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서벌> 너는 / 마감약속어기고서 / 버릇 / 지극히조용한날의말 / 그런데 / 이제는(미발표유고시)

이름없는풀뿌리 2024. 4. 2. 06:47
너는 - 서 벌 미발표 유고시 / 평론집<서벌, 적막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그널> 고요아침 2020 - 너는 계단이다, 오르도록 내리도록 언제나 강요하는 아주 얄궂은 계단. 오르고 딴 데로 갔었다만 도로 와 내려 앉는다. 마감 약속 어기고서 - 서 벌 미발표 유고시 / 평론집<서벌, 적막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그널> 고요아침 2020 - 휑하니 뚫리다가 폐광으로 남은 가슴. 몇 뼘 헛소리짓 그 매장량 고작 믿고 파내어 날려버린 일 이미 잊혀 안 떠오른다. 버릇 - 서 벌 미발표 유고시 / 평론집<서벌, 적막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그널> 고요아침 2020 - 할 말 있었으나 입 다물고 돌아온 날. 그 사람 보낸 건지 초저녁 비 세차더군. 그 이후 세찬 밤비 오면 입 다물린 이 결국結局. 지극히 조용한 날의 말 - 서 벌 미발표 유고시 / 평론집<서벌, 적막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그널> 고요아침 2020 - 있었다, 하나의 섬 그 바다가 가졌던 섬. 밀면 밀수록 물결 받아 주었던 섬. 물결은 섬이 되었고 치고 치는 성난 물결. 그런데 - 서 벌 미발표 유고시 / 평론집<서벌, 적막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그널> 고요아침 2020 - 죽지 않으려고 바람이 불고 있다. 마구 기를 쓰며 불어와 불고 간다. 그런데, 태풍은 왜 죽나 물난리만 내고는. 이제는 - 서 벌 미발표 유고시 / 평론집<서벌, 적막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그널> 고요아침 2020 - 무엇이 될고 하니 쓰레기봉투나 되어 버려 버려진 것들 쓸어담다 가렵니다. 진귀한 명품들일랑 나의 것 아니어서. * 작품해설/원은희 : 서벌의 허무지향적 시세계는 tkfqdp 대한 모든 아집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자 신의 존재를 끌어내림으로써 가능해 진다. 온갖 세상의 버려진 것들을 수용하는 쓰레기 봉투나 되었 다가 서방정토로 가겠다는 그의 독백은 이 세상의 번민과 고통을 힘겨운 깨달음을 통해 헤쳐 나가겠 다는 것이다. 이는 세속의 욕망이나 부귀영화, 권력에의 지향 등을 모두 내려놓겠다는 얘기다. 그리 하여 한 때의 방황과 광기, 죽음과 허무, 즉 고의 한계에서조차 벗어나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현실 초월의지를 보여주는 시이다. 미발표 유고집 https://cafe.daum.net/gnmuninhep/ORax/364?q=%EC%84%9C%EB%B2%8C%20%EC%8B%9C%EC%A1%B0&re=1 풀뿌리부인의 시(詩) 원전(原典)읽기 https://cafe.daum.net/poolppuree 첫 시조집<하늘색 일요일>(새글사, 1961) 서벌 삼장시집(三章詩集) <각목집(角木集)>(금강출판사, 1971). *『서벌, 적막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그널』머리말 / 고요아침 2020년 12월 30일 / 원은희 한 시인이 시살이와 나날살이의 궤적을 들여다보며 시적 위의를 기록하고자 했던 필자의 행보는 아직 도 진행 중이다. 서벌 시조의 몸속으로 들어가 읽고 분석하고 백지를 메워가던 학문적 노정의 즐거움 을 「서벌 시조 연구」라는 논문에다 바쳤다. 이를 보완하여 다시 평론집도 발간하였다. 그러자 그의 고향 고성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가 시심을 키우며 살았던 곳에 표지석이 세워지고 일대 가 시조비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그곳에서 백일장도 열리고 있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고성을 대표 하는 시인으로 서벌을 꼽으며 그의 시와 더불어 문학의 심연에 젖어 들 수 있게 되었다. 서벌은 1939년 경남 고성 영현골의 깊은 산속에서 태어나 자랐다. 적빈의 가정에서 불우한 소년기를 거치며 가난의 대물림만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결국 출향하였다. 하지만 서벌에게 달라붙은 가난의 줄은 끈질기게도 그의 삶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차디찬 인정의 서울살이는 적막과 고독으로 채워지는 적자 더미일 수 밖에 없었다. 가난을 면피하기 위해 택한 서울에서 그는 늘 변방으로 내몰 렸고 이방인으로 떠돌며 고독과 외로움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적빈의 현실이 시를 위해서는 다행이었는지 시인은 더욱 시조경영에 매진하며 현실 극복의지 를 보여주었다. 시조 대중화와 부흥이라는 위상을 유감없이 보여 준 「서울.1」로 그는 현대시조의 전범이 되었다. 40여년을 줄곧 시조창작과 시조이론서 등을 내놓으며 시조의 삶을 살아오던 그는 병 마에 꺾인 채 2005년 8월 30일 66세를 일기로 이승의 끈을 놓고 말았다. 「서벌 시조 연구」로 시작된 필자의 노정은 이제 미발표.유고작 발굴과 연구로 이어졌다. 세상 빛을 보지 못한 미발표작과 말년에 뇌출혈로 투병하면서 시조 창작에 의탁했던 작품들을 텍스트로 삼았다. 한동안 필자는 그의 작품들이 난파선처럼 떠 있는 적막의 바다로 가서 그가 전하는 시그널의 시말을 받아 적기 위해 어둠 속에서 허우적댔다. 