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권영국> 벚꽃 / 백두옹 / 뿌리 / 백목련 / 봄 / 태백산 / 회집

이름없는풀뿌리 2023. 8. 24. 09:20
벚 꽃 - 권영국 / 2003/04/15 - 우르르 구름처럼 하얗게 몰려들어 곤두선 치솟음에 꽃 물을 질금질금 미친 듯 날아다니는 흥분한 웃음 살 ​ 바람에 울먹임을 흥건히 품에 안고 후루룩 사정없이 하얗게 무너지며 까르르 자지러지는 봄눈이 눈물짓다 백두옹白頭翁 - 권영국 / 2003/04/15 - 봄바람 살랑이다 하늘을 비질하면 허공에 매달린 가녀린 구름눈물 뚝 뚝 뚝 봄 언덕길을 적시던 화창한 날 ​ 부서진 햇살 한 톨 한 아름 눈부시면 땅껍질 겨드랑이 간질다 고개 드는 멈춰선 한줄기 꽃자루 무덤 가를 두리번 ​ 온몸을 감아 도는 두루마리 같은 전설 이승의 꽃 향기를 말없이 등 지고 홀로 이 고개 숙이는 붉은 꽃 백두옹 세월이라 한다네 - 권영국 / 2003/04/07 - 핏발이 문신처럼 새겨진 낡은 육신 등허리 굽어 가면 매질하는 욱신거림 지친 몸 깊게 패인 주름 하나 둘 늘어나니 ​ 켜켜로 쌓여 드는 적막한 지친 어깨 하얗게 배인 머리 가슴을 쓸고 웃으면 머리로 하얀 별들이 주절주절 내려앉고 ​ 턱 괘면 비벼대는 지나간 흑백추억 철 철 철 돌아가는 철 지난 필름이다 '훅'하며 스치는 바람이 세월이라 말하네 은빛물고기의 비애(悲哀) - 권영국 / 2003/03/24 - 날렵한 은빛 비늘 바다로 묻어두고 허공을 뻐끔대다 썰물로 떠난 비애(悲哀) 조그만 그릇 사이로 바다 살점 비릿한데 ​ 점점이 사라지는 차가운 파도소리 소돔과 고모라의 처절한 운명처럼 섬뜩한 돋은 소름 살 혀끝에서 사르르 ​ 까르르 자지러진 한바탕 웃음소리 절망을 메아리로 껴안고 철석이면 노을은 눈시울 적시며 바다로 떨어진다. 뿌 리 - 권영국 / 2003/03/18 - 옷 거름 풀어헤친 봄꽃을 바라보며 시인은 노래하지 송이송이 꽃 노래를 하지만 나는 보았어 뿌리들의 눈물을 ​ 세상이 두려운지 땅으로 달라붙어 밀치고 들어가는 희망 없는 절망으로 어둠을 뒤스럭거리다 제 가슴에 묻고 살지 ​ 얄궂은 꽃잎이 햇살 먹고 키 키우면 더 깊은 땅속으로 묻어둔 화두를 향해 붉어진 목젖을 토하며 울고있는 것을 백 목련 - 권영국 / 2003/03/11 - 겨우내 진저리친 동면의 가슴앓이 움트는 젖 몽우리 만지작대는 바람 쉼 없이 몸살을 앓는 오금 저리던 가슴 ​ 불 바람 하염없이 닦달하다 비겨대고 뽀로르 달려들어 달게구는 햇살 한 톨 살포시 바리작 대면 수줍음이 보삭보삭 ​ 살 그래 바름바름 가슴 끈 풀어헤치면 치닫는 신음으로 퉁기는 숨찬 절정 툭 터진 달 보드레한 우윳빛 젖가슴 ​ *달게구는 : 붙잡고 매달려 조르다. *보삭보삭 : 살이오르는 모양 *살그래 : 살그머니. *바름바름 : 바라진틈으로 조심스럽게 살피거나 더듬는모양 한강은 흐른다 - 권영국 / 2003/03/07 - 금대산 고목 샘아 하얗게 햇살 먹고 한강 길 계곡으로 갈증 난 울부짖음 와르르 메밀꽃 같은 물안개 숲을 흔들고 ​ 긴 세월 굽어 돌던 의구한 저 물결은 언제나 곰비임비 다붓하게 흐르는데 과거사 갑남을녀들 가뭇없이 강물만 운다 ​ 노을로 내려놓는 말 많은 너섬에는 자기 살 태우던 인걸은 간데 없고 철새들 단작스러운 주둥이만 고리다 ​ 선착장 유람선은 고즈넉이 넘실대다 강 언덕 가녘으로 삿대를 놓아도 쉼 없이 걱실거리다 