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살강살강 살얼음 풀리던
그 길목에서 당신을 만나고
가슴 파래지도록
당신을 기다리며
황사의 눈가림도
산들바람의
꼬드김도 견디어 냈습니다
비는 내리는데
젖은 고개 떨구고
지나는 이 마다 당신인 듯하여
곁눈질에 지친
내 얼굴을 그리움의
무게에 짓눌려 지고 말았습니다
꽃 진 자리
파란 잎은 아픔으로 돋고
전설되어 떠 도는
당신 이름에 슬픔은
심장 가득 철썩철썩 파도쳐도
그 길목
노란 등불 밝혀
끝없이 기다립니다
* 살강살강 : 설익은 곡식이나 열매 따위가 자꾸 가볍게 씹히는 소리. 또는 그 느낌
들국화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실핏줄 뒤얽히듯 얽혀버린 그 고리들을 올올이 풀어내고
한짐의 고통 산모롱이에 부려놓은 꽃
몸에 닿는 실낱 같은 인연마저 다 지우고 아늑함에 몸 맡긴 채 계절 잃고 피어나
불감증 앓는 꽃이긴 싫어
어느 내실 수반 위 헤픈 웃음 흘리는 그런 꽃이긴 더욱 싫어
그렇지,
마흔 살쯤 되는 꽃
찬 서리 속에 벙그는.
단풍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순간이면
어떠리
이리 서로 타는 것을
앞만 보고 달려 와
여기가 끝이라 해도
마지막
한 방울 수액
나눠 마실
너
있음에
얼음새꽃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충북일보 2023/03/13 -
한겨울 추위 쯤야
배밀이로 밀어내고
방긋방긋 노란 웃음
봄햇살 끌어당겨
화들짝
나무들 시샘
연두물감 챙긴다
* 얼음새꽃 : 얼음새출, 복수초’의 방언 (강원)
* 배밀이 : ① 배를 바닥에 대고 기어가는 일 ② 씨름에서, 상대편을 배로 밀어 넘어뜨리는 기술.
먼 데 산이 다가와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금빛 아가미 뻐끔거리며
찾아든 봄날 오후
잎새들이 가만가만
하늘 들어 올리자
먼 산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마주 앉다
* 무릎걸음 : 다리를 굽혀 무릎을 꿇고 걷는 걸음.
A Lover's Concerto / Vocal 빈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