나 혼자만의 작업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있었고, 외롭고 힘 겨움에 옴짝할 수 없던 순간도 있었다. 혹, 시의 상징들을 지나치지는 않았나 그가 말걸이해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었다. 이 책은 서벌 시인의 미발표작과 병마로 쓰러진 뒤, 투병하며 쓴 유서와도 같은 유고작을 논구하였 다. 시 밖에는 살길이 없었던 서벌 시인에 대한 이해의 확장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또한 텍스트 작품 들도 함께 수록하여 눈 밝은 사람들에 의해 후속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서벌은 마비된 반쪽 몸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시어들의 빛과 향기를 향유하고자 했다. 그것은 고통을 잊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되돌아보고 현실을 건너 죽음으로 나아간 그는 필시 고향 수암리 바다 어디쯤서 글썽이고 있을 것만 같다. 2020년 12월 하늘눈에서 설파雪坡 원은희元銀姬 서벌(徐伐, 서봉섭徐鳳燮, 1939∼2005) *경남 고성 生 *출생 : 1939년 10월 17일, 2005년 67세로 卒. 1961년 제1시조집, <하늘색 일요일> (이태극 서문) 새글사, 18편 수록 1961년 시집 <어제와 오늘과 내일과> 새글사 1964년 <<시조문학>>에 시조 <연가>, <관등사>, <가을은>이 추천되어 등단 1965년 공보부 신인예술상 시조부분 <낚시심서>로 수석상 수상 1971년 제2시조집, <각목집(角木集)> 금강출판사, 45편 수록 1977년 제3시조집, 손으로 직접 쓴 사설시조집 <서벌사설> 20부 발간, 61편 수록 1982년 제3회 정운(김영도)시조상 수상 1987년 한국문화원연합회위촉<아버님 날 낳으시고>옛시조 해설서 발간 1989년 제1회 한국시조인협회상 1990년 제4시조집. 3인 사설집<간이역에서>, 18편 수록 1991년 제5시조집. 사설시조집<휘파람새나무에 휘파람으로 부는 바람>출간, 72편 수록 1992년 중앙일보 시조대상 본상 수상 1993년 남명문학상<본상> 수상 1995년 제6시조집. 4인(최재복,허유,이정림,서벌) 시화집 <담부랑>출간, 15편 수록 2001년 제7시조집. <걸어다니는 절간>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71편 수록 2001년 제8시조집, <습작65편>, 65편 수록 2003년 <뒤늦게 캔 느낌>으로 가람시조문학상 수상 2005년 뇌졸중으로 卒. 대전 유성구 구암사 납골당에 안장 * 생전에 총 365편 시조 발표(기타 미발표작은 발굴중) 첫 시조집<하늘색 일요일>(1961, 단기4296. 10. 25)> 출간당시 23세 사진 <4월의 고성인물> 시조시인 서벌 선생 인터넷 고성미래신문 2017년 04월 07일 (금) 13:52:06 한태웅 기자 gofnews@naver.com 고성문학 태동기부터 큰 영향 끼친 시조시인 중앙일보 시조대상, 남명문학상 본상 등 수상 고성군, 수남리 일원에 서벌 선생 시비 건립 계획 고성문학의 태동기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 시조시인 서벌 선생(1939∼2005)을 2017년 4월의 고성인물로 선정됐다. 서벌(徐伐, 본명 봉섭, 1939∼2005) 선생은 경남 고성군 영현면 봉발리 838번지에서 태어났다. 서벌 선생은 17∼18세 때 이문형, 선정주, 최진기, 최우림, 남정민 등 고성문학의 태동의 하나였던 《영번지》 동인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시동인지 《갈매기》, 《이 향異鄕문학회》, 《향토문학》, 《기수문학》, 《율律》 등을 통해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쳤다. 그의 나이 22세 때인 1960년에 4·19가 일어나자 고성의 데모군중에 앞장을 서서 격렬하게 투쟁을 하 기도 했다. 이듬해인 1961년에는 그동안 틈틈이 써둔 시를 모아 발간한 첫 시집 《하늘색 일요일》을 발간했다. 이후 1972년에 《각목집(角木集)》을 발간했으며, 중앙일보 시조대상(1992년), 남명문학상 본상(1993년), 가람시조문학상(2003년) 등을 수상했다. 평생 가난이라는 옷을 입고 생의 허무, 적막을 벗 삼아 시조경영의 삶을 살았던 그는 소박한 농부시 인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관심을 시조의 주제로 확대시키며 현대적 참신성으로 시조의 현대화와 대 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서벌 선생은 66세가 되던 2005년 8월, 건강 악화로 작고했다. 고성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서벌 선생을 기리고 알리기 위해 그가 태어난 영현면을 떠나 유 년시절을 보내고 생활했던 고성읍 수남리 일원에 시비 등을 건립할 계획이다. 최평호 군수는 “우리 군이 배출한 훌륭한 인물을 재조명하고 인물의 고장 ‘고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이달의 인물을 선 정하게 됐다”며 “군민들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 군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한편, 원은 희 시인은 지난 2015년 12월 30일 평론집 ‘서벌 시조 연구’를 출간해 세간의 관심을 받은바 있다. 원은희 시인은 이 책을 통해 “서벌은 평론, 시조론을 통해 이론정립의 기초를 마련하였으며, 사설시 조, 동시조 보급에 앞장서야할 시조인의 사명을 모범적으로 실천한 시조부흥의 선구자였다”고 밝힌 바 있다. 고독 / 김도향, 이화 서벌 시조시인 생가 / 창원 경남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