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정한모> 가을에 / 어머니 / 갈대 / 나비의여행

이름없는풀뿌리 2023. 11. 12. 06:40
가을에 - 정한모 / <여백을 위한 서정>(1959) -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낸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한 추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어머니 1 - 정한모 / 시집 <새벽>(1975) - 어머니 지금은 피골만이신 당신의 젖가슴 그러나 내가 물고 자란 젖꼭지만은 지금도 생명의 샘꼭지처럼 소담하고 눈부십니다. 어머니 내 한 뼘 손바닥 안에도 모자라는 당신의 앞가슴 그러나 나의 손자들의 가슴 모두 합쳐도 넓고 깊으신 당신의 가슴을 따를 수 없습니다. 어머니 새다리같이 뼈만이신 당신의 두 다리 그러나 팔십 년 긴 역정(歷程) 강철의 다리로 걸어오시고 아직도 우리집 기둥으로 튼튼히 서 계십니다. 어머니! 갈대 - 정한모 - 바람이 분다 갈대가 울고 있다 두고 온 강가에서 강가에서 강가에서 울고 있다 아니예요 우는것이 아니예요 갈대가 된 그리움이 바람에 쏠려 소리를 내네요 바람이 분다 두고온 강가에서 갈대가 울고 있다 내가슴 깊은 한켠에서 갈대가 소리내어 울고 있다. 나비의 여행 - 아가의 방·5 / 정한모 / <사상계>(1965) -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睡眠)의 강(江)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記憶)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나르다가 깜깜한 절벽(絶壁) 헤어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부딪치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表紙)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阿鼻叫喚)하는 화약(火藥) 냄새 소용돌이 전쟁(戰爭)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恐怖)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邂逅)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焦燥)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이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 정한모(鄭漢模), 1923-1991) 성격 : 시인, 국문학자 출신지 : 충청남도 부여 저서(작품) : 카오스의 사족(蛇足), 여백을 위한 서정, 문체로 본 동인(東仁)과 효석(孝石), 김영랑론 등 대표관직(경력) :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화공보부 장관, 잡지간행윤리위원회 이사장 해방 이후 『카오스의 사족』, 『여백을 위한 서정』, 『원점에 서서』 등을 저술한 시인. 국문학자. <생애> 충청남도 부여 출생.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는 나니와상업학교[難波商業學校]를 졸업한 뒤,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휘문고등 학교 교사를 거쳐, 1958년 동덕여자대학 교수로 부임하였고, 1966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1988년 퇴직 때까지 재직하였다. <활동사항> 문단 등단은 8·15광복 직후 김윤성(金潤成)·구경서(具慶書) 등과 함께 동인지 『백맥(白脈)』을 발 간함으로써 이루어졌으나, 본격적인 활동은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멸입(滅入)」이 당 선된 뒤부터이다. 1958년 제1시집 『카오스의 사족(蛇足)』에 이어 다음해 제2시집 『여백을 위한 서 정』을 발간하였다. 이 무렵 그의 시의 주조가 되고 있는 것은 바람이나 꽃·계절·산이나 시내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가운데 따뜻한 인간의 눈길이나 정을 곁들여서 읊조린 정신자세로 시 「바람 속에 서」는 이러한 경우의 좋은 보기로 생각되는 작품이다. 그 뒤 그의 시는 일상적인 생활에 평범한 인 간의 정을 실어 읊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러한 세계를 담은 작품을 수록한 것이 『아가의 방』(1970)·『새벽』(1975)·『사랑 시편(詩篇)』(1983)·『아가의 방 별사(別詞)』(1983)·『나비 의 여행』(1983)·『원점에 서서』(1989) 등이다. 시인으로서의 활약 이외에도 대학 교수로서 문학 연구에 끼친 공적으로는, 1956년 5월부터 12월에 걸쳐 『문학예술』에 발표한 「문체로 본 동인(東 仁)과 효석(孝石)」, 1964년 12월호 『문학춘추(文學春秋)』를 통하여 발표한 「김영랑론(金永郞 論)」 등이 있다. 이들 문학 연구와 시론에 해당되는 글들은 뒤에 『현대작가연구』(1959)·『한국현 대시학사』(1974) 등으로 공간되었다. 또하나의 뚜렷한 발자취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 교육자로서, 그리고 문화행정가로서의 단면이다. 교육 분야에서 그는 방송통신대학이 설립, 운영되자 학장으로 취임하여 기구확충, 교과목 내용 개편, 강의 운영의 개선에 힘썼다. 한국시인협회에도 관계하여 한때 사무국장을 맡았고, 이어 그 회장으로 추대 된 바 있다. 또한 제3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하여 문학예술 지원사업을 관장한 바 있 다. 예술원 정회원,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한국비교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8년 문화공 보부 장관이 되었다. 장관 퇴임 후에는 잡지간행윤리위원회 이사장으로 일한 바 있다. 특히, 문화공 보부 장관 재임 때에는 그 동안 남쪽에서 작품들의 공간과 논의가 금지되어온 월북 및 납북 문학예술 인들을 해금한 「납·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조치」를 입안, 공포하여, 남쪽에서나마 한국 문단의 벽 을 제거하는 데 공헌하였다. <상훈과 추모> 한국시인협회상(1971)·서울특별시문화상(1983)·대한민국예술원상(시부문, 1987)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정한모의 문학과 인간』(정한모선생추모문집간행위원회, 시와 시학사, 1992) 「휴머니즘 또는 미래지향의 역사 의식: 정한모론」(김시태, 『현대문학』345, 1983.9.) 「자아와 세계와의 화해」(오세영, 『현대문학』293, 1979.5.) 「원초적인 것에의 집념」(이건청, 『현대시학』62, 1974.5.) 가을에(정한모) / 시낭송 이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