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조병화> 해마다봄이되면 / 낙엽끼리모여산다 / 외로운사람에게

이름없는풀뿌리 2023. 11. 29. 06:36
해마다 봄이 되면 - 조병화 / <어머니>(1973) -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 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낙엽끼리 모여 산다 - 조병화 / <하루만의 위안>(1950) - 낙엽에 누워 산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지나간 날을 생각지 않기로 한다. 낙엽이 지는 하늘가에 가는 목소리 들리는 곳으로 나의 귀는 기웃거리고 얇은 피부는 햇볕이 쏟아지는 곳에 초조하다. 항시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가까이 가는 곳에 낙엽이 진다. 아, 나의 육체는 낙엽 속에 이미 버려지고 육체 가까이 또 하나 나는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비 내리는 밤이면 낙엽을 밟고 간다. 비 내리는 밤이면 슬픔을 디디고 돌아온다. 밤은 나의 소리에 차고 나는 나의 소리를 비비고 날을 샌다. 낙엽끼리 모여 산다. 낙엽에 누워 산다. 보이지 않는 곳이 있기에 슬픔을 마시고 산다. 외로운 사람에게 - 조병화 - 외로운 사람아, 외로울 땐 나무 옆에 서 보아라. 나무는 그저 제자리 한 평생 묵묵히 제 운명, 제 천수를 견디고 있나니 나무는 그저 제 자리에서 한 평생 봄, 여름, 가을, 겨울 긴 세월을 하늘의 순리대로 살아가면서 상처를 입으면 입은대로 참아내며 가뭄이 들면 드는대로 이겨내며 홍수가 지면 지는대로 견디어내며 심한 눈보라에도 폭풍우에도 쓰러지지 않고 의연히 제 천수를 제 운명대로 제 자리를 지켜서 솟아 있을 뿐 나무는 스스로 울질 않는다. 바람이 대신 울어준다. 나무는 스스로 신음하지 않는다. 세월이 대신 신음해 준다. 오, 나무는 미리 고민하지 않는다. 미리 근심하지 않는다. 그저 제 천명 다하고 쓰러질 뿐이다. * 조병화(趙炳華, 1921-2003) 데뷔 :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수상 : 1997년 5·16민족상 1996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1992년 대한민국문학상 경력 : 세계시인회의 국제이사, 세계시인대회 회장 호는 편운(片雲). 1921년 5월 2일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난실리에서 조두원의 5남으로 출생. 1938년 경성사범을 졸업하고, 1943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이과에 입학하여 물리‧화학을 전공했다. 1945년 6월에 귀국한 후 경성사범, 제물포고, 서울고에서 교편을 잡았다. 중앙대, 이화여대 강사를 거쳐 1959년부터 1980년까지 경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인하대로 옮겨 1984년 정년 퇴임한 후, 명 예교수로 재직하였다. 2003년 3월 8일 사망하였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발간하며 문단에 등단한 이후 『하루만의 위안』(1950), 『패각 의 침실』(1952), 『인간고도』(1954), 『사랑이 가기 전에』(1955), 『서울』(1957), 『석아화(石阿 花)』(1958),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1959), 『밤의 이야기』(1960), 『낮은 목소리로』(1962), 『공존의 이유』(1963), 『쓸개 포도의 비가』(1963),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1964), 『내일 어 느 자리에』(1965), 『가을은 남은 거에』(1966), 『가숙(假宿)의 램프』(1968), 『내 고향 먼 곳 에』(1969), 『오산 인터체인지』(1971), 『별의 시장』(1971), 『먼지와 바람 사이』(1972), 『어머 니』(1973), 『남남』(1975), 『창안에서 창밖에』(1976), 『딸의 파이프』(1978), 『안개로 가는 길』(1981), 『머나먼 약속』(1983), 『나귀의 눈물』(1985), 『어두운 밤에도 별은 떠서』(1985), 『해가 뜨고 해가 지고』(1985), 『지나가는 길에』(1989), 『후회없는 고독』(1990), 『찾아가야 할 길』(1991), 『낙타의 울음소리』(1991), 『타향에 핀 작은 들꽃』(1992), 『다는 갈 수 없는 세월』 (1992), 『잠 잃은 밤에』(1993), 『하루만의 위안』(1994), 『시간의 속도』(1995), 『헤어지는 연 습을 하며』(1998), 『공존의 이유』(1998) 등 많은 시집을 발간했다 그의 다작의 비결은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본질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를 쉬운 일상의 언어로 표 현함으로써 많은 독자와 솔직한 대화를 이루어 왔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현대시가 난해하고 안 팔린다는 통념을 무너뜨린 희소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림 분야에도 일가를 이루어 15차례에 이르 는 개인전을 갖기도 하였다. 한편 『밤이 가면 아침이 온다』(1958) 등의 시론집 4권과 『시인의 비 망록』(1977)을 비롯한 27여 권의 수필집을 간행하기도 했다. 아세아 자유문학상(1960), 경희대문화 상(1969)과 대한민국 예술원상(1985), 3‧1문화상, 대한민국 문학상(1992) 등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으 며, 세계시인대회 계관시인, 세계시인회의 한국위원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낙엽 끼리 모여산다(조병화) / 시낭송 헬렌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