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부도
- 이재무 / <이재무 시선집> bookin(북인) / 2008년 08월 -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듯, 그러나
닿지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 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가득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말인가? 이별 말인가?
하루에 두 번이나 되지 않겠나
아주 섭섭지는 않게 아주 물리지는 않게
자주 서럽고 자주 기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자랑스러운 변덕이라네
하루에 두 번 바다가 가슴을 열고 닫는 곳
제부도에는 사랑의 오작교가 있다네
팽나무 쓰러, 지셨다
- 이재무 -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 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곡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 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에서 아이스께끼 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겨울 숲에서
- 이재무 -
겨울나무들의 까칠한 맨살을 통해
보았다, 침묵의 두 얼굴을
침묵은 참 많은 수다와 잡담을 품고서
견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겨울 숲은 가늠할 수 없는 긴장으로 충만하다
산 이곳저곳 웅크린 두꺼운 침묵,
봄이 되면 나무들 가지 밖으로
저 침묵의 잎들 우르르 몰려나올 것이다
봄비를 맞은 그 잎들 뻥긋뻥긋,
입을 떼기 시작하리라
나는 보았다
너무 많은 말들 품고 있느라 수척해진
겨울 숲의 검은 침묵을
* 이재무(1958년-)
* 2002년: 제2회 난고문학상 수상
* 2005년: 제15회 편운문학상 우수상 수상
* 2006년: 제1회 윤동주 시상 수상
* 2012년: 제27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
* 2015년: 제2회 풀꽃문학상 본상 수상
* 2017년: 제3회 송수권 시문학상 본상 수상
* 2019년: 제17회 유심작품상 시부문 수상
* 2020년: 제17회 이육사 문학상 수상
* 2014~15 월간 [현대시학] 주간 엮임.
* 2010~15 [실천문학] 시집 간행위원회 활동
* 2001~09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주간
* 2000~15 [한국 작가회의] 이사
* 1994.~ 민족예술인총연합 대의원
* 1993.~1994.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 부위원장
* 1985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 간사
* 1958년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석
사과정을 수료하였다. 現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이다. 現 천년의시작 대표이사임. 83년 《삶의문
학》, 《문학과사회》 등을 통해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 작품 : 섣달그믐(1987 청사),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1990 문학과지성사), 벌초(1992 실천문학사),
몸에 피는 꽃(1996 창작과비평사), 시간의 그물(1997 문학동네), 위대한 식사(2002 세계사),
푸른 고집(2004 천년의시작), 저녁 6시(2007 창작과비평사),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2007 화남),
경쾌한 유랑(2011 문학과지성사), 주름 속의 나를 다린다(2013 지식을 만드는 지식),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2014 실천문학사), 슬픔은 어깨로 운다(2017 천년의시작), 데스밸리에서 죽다
(2020 천년의시작)
제부도(이재무) / 시낭송 김혜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