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서벌> 산그늘인화/물새는물새/첫닭소리/대숲환상곡/헌책/가슴에다고성

이름없는풀뿌리 2024. 3. 19. 02:44
산그늘 인화印畫 - 서 벌(서봉섭) / 시조집<걸어다니는 절간> / 우리시대현대시조 100인선 26 - 적막 엉금엉금 등성이 타고 내려 외딴집 뒷방 들창 간신히 두드린다 여보게 허무 있는가 이러면서 두드린다 ​ 아무런 기척없어 머뭇머뭇하는 적막 허허 자네까지 뜨고 없기인가 이러며 징검다리께 가는 허리 구부정한 적막 * 인화(印畫) : 사진(寫眞)의 음화(陰畫)에 인화지(印畫紙)를 겹쳐서 감광(感光)시켜 양화(陽畫)로 만드는 일. 또는 그 양화(陽畫). * 작품해설/김호길 : 적막 산중에 저문날의 산그늘이 내리고 있다. 산그늘이 되어 슬슬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 외딴집 뒷방 들창까지 내려온다. 시인은 그 순간을 숨죽여 바라보며 산그늘 적막이 빈집의 허무를 찾는 순간을 맞는다. 이윽고 외딴집에 살고 있는 허무조차 나가고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산그늘 그 적막은 동구밖 징검다리께로 훌쩍 지나서 마지막 등허리 굽은 낙조를 드리우고 있다. 산마을 외딴집의 저무는 낙조의 그림자를 의인화하여 아름다운 두 수의 연시조, 한편의 동화를 그려내고 있다. 서벌, 본명 서봉섭은 시조를 위해 태어나서 시조쓰기를 전업으로 하고 있는 분이다. 내 고향 남도 사천에서 30리길 고성 바닷가에서 태어난 그는 60년대초 신시조 짓기 운동 <율>동인 창립 멤버로 함께 한 이후 서로 오랜 인연을 엮어오고 있다. 그는 분명 시의 속 깊은 비의를 깨친 분이다. 물새는 물새, 들새는 들새라서 - 서 벌(서봉섭) - 물새는 물새라서 물속 뽑아 부리에 꿰어 날마다 기워준다, 이래저래 찢긴 허공을 제 속이 찢겨 터지면 물을 뽑아 깁으면서 들새는 들새라서 들에 깔린 허공 걷어 논두렁 밭두렁 짓듯 노래두렁 짓는다 그 짓이 하늘 땅 제대로 아는 저들의 일이어서 첫 닭소리 - 서 벌(서봉섭) - 독도의 한밤중을 두른 큰 걱정께서 울릉도 동백 꽃물 급히 요기하옵시곤 단숨에 득달하여 와 깨라신다. 잘못 든 잠. * 작품해설 : 유작인 이 작품도 평이하지는 않다.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독도에 대한 인식을 준엄 하게 나무라고 있는데 사뭇 진지하기만 한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것에서도 재미성을 가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지함을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위장하며 눙치는 수법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서벌만의 시조 기법이다. 대숲 환상곡 - 서 벌(서봉섭) - 못 이룬 꿈들, 알 수 없는 애틋한 꿈들, 땅속 꿈들이 얼기설기 뿌리 얽어 터널 내고는 직진 하는 열차들을 대량 생산하여 바깥으로 내보낸 것이었구나. 저들 열차들은 하늘 가는 열차들, 가지들을 바퀴로 달고, 그리움의 바퀴로 달고 새파랗게 달리는 죽림선(竹林線) 열차들. 중간역 없이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들. 달리고 달 리는 동안 사계(四季)는 잎으로 모여들어 다도해(多島海) 이루고는 끌리고 있구나. 햇살들 은 물론이고, 달빛 별빛들도 내리는 쪽쪽 몸들을 씻고, 바람은 오는 대로 수영선수 되는구 나. 검은 배낭 지고 가던 구름이 빗줄기 좌악 쏟으며 묻는다. 이룰 꿈이 무어냐고 달리는 열차들에게 묻는다. 열차들은 그저 달리고, 열차들에게 끌리는 다도해 새파란 목소리로 귀 띔해 준다. 깜깜한 땅속에도 하늘 수입해 들여 해 뜨게 하고, 달 뜨게 하고, 별밭 깔리게 하고, 바람 불게 하고, 비 내리게 하여 일곱 빛깔 무지개도 걸어보는 게 꿈이라고. 그 하늘 실어오려고 열차들 간다고. 그렇군, 달리는 열차 모두 그 때문에 하나같이 속 빈 찻간(車間)들이구나. * 작품해설/김우연 : 푸른 대를 열차로 비유하고, 가지들을 바퀴로 비유한 사설시조이다. 