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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디킨슨>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Because I could not stop for Death) - Emily Dickinson - 죽음을 위해 내가 멈출 수 없어 그가 나를 위해 친절히 멈추었다. 마차는 바로 우리 자신과 불멸을 실었다. ​ 우리는 서서히 달렸다. 그는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가 너무 정중하여 나는 일과 여가도 제쳐놓았다. ​ 아이들이 휴식 시간에 원을 만들어 뛰노는 학교를 지났다. 응시하는 곡식 들판도 지났고 저무는 태양도 지나갔다. ​ 아니 오히려 해가 우리를 지나갔다. 이슬이 스며들어 얇은 명주, 나의 겉옷과 명주 망사-숄로는 떨리고 차가웠다. ​ 부푼 둔덕처럼 보이는 집 앞에 우리는 멈추었다. 지붕은 거의 볼 수 없고 박공은 땅 속에 묻혀 있었다. ​ 그 후 수 세기가 흘렀으..

<권영국> 벚꽃 / 백두옹 / 뿌리 / 백목련 / 봄 / 태백산 / 회집

​ 벚 꽃 - 권영국 / 2003/04/15 - 우르르 구름처럼 하얗게 몰려들어 곤두선 치솟음에 꽃 물을 질금질금 미친 듯 날아다니는 흥분한 웃음 살 ​ 바람에 울먹임을 흥건히 품에 안고 후루룩 사정없이 하얗게 무너지며 까르르 자지러지는 봄눈이 눈물짓다 백두옹白頭翁 - 권영국 / 2003/04/15 - 봄바람 살랑이다 하늘을 비질하면 허공에 매달린 가녀린 구름눈물 뚝 뚝 뚝 봄 언덕길을 적시던 화창한 날 ​ 부서진 햇살 한 톨 한 아름 눈부시면 땅껍질 겨드랑이 간질다 고개 드는 멈춰선 한줄기 꽃자루 무덤 가를 두리번 ​ 온몸을 감아 도는 두루마리 같은 전설 이승의 꽃 향기를 말없이 등 지고 홀로 이 고개 숙이는 붉은 꽃 백두옹 세월이라 한다네 - 권영국 / 2003/04/07 - 핏발이 문신처럼 새겨진 ..

<김회직> 반구의고독 / 검은그림자 / 토끼풀 / 뿌리 / 햇빛 / 죽화

​ 반구의 고독 [신작시조] 대한민국시조시인 김 회 직 (森木林=sammoglim) *이 글은 지적재산임으로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음* 고독이 나를 안고 반은 깔리고 반은 떴다. ​ 만상이 죽은듯이 숨소리도 찌렁 우는 밤 커다랑게 쪼개저 입 벌리고 있는 우주의 중심 너는 발 밑에서 꿈틀대다 작열하여 열망을 불태우는 손끝을 벗어나 머리위에 반짝이는 별이 되고 나는 사위가 절연된 중심에서 허덕이는 일점 혈육 팔다리 휘둘러 아 팔다리 휘둘러 혈관을 퉁겨 먹물을 찍어 원을 그린다 동그래미가 제멋대로 쪼개저 버린 원반 속에 사랑과 미움이 진공이 되어 아귀다툼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이 강물 너는 나의 부름에 하늘에서 무수한 별로 울고 너는 나의 부름에 무수한 비로 울어 ​ 너와 나 저 깊은 바다 속에서 소금으로 만..

순금만으로 그린, 유일한 고려 불화

순금만으로 그린, 유일한 고려 불화 日사찰에 보관된 ‘아미타 삼존도’ 정우택 교수 연구서 통해 조명 허윤희 기자 입력 2023.08.24. 03:00업데이트 2023.08.24. 06:29 일본 야마나시현 고후시 손타이지(尊體寺) 소장 고려불화 ‘아미타삼존도(1359). 세로 164.9㎝, 가로 85.6㎝. /정우택 교수 제공 일본 야마나시현에 있는 사찰 손타이지(尊體寺)에는 고려 불화 ‘아미타 삼존도(1359년)’가 있다. 세로 164.9㎝, 가로 85.6㎝. 비단 바탕 전면에 군청색을 칠하고 그 위에 금니(金泥·금가루)만으로 그렸다. 통상 고려 불화는 붉은색·녹색 등 원색을 주조로 한 화려한 색채가 특징인데, 어두운 바탕에 순금만으로 그린 이 그림에선 독특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불교 회화 연구자..

