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 강씨의 상행(喪行)을 보내면서 내 젖엄마는 그 시집이 교하(交河)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 얼마 있다가 다시 교하로 가더니 내가 보고 싶어서 도로 뛰어나와 첫새벽에 경기감영(京畿監營) 앞을 지나 성문 열자 곧 회 동(會洞)으로 왔다. 내가 열한 살에 양근(楊根)으로 내려가 다시 진천(鎭川)으로 가니 엄마 는 서울 처져있었다. 우리 집이 서강(西江)으로 온 뒤는 흔히 와 있더니 도로 진천으로 가 니 진천은 멀어서 못 오고 목천(木川)으로 나오니 길이 좀 가까와 한동안이나 와 있었다. 얼마 아니하여 우리가 또 서울로 오니 엄마 점점 늙었으나 내 아들딸을 보면 업어주고 안아 주고 고달픈 줄을 몰랐다. 돈화문(敦化門)앞 서쪽 골목에서 조그만 가게를 하면서 틈나는 대로 나를 보러 다녔다. 내가 새문 밖 「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