)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기에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산산산(山山山)
- 신석정 / 1953.1 / <빙하>, 정음사, 1956년 -
지구엔
돋아난
산이 아름다웁다.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다웁다.
산에는
아무 죄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더 아름다웁다.
언제나
나도 산이 되어보나 하고
기린같이 목을 길게 늘이고 서서
멀리 바라보는
산山
산山
산山
* 작품해설 : 신석정은 ‘산’을 소재로 많이 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그의 시를 읽고 다시 김남조의
‘나무와 그림자’를 대하자니 마치 그 산산산, 어딘가에 나무가 서 있고 그림자가 ‘나’를 하염없
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기분이 들어 흥(興)이 오른다. 그래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고 따
지지 않아도 되는 마음씨가 산의 나무가 되어서 멀리, 목을 높이 들고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다 받
아줄 것만 같다. 시에서 ‘에레나’라는 꽃은 ‘호주애기동백’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정 ‘산수도’, 17세기, 종이에 수묵,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중기의 화가 나옹(懶翁) 이정(李楨, 1578~1607)의
<산수도>라는 작품이다. 그림은 목을 높이 들고 건너 바다를 바라보는 괴암괴석의 산비탈이 왼쪽에, 그 아래로 대
숲을 끼고 호젓하게 모옥(茅屋·띠 따위 풀로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이은 집)이 외따로 한 채 서 있는 바닷가 마
을인데 그 한산한 모습이 부안 변산 앞바다를 전망하기에 딱 좋았다는 신석정 시인의 부안집 ‘청구원’을 닮았다.
산수도(山水圖)
- 신석정 -
- 山水는 오롯이 한 폭의 그림이냐
숲길 짙어 이끼 푸르고
나무 사이사이 강물이 희어
햇볕 어린 가지 끝에 산새 쉬고
흰구름 한가히 하늘을 거닌다.
산가마귀 소리 골짝에 잦은데
등 너머 바람이 넘어 닥쳐와
굽어든 숲길을 돌아서 돌아서
시냇물 여음이 옥인듯 맑아라.
푸른 산 푸른 산이 천 년만 가리
강물이 흘러흘러 만 년만 가리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 신석정 / <동광> 1931.10 -
어머니
산새는 저 숲에서 살지요?
해 저문 하늘에 날아가는 새는
저 숲을 어떻게 찾아간답디까?
구름도 고요한 하늘의
푸른 길을 밟고 헤매이는데……
어머니 석양에 내 홀로 강가에서
모래성 쌓고 놀 때
은행나무 밑에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듯이
안개 끼어 자욱한 강 건너 숲에서는
스며드는 달빛에 빈 보금자리가
늦게 오는 산새를 기다릴까요?
어머니
먼 하늘 붉은 놀에 비낀 숲길에는
돌아가는 사람들의
꿈 같은 그림자 어지럽고
흰 모래 언덕에 속삭이던 물결도
소몰이 피리에 귀기울여 고요한데
저녁바람은 그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언덕의 풀잎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가 어머니 무릎에 잠이 들 때
저 바람이 숲을 찾아가서
작은 산새의 한없이 깊은
그 꿈을 깨우면 어떻게 할까요?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
- 신석정 / <여성> 1936.12 -
젊고 늙은 산맥들을
또
푸른 바다의 거만한 가슴을 벗어나
우리들의 태양이
지금은 어느 나라 국경을 넘고 있겠습니까?
어머니
바로 그 뒤
우리는 우리들의 화려한 꿈과
금시 떠나간 태양의 빛나는 이야기를
한참 소근대고 있을 때
당신의 성스러운 유방같이 부드러운 황혼이
저 숲길을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어머니
황혼마저 어느 성좌로 떠나고
밤∼
밤이 왔습니다
그 검고 무서운 밤이 또 왔습니다
태양이 가고
빛나는 모든 것이 가고
어둠은 아름다운 전설과 신화까지도 먹칠하였습니다
어머니
옛이야기나 하나 들려주세요
이 밤이 너무나 길지 않습니까?
1934년 가을 (좌 미당20세. 석정28세) 그리고 친구들과 청구원의 옹달샘에서...
未堂과 夕汀의 고향인 고창과 부안은 지근거리였으며 간혹 교류하는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志操와 사랑을 신념으로하는 석정과 時流에 편승했던 미당은 밟아간 길이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1933. 12.「조선일보」「시단회고」란에서 석정을‘목가시인’으로 호칭한 김기림과 함께...
1967.11.4. 시인 신석정(오른쪽,61세)의 비사벌초사를 방문한 김남조(가운데, 41세), 그리고 김용호(왼쪽, 56세).
평생‘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가 평생 신념이었던 비사벌초사 정원에서의 서수적 외모의 석정 시인.
다시 듣는 저항의 노래 신석정 1부 / JTV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