17[sr]역사,종교 2023.08.24

<길영효> 더운냉장고 / 바위 / 단풍 / 눈오는날의소묘

더운 냉장고 - 길 영 효 - 누군가 문을 열고 들여다보는 걸 숙명이라 여기며 산다 내 안에 들끓는 욕망도 문 가까이 서서 기다린다 ​ 김치 통, 멸치, 가지나물, 정수물병 스스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그들의 눈이 되어 주며 생각을 얼리고 말도 잃어버린다 ​ 꽁꽁 얼면 얼수록 그 가슴 열정은 반비례하고 뜨거움이 뜨거움을 넘어 심지에 닿으면 차가움이 되는 것일까 ​ 문 스치는 발소리, 다시 세상 열리는 순간, 불빛이 터트리는 함성으로 문 앞에 서성이던 고독이 무너진다 바 위 - 길 영 효 - 비가 내리고 바람이 가버리면 개울가 덩그러니 남은 몸뚱어리 하나 ​ 햇볕에 온몸이 달구어져 한꺼풀, 한꺼풀 제 옷을 벗고 고운 모래가 된다. ​ 나이가 후르르 무너진다. 계곡의 나무보다 더 먼저 시간의 나이테를 지워내고..

<조은세> 아파트 / 후회 / 소망 / 조팝나무 / 버들강아지 / 개화

​ 아파트 - 조 은 세 / 2003.10.18 - 야망에 찬 손 뻗으면 닿을 듯, 닿을 듯하여 뭐인지 모르면서 밟아온 마흔의 욕망 구름도 찌르지 못해 허공중에 우는 창(槍) 후 회 - 조 은 세 / 2003.06.11 - 십수 년 공들여 쌓은 철옹성 믿었는데 우연한 어깃장에 목숨걸고 달려 드니 마침내 주춧돌 흔들려 실바람도 겁난다 ​ 털끝 하나 다치기 싫어 켜켜이 세운 방패막이 틈 사이 박혀오는 가시 돋힌 냉정한 말 내 몸도 이렇게 아픈데 맨몸으로 버티는 그 ​ 제 몸을 앗아가는 비안개의 도둑질도 묵묵히 지켜보는 덩치 큰 산의 아량 참을 줄 아는 그 마음 조금 일찍 알았다면 사랑하는 당신 - 조 은 세 / 2003.05.27 - 초록빛 개울물에 더위를 헹궈내면 산바람 등에 업혀 당신이 올 거라는 아까시..

<강은교> 싸움 / 우리가 물이 되어

싸 움 - 강은교 - 모래밭으로 갔다. 어디인가로 바삐 가는 작은 게 한 마리를 만났다. 어이 - 나는 작은 게를 불러 세웠다. 내 그림자가 그 녀석 위로 폭포같이 쏟아졌다. 게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멈칫 그림자를 옮겨주었다. 작은 게는 헐떡거렸다. 그러다 나를 향해 발딱 돌아섰다. 열 개의 발들이 하늘을 향하여 곤두섰다. 그 중 한 개가 구름 위로 우뚝 올라섰다. 집게발이었다. 분홍 집게발, 겁에 질린 - 칼날 발톱 위로 헉헉 숨소리가 뿌려졌다. 멈칫, 내가 뒤로 물러서자, 그 녀석은 집게발을 내리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힐끔힐끔 뒤돌아보며, 새파란 곁눈질, 나는 다시 따라갔다. 그 녀석 다시 분개하여 분홍 집게발 - 위로 한껏 올림 - 나 또 멈칫, 그림자를 치워줌. 그 녀석 다시 달리기 시작..