조운의 사 설시조 <구룡폭포>가 현대사설시조의 서장을 활짝 열었다면, 그 이후 수많은 사설시조 중에서 서벌의 <대숲 환상곡>은 사설시조의 꽃을 피운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시들지 않을 우담발화로 핀 것이다. 싱싱한 꿈을 담은 시적 형상화가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대를 보면서 저 높은 순수의 하늘로 가는 열 차로 비유한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방했는지는 몰라도 이 작품 이후에 나타난 장사익의 노래 가사 <여행>에서도 대 를 열차에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 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 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여기서 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 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여행 전문 서벌의 사설시조 <대숲 환상곡>과 장사익의 노래 <여행>은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또 전혀 다르게 형 상화하고 있다. <대숲 환상곡>을 곡을 붙이거나, 낭송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한국 현대사설시 조의 꽃이 바로 서벌의 <대숲 환상곡>이다. 헌책 - 서 벌(서봉섭) / 시조집<걸어다니는 절간> / 우리시대현대시조 100인선 26 - 널린, 검은 별들이 흰 별 될 때꺼정 제 숨 고스란히 내쉬고 들이쉰다. 갈피가 쪽문들이어서 별빛들만 드나든다. * 작품해설/우아지 : 사물이 다른 사물을 만나는 자리는 따뜻하고, 은은하며 느립니다. 책과 별이 만 나는 곳은 온통 흰 빛 세계입니다. 한 사람의 생애가 담긴 책의 검은 별이 흰 별이 되려면 얼마나 시 간이 흘러야 할까요. 사심 없이 독서 하는 사람이 사는 세상, 그립습니다. 반짝반짝! * 작품해설/신웅순 : 널린 검은 별들이 흰 별이 될 때까지 제 숨을 고스라니 내 쉬고 들이 쉰다. 문 은 갈피 밖에 없다. 갈피가 쪽문이어서 별빛만이 드나든다는 것이다. 처음에 산 책은 활자가 선명하 고 헌책은 활자가 선명하지 못하다. 검은 별, 흰별은 새 책의 진한 활자들과 헌 책의 빛바랜 활자들 이다. 검은 별이 흰별이 될 때까지 수 많은 세월이 왔다 갔을 것이다. 헌책은 어느 침침한 구석에서 제 숨만 고스란히 내 쉬고 들이 쉴 수밖에 없다. 틈이라곤 갈피 밖에 없다. 밤이 깊도록 누가 책을 읽고 있는가. 독자인가. 시인인가.활자를 별로, 갈피를 쪽문으로 구체화, 개별화시켰다. 개성 표현이 다. 이것이 시이다. - 주간한국문학신문,2023,1.1. 가슴에다 고성固城 넣고 사는 노래 - 서 벌(서봉섭) - 난 곳은 바루절 자란 데는 갯가 철둑. 한 뜻 펴고 싶어 무작정 내 떠났었네. 그 날은 아침부터 비 붙드는 듯 내렸다네. 걷다가 발 찟기는 서울은 사금파리밭. 얄궂은 사람덤불 어지간히 헤쳐냈네. 헛딛어 떨어져 묻힐 허방, 너무 많더라. 시방껏 가슴안엔 옛집, 그 대숲바람. 네 고향 어디냐며 꾸짖다가 타이르네. 아직은 늦진 않으니 고성으로 가라시네 * 작품해설 : 가난의 고리를 끊고픈 그의 의지는 출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막상 고향을 떠난 사람 에게 타향살이는 외로움과의 고투이며 그리움과의 싸움이다. 고향에서 해결하지 못한 가난을 서울이 라는 공간이 해결해줄 리가 없다. 되려 “걷다가 발 찟기는”서울이라는 “사금파리 밭”에서 피 철 철 흘리면서 그는 늘 고성의 옛집, 바람소리를 듣고 있다. 인간의 순수한 정신이 물화되고 황폐화되 는 도시에서 고향으로 가라는 소리를 그는 다만 듣고 있을 수 밖에 없다. * 고성인물 시조시인 서벌 / 고성군청 서벌(徐伐, 본명 봉섭, 1939∼2005) 선생은 경남 고성군 영현면 봉발리 838번지, 일명 바루절이라 불 리는 산골짝에서 찢어지게 가난했던 부친 서부관徐富寬과 어머니 김복수-福壽의 3남 2녀 중에서 맏이 이자 장손으로 태어나 다섯 살 무렵에는 아랫동네‘새띠이’마을로 이사를 했다. 1945년 광복하던 해, 외가가 있는 고성읍 수남동의 남포 갯가로 이사를 가서도 그를 따라온 것은 역 시 가난이었다. 