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아름다운 문학

<권혁웅> 파문 / 내가던진물수제비가그대에게건너갈때 / 청춘1

이름없는풀뿌리 2024. 1. 17. 06:44
파문 - 권혁웅 / <황금나무 아래서>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이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었을 것인데 이제 빗살이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어떤 간격을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하다면 어느 집 처마 아래 서보라 동그라미와 동그라미 사이에 촘촘히 꽂히는 저 부재에 주파수를 맞춰보라 그러면 당신은 오래된 라디오처럼 잡음이 많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파문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 권혁웅 / <황금나무 아래서>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 그날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물결이 물결을 불러 그대에게 먼저 가 닿았습니다 입술과 입술이 만나듯 물결과 물결이 만나 한 세상 열어 보일 듯했습니다 연한 세월을 흩어날리는 파랑의 길을 따라 그대에게 건너갈 때 그대는 흔들렸던가요 그 물결 무늬를 가슴에 새겨 두었던가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강물은 잠시 멈추어 제 몸을 열어 보였습니다 그대 역시 그처럼 열리리라 생각한 걸까요 공연히 들떠서 그대 마음 쪽으로 철벅거렸지만 어째서 수심은 몸으로만 겪는걸까요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이 삶의 대안이 그대라 생각했던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없는 돌다리를 두들기며 건너던 나의 물수제비 그대에게 닿지 못하고 쉽게 가라앉았지요 그 위로 세월이 흘렀구요 물결과 물결이 만나듯 우리는 흔들렸을 뿐입니다 청춘1 - 권혁웅 /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민음사 / 2007년 - 그대 다시는 그 눈밭을 걸어가지 못하리라 그대가 낸 길을 눈들이 서둘러 덮어 버렸으니 ​ 붕대도 거즈도 없이 돌아갈 길을 지그시 눌러 버렸으니 * 권혁웅 시인, 평론가 1967년 충주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과 및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6년 《중앙일보》 및 《문 학사상》 평론 당선,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시)으로 등단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집 으로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비평집으로 『미래파』 『시론』이 있으며, 이 밖에 산문집 『두근두근』, 신화연구서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현재 한양 여대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다. 제6회 <현대시 동인상>, 2000년 제6회 현대시 동인상 수상, <천년의몽상> 동인 청춘1(권혁웅) / 안도현의시배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