<한창현> 탈출 / 빙어

탈 출 - 한 창 현 - 영혼을 담보로 양심에 칼질하는 삼류시인과 화가를 생각하니 몽땅 벗어 준 나목의 비애로 현기증은 소리없이 혼절한다 ​ 무채색 표백된 겨울 바다 절망의 구름은 미아로 서성거리고 웅성거림으로 하늘색을 지운다 그리고 한번의 구역질로 산성비를 토한다 ​ 거미줄로 장식된 창틀 사이로 튀겨져 나가는 마지막 정령들 작은방은 얼름골 빙벽으로 변한다 붓대를 잡고 선을 긋는다 분열된 자화상 창살 없는 감방에 유배된다 ​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면 어눌한 태양이 땅끝에 턱걸이할 때 낯선 도망자의 얼굴로 탈출 만을 생각한다 ​ 길 잃은 유성 하나 긴 사선을 긋는다 ​ 빙 어 - 한 창 현 - 순결의 산과 강 비탈진 골짜기에도 빛이 스며들고 바람도 유영 친다 ​ 강을 따라서 길게 누워버린 길 겨울 숲은 그리..

<양현근> 겨울 들녘에서 /눈(雪) / 나무들, 강변에 서다

​ 겨울 들녘에서 - 양 현 근 - 숨가쁜 관능이 비켜간 거리에 쉬이 살붙이지 못하는 기다림의 뿌리들이 너울도 없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비울수록 맑고 단단한 생각들이 생의 갓길을 하염없이 오르내렸을 저, 촘촘한 추억들이 꺾인 시간의 관절들이 내지르는 비명속으로 가슴길을 내고 있습니다 비워낸다는 것은 분명 자유로와지기 위함이겠지요 ​ 습관처럼 되풀이되는 해묵은 안부 사이로 연민의 상처 몇 마디 슬쩍 묻어둡니다 날마다 한 뼘씩 자라나는 마음의 경계를 들풀들의 낯선 외로움을 이제 가슴에 묻어도 괘념치 않을 듯 싶습니다 ​ 늘 외로운 이여 거친 들판을 품어도 좋을 세상은 지금 불혹입니다. 눈(雪) - 양 현 근 - 차라리 하얗게 유혹할까 젖은 몸피 뒤척이더니 그 마음 풀어놓지도 못하고 동지섣달 빈 하늘에서 묵은 ..

<나희덕> 탱자꽃잎보다도얇은 / 마른물고기처럼 / 우포에서

​ 탱자꽃잎보다도 얇은 - 나희덕 - 탱자꽃잎보다도 얇은 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 바람이 와서 자꾸만 살을 저며 간다 누구를 밸 수도 없는 칼날이 하루 하루 자라고 있다 ​ 칼날을 베고 잠들던 날 탱자꽃 피어있던 고향집이 꿈에 보였다. 내가 칼날을 키우는 동안 탱자나무는 가시들을 무성하게 키웠다. 그러나 꽃도 함께 피워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가 환했다 ​ 꽃들을 지키려고 탱자는 가시를 가졌을까 지킬 것도 없이 얇아져가는 나는 내속의 칼날에 마음을 자꾸 베이는데 탱자꽃잎에도 제 가시에 찔린 흔적이 있다 ​ 침을 발라 탱자가시를 손에도 붙이고 코에도 붙이고 놀던 어린시절 바람이 와서 탱자가시를 가져가고 살을 가져가고 ​ 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 나는 탱자꽃잎보다도 얇아졌다 누구를 밸지도 모르는 칼날이 하루하루 자..

<김수영> 풀 / 눈 / 폭포 / 푸른하늘을 / 사령

​ 풀 - 김수영 / (1968) -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눈 - 김수영 / (1956) -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詩人)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 버린 영혼(靈魂)과 육체(肉體..

<김선우> 헤모글로빈, 알코올, 머리칼 / 낙화, 첫사랑

​ 헤모글로빈, 알코올, 머리칼 - 김선우 - 『머리가 깨진 날 기뻤어요 내상보다 외상이 덜 위험하거던요』 ​ 보도블록을 깨다 손목 베이자 불타는 머리칼. 그 격렬한 외상의 날들 자고 일어나면 새살이 돋아 있곤 했지요 추억의 쓴 물에 어금니를 담그거나 이적성 표현은 아닙니다 ​ 구십년대는 우울한 내상의 날들이어서 걸핏하면 넘어지고 발목을 삐는데 피 한방울 흐르지 않고 멍만 듭니다 세계 인구의 열배도 넘는 세포가 모여 이룬, 육체의 나날은 출혈 없이 평화롭습니다 ​ 그런데 어제 머리를 깼지요 만취해 돌아오다 길에 누워버렸습니다 두개골은 멀쩡하고 상처도 크지 않은데 폭포처럼, 피 흘리는 머리칼 친구의 웃옷을 벌겋게, 치마를 물들이고 길바닥에 누워 헤실헤실 웃더랍니다 "아아 상쾌해" 하면서 말예요 ​ 빨간 다..

