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고재종> 날랜사랑 / 그리운죄 / 세한도

이름없는풀뿌리 2023. 12. 24. 05:05
날랜 사랑 - 고재종 / 날랜 사랑 / 창비 / 2000년 12월 - 얼음 풀린 냇가 세찬 여울물 차고 오르는 은피라미떼 보아라 산란기 맞아 얼마나 좋으면 혼인색으로 몸단장까지 하고서 좀더 맑고 푸른 상류로 발딱발딱 배 뒤집어 차고 오르는 저 날씬한 은백의 유탄에 봄햇발 튀는구나 오호, 흐린 세월의 늪 헤쳐 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 세울 날랜 연인아 연인들아 그리운 죄 - 고재종 - 산아래 사는 내가 산 속에 사는 너를 만나러 숫눈 수북이 덮힌 산길을 오르니 산수유 고 열매 빨간 것들이 아직도 옹송옹송 싸리울을 밝히고 서 있는 네 토담집 아궁이엔 장작불 이글거리고 너는 토끼 거두러 가고 없고 곰 같은 네 아내만 지게문을 빼꼼이 열고 들어와 몸 녹이슈! 한다면 내 생의 생생한 뿌리가 불끈 일어선들 그 어찌 뜨거운 죄 아니랴 포르릉 ,어치가 날며 흩어놓은 눈꽃의 길을 또한 나는 안다. 세한도(歲寒圖) - 고재종 - 날로 기우듬해 가는 마을 회관 옆 청솔 한 그루 꼿꼿이 서 있다. 한때는 앰프 방송 하나로 집집의 생쥐까지 깨우던 회관 옆, 그 둥치의 터지고 갈라진 아픔으로 푸른 눈 더욱 못 감는다 그 회관 들창 거덜 내는 댓바람 때마다 청솔은 또 한바탕 노엽게 운다. 거기 술만 취하면 앰프를 켜고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이장과 함께. 생산도 새마을도 다 끊긴 궁벽, 그러나 저기 난장 난 비닐하우스를 일으키다 그 청솔 바라보는 몇몇들 보아라. 그때마다, 삭바람마저 빗질하여 서러움조차 잘 걸러내어 푸른 숨결을 풀어내는 청솔 보아라. 나는 희망의 노예는 아니거니와 까막까치 얼어 죽는 이 아침에도 저 동녘에선 꼭두서니빛 타오른다. * 1957 전남 담양에서 태어나 * 1984년 실천문학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에 「동구밖집 열두 식구」 등 7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 시집으로 『바람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꽃의 권력』, 『고요 를 시청하다』와 육필시선집 『방죽가에서 느릿느릿』이 있고, * 산문집으로 『쌀밥의 힘』, 『사람의 길은 하늘에 닿는다』, 『감탄과 연민』과 시론집 『주옥시 편』, 『시간의 말』 * 수상 :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 *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을 역임 제주찾기(세한도) / KBS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