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역사의 뒤안길 150

오죽헌2. 관련 인물과 용인이씨 분재기(李氏分財記)

오죽헌 관련 인물과 용인이씨 분재기(李氏分財記) * 오죽헌 주인 변천사 최치운(1390∼1440)건축 → 아들 최응현(1428∼1507)상속 → 둘째딸 사위 이사온 상속 → 딸 용인이씨(신사임당母, 남편 신명화)상속 → 넷째딸 아들 권처균 상속 → 권씨 가문 대대로 상속 → 1975년 강릉시 이전 1. 최치운 1390∼1440(공양왕 2∼세종 22) 조선 초기 문신. 자는 백경, 호는 경호·조은, 본관은 강릉, 1408년(태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417년 식년문과에 급제, 승문원에 등용된 뒤 집현전에서 학문에 힘썼다. 1433년(세종 15) 평안도도절제사 최윤덕의 종사관으로 야인 정벌에 공을 세우고 돌아와 지승문원사가 되었다. 그 뒤 판승문원사·공조참의·이조참의·좌승지 등을 지냈다. 공조참판·예문관..

인류의 기원을 만나러 떠나는 여정 / EBS 다큐프라임 - 사라진 인류 -

인류의 기원을 만나러 떠나는 여정 / 한겨레 신문 (1) 인류의 기원 지금으로부터 157년 전,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그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단 한 줄 밖에 서술하지 못하였다. 그 말은, “사람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도 조명해봐야 할 것이다.”였다. 그가 인류 최고의 과학적 성과로 추앙받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이론’을 펼치면서, 왜 인류도 진화와 관련이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였을까. 그것은 신(神)이 생명을 창조하였다는 시대의 거센 조류를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시대 상황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한 본능은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는 침팬지 같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했을까?’ 등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끊임없이 물었다. ..

실록 속의 정도전 그리고 야율초재, 하륜과의 비교(Pledging My Love 사랑의 서약 / 연주곡)

실록 속의 정도전 그리고 야율초재, 하륜과의 비교 1. 실록 속의 정도전 요즘 삼봉(三峯) 정도전을 탐구면서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삼봉을 검색 일별하여 보았다. 앞서 열거한 그의 生前 찬란한 업적은 제1차 왕자의 난 이후에는 패배자로 낙인 찍혀 간신으로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당대에도 그의 동생, 큰 아들, 증손까지도 조정의 중책을 담당하고 천수를 누릴 정도로 성종대까지 삼봉의 조선 창업의 공로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던 그가 조선 중기 이후 허균, 정여립의 롤모델이 정도전이었고 허균, 정여립과 교류한 최영경, 심우영등과 대척점에 서 있던 송시열을 중심으로한 유학자 그룹을 중심으로 그를 역적으로 배척하는 극심한 분위기에 그의 자손들의 출사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정조..

조선에도 공녀가 있었다. (한국인의 애창곡)

(청주 상당산성) 조선에도 공녀가 있었다. 1. 청주 한 씨 자매 이야기 공녀 차출은 원나라가 멸망한 후 잠시 없어진 듯했으나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가 즉위한 후 다시 시작되었다. 고려 시대 공녀가 주로 일반 백성을 상대로 이루어졌다면 조선 초기의 공녀는 양반의 딸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공녀로 차출된 후, 혹시라도 중국 황제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된다면 조선에 있는 자신의 집에는 부와 명예를 주게 될지 모르지만 명으로 떠나는 어린 딸들의 마음은 그저 피하고 싶은 두려움 자체였을 것이다. 조선 왕실에서도 공녀 선발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각 지방에서 올라온 여인들이 중풍 환자인 척을 하기도 하고, 머리를 흔들거나 다리를 절뚝거리며 신체가 불편한 듯한 모습으로 공녀 차출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

고려사 열전 나세(羅世, 1320-1397)기록

고려사열전 나세[ 羅世 ] 나세(羅世)는 본래 원나라 사람이다. 공민왕 때 장수들과 함께 홍건적을 격퇴한 공을 기려 이등공신으로 녹훈되었고 여러 번 옮겨 판도판서(版圖判書)가 되었다. 교동(喬桐) 만호로 있을 때 왜적이 침구해오자 나세가 도망쳐오니 왕이 노해 순위부(巡衛府)에 수감시켰다. 우왕 초에는 전라도 상원수(上元帥) 겸 도안무사(都安撫使)가 되었는데 당시 왜적의 배 50여 척이 웅연(熊淵 : 지금의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곰소)에 배를 대고 적현(狄峴)을 넘어 부령현(扶寧縣 : 지금의 전라북도 부안군)을 노략질하면서 동진교(東津橋 : 지금의 동진강에 있던 다리)를 부숴 아군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나세는 변안열(邊安烈)·조사민(趙思敏) 등과 함께 밤에 다리를 놓고 군사를 나누어 왜적을 공격했다...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의 소설같은 삶을 아시나요?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소설같은 삶을 아시나요? 1461년(세조 7년) 10월 22일, 순천 부사 여사신은 아침나절 관아 앞마당에서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우두커니 북쪽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여종을 보고 큰소리로 꾸짖었다. 다른 노비들이 마당을 쓸고 대청마루를 닦느라 부산한 시간이었다. 한데 여종은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내아이와 함께 대청에 오르더니 여사신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이 나라 조선의 공주다. 난데없이 흉사를 당해 이 꼴이 되었지만 너는 선왕의 신하로써 어찌 내게 이토록 무엄한가?” 그 말을 들은 여사신은 깜짝 놀라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녀는 바로 문종의 딸이며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였다. 그녀는 몇 해 전 남편 영양위 정종이 귀양살이 하던 광주에서 아들을 ..

백강구전투 [百江口戰鬪]를 아시나요?

https://youtu.be/SnftcR42mWQ 역사스페셜 / 백강구전투 출처 :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1968 백강구전투 [百江口戰鬪] 백제부흥군과 나당연합군의 전투 663년 ~ 663년 금강 입구(추정) 660년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주체가 되어, 일본의 지원병과 합세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과 벌였던 국제적인 싸움. 일명 ‘백강구전(白江口戰)’·‘백강전쟁(白江戰爭)’이라고도 한다.『구당서(舊唐書)』·『삼국사기』에는 ‘백강구(白江口)’라 했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백촌강(白村江)’이라 하였다. 이곳이 지금의 어디인가는 아직 정설(定說)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종래의 연구가 그러했듯..

羅世(1320~1397) 延安君 일대기 / 조선왕조실록 나세 기록 / 나주 나씨 근원/ 서천 나주 나씨

나세(羅世)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장입니다. 다음의 내용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나세(羅世) 원(元) 연우(延祐) 6년/고려(高麗) 충숙왕(忠肅王) 6년(1319년) ~ 조선(朝鮮) 태조(太祖) 6년(1397년) 9월 17일(음력) 시대 고려 말기(14세기) ~ 조선 초기 관직 직책: 판도판서(版圖判書), 교동만호(喬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