<한용운> 님의침묵 / 알수없어요 / 나룻배와행인 / 꿈과근심 / 복종

​ 님의 침묵 - 만해 한용운 / (1926)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금강경>일절유위법(一切有爲法)

​ (일절유위법)一切有爲法 - 金剛經 제32應化非眞分 四句偈 / 라강하 譯 - 일절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 이 승에 모든 지어진 것들은 하나의 꿈이요, 환영이요, 곧 스러질 거품이요, 있는 둥 마는 둥한 그림자 같아라. 그리고 햇살에 곧 스러질 이슬방울이요, 잠깐 보일 뿐인 한 줄기 번갯불 같아라. 이 같이 볼것을... 사람들아!

<이해인> 꿈을 위한 변명 / 당신이 보고 싶은 날

​ 꿈을 위한 변명 - 이해인 - 아직 살아있기에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꿈꾸지 말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꿈이 많은 사람은 정신이 산만하고 삶이 맑지 못한 때문이라고 단정 짓지 마세요 나는 매일 꿈을 꿉니다 슬퍼도 기뻐도 아름다운 꿈 꿈은 그대로 삶이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도 꿈길에 그려질 때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꿈이 없는 삶 쌂이 없는 꿈은 얼마나 지루할까요 죽으면 꿈이 멎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꿈을 꾸고 싶습니다 꿈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 당신이 보고 싶은 날 - 이해인 - 요즘엔 당신이 더욱 보고 싶습니다 지척인 당신을 두고서도 보지 못 한다는 것이 마음 한 구석을 멍들게 하고 있습니다 ​ 그리운 마음에 견딜수 없을때면 이런 상상을 합니다 "당신이 꿈이였으면....." ​ 당신..

<장석주> 날아라, 時間의 捕蟲網에 붙잡힌 우울한 夢想이여

​ 날아라, 時間의 捕蟲網에 붙잡힌 우울한 夢想이여 - 장석주(張錫周) - Ⅰ​ 新生의 아이들이 이마를 빛내며 東편西편 흩어지는 바람 속을 질주한다 짧은 겨울 해 덧없이 지고 너무 오래된 이 세상 다시 저문다 인가 近處로 내려오는 죽음 몇 뿌리 소리 없이 밤눈만 내려 쌓이고 있다​ ​ Ⅱ​ 회양목 아래에서 칸나꽃 같은 女子들이 울고 있다 증발하는 구름 같은 꿈의 毛髮, 어떤 손이 잡을 수 있나 ​ Ⅲ​ 밤이 오자 寂寞한 온천 마을 靑과일같은, 달이 떴다 바람은 낮의 처마의 불빛을 흔들고 우리가 적막한 헤매임 끝에 문득 빈 수숫대처럼 어둠 속에 설 때 가을 山마다 골마다 滿月의 달빛을 받고 하얗게 일어서는 야윈 물소리.​ ​ Ⅳ​ 어둠 속을 쥐떼가 달리고 공포에 떨며 집들이 긴장한다 ​ 하나의 성냥개비를 ..