해방이 됐지만 산들이 벌거벗고 있는 탓에 그는 산을 몇 개씩이나 넘어 다니면서 땔 감을 구해야 했고 소 먹이는 일, 들에서 농사짓고 풀베기 하던 일, 그가 직접 들려준 그의 소년기는 고난과 인고의 기록이다. 생활의 터전이나 학력으로 남들보다 모자라다 싶은, 그의 어리고 젊은 시절 의 이력서는 그에게는 되려 엄청난 약방문이 되었다.」고 김열규교수는〈서벌 시조론〉에서 서술했 다. 가난이 위대한 시인을, 위대한 문학인을 잉태한다는 말은 아무리 시대가 흘러도 유효한 말인 것 같다. 서벌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과연 그가 시인의 길로 들어섰을지는 의문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2학년을 중퇴로 학교교육을 끝내야 했고, 허리 굽으신 할머니와 병석 에 누우신 아버지와 어린 동생 셋을 돌봐야 했다. 두부장수 어머니는 가장, 나는 주부역할, 그렇게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식구가 모두 굶주리는 것 헐벗다시피 사는 정황이었 다. 나의 문학은 바로 여기로부터 비롯된 몸부림의 숨소리들이었다.」고 그는 술회를 했다. (서벌 〈구차한 보고서〉《조선문학》) 서벌은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중퇴해 실의에 빠져 있던 그 즈음에 자신의 운명을 바꿀 책 한 권이 다가온다. 이호우의 시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습작한 시를 박남수 시인에게 보여 가능성 을 인정받고 17∼18세 때 김춘랑을 위시하여 이문형, 선정주, 최진기, 최우림, 남정민 등 고성문학의 태동의 하나였던《영번지》동인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그는 시동인지《갈매기》,《이향異鄕문학회》,《향토문학》,《기수문학》, 《율律》 등을 통해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한다. 그의 나이 22세 때인 1960년에 4·19가 일어나자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의 타고난 성품 그대로 고성의 데모군중에 앞장을 서서 격렬하게 투쟁을 했다. 이로 인해 한동안 그는 요시찰 인물이 되어 쫓기는 몸이 된다. 당시 그의 활동이 요즈음의 시각으로 보면 확실 한 민주화운동이었음에도 아무런 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함은 안타까운 일이다. 1961년 그의 나이 23세 때 그동안 틈틈이 써둔 시를 모아 발간한 첫 시집 《하늘색 일요일》이 세상 에 나온다. 시집의 발문은 당시 시조계의 거목이던 이태극 씨가 써주었다. 이것을 계기로 서벌은 한 국시조계의 문을 힘차게 열고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하여 1972년 《각목집(角木集)》을 발간했으며, 중앙일보 시조대상(1992년), 남명문학상 본상(1993년), 가람시조문학상(2003년) 등을 수상하였다. 그는 2005년 8월 건강악화로 66세의 나이로 작고 한 후 그의 생애와 문학활동, 작품세계가 재조명되 고 있으며, 고성문학사에 서벌선생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성문학의 태동기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고성문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현재, 서벌선생이 고성읍으로 이사 후 생활하였던 고성읍 수남리(현, 고성군보건소 밑) 주택은 하천 정비 및 도로확장 등으로 인해 편입 철거되고 일부는 공터로 남아있다. 고성군에서는 우리나라를 대 표하는 시인 서벌 선생을 기리고 알리기 위해 그가 태어난 영현면을 떠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생활했 던 고성읍 수남리 일원에 시비 등을 건립할 계획이다. 영혼을 맑게하는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