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한창현> 탈출 / 빙어

이름없는풀뿌리 2023. 8. 22. 18:29
탈 출 - 한 창 현 - 영혼을 담보로 양심에 칼질하는 삼류시인과 화가를 생각하니 몽땅 벗어 준 나목의 비애로 현기증은 소리없이 혼절한다 ​ 무채색 표백된 겨울 바다 절망의 구름은 미아로 서성거리고 웅성거림으로 하늘색을 지운다 그리고 한번의 구역질로 산성비를 토한다 ​ 거미줄로 장식된 창틀 사이로 튀겨져 나가는 마지막 정령들 작은방은 얼름골 빙벽으로 변한다 붓대를 잡고 선을 긋는다 분열된 자화상 창살 없는 감방에 유배된다 ​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면 어눌한 태양이 땅끝에 턱걸이할 때 낯선 도망자의 얼굴로 탈출 만을 생각한다 ​ 길 잃은 유성 하나 긴 사선을 긋는다 ​ 빙 어 - 한 창 현 - 순결의 산과 강 비탈진 골짜기에도 빛이 스며들고 바람도 유영 친다 ​ 강을 따라서 길게 누워버린 길 겨울 숲은 그리움 되어 뒤따라온다 사랑은 임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 얼음 골 다리 건너 나지막이 자리잡은 겨울의 횟집 작은 수족관에는 머리를 한쪽으로만 향하는 빙어 죽음을 예측하면서도 앞서서 이승을 버리려고만 한다 겨울의 깊이만큼 더욱더 투명한 속마음 겨울은 눈부시도록 곱게 흥분된다 ​ 그대 생이 얼마나 욕심이 없었으면 저렇게 다 보여주는 것일까 그대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마지막 사랑으로 채워주고 가는 걸까 ​ 그대 작은 몸뚱이 도려내면 투명한 겨울 편지되어 가슴 없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눈다 그대 몸짓은 이슬 같은 영혼 순백의 눈꽃으로 피어난다 ​ 흰 접시마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다 비워놓고 그대는 떠나는구나 그대 유영에 내 마음 실어 긴 겨울 강은 사색으로 헤엄친다 빙어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