<朱文暾> 둘 혹은 하나 / 고요 / 그의 바다 / 어둠

​ 둘 혹은 하나 - 朱文暾(둘 혹은 하나, 1970) - 기울어진 角度의 몇 모금의 멜러디가 그의 유리컵을 채우고 경사를 바로하는 그의 전신을 향해 고추서는 내 유리컵의 異變. 그를 채우기 위해 기울어졌다가 결국 쏟아놓은 것은 무형의 멜러디 뿐임을 알게되는 뜻밖의 自覺. 기울어졌다가 쏟아받은 진한 체온의 感銘. 눈바람의 海溢 속에 독립하는 두 개의 실루엣으로부터 기울어졌던 만큼의 멜로디가 천천히 안으로 안으로 沈降하는 둘 혹은 하나. ​ ​ 고 요 - 朱文暾(둘 혹은 하나, 1970) - 고요를 길어 올리는 두레박입니다 고요가 고요를 꾸역꾸역 새김질합니다 고요의 가지를 자르던 당신의 가위는 수 없이 녹슬었습니다 고요의 보이지 않는 이마에서 회색의 피가 흐릅니다 가느다랗게 가느다랗게 끝없이 흐릅니다 당신..

<박남수> 어딘지 모르는 숲의 記憶 / 새 / 아침 이미지 / 종소리

​ 어딘지 모르는 숲의 記憶 - 朴南秀 / 새의 暗葬 (1970) - 1 어느 날, 나는 어딘지 모르는 숲의 記憶을 더듬고 있었다. 당신의 눈에 낀 안개 같은 것, 새가 죽어, 눈에 끼던 산 안개의 흰 빛이 나의 어두운 거울에 히뜩 지나가는 그 순간에, 나는 어딘지 분명챦은 숲 속을 날고 있었다. ​ 겨울 마른 나뭇가지가 어른거린다. 땅 위에는 흰 눈이 깔리고 다섯 가락의 굳은 발자국이 꽃잎처럼 패인, 긴긴 一直線을 굽어보면서, 나는 끼룩끼룩 가슴의 소리를 뽑아 보았지만, 그것은 발톱이 판 傷痕이 되어 나의 內壁으로 되돌아오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 2 어딘지 분명챦은 숲의 記憶이, 지금 나의 겨드랑께서 날개를 돋게 하지만, 나에게는 하늘이 없다. 이 큰 날개를 날릴 하늘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사이먼과 가펑글> 적막의 소리(Sounds Of Silence)

​ 적막의 소리(Sounds Of Silence) - 사이먼과 가펑글(Paul Simon and Arthur Garfunkel), 라강하 譯 -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여보게, 나의 오랜 친구인 어둠이여!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그대와 이야기 나누어 보려고 또 찾아왔네.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내가 잠든 사이에 살며시 기어 들어와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그대가 내 머리 속에 아무도 아무도 모르게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환영(幻影)의 씨앗을 심어 주었기에 Still remains 적막의 술렁임 속에서도 ..

<세익스피어>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 맥베드

​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 맥베드 / 세익스 피어, 라강하 譯 -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쉬지 않고 하루하루 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 종종 걸음으로 소리없이 다가가고,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 지나간 날들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티끌의 죽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비추어 왔구나. The way to dusty death. ​ 꺼져라, 꺼져, 덧없는 촛불아! Out, out, brief candle! ​ 인생이란 기껏해야 걸어다니는 그림자, L..

美와 우주 전쟁 중인 中, 1만1100m 위구르 땅 팠다 왜?

美와 우주 전쟁 중인 中, 1만1100m 위구르 땅 팠다 왜? 조선일보 김효인 기자 입력 2023.08.17. 03:00업데이트 2023.08.17. 08:06 두 개의 다이아몬드 사이에 작은 시료를 끼워 넣고 다이아몬드를 통해 레이저를 발사한다. 얼룩만큼 작은 크기의 시료는 순식간에 일상적인 압력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고압에 노출된다. 태양만큼 뜨거운 환경에 놓일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땅속의 극한 환경을 재현할 때 사용하는 ‘고압 연구’ 방식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2층 높이의 거대한 고압 연구 장치인 ‘이히반’ 등의 장비를 개발하는 데 1370만달러(약 182억6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히반은 6000t 이상의 무게로 짓누르는 압력을 가할 수 있어 지금까지는 아주 작은 시료 분석에 ..

