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공단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
나른한 신새벽
가슴팍 두드리고
종소리 되돌아가는
회색 벽 공단 구역
밤 새운 공적 조서가
철망 위에 걸렸다.
피곤한 시간들이
더께로 엉겨붙어
야적장 포장 아래
선하품을 하고 있다
핏기를 잃은 외등은
잔기침만 해 대고.
등 굽은 소망들이
고철로 쌓인 자리
차라리 용광로를
가슴으로 껴안으면
의지의 굴뚝 끝에서
푸른 연기 뿜을까.
* 더께 : ①몹시 찌든 물건에 앉은 거친 때 ② 겹으로 쌓이거나 붙은 것. 또는 겹이 되게 덧붙은 것
일기예보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꽃샘추위 그 기승에
개화,
늦출 수야 있겠지
낮게 낮게 엎드린
가슴마다 불덩인데
온 강토
빙하로 덮은들
화산폭발 막겠는가.
윤달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일간경기 2020/11/12 -
살아실 제 불효한 놈
효자로 만드는 달
들끓던 잡신들도
모두 자릴 피해주어
동티날 걱정 묶어놓고
봉분 헐어제친다
아부지 산속에서 무척 외로우셨지라
이제부터 아파트서 시끌벅적 지내보소
산 팔아
챙겨 달아나는
엉덩이가 벌겋다
* 동티 : ①땅, 돌,나무 따위를 잘못 건드려 地神을 화나게 하여 재앙을 받는 일. 또는 그 재앙
②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공연히 건드려서 스스로 걱정이나 해를 입음. 또는 그 걱정이나 피해를 비
유적으로 이르는 말.
9월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충북일보 2021/10/17 -
은물결 엉덩이를
톡톡 치는 서늘바람
까르륵 배 뒤집으며
살랑거리는 윤슬
9월은
징검다리 건너
가고 있다, 9월로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번개
- 유하(維夏) 나순옥(羅旬玉) -
전생에 못다한 정
찾고 싶은 열망이
무의식 속에도 타 오르다
서로를 알아본 순간
천지를
단칼에 가를 듯
부딪히는 저 눈빛
번개 (나순옥) / 낭송(이명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