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1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1
은침 하나 하나 맥을 짚어 꽂는다
찬란한 태몽 앞에 밀려 나가는 냉증
대지는 몸을 뒤틀며 입덧이 한창이다
2
호기심이 발동한 개구쟁이 눈빛이다
손톱 밑 까매지도록 땅거죽 헤집어
새싹들 간지럼 태며 키득키득 웃고 있다.
* 작품해설 / 조옥동 : 시조의 특성은 정형의 율격을 포함하여 역사성을 밑그림하여 세우고 민족의
고유한 정서를 丹靑으로 채색해 온 문학이다. 나 시인은 피카소보다는 세잔느나 르느아르의 화풍을
좋아할 것 같다. 현대화 중에도 추상화보다는 한국화를 좋아하는 시인일 듯 하다. 왜냐하면 그는 봄
의 정기를 주사바늘로 꽂지도 않았고, 청진기를 대어 진단하는 대신 「은침 하나 하나를 꽂아 맥을
짚는다」라는 표현은 매우 한국적이고 은밀하다. 태몽이나 입덧이란 말들을 씨와 날로 봄비를 織造
하여 냈기 때문이다.
봄비를 은침이라 한다면 봄 햇살은 금침이라 할 가. 가늘게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고 이제 막 생동하
는 대지에 봄빛을 부화시키는 봄비를 은침에 비유할 만큼 시인의 눈은 맑고 깨끗하게 잔잔한 喜悅의
물결을 일렁이고 있기에 이 작품을 읽는 사람은 그가 따뜻한 모성의 소유자임을 금시 알아챈다. 손톱
밑이 까매지도록 땅뺏기 땅집기 놀이를 하였고 심한 개구쟁이들 두더지 집을 파헤치며 놀았던 유년기
를 갖지 못한 사람은 시인이 되어도 그들의 시에서는 메마른 감성의 서운함을 느낄 뿐이다. 봄비가
새싹들 위에 내리는 소리를, 새싹들이 비를 맞아 움칠거리는 모습을 마치 간지럼 태워 키득키득 웃고
있단다.동화적인 뉴앙스를 풍기는 색다른 맛이 있다.
최근에 와서 몇 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한국의 어린 학생들이 동시조를 배우고 쓰는 동시조 보급운
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시조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이 없는 사람, 사물을 따뜻이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 좋은 글이 생
산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어른들도 특히 시인은 때로 동화책도 읽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즐기며 흐려진
옛날의 천진무구한 동심을 환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화초를 키우고 수목을 접근하며 애완동물을
가까이 두고 지내는 일 또한 詩魂을 부르는 하나의 방법이라면 과대표현이 될지 몰라도 龜裂 진 마음
의 도랑에 맑은 물꼬를 트는 일임엔 틀림없다.
봄비2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그렇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눈물입니다
불만과 반항 켜켜이 쌓여
가늠 못할 얼음의 두께
따스이
녹아내리게 한
당신의 눈물입니다
구심점 밖 서성이며
끝없이 메말라 갈 때
서늘히 갈라진 가슴
촉촉하게 적시어
파릇이
새움 돋게 한
당신의 눈물입니다
전남 무안 현경면 들녁. 무파종을 마친 땅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하는 풍경.
조선일보 /2024.3.3 김영근
예년에 비해 일찍 터뜨린 전남 구례 산동면 산수유마을. 9일부터 산수유꽃축제가 열린다.
조선일보 /2024.3.1. 김영근
이 봄 들녘에는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충북일보 2022/03/21 -
사람들 갖가지 마음
싸락싸락 쏟아져서
온 들녘 구석구석
풀꽃들을 피워냈다
아직도
우리가 사는 세상
살 만한 곳이잖아
앙증스레 발돋움하는
보랏빛 오랑캐꽃
소담스런 민들레
배밀이 하는 꽃잔디
땅에도
별이 떴구나
샛노란 아기별꽃
어머, 어머~ 누구를 위해
이리 곱게 단장들 했니
진종일 바라봐도
외면 안 한다 웃어 줄 뿐
까짓것
꽃샘추위야
덤빌테면 덤벼봐
* 배밀이 : ① 배를 바닥에 대고 기어가는 일 ② 씨름에서, 상대편을 배로 밀어 넘어뜨리는 기술.
* 싸락싸락 : 눈 따위가 가볍게 내리는 소리,‘사락사락’보다 센 느낌을 준다
매미 껍데기, 읽다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울어서 너무 울어서
텅 비어버린 껍데기
속엣것 다 쏟아놓아
허물 벗을 수 있었나
내 평생
쌓인 죄업도
울어 벗을 수 있다면
겨울나무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충북일보 2021/01/10 -
겨울이면 나무들은
잎을 벗고 알몸이다
따듯한 햇살 가닥
넓은 잎으로 막으면
옆 친구
추위에 떨까봐
햇살 많이 받으라고
봄부터 겹겹이
껴입고 있던 옷들을
모두 다 벗고도
겨울을 견디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따끈한 마음 때문이야
내 소중한 사람에게 / 박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