19[sr]우주,지구 2023.08.17

<작자미상> 유산가(遊山歌)

유산가(遊山歌) -작자 미상- 화란춘성(花爛春城)하고 만화방창(萬和方暢)하니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山川景槪)를 구경가세 죽장망해(竹杖芒鞋) 단표자(簞瓢子)로 천리강산(千里江山) 들어가니 만산홍록(滿山紅綠)들은 일년일도(一年一度) 다시피어 춘색(春色)을 자랑노라. 색색(色色)이 붉었는데 창송취죽(蒼松翠竹)은 창창울울(蒼蒼鬱鬱)하고 기화요초(琦花瑤草) 난만중(爛漫中)에 꽃속에 잠든 나비 자취없이 나라난다. ​ ​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요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紛紛雪)이라 삼춘가절(三春佳節)이 좋을씨고, 도화만발(桃花滿發) 점점홍(點點紅)이로구나 어주축수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이라던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예 아니냐 양류세지(楊柳細枝) 사사록(絲絲綠)하니, 황산곡리당춘절(黃山谷裡當春節..

<최애리> 새

​ 새 - 최애리(崔愛里) - 흩어져 날아 내리며 우리는 비로소 모이고 있었을까.​ 저마다 내리어 잠들 데를 찾아, 종일 헤어지던 날개소리-​ 날개소리를 젖은 날개 아래 잠잠히 들으며, 잠들어​ 잠시 모일 데를 찾아, 그러나 흐르는 어느 물가에? ​ 불빛 하나로, 오 황폐히 드러나는 밤​ 휘청휘청 꿈 속으로 미리​ 우리는 오래 걸어 들어 갔다. ​ 들리지 않을 때까지 들리는 물소리. 강물은 흘러 훌훌-​ 밤을 벗어나고, 제 꿈에 발이 묶여 내리지 못했을까.-​ 그칠 수 없이 날개를 치며, 다시 떠나가는 우리들.-​ 땅이 되고 싶다. 어디쯤일까? 물길을 거슬러 스스로를 거슬러,-​ 흐르는 샘이 되어 서로 부르며, 또 무엇을 거슬러-​ 어디쯤에서, 우리는 서로의 땅이 되어 있을까?-​ ​ 새. 새.​ 허공에..

<송수권> 부두로 가는 길목에서

부두로 가는 길목에서 - 송수권(宋秀權) - 꽃게같은 잔등을 내리어 오늘도 나는 부두로 간다 밟으면 독사 등어리처럼 꾸물거리는 뱀장어처럼 꼬리는 바다로 묻혀있는 簡易店鋪 유리窓마다 비릿한 바람이 떨어지는 귀틀집 窓을 넘어다보는 人形의 눈꺼풀 속으로도 물결은 들어와 길게 찰랑이는 그 눈썹 위에서도 갈매기가 원을 긋는 부두로 가는 길 그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너를 생각한다 빨간 여권을 펼쳐 든 外港에는 캐나다의 船舶이 우리들의 항구를 압박하고 있다 트로이의 木馬같은 입을 벌린 기중기가 原木을 토해내고 있다 통나무들은 항구의 길을 넘치고 어깨가 좁아 돌아서는 행인들 그 발길에 까지 통나무들은 더 길을 메워서 우리들의 항구는 더욱 비탈지고 더욱 어두워져서 바다로 기울어진다 통나무를 보면 조국이여 너의 팔다리가..

<송수권> 山門에 기대어

山門에 기대어 - 송수권(宋秀權) - 누이야 가을 山 그리매에 빠진 눈썹 두오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 가면​ 즈믄 밤의 江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 깊이 가라앉은 苦腦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 같이​ 살아서 오던 것을​ 그리고 山茶花 한 가지 꺽어 스스럼 없이​ 건네이던 것을, ​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 山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盞은 마시고 한 盞은 비워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 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 누이야 아는가 가을 山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낱이​ 지금 이 못불 속에 비쳐옴을. /..

<파스칼> 인간은 한 개의 갈대

인간은 한 개의 갈대 -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팡세』에서... - 인간은 한개의 갈대 밖에 되지 않는다. 자연 중에서 가장 약한 자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분쇄하는 데는 전우주를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을 가지고도 넉넉히 그를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분쇄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고 속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우리는 자기를 높여야 한다. 자기를 높이는 것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이나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잘..