황해를 두드린다. ​ *곰비임비 : 물건이 거듭 모이는 모양 *가뭇없이 : 소식이 없다. *단작스러운 : 하는 짓 이 매우 치사스럽다. *걱실거리다 : 너그럽고 활발하게 비가 내리면 - 권영국 / 2003/03/05 - 소주로 헹궈내던 쓰디쓴 그리움이 휘어진 마음 자락 힘겹게 흔들리고 울컥 인 한 줌 눈물로 지울 수 없는 걸까? ​ 청승을 떨고있는 도시의 회색눈물 속과 겉 삶의 무게로 힘겹게 누를 때 우연히 그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다. ​ 봄이 오는 소리 - 권영국 / 2003/02/24 - 모서리 찢겨버린 누더기 겨울바람 메마른 가래 끓는 소리로 서성대다 뜨내기 시린 발끝을 세우며 잉잉 되고 ​ 여울목 사각이면 햇살 낮게 주저앉아 분주한 물고동에 왈칵 안겨 숨쉬고 분칠한 홍조 띤 처녀 여린 가슴 설레는데 ​ 빛 한 톨 분주하게 젖가슴 들락거리다 한 소절 가느다란 신음으로 허우적대고 살포시 열린 고운 잇속 어쩔 줄 모르네 봄1 - 권영국 / 2003/02/11 - 계집애 초경 같은 현기증이 비틀비틀 동면을 녹이듯이 무너진 울음처럼 작은 둑 숨구멍으로 미어져 나오는 봄 봄2 - 권영국 / 2003/02/20 - 하얗게 더벅머리 덮어놓은 논두렁 파릇한 봄기운이 심장을 두드리면 꾹 밟은 겨울 앓이가 질금질금 눈물짓고 ​ 머리 푼 늙은 안개 동면을 꿀컥 이면 햇살로 입맞추는 기지개켠 아지랑이 나직이 속살 태우는 안타까운 희망의 봄 태백산 - 권영국 / 2003/02/11 - 바람이 문풍지를 붙들며 구시렁대다 어둠 속 개 짖는 소리로 잠이 들면 새벽 닭 회 치는 소리로 오감은 열리고 ​ 숨차게 발 밑으로 벗기는 산등성이 천만년 세월동안 약속을 기다린 듯 서서히 태백의 자태가 빗장을 풀어내니 ​ 용광로 쇳물을 부은 듯이 이글이글 동해를 박차고 떠오는 붉은 해 영겁의 청년 주목을 벅차게 끌어안는다. ​ 칼바람 물기 빠진 태백의 주목 관목 가지로 피어나던 눈 같은 상고대는 살며시 얼굴 붉히며 이 순간을 함께 하니 ​ 발아래 우뚝 솟는 긴 세월 천년 풍파 온몸에 피돌기가 한없이 되살아나고 웅장한 네 모습으로 장쾌함을 표출한다. 횟집 - 권영국 / 2003/01/24 - 60촉 알 전구가 부스스 눈 비비면 통통히 물이 오른 횟집이 술렁이고 고요한 수족관으론 긴장감이 감돈다. ​ 딴청을 피우면서 돌아서는 숭어 녀석 광어도 슬금슬금 배 깔고 눈 돌릴 때 획 하니 부는 바람에 큰 파도가 일렁인다. ​ 도마로 발가벗은 긴장이 팔딱 이고 회칼은 잔뜩 고인 군침을 삼키며 쓰으윽 베는 소름에 슬픈 눈빛이 짜다. 첫사랑 - 부제:사과 / 권영국 / 2002/12/04 - 꼭 다문 붉은 입술 발갛게 부끄럼 타고 숨겨진 비밀들이 한 올 한 올 벗겨지면 물오른 탐스런 속살 첫사랑에 어쩔 줄 모르네 ​ 베어 문 네 향기가 내 혀를 감치고 살포시 사각이며 은은하게 부서지면 상큼한 네 첫사랑이 입안 가득 피어난다 고추잠자리 - 권영국 / 2002/12/04 - 햇살이 현을 퉁겨 고추밭에 내려앉고 한 마리 잠자리가 햇살 한 입 갈겨 물며 처마 끝 간들 바람에 날개 짓 살랑 인다. ​ 청청(靑靑)한 가을 하늘 해(太陽) 타는 네 모습에 꼬리로 붙은 불이 송이송이 붉어지고 부끄런 가을 하늘은 발갛게 눈을 뜬다 ​ *갈겨물며 : 떼어 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