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조은세> 아파트 / 후회 / 소망 / 조팝나무 / 버들강아지 / 개화

이름없는풀뿌리 2023. 8. 23. 17:40
아파트 - 조 은 세 / 2003.10.18 - 야망에 찬 손 뻗으면 닿을 듯, 닿을 듯하여 뭐인지 모르면서 밟아온 마흔의 욕망 구름도 찌르지 못해 허공중에 우는 창(槍) 후 회 - 조 은 세 / 2003.06.11 - 십수 년 공들여 쌓은 철옹성 믿었는데 우연한 어깃장에 목숨걸고 달려 드니 마침내 주춧돌 흔들려 실바람도 겁난다 ​ 털끝 하나 다치기 싫어 켜켜이 세운 방패막이 틈 사이 박혀오는 가시 돋힌 냉정한 말 내 몸도 이렇게 아픈데 맨몸으로 버티는 그 ​ 제 몸을 앗아가는 비안개의 도둑질도 묵묵히 지켜보는 덩치 큰 산의 아량 참을 줄 아는 그 마음 조금 일찍 알았다면 사랑하는 당신 - 조 은 세 / 2003.05.27 - 초록빛 개울물에 더위를 헹궈내면 산바람 등에 업혀 당신이 올 거라는 아까시 이파리의 귀띔 아니 와도 좋았다 ​ 날마다 꿈 속에선 너털웃음 담을 넘고 마주 앉은 무릎머리 쏟아지는 별의 시샘 손길은 느낄 수 없어도 하나임을 알아버린 라일락꽃 - 조 은 세 / 2003.05.06 - 오월의 싱그러움을 혼자서 다 먹었나 바람 결에 실려오는 진한 향기에 놀라서 누군가 뒤돌아 보니 아버지 서 계시네 ​ 가슴에 꼭 안고서 코가 낮아 걱정이야 엄지 검지 손가락으로 코를 잡아 늘이면 울음보 터뜨리는 볼에 라일락 향을 비비셨지 ​ 까슬한 수염이 그리워서 오종종한 꽃잎을 따 손가락 사이에 끼워 얼굴을 문지르면 아직도 아버지 품 같아 어리광을 피고 싶어 마음의 정 - 조 은 세 / 2003.05.05 - 곧은 길 찾아내는 예리한 마음의 정 정결한 몸가짐엔 흐뭇한 미소 짓다 숨겨둔 비밀을 찾으면 시퍼런 날 번득인다 ​ 어긋남을 눈곱만큼도 참아내지 못하는 너 내 인생을 참견해서 얻은 건 무엇인가 무뎌진 몸뚱어리에 날카로워진 눈매뿐 ​ 바랄 것이 더 없다며 양심을 베고 누워 실수를 기다리는 얄미운 놈이지만 정들어 차가운 정 끝에 흔들리는 나를 맡긴다 조팝나무 - 조 은 세 / 2003.05.02 - 좁쌀이 토독 토독 하얗게 튀어 올라 초록 물 온 천지에 슬며시 끼어들어 떠나는 봄의 머리에 화환 걸며 눈물짓네 ​ 만나면 이별이듯 가는 봄 끝자락에서 볶아치는 세상사에 어리벙벙히 맴돌다 뜨거운 볕 살조차 품지 못해 찾아 드는 솔개그늘 ​ 흙냄새 코에 걸고 하늘을 바라보니 조르르 줄선 꿈들이 저마다 콧대 세우고 봄 날은 제 몫을 다했다고 호탕하게 웃는다 책가방 - 조 은 세 / 2003.05.01 - 업어줘 업어줘 아침마다 투정 대는 국어책 수학책 사회책 과학책 한 가득 등에 지고도 신명나는 등굣길 ​ 덜커덩 덜커덩 돌밭 길 달릴 때면 아프다고 툴툴대는 교과서가 얄미워서 일부러 엄살을 떨면 꾀병인 줄 모른다 ​ 집에서 놀아 보니 심심해서 못 살겠다 친구들도 그리워 내일은 꼭 가야지 얘들아 꽉 잡아야해 막 뛰어서 갈 거니까 소 망 - 조 은 세 / 2003.04.02 - 걸음을 재촉하는 지름길 가기보다 조금은 멀더라도 지친 몸 잠시 쉬어 절경에 혼을 쏙 빼는 그런 길을 가고 싶다 ​ 어려운 사유여서 한번만 품기보다 가슴에 스며들어 시시로 흘러 나와 절절이 마음을 적시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 남들이 미련하다 가치가 없다해도 두 눈을 질끈 감고 두 귀를 꼭 막고서 흔들림 없는 참대같은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거 울 - 조 은 세 / 2003.03.22 - 거짓을 싫어해서 정직한 마음으로 외양보다 정갈한 내면으로 살아가니 한치의 오차도 없는 길라잡이 같아라 버들강아지 - 조 은 세 / 2003.03.21 - 살얼음 내 마음을 녹이는 그대 눈빛 두려움 송송 박힌 둥실한 매무시도 다정히 감싸 안아주니 촛불처럼 빛나네 ​ 개울가 숨은 자리 찾아온 그대 미소 버거워 가장하는 촘촘한 방어벽도 끈질긴 애정 공세에 흔적 없이 무너져 ​ 애인이 된 그대를 날마다 보고 싶어 임 손길 닿기 전에 스스로 따라 나서 화병의 어두운 물 속도 사랑으로 견디리 꽃샘추위 - 조 은 세 / 2003.03.08 - 너의 마음 모르지 않지 떠나는 길은 미련이 남아 뒤돌아 보고 싶은 마음 굴뚝처럼 자옥하고 잘가라 손 흔드는 이 없어 괘씸도 하겠지만 ​ 떼쓰고 심통 부리는 철모르는 아이 같아 재롱부리던 꽃봉오리 꼬옥 다문 저 입술이 울음보 터뜨리지 않게 이제 그만 돌아 가렴 ​ 최고의 걸작 - 조 은 세 / 2003.03.07 - 첫째는 느긋하게 만기일을 지나서 둘째는 급해서 두 달이나 빨리 ​ 크기도 질감도 다르지만 ​ 마에스트로(Maestro)의 작품이라 바라만 보아도 세상 근심 잊는다 개 화 - 조 은 세 / 2003.02.25 - 건들지 마세요 간신히 참고 있어요 커진 몸이 부딪혀서 터질 거 같아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어찌하면 좋아요 ​ 빨리 보고 싶다고요 봄바람이 샘내요 천천히 나갈게요 자아요, 보이나요 어때요 새로운 모습이 마음에 드세요 ​ 보기만 하세요 향기만 맡으세요 아직은 수줍어서 아직은 서툴러서 당신의 소나기 사랑에 겁이 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