<이하(李賀)> 詩 단편과 生涯

이하(李賀)의 시 - 이병주(李炳注, 1921~1992)作 『바람과 구름과 비』에서... - 危邦不居위방불거라 했지만 이미 몸은 危邦위방에 있다. 亂邦不入란방불입이라 했지만 이미 몸은 亂邦란방에 들어왔다.​ 성현의 지혜도 땅과 때에 어긋나면​ 철벽 앞의 筍矢순시와 다를 바가 없으니​ 차라리 魂혼이나마 銀河은하를 날게 해서​ 언젠가 流星유성과 더불어 몰락했으면 한다. 神絃曲(신현곡) - 이하(李賀, 당나라 790년~816년) - 西山日沒東山昏 (서산일몰동산혼) 서산에 해 지고 동산에 어둠 깔리자 旋風吹馬馬踏雲 (선풍취마마답운) 회오리바람 말에 불어 말이 구름밝고 날아온다. 畵絃素管聲淺繁 (화현소관성천번) 그림 속 비파와 퉁소소리 얕은 듯 깔리다가 뒤섞이고 花裙綷綵步秋塵 (화군최채보추진) 꽃 치마 오색 비단..

<김영애> 詩란? / 창(窓) / 가을 / 겨울 숲 / 수색(搜索) / 삼림욕

詩, 그 이름 앞에서 - 2002.10.28 / 김영애 - 발칙한 아름다움이여! 그대의 마음을 재고있는 이 어리석음을 보아다오. 참혹의 시간을 달려 그대 앞에 당도 하였음을. ​ 詩, 그 이름 앞에서. ​ 詩에게 2 - 2002.10.28 / 김영애 - 너무 익어서 농익은 것들 그래서 썩는 것들 뼈와 살을 파고 드는 것들 지식을 불모로 우뚝 솟은 자들이 열매맺은 것들 세상쪽으로 그 몫 돌려 주기 못내 아쉽고 두려워 은폐하는 것들, 썩는구나. 썩어. 지독한 욕심과 위선들이 썩는구나 詩라는 명분을 끌어와 애써 발효라고 이름지으며 하얗게 먼발치에서 웃는 그들의 심장 쪽에서 오랫동안 삭혀온 곰팡내가 풍겨 온다 이왕 썩어 문드러질 모양이면 거름이나 되어 지상의 가장 낮은 자, 마소의 목줄기나 축여줄 요량이지 까치..

<윤성의> 대숲에 서면 / 백제의 눈빛 / 개꿈 / 탐욕 / 몸무게를 달며

대숲에 서면 - 2004.01.06 / 윤성의 - 객적은 뱃살이 시덥잖아 보이던가​ 무에 그다지 채울 게 많더냐 고​ 가볍게 되도록 가볍게 비워보라 귀띔하네. ​ ​ 백제의 눈빛 1 - 2003.04.13 / 윤성의 - - 금동용봉봉래산향로 천 몇 백년 그 긴 잠 함묵의 굴속에서 망국 한 곰 삭혀온 금동 용봉봉래산향로 역사를 뛰어 넘어서 어둠 씻고 눈뜬다. ​ 누가 백제를 죽었다 말하는가​ 몸 비록 흩었어도 혼 불은 이었거니 긴 세월 잊혔던 불빛 오늘 다시 비치나니. ​ 왕조는 묻혔건만 그 얼은 되살아서​ 뜸직한 얼굴로 역사 앞에 나앉으며​ 억지에 눈감긴 세월 벗으라 눈짓한다. ​ ​​ 개꿈 - 2003.01.12 / 윤성의 - 나른한 오후 달디단 낮잠에 들다 ​ 한적한 시골 마을, 초가 지붕 위에 박이..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생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金宗三)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 서울역 앞을 걸었다. ​ 저물 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 그런 사람들이 ​ 엄청난 고생되어도 ​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 그런 사람들이 ​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 고귀한 인류이고 ​ 영원한 광명이고 ​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 生日생일 - 김종삼(金宗三) - 꿈에서 본 몇 집 밖에 안되는 화사한 小邑소읍을 지나면서 ​ 아름드리 나무보다도 큰 독수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 來日내일에 나를 만날 수 없는 ​ 未來미래를 갔다. ​ ​ 소리없이 출렁이는 ..